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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실제 상황이야? <어둔 밤>을 보는 관객은 내내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어둔 밤>은 지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단편 <회상, 어둔 밤>(2015)을 확장한 장편으로, 예비군이 주인공인 슈퍼히어로영화를 만드는 대학 동아리 ‘리그 오브 쉐도우’의 이야기를 담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봉준호 감독님이 극영화가 다큐멘터리적 순간을 가져올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보고, 그런 순간들로만 이루어진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시네필’인 본인들은 진지한데 관객은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던 영화 속 동아리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연극 동아리 활동 당시 사람들이 예술에 몰입하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웃겼다”는 심찬양 감독의 기억이 영화에 반영됐다. <회상, 어둔 밤>은 주인공들이 갑자기 군 입대를 해서 극중 영화가 완성되지 않은 채 끝났다. 조빙 역의 조병훈 촬영감독이 갑자기 미국영화연구소(AFI
[BIFAN의 영화인들⑥] <어둔 밤> 심찬양 감독 - ‘덕후’들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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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굉장히 많은 한국인이 라오스로 여행을 왔다. 오자마자 잠옷 바지 같은 것을 사입고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는데, 그것이 라오스의 전부는 아니다.” 라오스에서 살고 있는 베트남계 미국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의 마티 도 감독은 “라오스의 내부인이면서 외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라오스는 우리가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순진한 시골 소녀 녹이 외국인 남편을 둔 친언니 안나와 함께 살다가 물질적 욕망에 눈을 뜨고, 언니를 향한 질투가 파국을 불러오는 스토리는 마티 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라오스 사회의 다양한 면면 중 하나였다. 그 안의 캐릭터들도 전형적이지 않다. “녹처럼 시골에서 온 사람들은 착하기만 하다거나 욕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견이 있다. 그들도 물질을 원할 수 있다. 또한 관객이 안타깝게 여겼던 녹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하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게 하는 등 캐릭터에 반전을 주고
[BIFAN의 영화인들⑤] <디어 시스터> 마티 도 감독 - 내부인이면서 외부인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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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감독에게 여성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화두다. 4·3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제주도 할머니(<비념>(2012)), 40여년 전 구로공단에서 청춘을 바쳐야 했던 여공들(<위로공단>(2014))은 한국 현대사에서 희생된 사람들이다. 그의 신작 <려행>의 주인공인 김복주, 이윤서, 강유진, 양수혜, 김미경, 한영란, 김광옥, 김경주 등 탈북 여성들 또한 그렇다. 탈북 사연이 저마다 다르지만, 임 감독은 “남한이든 북한이든 사람들이 보고 겪은 감정은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시회 <포스트트라우마>(주최 김근태재단, 서울문화재단)에 참여한 26분짜리 영상 <북한산>이 <려행>의 출발점인데.
=<북한산>은 한복을 차려입은 탈북 가수 김복주씨와 북한산을 오르며 그의 탈북 사연과 탈북 이후 삶을 이야기하는 프로젝트였다. 4·3 사건(<비념>)이든, 노동문제(<위로공단>)든
[BIFAN의 영화인들④] <려행> 임흥순 감독 - 남한이든 북한이든… 우리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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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우 허 마우스>(국내 개봉 제목은 <빌로우 허>다)는 러브 스토리다. 지붕 수리공인 레즈비언 달라스(에리카 린더)와 패션지 에디터인 이성애자 재스민(내털리 크릴), 두 여성이 첫눈에 반하게 된 뒤 사랑을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야기다. 섹스 신이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데,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인 만큼 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두 여성의 감정이 세심하게 묘사됐다.
-달라스와 재스민 커플처럼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을 경험해본 적 있나.
=촬영 전 짧은 사랑을 하다가 이 영화를 찍을 때쯤 헤어졌다. 그 과정에서 겪은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상태에서 찍어야 했다.
-작가가 쓴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매료돼 연출을 맡게 됐나.
=두 ‘여성’의 사랑보다는 보편적인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사랑하면 몸이 먼저 반응하지 않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몸을 통해 보여주는 이미지가 강렬했다.
-에리카 린더가 연기한 달라스는 톰보이 같은
[BIFAN의 영화인들③] <빌로우 허 마우스> 에이프릴 뮬렌 감독, “카메라 앵글 하나까지도 여성의 시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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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가신 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너한테 잘 어울릴 작품이 있다면서.” 증국상 감독은 <소울 메이트>의 원작인 안니 바오베이의 소설을 그렇게 접했다. 20쪽가량의 단편을 순식간에 읽어내린 그는 이 작품이 자신이 오랜 시간 찾던 이야기란 걸 직감했다. 여성영화의 반열에 들 영화 <소울 메이트>는 소꿉친구인 두 여성 안생(저우동위)과 칠월(마쓰춘)의 안타까운 연대기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한데 섞인, 내밀하지만 치열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작품. “언제나 여성이 중심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는 증국상 감독은 사랑보다 더 파란만장한 여성들의 우정에 관해 잘 이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엄마의 (여성) 친구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마작을 하고 술잔을 나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여성만의 독특하고 예민한 감정의 결이 있다는 걸 알았다.”
네명의 여성작가가 협업한 각본도 캐릭터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두명은 안생 편에서, 두명은 칠월 편에서 토론하
[BIFAN의 영화인들②] <소울 메이트> 증국상 감독 - 사랑보다 강렬한 여성들의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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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욕망, 호러와 블랙코미디, 멜로와 스릴러가 뒤섞여 기괴한 장르적 에너지를 뿜어내는 영화를 만들어온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이 BIFAN 특별전 참석차, 부천을 방문했다. 비디오 대여점 시절부터 소수의 컬트팬들로부터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액션 무탕트>(1993), <야수의 날>(1995) 등의 장르영화를 꾸준히 만들던 그는 2010년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하며 일관되게 지독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특정 장르를 넘어 영화 매체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쏟아낸 그와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초기 단편인 <칵테일 살인마>(1991)와 이를 모티브 삼아 만든 대표작 <야수의 날>,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야수의 후예>(2016)가 함께 묶여 상영한다. 감독 본인에게도 <야수의 날>이 갖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야수의 날
[BIFAN의 영화인들①]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 “영화만 찍다가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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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간 이어진 한여름 밤의 판타지아가 막을 내렸다. 판타지, 호러, 코미디, 가족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영화들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인더스트리 프로그램(B.I.G)은 국내외 영화인들을 한데 불러모아 아시아 각국의 산업을 잇는 네트워크 역할을 충실히 했다. 무더위를 식힌 맑은 비 냄새도, 좀비처럼 밤을 꼬박 새가며 본 심야상영도, 밤새 나눈 장르영화 얘기도 이제 추억이 됐다. 폐막작 <은혼>(감독 후쿠다 유이치) 상영을 끝으로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마무리되었지만, 이곳에서 만난 영화인들에 대한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 같다. <씨네21>은 이번주와 다음주 두 차례에 걸쳐 부천에서 만난 사람들을 소개할 계획이다. 스페인 장르영화의 대가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부터 상상력 넘치는 한국 신인감독 심찬양까지 주요 게스트와의 만남을 먼저 전한다. 다음주까지 계속 기대해주시길.
[스페셜]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영화인들 ① ~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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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에 대한 상찬은 이미 넉넉해서 굳이 내가 보탤 게 없다. 해석의 탁월함도 있겠지만 이를 수용하는 <옥자>의 넉넉한 층위에 새삼 놀랐다. <옥자>는 보고 발견한 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실로 영리한 영화다. 조형미로 꽉 채워진 화면과 간곡한 메시지 사이의 결합이 빈틈없이 딱 떨어진다. 그런데 바로 이 모자람 없이 들어찬 의미, 조합, 배치의 정교함이 어딘지 기계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굳이 덧붙이고자하는 건 그간 봉준호 영화에서 접하지 못했던(정확히는 <설국열차>부터 느껴졌던) 거리감에 대한 사소한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 이 영화는 해피엔딩인가. 미자는 옥자를 구했다. 애초에 미자가 원했던 건 슈퍼돼지를 생산, 소비하는 시스템을 박살내는 게 아니다. 그건 동물해방전선(ALF)의 목표였고 잠시 이해가 일치한 적은 있지만 미자가 끝내 다른 길을 걷는 건 타당하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쨌든 미자는 목표를 달성했다. 툇마루에 미
<옥자>의 정체성에 대한 짧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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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오인’의 서사도 작동되기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봉준호의 영화적 세계가 다시금 시작된 것이다. 영화 <옥자>는 ‘착한 자본주의’로 위장한 육가공 업체 미란도의 화려한 기업 설명회로 시작된다. 흡사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경쾌하고 빠른 편집의 이 시퀀스에서 미란도의 새 CEO 루시는 선대의 사악하고 착취적인 메뉴팩처링 생산 방식을 비난하며 자신은 자연과 과학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새로운 돼지 축산산업을 시작할 것임을 선언한다. 동물복지와 생태주의와의 결합. 그러나 아름다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날 슈퍼돼지에 대해 그녀가 덧붙이는 마지막 말 한마디. “맛도 끝내주지요.” 틸다 스윈튼의 클로즈업이 빚어내는 이 순간의 거짓과 그로테스크함이야말로 <옥자>의 기이한 풍자와 해학을 압축하는 이미지이다.
‘추적’을 모티브로 하는 봉준호 감독의 모든 영화들에서 오인의 코드는 서사의 중요한 분기점 혹은 동력이 되어왔다.
<옥자>에서 발견한 봉준호 감독 특유의 활력과 기이한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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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옥자>는 내게 이전까지 몰랐던 그의 작가적 관심사를 새로 알게 해주었다. 그가 현실의 어둡고 부패한 구석에 예민한 비평적 안테나를 들이대는 것만큼이나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킬킬거리며 즐기는 명랑만화의 세계 비슷한 것을 즐기는 취향이 있다는 것을 추측하게 된다. <옥자>는 양립하기 힘든 두 세계를 양립시킨다. 자연친화적이고 목가적이며 결핍을 결핍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세계와 자본주의적이고 탐욕적이며 소비 지상주의로 치닫는 육식주의 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영화는 비극적 페이소스를 끌어내며 전자의 세계로 안전하게 퇴각하는 결론을 담고 있다. 전자의 세계는 판타지에 가까우며 지금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우화처럼 보이는데도 지극한 위로를 준다. 후자의 세계는 현실에 가깝지만 전형적이며 정치적 올바름의 잣대에 짓눌려 과도하게 희화화된다. 봉준호는 전자의 세계를 그리기 위해 후자의 세계를 끌어들인 것 같은데, 영화를 보는 동안 전자의 세계를 보는 즐거움
봉준호의 탈현실적 판타지 <옥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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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파리 근교의 몽트뢰이 시립극장 멜리에스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옥자>의 극장 상영이 있었다. ‘소필름 페스티벌’(Sofilm Festival)의 일환으로, 특별상영 형식으로 예정되어 있던 파리지역 상영이 막판에 전격 취소되면서 수도권에서는 <옥자>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상영이었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부근의 막스 린더, 샤틀레에 위치한 포럼 데 이마주 모두 이 무료 상영을 보이콧하자는 ‘특정 배급사들의 분노’에 따른 압박에 못 이겨 취소 결정을 내렸다.
상영이 성사되기까지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시작 전부터 언론이 주목했던 ‘넷플릭스 영화’인 만큼, 좌우로 성향이 완전히 다른 <피가로>와 <리베라시옹> 모두 <옥자>의 파리 상영 취소를 흥미진진하게 보도했다. “<옥자>를 작은 화면으로 보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된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수작이다”라는 현지
보이콧과 지지 사이, <옥자> 프랑스 개봉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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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의 파리 상영에 이어, 노르망디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는 다리우스 콘지 감독과 전화로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눴다. 수화기 너머에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를 기억하는 그가 다정하고 섬세하게, <옥자>에 대해서는 물론, 촬영감독이라는 여전히 미스터리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세븐>(1995) 이후 많은 촬영감독들은 물론 시네필들에게 당신은 이름만으로도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존재다.
=나는 내 일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하지 않는다. 판단하는 것, 평가하는 것 그 수준이 어떻다라고 말하는 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건 대중의 몫이자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니까. 만약 단 하나의 스타일이 영화에서 존재한다면, 그건 감독의 스타일일 것이다. <옥자>라면 봉준호의 스타일이 느껴지면 된다. 나의 스타일 혹은 인장을 남긴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다.
-<옥
<옥자>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 "이미지에 힘을 싣지 않는 것이 그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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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안 해도 좋다고 했다. 다리우스 콘지와의 작업이라면.” <옥자>의 조명팀을 책임진 개퍼 이재혁은 조명감독으로 활동하다가 <두근두근 내 인생> <서부전선> 등을 거치며 촬영감독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런 그가 촬영 대신 포지션을 바꿔 조명팀을 맡다니 의아한 시선이 앞서기도 한다.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은 촬영을 하는 사람에게 성서와 같은 존재다. 아직도 내게 최고의 촬영 작품은 그가 참여한 <쎄븐>(감독 데이비드 핀처, 1995)이다.” 경외하는 이와 작업한다는 것. <옥자>의 현장은 그에게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이재혁은 서울예대 영화과,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촬영을 전공했다. 조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 <말아톤> 조명감독으로 입봉해 활동하다, 전공을 살리고자 촬영감독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가 이번에 다시 <옥자>로 조명팀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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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개퍼 이재혁 - 모두가 빛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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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현장편집과 VFX편집을 담당했던 양진모는 <옥자>에선 편집감독으로서 또 미국 및 캐나다 촬영의 현장편집으로서 컷을 매만졌다. 그는 비교적 젊은 편집감독이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봉준호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한 <해무>에 참여하는 등 현장편집 경력은 길지만 장편영화의 편집감독으로 입봉한 건 이제 고작 2년 남짓이다. 하지만 입봉작 <뷰티 인사이드>로 청룡영화상 편집상을 수상하고 <부산행> <럭키> <밀정> 등의 편집을 맡으면서 압축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냈다. “봉준호 감독님께 <옥자>를 제안받았을 땐 <뷰티 인사이드>로 상을 받기 전이었고 <부산행>이나 <밀정>도 개봉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편집을 하다가 편집을 메인으로 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옥자> 양진모 편집감독 - 리듬과 타이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