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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가 5월 3일부터 12일까지 전주 영화의 거리 일대에서 열린다. 지난 4월 3일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전주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국내외 영화를 관객에게 소개하는 한편, 대중성도 간과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올해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8회 영화제는 수많은 이슈와 화제의 인물을 배출했다.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2017)는 영화제 상영 이후 국내 개봉해 185만 관객을 기록한 ‘다큐버스터’가 되었고, 김대환 감독은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선정작이었던 <초행>(2017)으로 한국 감독으로는 처음으로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현재의 감독’(신인감독상)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올해도 보는 이의 마음을 뒤흔들 화제의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준비를 마쳤다. <씨네21>이 먼저 보고 추천하는 20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주목하는 특별한 영화들에 대한 글도 함께 싣는다. 웨스 앤더슨의 <개들의 섬>
전주는 영화다 ① ~ 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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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감독의 영화는 무해하다. 쿨하고 예의바른 연출자의 성격을 닮은 그의 인물들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느니 자신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쪽을 택한다.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는 영화에 익숙한 국내 관객에게 그의 영화는 다소 심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는 말로 위장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이동은 감독은 누구보다 집요하게 탐구할 줄 아는 연출자이며 그의 영화를 보면 이토록 담담하고 섬세하게 감정의 격랑을 좇는 연출자가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신의 부탁>은 이동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로,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아들, 종욱(윤찬영)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30대 여성 효진(임수정)의 이야기다. 상실 이후의 삶을 딛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성장을 도모하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동은 감독의 전작 <환절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나리오 부문 당
<당신의 부탁> 이동은 감독 - 상실 이후 선택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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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서는 독립영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두 감독의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눈꺼풀>(4월 12일 개봉)의 오멸 감독과 <당신의 부탁>(4월 19일 개봉)의 이동은 감독이 그들이다. 척박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타협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이들은 올해 4월 극장가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먼저 <눈꺼풀>의 오멸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사회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수많은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눈꺼풀>은 지나간 시간의 어둠을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다. 망자들이 찾는 섬, 미륵도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떡을 만들고자 하는 노인의 모습을 담은 <눈꺼풀>은 졸음이 쏟아지자 눈꺼풀을 잘라버렸다는 달마의 이야기처럼, 해소되지 않은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산 자들의 마음을 응시하는 영화다. ‘세월호 영화’ <눈꺼풀>을 만든 오멸 감독을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4월 16일이
<눈꺼풀> 오멸 감독 - 처방을 위장한 영화, 그럼에도 만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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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감독 다카하타 이사오가 세상을 떴다. 지난 4월 6일 그는 향년 82살로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숨졌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매체를 넘나들며 <알프스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빨강머리 앤> <반딧불이의 묘>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지난 1985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스튜디오 지브리를 공동 설립한 뒤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군> 등을 발표하며 변함없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 연구자 나호원 평론가가 <플란다스의 개>에서, 루벤스 그림 앞에서 파트라슈와 함께 세상을 떠난 네로를 떠올리며 추모의 글을 보내왔다.
다카하타 이사오가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을 접한 날엔 봄비와 미세먼지가 꽃을 시샘했다. 정서와 풍경, 날씨가 뒤엉키면서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그의 작품 어딘가에서 풍겨져 나오는 맛과 내음 같았다. 그는 누구였을까?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추모,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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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 출연해 세월호가 침몰 직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을 때 프로젝트 제목이 <화씨134>였다. 다큐멘터리 작업이 시작되면서 제목이 <인텐션>으로 바뀐 뒤 최종적으로 <그날, 바다>가 되었는데.
=굉장히 오래전 일인데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다. (웃음) 세월호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지그재그로 운항했다는 사실을 찾았고, 침몰 직전 134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화씨134>는 <김어준의 파파이스> 21화에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처음 만났을 때 김 총수가 프로젝트 이름을 지으라고 해서 평소 좋아하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2004)에서 본떠 지은 제목이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세월호라는 거대한 사건에 덤벼들었으니 정신 나간 거지. (웃음)
-134라는 코스값
<그날, 바다> 김지영 감독 - 데이터로 접근해 사실에 다가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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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바다>가 개봉한 지 5일 만에 무려 20만명(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세월호가 침몰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세월호 정부합동 추모식이 처음으로 치러지고, 아이들의 분향소가 정리됐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이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많은 건 드러나야 할 진실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지영 감독이 연출하고, 프로젝트 부가 제작한 영화 <그날, 바다>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인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사실만 가지고 과학적으로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로서 이 영화가 거둔 성취를 살펴보고, 지난 3년 반 동안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데이터와 씨름하며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김지영 감독을 만났다.
배가 움직이면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배와 관련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선명, 선박 길이와 너비, 선종 및 안테나 위치 같은 배의 고유 정보는 물론이고, 선박 위치, 침로(배의 선수가 향하는 방향. 헤딩(Headin
다큐멘터리영화 <그날, 바다>는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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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수 260만명을 돌파하며 올해 상반기 최고 화제작이 된 <곤지암>이 나오기 직전까지, 한국 호러영화계에는 굴곡이 많았다. 여름 시즌에만 6편의 공포영화가 연이어 개봉하던 전성기가 있던 반면, 아예 한편도 개봉하지 않은 해도 있었다. 편당 평균 관객수가 100만명을 넘던 시절도 있었던 반면 2015년에는 2만명을 조금 넘기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중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업계에 대한 산업적 분석이 어떤 장르가 인기를 얻는, 혹은 외면받는 결정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데이터가 되는 이유다. ‘학교 괴담’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5편까지 시리즈가 이어지는 기획이 된 <여고괴담>이 개봉한 1998년부터 <곤지암>이 적은 예산으로 제작되던 2017년까지 한국 호러영화 흥행의 역사를 분석해보았다.
도약기(1998~2002)
<여고괴담>에서 <폰>까지
이전에도 학원물이나 호러영화는 존재했지만, ‘학교 괴담’을 활용해 전략
[공포영화⑥] 한국 호러영화 흥행사, <여고괴담>에서 <곤지암> 이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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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로 보는 영화
심장 박동 소리까지 들린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2008)는 서스펜스의 개정판 교본 같은 영화다. 폭발물 제거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전쟁과 긴장에 중독되어가는 인간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정보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결과물이라면 <허트 로커>는 극도의 긴장이라는 감각을 고스란히 체험시키는 효과에 가깝다. 비밀의 열쇠는 바로 사운드. 제한된 시점과 사실적인 사운드, 답답한 숨소리로 쌓아나가는 긴장감은 전장 한복판에 놓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전장의 생생함을 화면으로 구현한 영화들은 대개 리얼한 사운드 디자인에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피터 버그 감독의 <론 서바이버>(2013)는 탁 트인 공간의 이명이나 착탄음까지 다르게 표현하며 사운드의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음악 등 내러티브 바깥의 사운드를 줄여 작은 소리마저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있다. 특히
[공포영화⑤]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참고한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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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 크래신스키
존 크래신스키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다재다능 영화인이다. 그를 배우로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그의 경력은 다방면에서 화려하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그의 세 번째 연출작.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동명의 책을 영화로 각색한 <브리프 인터뷰 위드 히디어스 맨>(2009)으로 감독 신고식을 치른 그는 두 번째 연출작인 <더 홀라스>(2016)에선 출연까지 겸한다. 구스 반 산트의 <프라미스드 랜드>(2012)의 시나리오를 맷 데이먼과 공동으로 집필했고(출연도 했다), 자신의 제작사 선데이 나이트를 통해 방송 기획 및 제작도 꾸준히 하고 있다. 배우 존 크래신스키를 말할 땐 드라마 <더 오피스> 시리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홉 번째 시리즈까지 개근한 존 크래신스키는 ‘짐’ 캐릭터를 통해 평범함의 매력을 뽐냈다. <어웨이 위고>(2009), <노바디 웍스>(2012), <13시
[공포영화④]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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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 불이 꺼지면 게임이 시작된다. 화면 속에 한 꼬마가 텅 빈 마트 안을 뛰어다닌다. 폐허와 같은 분위기의 마트 안에는 한 가족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다. 5명의 가족은 아무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작은 소리를 내는 것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꼬마가 우주선 장난감을 손에 들고 나오자 엄마, 아빠, 누나, 형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타이른다. “이건 너무 소리가 커. 아빠 말 들으렴,” 극장 안도 어느새 조용해진다. 팝콘 먹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마저 점점 잦아들고 이내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침묵에 동참한다. 숨 막히는 오프닝이 끝나고 화면에 <콰이어트 플레이스>(2018)라는 제목이 뜰 때쯤이면 극장 안이 문자 그대로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된다.
관객 참여형의 공포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침묵의 확산과 유지로 이끌어가는 호러영화다. 사실 호러는 세팅과 상황만으로 분위기의 절반 이상이 판가름나는 장르
[공포영화③] <콰이어트 플레이스> 게임이 시작되는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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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2016) 이후 가장 많은 ‘해석 자료’가 쏟아진 영화였다. <곤지암>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자동완성 검색어 상단에 ‘곤지암 해석’이 딸려오고, 유튜브에서도 관련 콘텐츠가 높은 조회 수를 올린다. “기존 한국 공포영화는 어떤 원한이 있어서 이 캐릭터가 죽게 되는지 이유가 제시되는데 <곤지암>에서는 잘 제시되지 않는다. 영화가 재미없다면 관객이 그냥 짜증만 낼 수도 있는데 공포의 정도도 만족스럽고 작품을 좋게 봐줘서 관객이 해설을 덧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 정범식 감독은 네티즌의 능동적인 반응에 흡족한 모습이었다. 그에게 네티즌이 제기한 몇 가지 가설에 대해 직접 물었다.
4·16 세월호 참사를 염두에 뒀다?
<곤지암>은 작품 전체가 거대한 물속에 잠겨 있는 듯한 작품이다. 호러타임즈 멤버들은 유튜브 라이브로 본격적인 체험 방송을 시작하기 전 물놀이를 갔고, 목욕실 및 샤워실이 주요 공간으로 등장하며, 클라이맥스에서는
[공포영화②] <곤지암> 정범식 감독에게 물었다, 영화를 둘러싼 해석과 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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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화 <곤지암>을 보고 느낀 점이나 제안하고 싶은 점을 기술해주십시오.
“오늘 엄마랑 같이 자야지.” “<컨저링>? <애나벨>? 그건 자수 놓으면서 볼 수 있을 듯.” “시사회 기회 감사합니다. 친구들한테 하나도 안 무섭다고 거짓말치고 엿먹일래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너무 떨려서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 않습니다. ㅠㅠ.”
<곤지암>(2017) 모니터링 시사 관객 설문 13번 문항에 관객이 답한 내용들이다. 1차 모니터링 시사 결과 만족도, 추천도, 공포도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건 공포지수. 정범식 감독은 “만족도와 추천도보다 공포지수가 높게 나온 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싶었다”면서도 관객이 공포영화를 제대로 무서워하며 봤다는 걸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개봉 후에도 무서움을 인증하거나 반대로 무섭지 않다고 주장하는 허세 리뷰들이 등장했다. 무서워서 악력 조절에 실패해 구겨져버린 관람권 인증숏을 올린다
[공포영화①] <곤지암>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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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영화의 침체기가 길었다. 미세먼지보다 무서운 <곤지암>은 길고 긴 침체기 속에서 불쑥 튀어나와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2위를 기록하며 흥행사를 새로 쓰고 있다. 주연배우 7명이 모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배우고, 제작비 역시 상업영화 평균을 한참 밑돌며, 한국에선 비교적 낯선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를 취한 이 영화는 대체 어떻게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소리내면 죽는다’는 컨셉 하나로 관객까지 더불어 숨죽이게 만드는 <콰이어트 플레이스> 역시 일찌감치 제작비를 회수하며 전세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팝콘 씹는 소리, 음료수 삼키는 소리까지 자체 무음 처리하게 만드는 존 크래신스키 감독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침묵과 공포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장황한 서사와 낭자한 효과가 아닌 명료한 컨셉으로 관객을 현혹한다는 점에서 <곤지암>과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닮았다. 공포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고
한국의 <곤지암>·미국의 <콰이어트 플레이스>, 관객을 공포에 개입시켜라 ① ~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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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국제영화제 라인업이 발표됐다. 경쟁부문의 이창동 감독의 <버닝>, 미드나이트 스크리닝부문의 윤종빈 감독의 <공작>과 함께 눈길을 끄는 이름이 또 하나 있었다.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Leto, 여름)의 주연배우로 초청된 한국 배우 유태오다.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스튜던트>(2016)로 제69회 칸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후, 러시아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 신진감독으로 주목받고 있다. <레토>는 1990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뜬 구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이자 저항의 상징인 한국계 가수 빅토르 최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그룹 키노로 활동하던 빅토르 최의 초창기 시절인 1981년. 빅토르 최를 둘러싼 삼각 로맨스를 바탕으로 젊음, 자유, 저항의 정신을 탐구한다. 유태오는 2천명의 배우들 중 주연인 빅토르 최 역할로 발탁됐다. 1981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그는 뉴
<레토>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밟는 배우 유태오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