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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아직도 개봉 중이다. 지난 2월27일에는 이탈리아에서 개봉했고, 독일, 중국,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에서의 개봉을 코앞에 두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북미 개봉일도 정해졌다. 하지만 <설국열차>가 지금까지 어디서 개봉해 어떤 반응을 얻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씨네21>은 프랑스, 인도네시아, 홍콩, 타이, 대만, 베트남, 필리핀, 일본, 말레이시아 등 <설국열차>가 현재까지 개봉했던 총 9개 나라의 배급 담당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최근까지 이슈가 된 북미 편집권 문제와 <설국열차>를 전세계에 차례로 배급하고 있는 CJ의 분위기를 CJ엔터테인먼트 해외영업팀 김성은 팀장에게 물었다.
<설국열차>가 서울역을 떠난 지 반년 가까이 지났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이 마지막 국내 상영이었다. 그동안 <설국열차>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순회하고 있
‘인터내셔널 무비’의 가능성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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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연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책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영화와 책의 만남. 모두 연결되어 있다. <씨네21> 열혈 애독자를 자처하는 도서출판 강의 정홍수 대표가 영화 관련 서적에 관심을 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십 분짜리 영화학교>를 시작으로 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최근 김경욱 영화평론가의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까지 꾸준히 영화 관련 서적을 내고 있는 정홍수 대표는 오늘도 부지런히 영화와 책의 인연을 잇고 있다.
-영화 관련 서적 출판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계기는 <씨네21>이다. 2006년 문화평론가 남재일과 문학평론가 정여울의 책을 각각 출판한 적이 있다. 둘 다 <씨네21>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코너에 기고했던 글들을 일부 모아 엮은 책이다. 그게 인연이 되어 김혜리 기자를 소개
“기발한 기획보다 좋은 글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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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도 있었다고?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는 장르 서적이 아니라, 미시적인 접근법이 꽤 흥미로웠던 몇권의 책이 있었다. <카사블랑카>(1942)부터 <록키 호러 픽쳐 쇼>(1975)에 이르기까지 ‘컬트’ 현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컬트영화, 그 미학과 이데올로기>(곽한주 엮음 / 한나래 펴냄)가 있었고 프랑스 영화지 <포지티프>의 비평가였던 필립 루이에가 쓴 <고어 영화: 피의 미학> 또한 표지부터 신선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장르 서적이 드물었던 당시 분위기를 감안하면(1999년 출간) 호러영화 전문서적이라는 것부터 획기적이었다. 본격 연구서라고 말하기에는 좀 부족한 면이 있어도 조지 로메로, 존 카펜터, 스튜어트 고든, 다리오 아르젠토, 루치오 풀치, 클라이브 바커는 물론 <네크로맨틱>(1987)의 요르그 부트게라이트까지 소개하고 있다. 심지어 요르그 부트게라이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죽음의 왕>(19
피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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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미지의 산이다. 그 속에 완성된 하나의 생태계를 품고 온갖 풍경을 보여주지만 직접 발을딛기 전에는 숨겨진 비경까지 볼 수 없다. 그러나 거장이라 불리는 감독일수록, 산은 높고 길은 험해 그 세계에 발 들일 용기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좋은 가이드다. 매번 같은 길만 오르락내리락하던 나를 다른 길로 이끌어줄, 이 산을 좀더 잘 알고 자주 다녀 산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사람. 한국 영화계에는 임권택이라는 거대한 산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임권택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니라 동시대에 함께 호흡하는 감독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과장해서 말하자면 정성일이라는 좋은 가이드 덕분이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우리가 거장이라는 이름 아래 묻어버린 임권택의 모든 것을 발굴해낸다. 그렇다. 이 책은 감히 ‘모든 것’이라 말할 만하다.
<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는 임권택에 대한 감독론이자 수필이며, 인터뷰인 동시에 자서전이
거장이라는 산에 오르기 위한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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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2000년 이후 일본영화의 활력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소노 시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몇몇 감독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같은 영감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최근 일본영화를 보면 기괴하거나 만화적으로 과장되거나 지나치게 조용하고 심심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어느 쪽이든 양식적인 극단만이 살아남고 중간이 없다. 한때 세계 영화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영광의 시절과 비교하면 말라붙은 우물처럼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영화의 내공은 여전히 깊고 탄탄하다. 당장의 부침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듯한 망설임 없는 발걸음. <일본영화 다시 보기>는 일본영화의 이같은 저력이 어디서 오는지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언뜻 말라버린 듯 보이는 영감의 우물 역시 한 꺼풀 밑을 들여다보면 도도하게 흐르는 젖줄 같은 역사가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오늘날 여전히 일본영화의 가치가 유효한 것은 전통의 힘에 기댄 바가 크다. 10
‘기리’와 ‘닌죠’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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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1996년 출간된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는 2005년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 실을 꿰매서 제본하는 사철 방식으로 만들어진 양장본이었다. 튼튼하고 품위 있는 책이다. 하지만 가격이 높다 보니 구입을 망설이는 독자를 위해 이듬해 보급판도 나왔다. 사(史)는 시대마다 저자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이지만, <옥스퍼드 세계 영화사>는 지역과 장르를 두루 아울러 기술된 영화사의 교본이다. 제프리 노웰 스미스가 책임 편집한 이 책은 필자만 80명에 이른다. 데이비드 보드웰, 릭 울트먼, 비비안 소브첵, 수잔 헤이워드, 찰스 마서, 토머스 엘새서, 토머스 샤츠 등 실로 화려한 목록이다. 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도 한권 분량의 영화사로 유례없다. 물론, 유명한 저자들이 동원되고 두껍다고 좋은 영화사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필자의 관점이 충돌하거나 중복 서술될 우려도 크다. <옥스퍼드 세계영화사>는 이런 위험 요소를 잘 피해나가면서도 일관된
단언컨대 영화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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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애호가들이라면 누구나 ‘한나래’ 영화책은 있을 것이다. 다시 그를 뒤적여보면 모든 책에서 ‘책임편집 이리라’라는 이름도 함께 발견할 것이다. 과거 한나래에서 ‘한나래 시네마 시리즈’, ‘한나래 언론문화 총서’, ‘필름 메이킹 시리즈’ 기획을 주도했던 이리라 편집자가 새로이 컬처룩이라는 회사를 꾸렸다. 반갑게도 최근 토머스 샤츠의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 개정판인 <할리우드 장르>를 냈다. 이른바 ‘씨네룩’ 시리즈의 첫째권이다.
-한나래의 모든 영화책에서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웃음)
=그야말로 일만 했던, 그래도 참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웃음) 1990년대 초반 한나래 창립멤버로 일을 시작해 ‘한나래 시네마’, ‘필름 메이킹’ 시리즈 등을 기획했다. 50여종의 영화책을 기획, 편집했고, <필름 컬처>도 7호까지 냈다. 대중문화 연구 붐이 일던 때라 당시 한나래뿐만 아니라 시각과 언어, 이론과 실천, 현실문화연구 등에서도 영화를 포함한 대중
“다른 책으로 돈 벌고 그 돈으로 영화책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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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는 ‘자뻑’으로 가득한 회고록이다. 하지만 공대 출신으로 이십세기 폭스사에서 문서배달사원으로 영화일을 시작해, 스토리 분석가를 거쳐 감독 겸 제작자로서 자신의 제국을 일군 ‘B무비의 제왕’이자 인디 영화인들의 우상이 되기까지, 로저 코먼은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서문에서 밝히듯 50편이 넘는 저예산영화를 감독하고 ‘뉴 월드 픽처스’와 ‘콩코드 뉴 호라이즌’을 설립해 150편 이상을 제작, 배급했는데 그가 그렇게 손댄 300편의 ‘이상한 영화’ 중 280편이 이익을 남겼다. 개봉 당시에는 ‘드라이브 인 시어터’를 거점으로 오직 흥행만을 노린 싸구려 B무비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세월이 흘러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와 런던의 국립영화극장, 그리고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그 영화들의 회고전이 열렸다. 모두가 궁핍했던 대공황 시대, 본편에 대한 ‘원 플러스 원’ 개념으로 시작했던 B무비가 이른바
영화 교과서에는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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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단계는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영화에 관한 평을 쓰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트뤼포를 비롯해 프랑스 영화비평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했던 다섯명의 영화비평가는 이후 차례로 영화감독이 되었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영화언어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열었다.
1976년 발간된 제임스 모나코의 <뉴 웨이브>는 영화사의 가장 중요한 변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영화적 경향, 프랑스어로는 누벨바그, 영어로는 뉴웨이브라고 불리는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다섯명의 감독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뉴 웨이브>는 클로드 샤브롤, 프랑수아 트뤼포, 자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장 뤽 고다르를 감독별로 분석한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모나코는 그들이 비평가 시절 공통적으로
영화를 통한 내밀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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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 미개사회에 대해 민속학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새로운 학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려보자. 민속학의 대상이며 희생자였던 아프리카인, 오세아니아인, 아메리칸 인디언에 이어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다! 그러나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건방지거나 수집가가 되지 마시오.”
‘스타예배’ 챕터에서 따온 에드가 모랭의 이 익살스러운 외침은 <스타>라는 책이 어떤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명쾌하게 보여준다. 모랭에게 ‘스타’란 영화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통한 자본주의의 인공적인 발명품이기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자생한 신화이기도 하다. 그는 마치 서구 인류학자들이 오세아니아 원주민들의 원시종교를 관찰하듯 시치미를 뚝 떼고 스타 숭배의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처음에는 왕년의 영화평론가답게 영화와 스타 시스템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서로를 먹여살리게 되었는지 기술하던 모랭은 곧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관객에게 ‘강렬한 동일시로서의 투사’를 끌어내고 이것이 어떻게 현대의 신화
할리우드의 신화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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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은 최근 가장 활발하게 영화 관련 서적을 내고 있는 출판사 중 한곳이다. 미시시피대학출판부의 거장 감독과의 인터뷰 시리즈는 물론 영화분야 베스트셀러였던 <박찬욱의 오마주> 역시 마음산책의 기획 아래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개봉영화만 3편 정도 본다는 정은숙 대표는 시인답게 영화와 책, 그리고 자신의 관계를 ‘숙명’이란 단어로 정리했다.
-책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것 같다.
=편집자도 사람인지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 안에서 책을 기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출판사를 열 때 3권의 책을 기획했는데 그중 하나가 김영하 작가의 <굴비낚시>라는 영화 산문집이었다. 지금도 영화 관련 책들은 에세이, 소설 등과 함께 마음산책의 든든한 기둥이다.
-미시시피대학출판부에서 낸 거장 감독과의 인터뷰 시리즈를 꾸준히 내고 있는데.
=처음부터 모든 감독의 시리즈를 다 내려고 기획한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짐 자무시 감독을 너무 좋아해
“그 책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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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감독이란 불가시의 존재이다. 나로서는 그런 보이지 않는 감독의 존재를 인지하게 해준 고마운 책 중 하나가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이다. 이 책은 또한 좌절과 불평등의 인식을 안겨준 책이기도 했다. 비디오가 없던 시절에 순전히 영화관에서만 영화를 보고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트뤼포의 놀라운 기억력과 보는 능력에 질투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트뤼포가 거의 외우다시피 보았던 영화들에서 사소한 질문을 할 경우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 책은 한명의 영화광이 자신이 숭배하는 작가를 만나 영화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비평가의 초기 시절이 아니라 1966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물론, 인터뷰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 시절부터, 그리고 본격적으로는 1962년부터 시작되었다),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본심은 자신이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이 정작 미국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 것과 히치콕과의 정밀한 인터뷰
트뤼포의 사심으로 가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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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퀴어 시네마(new queer cinema)가 황금기에 이를 즈음이었다. 루비 리치라는 영화평론가는 새롭게 등장한 성소수자 영화들의 흐름을 뉴 퀴어 시네마라고 명명하였다. 데릭 저먼, 그렉 아라키, 토드 헤인즈, 톰 칼린, 그리고 아이작 줄리언 같은 감독들이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 감독들은 스크린 위에 성소수자들을 긍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연쇄살인범 게이를 기꺼이 찬양하였고, 성소수자 사회 내부의 갈등과 차이에 대하여 대담하게 말을 건네며, 문화의 역사에서 억압되었던 이단적 취미를 자신이 기꺼이 상속할 전통으로 내세웠다. 모두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뉴 퀴어 시네마를 에워싼 소문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로빈 우드를 만났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가 번역된 행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역시 지금은 반쯤 뇌리에 잊힌 영국의 리처드 다이어와 함께 영화의 역사를 성의
읽기의 수고를 생각하며, 로빈 우드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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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속도감의 문체로 씌어진 <헐리웃 문화혁명: 어떻게 섹스-마약-로큰롤 세대가 헐리웃을 구했나>는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뉴아메리칸 시네마를 유행시킨 당시 새로운 영화 세대가 어떻게 할리우드의 낡은 문법을 혁신시킨 뒤 좌절했는지에 관한 방대한 기록이다. 미국 영화 월간지 <프리미어> 기자 출신인 피터 비스킨드는 유머와 빈정거리는 어투와 진지한 비평적 논평을 결합해 예술적 야심이 탐욕으로 바뀌는 과정을 거리낌 없이 기술하고 있다.
데니스 호퍼가 마약에 취해 만든 <이지 라이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할리우드는 젊은 히피 감성을 지닌 감독들이 새로운 돈줄이 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좋은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월요일 아침에 흥행 성적을 가지고 서로 굵기를 다투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스튜디오 수뇌부는 “오로지 누가 삼삼한 영화를 가지고 있는가, 누가 사람들의 화제에 오른 영화를 가지고 있는가”만을 문제 삼았다.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이 마틴 스코시즈
뉴아메리칸 시네마의 흥망성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