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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엄하게 상대를 꾸짖으며 훈계하기도 하고 때론 상대에 대해 아낌없는 애정을 선물한다. 어떨 땐 소녀처럼 새초롬했다가도 어느새 베갯머리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느긋하고 포근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변화무쌍한 자연과도 같다. 깊고 넓고 다양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세계를 만들어나간 거인. 아이의 마음을 지닌 할아버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있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1 바람
아나키스트
“나의 싸구려 민족주의는 열등감 콤플렉스로 바뀌어 나는 어느샌가 일본을 싫어하는 청년이 되어 있었다. 외국에서 일장기를 보면 혐오감이 드는 일본인이었다.”
<미래소년 코난>의 코난이 머물던 섬은 자급자족하며 필요한 것은 나누는 원시공동체다. 섬에 우연히 도착한 라나를 따라나선 코난은 전체주의 국가 인더스트리아에 저항하여 싸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역시 군국주의 국가 토르메니아에 저항하는 소녀의 이야기다. 부해에서
미야자키 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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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를 선언했다. 1978년 <미래소년 코난>으로 감독 데뷔한 이래 장장 35년간 일본 애니메이션의 살아 있는 신화로 군림한 감독이 <바람이 분다>를 끝으로 자신의 전설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벌써 세 번째 은퇴 선언이지만 앞서 두 차례와 달리 이번엔 지난 9월1일 베니스영화제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했고 6일 일본에서 정식 기자회견도 가질 예정이다. 슬프지만 진짜 이별인가 보다. 이젠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바람이 분다>의 논란을 뒤로한 채 거장은 날개를 접었다. 그의 마지막 비행은 정치적 논란을 남긴 채 끝나고 말 것인가. 그는 왜 <바람이 분다>를 마지막으로 선택했을까. <바람이 분다>에 드리워진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자를 되짚으며 그를 추억해본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은퇴를 두고 유독 아쉬움의 목소리가 큰 것은 결과적으로 <바람이 분다>가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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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열어보자. 그곳에 ‘이소룡’을 입력해보자. 무려 83개 국어로 기술된 자료가 모니터 화면에 출력된다. ‘톰 크루즈’는 84개 국어로 기술되어 있다. 이소룡은 1973년 7월20일 세상을 떠났다. 활동을 멈춘 지 40년이 지난 배우가 당대의 인기배우인 톰 크루즈와 겨우 한개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그에게 특별함이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 특별함에 영혼마저 매몰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삶을 무도가로서, 액션스타로서 또는 주먹쟁이로서의 인생을 결심했다. <정무문> 재개봉을 계기로 그를 돌아보는 글을 써보겠다고 <씨네21>에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마감날 하루를 더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전날 TV촬영용 경기를 찍다가 왼쪽 무릎이 살짝 돌아간 상태에서 도서관에서 빌린 자료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려봤다. 징징대는 왼쪽 무릎을 감싸쥐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경험은 무척 이채로웠다.
우리는 그가 떠난 줄 몰랐었다
누군가에 대한 이
必死則生 必生則死(필사즉생 필생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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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에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배우 정재영과 이민우. 정재영은 <우리 선희>에서 재학이라는 영화감독으로 출연한다. 내적으로는 자기 고민도 지녔지만 주변 사람들이 곧잘 찾아와 믿고 비밀을 털어놓는 속 깊고 현명한 인물이다. 이민우는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여 괜한 거짓말로 선희를 화나게 하고 낮술 먹게 하는 선희의 학교 선배를 연기했다. 한번 맺은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홍상수 감독이니 어쩌면 그들을 홍상수 영화에서 더 자주 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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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 영화 중 가장 긴 원신 원컷 장면이 나왔다. 대략 13분짜리다. 문수와 재학이 카페 아리랑에서 만나 술 마시는 장면이다. 이날 현장에서 본 바를 전하자면 다음과 같다. 실제로 술을 마시며 진행된 촬영이라 테이크가 거듭되며 두 배우 모두 적잖이 마셨다. 게다가 화면으로는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소주를 따라 마신 잔이 보통 소주잔보다는 좀 큰 편이어서 연기를 하며 한번에 털어 마시는 양이 꽤 많았다.
홍상수의 첫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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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 선희>의 ‘우리’라는 뉘앙스 때문에 떠오른 시도였던 것 같다. <우리 선희>에 관한 우리의 질문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평소 홍상수 영화에 애정이 많은 이들 중 몇몇이 참여하기로 했다. 문학평론가 정홍수, 영화평론가 남다은, 영화기자 김혜리, 송경원, 이후경, 정한석이 적게는 두개에서 많게는 네댓개까지 각자의 질문을 적었고 그 질문들은 흐름을 고려하여 배치되었다. 여러 명의 질문을 받아 들고 누군가가 혼자 감독을 만나 전하는 건 좀 어색한 일 같아서, 필담으로 진행했다. 혹은 그 편이 더 흥미로울 것도 같았다. 감독에게 질문을 보낼 때에는 질문자의 이름을 지우고 보냈고 답변을 받은 다음에 질문자의 이름을 괄호 안에 넣었다. 어떤 답은 좀 길고 어떤 답은 좀 짧지만, 그래도 오래 생각하고 솔직한 마음으로 답했다고 감독은 전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그런 것 같다.
-<옥희의 영화>에서부터는 배우와 장소와 시기만 일단 정해두고 영화의
남은 일은 저절로 일어날 겁니다, 일어날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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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례적인 일이다.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홍상수의 것들 중 적어도 세 가지가 <우리 선희>에는 부재하거나 희박하다. <우리 선희>에서는 시간이 혼동되지 않고, 꿈이 등장하지 않으며, 인물의 속마음이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들리지 않는다. 홍상수 영화의 대표적 면모인 시간의 중층성, 다른 계와의 접속성, 중립적 긴장감이라는 체험이 감독 자신에 의해 얼마간 배제되어 있다.
대신에 특별하게 들어선 것이 실체와 말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이다. 선희라는 실체가 있고 선희에 대한 말들이 있는데 따지고보면 양자엔 관계가 없다. 예컨대 선희를 저마다 자기의 여인이라 여기는 세 남자는 그녀를 두고 내성적이지만 착하고 안목 있고 가끔은 또라이 같다고 말을 모은다. 하지만 선희가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보여준 적이 정말 있던가. 사실은 세 남자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말로써 한 존재가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은 수정되어야 할 모순이라기보다는 바뀌기 어려운
아름답고 귀한 욕망의 원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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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희>는 홍상수의 전작들과 비교해 말이 길고, 말이 많은 영화다. 유달리 말이 투명하게 도드라지는 세계 같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 인상은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움직임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를테면 ‘끝까지 파고들어서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자기가 누군지 알게 된다’는 인상적인 말은 선희에게서 시작되어 남자들을 거쳐 선희에게로 돌아온다. 혹은 한 남자가 선희에 대해 묘사한 말은 다음 신에서 다른 남자의 입을 빌려 선희에게 이동한다. 이때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인물들이 그 말의 움직임에 무지하거나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이고, 마치 그 말이 나에게만, 혹은 너에게만 고유한 것처럼 반응한다는 점이다. 혹은 같은 말도 그 말이 향한 상대에 따라 전혀 다른 공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한 인물에게만 귀속된, 즉 그 인물의 특질을 설명하는 말의 유일무이함, 나에게만 있는 무언가를 당신만이 읽어낸다는 흥분을 세 남자와 한 여자는 즐기고 있지만, 그들을 보는 우리는 말의 내용이
말(語)과 말(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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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우리 형’의 ‘우리’는 자명한 관계를 담백하게 지시한다. 그러나 ‘우리 선희’처럼 특정한 사람의 이름 앞에 붙은 이 1인칭 대명사는 듣는 이에게 선희가 자기와 친밀한 관계임을 티내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즉, “나랑 선희는 ‘우리’야”라는 은근한 선언이다. 유의할 점은 경우에 따라 ‘우리’ 안에 듣는 사람이 포함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선희>에서 선희(정유미)가 나흘 동안 돌아가며 만나는 최 교수(김상중), 문수(이선균), 재학(정재영)은 내심 선희를 ‘우리 선희’(나의 선희)라고 생각한다. 선희가 없는 자리에서 문수와 재학, 최 교수와 재학, 문수와 재학과 최 교수 셋은 돌아가며 만나는데, 남자들끼리의 회동을 끌어낸 자력은 선희의 존재다. 전 남자친구였던 문수는 선희와 재회한 여운을 털어놓으러 선배 재학을 찾아오고 최 교수는 상대를 밝히지 않은 채 선희가 일으킨 마음의 파문을 나누고 싶어 후배 재학을 만난다. 둘의 이야기를 다
‘우리’가 그린 그녀는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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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 자리에서 애를 쓴다. 뭔가 잘 풀리지 않아서들 그럴 것이다. 영화의 첫 장면. 상우(이민우)는 오랜만에 학교에 나타난 후배 선희(정유미)에게 최교수(김상중)의 행방을 두고 금방 탄로날 거짓말을 한다. 상우도 선희를 둘러싼 그 ‘우리’의 ‘잠재적’ 일원으로 짐작되지만(문수(이선균)와 선희가 이층 호프집에서 만나고 있을 때 카메라는 문득 인서트 숏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오는 상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작심하고 그런 거짓말을 한 건 아닐 것이다. 잠시 뒤 “선배, 왜 거짓말하고 다녀요?” 하며 길길이 화를 내는 선희에게 상우는 농담한 거라고 얼버무리려 하는데, 사실 그 자신도 그 순간 왜 그런 거짓말이 입 밖으로 빠져나왔는지 잘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두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실랑이에는 왠지 어떤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잔여가 있는 것 같다. ‘농담’은커녕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아등바등하고 있는데, 우습다기보다는 안쓰럽다. 아슬아슬하고 힘
노래는 저 너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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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가 한 여인을 두고 ‘우리 선희’라고 생각한다. 그게 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의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게 될 우리는 짐작한다. 그게 다가 아닐 것이라고. 더 많은 결들이 이 영화를 채우고 있을 것이라고. 이것이 홍상수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네명의 필자가 <우리 선희>에 관한 4인4색의 감상문을 제출했다. 그리고 여섯명의 필자가 질문을 모아 홍상수 감독에게 전했고 답변이 왔다. 홍상수 감독이 <우리 선희>에서 새롭게 시도하거나 발견한 것들도 정리해서 넣었다. 계절이 오는 것처럼 홍상수의 영화가 오는 것을 반기는 독자들을 위해 마련한 특집이다.
우리 선희를 본 적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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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클래스? 웃기고 있네.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데 마스터는 무슨 마스터야, 내가.” ‘최민식에게 듣는 영화 속 캐릭터 창조의 비밀’이라는 주제는 강연의 시작과 동시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원래의 계획은 배우로선 최초로 ‘8월의 영화마스터’로 선정된 최민식의 초기작 <해피엔드> <파이란> <올드보이>를 두고 그에게서 영화별로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었는지를 듣는 것이었다. 영화계의 오랜 콤비인 최민식과 사나이픽쳐스의 한재덕 대표는 강연이 시작되자마자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뻐꾸기를 마음껏 날려보자”며 한바탕 질펀한 이야기판을 벌였다. 그들이 날려놓은 “두서없는 뻐꾸기”를 주섬주섬 주워모아 정리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가 주최하고 <씨네21>, CGV 무비꼴라쥬가 함께하는 ‘KAFA+ 마스터클래스’는 8월28일 저녁, 한재덕 대표를 모더레이터로 앞세워 ‘최민식DAY’라는 이름으로 CGV압구정에서 진행됐다.
“배우는 감독의 하청업체다”
최민
진짜는 귀하다, 나를 귀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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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빠졌냐고 묻는다면 너무 유명해서라고 답하겠다. 아웃사이더를 논하는 데 있어 첫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이는 오슨 웰스 아닐까. 영화 좀 본 사람치고 들어보지 않은 이 없다는 <시민 케인>을 만들었지만 정작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이도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란 농담처럼 실상은 연이은 흥행 실패로 진즉에 유럽으로 밀려난 비운의 감독이다. 다음으로는 반골이란 키워드만 쳐도 제일 첫줄에 나오는 로버트 알트먼을 꼽을 수 있겠다. 다섯 차례나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덕분에 결국 2006년 평생공로상에 만족해야 했다. 폭력의 피카소라 불리는 샘 페킨파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봉준호 감독도 사랑해 마지않는 감독이라 밝힌 바 있는 페킨파는 과격하고 삐딱한 만큼 열렬한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 밖에 여전히 할리우드 주류영화에 저항하며 자신의 색깔을 지키고 있는 짐 자무시 정도가 너무 유명해서 빼놓은 아웃사이더라 할 만하다.
리스트에 오를 자격은 충
“이 사람 왜 빠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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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이 없으면 대사가 안되는 영화 <점원들>(1994)이 나왔을 때 관객과 비평가는 그 욕설의 정서에 환호했다. <스타워즈>와 <죠스>를 보고 자란 아이들 중 오랜만에 재미있게 막 나가는 친구가 나왔다고들 했다.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만화책과 록음악과 영화에 청춘을 건 식료품 직원 케빈 스미스는 졸지에 기대주가 됐다. 영화의 무대를 작은 가게에서 쇼핑몰로 옮긴 <몰래츠>(1995)는 한술 더 떴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은 그의 친구들이 됐다. 발칙한 음담패설에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예민한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까지 겸비한 <체이싱 아미>(1997)와 <도그마>(1999)를 만들었을 때는 혹시 이 감독이 할리우드를 뒤집어엎진 않을까 예상하는 시각들도 있었다. 하지만 <제이 앤 사일런트 밥>(2001)은 지겨웠고 <저지걸>(2004)은 실망스러웠고 요즘은 그냥 있으나 마나 한 영화들이 다수다.
그
부끄러움 따윈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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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갈로의 최근 행보는 사실상 할리우드와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연달아 일본과 이탈리아영화 등에 출연하고,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이센셜 킬링>(2010)도 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가 연출한 유럽영화였다. 아무래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테트로>(2009)가 그나마 할리우드와 끈이 닿아 있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를 일약 미국 독립영화의 숨은 재능으로 끌어올렸던 작품이 연출 데뷔작 <버팔로 66>(1998)이었고 당시만 해도 라이온스 게이트가 제작과 배급에 참여했다는 걸 감안한다면, 갈로는 차라리 할리우드가 끌어들여야 했지만 끝내 놓친 아까운 인물에 속하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연출작 <브라운 버니>(2003)가 환대받지 못한 탓도 컸을 것이다. 갈로는 공표한 대로 그의 세 번째 연출작 <물에 새긴 약속>(2010)을 아예 DVD로 내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디서건 멈추지 않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