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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변의 아이콘. 미키 루크를 볼 때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을 절감한다. 198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꽃미남이자 섹시스타였던 그가 늙고 지쳐 뭉개지고 일그러진 얼굴로 기억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법 긴 무명 시절을 거쳐 <보디 히트>(1981)로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임스 딘의 뒤를 이을 차세대 반항아로 거듭났다. 이후 <나인 하프 위크>(1986), <엔젤 하트>(1987)로 정점을 찍지만 곧 무서운 속도로 추락을 시작한다. 공사장 잡부에서 모텔 청소부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바닥부터 올라온 그에게 성공의 달콤함은 마약과 다름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와 스캔들이 일어났지만 거리낌이 없었고 <레인맨> <하이랜더> <플래툰> 등의 작품마저 상대배우나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때의 나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걸 그대로 말하는 게 일종의
달콤한 성공의 쓴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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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이다. 아름답다. 강하다. 단단하다. 한두 단어가 겹칠 수는 있겠지만 이 모든 단어를 한꺼번에 바칠 만한 사람은 드물다. 1970년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의 여왕 팸 그리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1949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군정비사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열여덟살 때 미스 콜로라도 유니버스 대회에 출전하면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여감방>(1971), <빅 버드 케이지>(1972)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다 <코피>(1973), <폭시 브라운>(1974)을 통해 주류영화계마저 무시할 수 없는 섹시 심벌로 자리잡는다. 70년대 할리우드에 새로운 소비층으로 떠오른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공략하기 위한 맞춤형 상업영화인 블랙스플로이테이션은 이를테면 폭력과 선정성으로 무장한 일종의 소모품에 가까웠다. 팸 그리어는 그런 자기 반복적인 대량상품 속에서도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미를 발한다. 빤한 섹스와 폭력 이야기마저 그녀의 육체를 거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동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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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을 만들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면 이런 방법이 있다. 일단 할리우드의 친한 유명 배우 한명을 꼬여낸다. 그와 동석하여 칸영화제로 향한다. 왜냐하면 거기에 전세계의 거물급 투자자들이 몰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제작비를 구한다. 게다가 그 과정을 카메라로 전부 찍어놓는다면 돈도 구하고 영화도 한편 뚝딱 만들게 될지 모른다. 염치 불구한 이 뚝심의 프로젝트는 정말 성공한다. 제임스 토백은 알렉 볼드윈을 앞세워 2012년 칸에 간 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이라크 전쟁 버전으로 바꾼 <티그리스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기획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을 수없이 만나더니 마침내 긍정의 답을 얻어내고, 그 과정은 <사랑받고 내쳐진>이라는 다큐로 탄생하고, 2013년 칸에서 상영된다. 하지만 유의사항. 이것은 “내 인생의 95%는 돈을 얻으러 다니는 거였고 나머지 5%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가혹한 진실을 대면할 줄 아는 어느
돈을 얻기 위해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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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의 풍운아들이 가득했던 1970년대 할리우드. 그 시대 할리우드의 숨겨진 사건 사고와 활약상을 꼼꼼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총망라하여 많은 인용과 일화를 가능케 해주는 흥미로운 책 <헐리웃 문화혁명>은 그중에서도 할 애시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1970년에 감독 데뷔하여 정확히 10년간 뛰어난 영화들을 만들고 80년대에 조락한 그는, 1988년 59살의 이른 나이에 죽었는데 <헐리웃 문화혁명>은 그 두꺼운 책의 종결부를 그의 마지막을 묘사하는 데 바치고 있다. 마치 애시비의 퇴장을 말하는 것이 1970년대의 퇴장을 말하는 것인 양.
책 속에는 그에 관한 증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할은 ‘엿 먹어라 씨팔놈아. 나는 이렇게 할 작정이니까. 싫으면 네 귀에 박아둬’ 하는 식이었다”, “그는 거부당하지 않기 위해 싸웠지만 자신이 언제나 거부하는 편이어야 했다”, “할은 제도를 혐오했다. 한편으로는 이를 두려워했다”, “할은 세상 물정을 잘 몰랐다
70년대와 함께 사라진 불운한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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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나는 명료함에 대항해 싸웠다. 그 모든 바보 같은 명확한 정답들에 대항하면서 말이다. 도식적인 삶, 매끈한 해결책들은 꺼져버려라. 삶이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상징적 감독 존 카사베츠는 그렇게 말했고 그 삶의 명료함에 대항해 싸우는 혼란스러움의 무기로 여배우이자 아내인 지나 롤랜즈를 택했다. 도식적인 삶, 매끈한 해결책들이 어쩌지 못하는 혼란함의 상태를 그녀보다 더 뛰어나게 연기한 여배우의 사례는 영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 신경쇠약에 걸린 여배우(<오프닝 나이트>), 불안하고 위태로운 정신 상태에 놓인 아내(<영향 아래 있는 여자>) 등 카사베츠의 세계관은 롤랜즈의 연기로 실현됐다. 그리고 예술적 동반자인 카사베츠가 1989년에 사망하자 사실상 롤랜즈의 전성기도 영화적으로 막을 내렸다. 롤랜즈는 지금도 그들의 방식대로 그들의 영화를 보존하려는 것 같다. 가령 카사베츠 영화 세계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낸
도식을 버리고 정답과 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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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제45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말론 브랜도의 이름이 불렸을 때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말론 브랜도 대신 시상대에 오른 묘령의 인디언 여인이 인디언의 인권에 관한 글을 낭독하려 했기 때문이다. 연설은 이내 제지되었고 심지어 대리인으로 나선 사친 리틀패더 공주는 진짜 인디언이 아니라 배우임이 밝혀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국인디언운동(AIH)의 정당성을 알리려 했던 그의 계획은 멋들어지게 성공했고 시상식은 할리우드 역사상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니. 아마도 집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을 말론 브랜도는 사색이 된 아카데미 관계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통쾌해하지 않았을까.
말론 브랜도는 자서전에서 “나는 권위에 도전해 성공하는 것에 큰 만족감을 느꼈다”라고 밝힐 만큼 관습과 권위를 혐오했다. 그렇다고 반항을 위한 반항에 무작정 매달리는 철부지는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선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활용할 줄 아는 지능적인 반역자에 가깝다. 1960년
크게 한방 먹은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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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뵈티커는 투우사다. 청년 시절인 1930년대에 멕시코에 갔다가 투우에 흠뻑 빠졌다. 원래 그는 운동에 만능이었고, 대학 때만 해도 미식축구 선수로 평생을 살 포부를 가졌다. 그 희망은 부상 때문에 포기했는데, 다리 부상을 크게 입은 뒤, 멕시코에 휴양차 여행을 갔다가 투우를 보고 반해버렸다. 뵈티커의 표현에 따르면 “너무나 위험하고, 너무나 중세적”이었기 때문이다. 혈기왕성한 그는 당장 투우를 배웠다. 소개를 받아 당대 최고의 멕시코 투우사였던 카를로스 아루사로부터 직접 배웠다. 1939년 프로 투우사로 멕시코시티에서 데뷔했는데, 첫 시합에서 가슴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경험으로 뵈티커는 투우 관련 영화로는 고전으로 평가받는 루벤 마물리언의 <혈과 사>(1941)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영화계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타이론 파워에게 투우하는 법을 가르쳤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는 컨설턴트로 연출부에 들어갔는데, 어느새 식사 준비는 물론 엑스트라들 관리
성난 소를 향한 카우보이의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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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가필드의 불꽃같은 삶에는 천성을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의 운명이 새겨져 있다. 그는 1940년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가운데 한명이었고, 특히 필름 누아르의 아이콘이었는데, 경력의 절정에서 그만 요절하고 말았다. 1952년, 39살 때였다. 사인은 심장질환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공식적인 발표를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스트레스 때문에 죽었을 것이란 소문을 더 믿었다. 바로 1년 전, 존 가필드는 미국 의회의 비(非)미활동조사위원회(HUAC)에 소환돼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그 뒤 1년간 할리우드에서의 활동 중지는 물론 수사기관의 끊임없는 미행까지 받았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개인의 삶이 완벽하게 파괴된 것이다.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의 아들인 존 가필드는 1930년대 뉴욕의 ‘그룹 시어터’(Group Theater) 출신이다. 여기는 러시아 출신 연극인들이 많았던 곳으로, 메소드(Method) 연기의 본산이었고, 또 진보적 예술인들의 거점이었다. 엘리아 카잔
배신을 용납하지 않는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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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시엘 해밋은 폐병 환자였다. 1차대전에 참전하자마자 폐병에 걸려 전쟁 때는 병원에만 있었고, 이후로도 병은 죽을 때까지 완쾌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입에 물고 살았다. 더 나아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커피를 마실 때마다 브랜디를 섞는 등 한순간도 손에서 술을 놓지 않았다. 담배 피우는 폐병 환자에 알코올 중독자인 대시엘 해밋은 30대 때부터 사실상 죽음과 동거하는 공포 속에 살았다. 이때 쓴 소설들이 전부 범죄물이고, 이른바 미국 하드보일드 문학의 보석들이다. 하드보일드의 3대 작가로 지금도 제임스 케인, 레이먼드 챈들러, 그리고 대시엘 해밋이 꼽힌다.
그런데 해밋은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작가로 명성을 날릴 때인 40대에 공산주의에 투신한다. 서구 선진국 가운데 공산주의가 거의 싹도 틔워보지 못한 나라가 미국인데, 그렇다면 해밋의 불행한 말로가 약간은 짐작될 것이다. 해밋은 속된 말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시대의 부조리와 맞서는 ‘위험한 삶’을
폐병 걸린 공산주의자의 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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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다, 지금 왜 아웃사이더인가.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그냥 가상의 아웃사이더 연대기가 문득 떠올랐고 가장 공고한 중심을 갖춘 할리우드를 소재로 택했다. 너무 잘 알려져 유명한 이들과 이제는 주류로 가버려 아웃사이더라 부르기 어려운 이들을 제외한 다음, 할리우드 역사상 베스트 아웃사이더 11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한마음은 아닌 것 같다. 제각각의 다른 사정과 태도들이 여기 있다. 그게 바로 그들을 할리우드의 아웃사이더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아놓고 보니 우리가 원했던 게 이것이 아니었나 싶긴 하다. 현재의 중심과 안주에 거리를 두고 각양각색의 삶을 살아간 11개의 자유.
대시엘 해밋 1894년 5월27일~1961년 1월10일 <말타의 매>(1941)
존 가필드 1913년 3월4일~1952년 5월21일 <악의 힘>(1948)
버드 뵈티커 1916년 7월29일~2001년 11월29일 <라이드 론섬>(1959)
말론 브랜
반골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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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케 다카시라는 이름을 듣고 ‘피칠갑 사지절단’의 경이로운 장면들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면 여기에 당신이 반가워할 소식이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두편, <악의 교전>과 <짚의 방패>가 같은 날, 동시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에 데뷔한 이후 현재까지 70여편이 넘는 온갖 장르, 온갖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온 그에게서 전체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어떤 일관성을 찾아내려는 건 어쩌면 억지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두편의 영화는 불과 1년도 안 되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졌음에도 서로 다른 감독의 영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굳이 나누어 보자면 두편의 영화 중 <악의 교전>은 이전까지 미이케 다카시가 보여준 영화들의 연장선상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영화라고 한다면,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짚의 방패>는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전혀 ‘미이케’스럽지 않은
울퉁불퉁 전속력 질주! 이 게임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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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추석 연휴와 연말 연초의 겨울방학은, 애니메이션 명가들이 왕위 쟁탈전을 벌이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본격적인 ‘왕좌의 게임’이 벌어지기에 앞서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극장가를 찾을 애니메이션 기대작들을 소개한다.
디즈니-픽사
새로운 공주의 탄생
물량 공세로 보자면 디즈니와 픽사의 압도적인 우세다. 픽사의 인기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의 프리퀄 격인 <몬스터 대학교>(9월12일, 픽사)를 시작으로 <카>의 제작진이 다시 뭉친 <비행기>(12월19일, 디즈니), 새로운 디즈니 히로인의 탄생을 기대하게 하는 <겨울왕국>(2014년 1월23일, 디즈니), 멸종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의 공룡 세계를 조명한 <굿다이노>(2014년 5월 말, 픽사)가 줄줄이 개봉 대기 중이다. 이중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작품은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원작으로 하는 <겨울왕국>. 아렌델 왕국의
애니계의 왕좌는 누구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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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세 스튜디오가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의 아성에 도전한다면, 라이카는 스톱모션애니메이션 장르의 대명사인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에 도전장을 내민다. 2005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설립된 라이카 스튜디오는 단 두편의 작품으로 미국 스톱모션애니메이션계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그들의 창립작 <코렐라인: 비밀의 문>(이하 <코렐라인>)은 2009년 해외 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베스트10’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렸으며, 지난해 개봉한 <파라노만> 역시 인터넷 영화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87%의 높은 점수를 얻으며 대중과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사실 라이카의 작품은 이렇게 다양한 수식어를 들여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저 한번의 관람으로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보는 이의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정교한 프로덕션 디자인과 스톱모션 장르의 투박함을 상쇄하는 최첨단 3D 기술이 결합된 라이카의 작품은 아날로그적이고 다소 구식의 장르로
스톱모션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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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번에 딱 떠오르는 이름은 아닌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근히 실속 차리는 학생.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그렇다. 디즈니와 픽사, 드림웍스가 개별 작품당 수억달러의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휘황찬란하게 신작을 공개할 때, 소니는 적은 예산으로 양질의 작품을 제작해왔으며 여태껏 극장가에서 큰 실패를 겪은 적도 없다.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자 존 힐이 <허핑턴 포스트>에 기고했던 글을 상기해 볼 만하다.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첸버그가 <가디언즈>의 흥행 참패로 350명의 직원을 해고한 뒤 2014년부터는 제작비를 1억2천만달러 정도로 낮춰줄 신기술을 적용할 예정이라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림웍스가 허리띠를 조여매는 심정으로 감축할 이 예산은, 소니가 <몬스터 호텔>을 8년 동안 개발하고 제작하는 과정에 소요한 비용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가을 북미 개봉한 <몬스터 호텔>은 제작비(8500만달러)의 4배(3억4600만달러)가
각양각색 스타일로 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