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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월터 힐의 <드라이버>(1978)였다. 언젠가는 이 영화를 닮은 작품을 꼭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출하게 되었다는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말로부터, 과거의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든 연출자들이 후대의 재능 있는 감독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때때로 좋은 영화는 감독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영화의 역사가 곧 수많은 영향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지면에서는 21세기의 관객에게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동시대 감독들에게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영화감독과 그들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더 잘 알려진 영화감독들이 선망하는 감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감독들의 감독들] 멋진 영화보다 좋은 영감은 없다 ① ~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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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1월 23일 파리에서 태어난 잔 모로는 1947년 배우 출신의 유명 연출가로 당시 아비뇽페스티벌을 이끌던 장 빌라르의 작품을 통해 데뷔했다. 이어서 코미디 프랑세즈에 들어가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장 빌라르와 함께하기 위해 그가 새로 설립한 TNP(Theatre National Populaire, 국립민중극장)로 적을 옮겼다. 루이 말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이후 그의 대표작들인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와 당시 큰 스캔들을 일으킨 <연인들>(1958)에 출연한다.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원작을 영화화한 <모데라토 칸타빌레>(1960)에 출연해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1992년 <바다를 걷는 나이 든 여자>로 세자르상을 수상했다. 1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루이 말, 프랑수아 트뤼포, 오슨 웰스, 엘리아 카잔, 베르트랑 블리에, 조셉 로지, 로제 바딤, 테오 앙겔로풀로스, 빔 벤더스, 앙
잔 모로(1928~2017) - 종래에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 연기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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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는 오늘도>에는 서술어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곳에 들어갈 적당한 서술어는 많다. 여배우는 오늘도 등산을 하고, 막걸리를 마시고, 좋은 작품을 기다린다(1막). 여배우는 오늘도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는 딸을 어르고, 시어머니의 병문안을 가고, 특별출연을 거절하며 술을 마신다(2막). 여배우는 오늘도 장례식장에 가고, 영화 한편을 남기고 세상을 뜬 감독에 대한 씁쓸했던 기억을 상기하고, 동료 배우들과 술을 마신다(3막). <여배우는 오늘도>는 감독 문소리가 ‘여배우 문소리’를 소재로 만든 극영화다. 물론 ‘여배우 문소리’는 문소리가 연기한다. “나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맞지만 나로 끝나는 이야기는 아니다”라는 문소리 감독의 설명처럼, 이 영화에는 문소리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여배우의 이야기가 창조되어 있다.
문소리는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면서 세편의 단편 <여배우> <여배우는 오늘도> <최고의 감독>
<여배우는 오늘도> 문소리 감독 · 전여빈 배우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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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국정원·문체부를 통한 지원 배제의 시스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판결문에 등장하는 이 표현은 지난해 말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운용 원리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판결문은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한 국가기관이 문체부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국정원 역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블랙리스트 집행 과정에 깊숙이 개입
그러나 사법처리 과정에서 국정원 관계자는 ‘일절’ 등장하지 않았다. 불법행위는 있었지만 책임지는 자가 없는 법적 공백이 생긴 것이다. 실제 블랙리스트 재판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교육문화수석 등 청와대와 문체부 핵심 관계자들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 중요 관계자들의 판결문에는 <한겨레 21>이 이번에 확인한 ‘엔터팀’의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불법적 개입을 제외하고도, 국정원이 저지른 다양한 불법행위의 흔적이 남
블랙리스트 판결문으로 본 어둠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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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집권 플랜’.
지난 보수정권 9년 동안 국가정보원 활동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 댓글 사건’,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사건은 따로 떨어진 일이 아니다. 퍼즐처럼 엮인 큰 그림의 일부다.
원세훈의 인터넷 여론 장악 큰 그림
대부분의 ‘플랜’은 위기에서 시작된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광우병 촛불시위)가 첫 번째 위기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까지 추락했다. 이듬해인 2009년 초 원세훈으로 국정원장이 바뀌었다. 서울시 경영기획실장, 서울시 행정1부시장, 행정안전부 장관. 그의 주요 이력이다. 주로 서울시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국정원장에 부임하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원 전 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깔끔한 일 처리와 공무원 장악 능력을 보여 큰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권의 구원투수로 대통령의 복심이 등판한 것
국정원 ‘엔터팀’ 존재 확인을 계기로 되짚어본 인터넷 여론 장악부터 영화계 개입까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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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제작 과정 사찰부터 대통령 히어로 영화 투자 지원 언급까지
국내정보 수집 파트 산하에서 영화 제작·투자·배급 개입한 사실 확인
박근혜식 통치 이념 정책으로 ‘블랙리스트’가 어떻게 기획됐고 실행됐는지의 문제는 부족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상히 세상에 드러났다. 그건 명백한 국가 범죄, 일방적 피해 구조의 사슬이었다. 하지만 ‘화이트리스트’의 문제는 아직 온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가 피해 구조라면, 화이트리스트는 ‘부패구조’의 문제다. 그 더러운 수혜자가 누구일까의 의문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씨네21>과 함께 공동취재팀을 꾸려 지난 3개월여간 그 구조를 낱낱이 살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박근혜 정부 국가정보원 내부에 ‘엔터테인먼트팀’(이하 엔터팀)으로 불린 위법한 조직이 존재했다. 청와대 직보 의혹을 받는 추명호 국정원 정보보안국장 산하에서 팀 형태로 운영되던 조직이었다. 국정원 엔터팀은 공적 기관과 민
[단독] 박근혜 정부 국정원 엔터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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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드라이버를 연기하는데, 운전석에서 스턴트를 하는 건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하다.
=<베이비 드라이버>의 액션은 안무와도 유사했다. 파쿠르 훈련과 안무 연습, 차 속에서 운전하는 스턴트 훈련만 한달을 받았다.
-장면마다 음악이 흐르고, 등장인물들은 음악의 리듬에 맞춰 움직인다. 더불어 베이비는 귀에 늘 이어폰을 꽂고 있는데, 실제로 음악을 들었나.
=베이비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는 장면이나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는 관객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순간에는 언제나 현장에서 내가 음악을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안무의 경우 굉장히 오랫동안 리허설을 했다. 영화 속 베이비가 겉보기엔 즉흥적으로 춤을 추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모든 것들은 사전에 리허설을 철저히 거친 결과다.
-드라이버인 동시에 음악을 직접 믹싱하는, 베이비 같은 캐릭터는 기존 영화에서 보기 힘든 인물이다. 이런 캐릭터를 어떻게 해석했나.
=베이비는
<베이비 드라이버> 앤설 엘고트 - 베이비는 비관습적인 액션 히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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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1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 <Bellbottoms>
<베이비 드라이버>에 대한 이야기는 1994년 북부 런던, 실업수당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던 21살의 한 불우한 영국 청년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의 이름은 에드거 라이트. 10여년 뒤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와 <뜨거운 녀석들>(2007)을 만들 예정인 이 영국 감독은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젊은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집에서 존 스펜서 블루스 익스플로전의 <Bellbottoms>를 플레이한 그는 “어떤 장면이 공감각적으로 떠오르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누군가가 탄 차가 음악에 맞춰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이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지, 주인공은 누구일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만, 에드거 라이트는 언젠가 이 장면을 자신의 영화에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Bellbottoms>를 처음 들은 날로부터 20
에드거 라이트의 오락영화 <베이비 드라이버>의 트랙리스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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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온 할리우드의 여름.”(<블룸버그>) 올여름 기대를 불러모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들의 성적은 실망스러웠다. 속편과 프랜차이즈라는 최근 할리우드의 트렌드가 안일하고도 태만한 선택으로 이어질 때, 이들 작품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신랄해질 수 있는지 영미권 박스오피스와 평점이 증명하고 있다. 에드거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는 블록버스터영화의 무덤이 된 올여름의 할리우드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중 하나다. 음악의 힘을 빌려 전진하는 자동차(CAR) 액션영화이기에, ‘카카랜드’(<라라랜드>에 빗대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2억800만달러의 전세계 흥행 수익을 기록하며(이 영화의 제작비는 3400만달러였다) 영국 감독 에드거 라이트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대중적으로 좋은 성적을 낸 영화가 됐다. 무엇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귀에 이어폰을 꽂고 싶어지는 영화다. 에드거 라이트의 취향이 반영된 35곡의 멋진 사운드트랙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베이비 드라이버>의 매력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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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판결문에 등장하는 이 표현은 지난해 말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운영 원리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사건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재판장 황병헌)는 판결문에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집행한 국가기관이 문체부와 국정원 양쪽임을 분명히 적시했다.
하지만 사법처리 과정에 국정원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불법행위는 있었지만 책임지는 자가 없는 법적 공백이 생긴 셈이다. 블랙리스트 1심 재판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 청와대와 문체부 핵심 관계자들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 주요 관계자들의 판결문에는 <한겨레21>이 이번에 확인한 ‘엔터팀’의 활동 말고도, 국정원이 저지른 다양한 불법행위의 흔적이 있다. 국정원이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사찰해 블랙리스트를 작성했고 이들을 배제하기 위해 실제 움직인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청와대·국정원·문체부를 통한 지원 배제의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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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파’로 알려진 중견 감독 ㄱ씨는 2013년 말~2014년 초 서울 강남의 한 횟집에서 국가정보원 직원을 만났다. 국정원 요원은 ㄱ감독에게 미국 대통령이 직접 테러범들을 무찌르는 할리우드 영화 <에어포스 원>을 예로 들며 이런 “애국영화, 국뽕영화를 만들면 제작비를 지원할 수 있다”는 계획을 밝혔다.
ㄱ감독의 기억에 따르면, 국정원 요원은 “할리우드에는 대통령이 주인공인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영화가 많고 흥행도 한다.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 국내 영화인들은 그런 인식이 없다”며 한국 영화계 풍토를 성토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주인공인 영화 제작에 구체적인 금액까지 제시하며 지원 의사를 밝혔다. ㄱ감독은 대구·경북(TK) 출신으로 과거 간첩이 등장하는 영화 연출에 관여한 적이 있다. ㄱ감독은 “진짜 연출을 할 생각이 있는지 확인해보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어서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들면 한 30억원 정도는 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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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2차장 산하 정보보안국
국정원 엔터팀 활동 최초 확인
오아무개 처장 등 요원들 영화계 전방위 사찰, 우익 영화 제작 독려
영화인들 “한 마디로 야만의 시대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정보보안국 산하에 ‘엔터테인먼트’ 파트를 두고 진보 성향의 영화를 만든 영화인들을 사찰하고, 우익적 색채가 짙은 이른바 ‘국뽕’ 영화 제작을 기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정원의 이 같은 활동은 국정원법에 정해진 직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 명백한 불법이다.
<한겨레21>이 수십명에 이르는 영화계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국정원에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계 인사들을 사찰하고 이를 근거로 영화계의 제작·투자·배급 등 영화산업 전반에 개입했던 국정원 요원들을 뜻하는 ‘국정원 엔터팀’의 존재가 확인됐다. <한겨레21>의 취재 결과 엔터팀은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총괄하는 정보보안국 소속으로, 문화계 전반을 담당하는 오아무개 처장(3급)과
국정원 ’엔터팀’ “대통령이 직접 액션도 하는 히어로물을 만들면 영화로도 안보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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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의 영화가 논란의 장에 올라왔다. 한편은 <청년경찰>(2017)이고 다른 한편은 <브이아이피>(2017)다. 두편 다 이북의 남자들이 남한으로 내려와 여자들을 해치고 남한 남자가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설정이다. 남한 여자에 대한 위협이란 남한 내에서가 아니라 오직 외부에서 오는 것이라니. ‘한국 남자’가 ‘한국 여자’를 때리고 죽이는 이야기가 연일 뉴스에서 보도되는 현실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설정이다.
뿐만 아니라 이 남한 남자들은 계속 어떤 ‘위기’ 속에 놓여 있다. 청년경찰들은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여자친구도 없이 PC방에서 죽쳐야 하고, 이혼(당)한 중년경찰은 ‘폭력경찰’로 징계를 받은 참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여자들은 돈이나 밝히고, 남자들은 지치고 불안하다. 그럼에도 한국 남자들은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한국 남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조선족/북한 남자들은 악마화 되고 한국 여자들은 시체가 된다.
결국 관객은
[페미니즘④] 비윤리적 재현 관습적 여성 폭력 연출… ‘장르’가 핑계로 쓰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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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속 여성 캐릭터 상당수가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데 그친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국영화 대부분이 남성의 서사인 탓이 크다. 그러다보니 여성 캐릭터가 서사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의 개봉작 몇편을 추려 한계와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더 킹
검찰영화로서 <더 킹>은 수컷의 서사다. ‘한강식(정우성)-양동철(배성우)-박태수(조인성)’로 이어지는 전략수사 3부는 정의나 원칙에 따라 사건을 조사하지 않고 무소불위의 힘(기소권)을 휘두른다. 그들은 룸살롱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카르텔이 견고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태수가 중학생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 송백호(오대환)와 5천만원으로 합의를 유도해 사건을 덮은 뒤 한강식 부장검사의 라인을 타게 되는 곳도 룸살롱이다. 이곳에서 이들이 자자의 노래 <버스 안에서>에 맞춰 접대 여성들과 군무를 추고, 기차놀이를 하는 풍경이 관습적이고 진부한 것
[페미니즘③] 2017년 한국영화 속 여성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