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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최종 합격자인 성인배우 다섯명의 호명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특별언급된 배우가 있다. 올해 13살, 초등학교 6학년의 전채은양이다. 전채은양의 가능성을 미리 알아본 심사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지지의 손을 들어줬다. 인터뷰와 촬영 내내 전채은양은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인다. 그 누구보다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포즈를 취하는 것만 봐도 아역배우가 범할 수 있는 우, 학습한 대로 만들어낸 것을 덧대는 쪽이 아니다. 만들어진 적 없는 본연의 자기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것만으로도 상대만을 집중하게 만든다. 작은 체구, 길쭉한 팔다리,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도 인상적이다. 무구한 가능성이라는 말을 이럴 때 꺼내본다.
오디션 우연히 알게 돼 지원한 오디션인데 합격해 정말로 뿌듯하고 기분 좋다. 그저 오디션에 붙었을 뿐인데 배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마구 생긴다. 합격 소식을 알게 된 친구들이 ‘벌써 꿈을 이뤄서 좋겠다’고 축하해줬다. (웃음) 반듯하고 개
[신인배우] 전채은 - 빛나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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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의 첫인상은 수수하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양념을 걷어내고 원재료의 맛을 살린 담백하고 심심한 쪽이다. 두고두고 음미해볼 여지가 훨씬 많다. 이주연은 사진 촬영이 영 어색한지 진땀을 빼는 듯 보였는데 가만히 보면 눈빛만큼은 힘이 있다. 소란스럽지 않게 묵묵히 제 몫을 거뜬히 해내는 배우가 아닐까 짐작한다. 막상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해보면 서글서글하니 상대의 말에 두손으로 맞장구까지 쳐가며 대화하길 즐긴다.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해 보이는데 가감이 없다. 그 자연스러움이 대화의 경계를 슬그머니 풀어헤친다.
오디션 현재 휴학 중인데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공부한다. 13학번 동기들끼리의 단체 카톡방에 이번 오디션 공고가 올라온 걸 보고 다 같이 지원해보자는 분위기여서 나도 시도를 했다. 3차 오디션까지는 몇명 친구들이 같이 올랐는데 내가 최종 선발이 될 줄이야. 지금도 내가 합격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영화제 행사 당일에도 혹시나 동명이인이 뽑힌 게 아닌가 싶었다.
연기
[신인배우] 이주연 - 뚜벅뚜벅,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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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용은 어수선한 스튜디오 대신 야외 테라스로 인터뷰할 자리를 잡았다. 낯을 가리는 성격인 데다 자신을 향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은 조금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듯했다. 여름 햇살에 땀이 좀 나면 어떠랴. 등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유병용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고르며 대화에 집중해나갔다. 수원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커피를 만드는 일을 한다는 그는 오늘 인터뷰를 위해 기쁘게 달려왔다. “오디션 합격 소식에 카페 사장님이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어제도 올해 최고 매출을 올렸다고 하시며, <씨네21>에 내가 나오면 그 호를 사 카페에 비치해둘 거라며 응원해주셨다.” 187cm의 큰 키에 연갈색 빛이 도는 눈동자로부터 시작되는 서글서글한 마스크. 어딜 가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는데도 유병용은 누구 앞에 일부러 나서기보다는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 같았다.
오디션 사람엔터테인먼트 배우들의 활동과 회사의 지향에 관심이 많아서 그동안 꾸준히 살펴보고
[신인배우] 유병용 -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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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로티>(2012) 개봉 때 친구들이 그러더라. 동혁이 너, 그 영화 찍었냐? (웃음)” 배우 이제훈의 모습이 얼핏 보인다고 하자, 평소 너무 따르고 싶은 배우라며 ‘영광’이라고 웃어 보인다. 보조개가 들어간 웃음이 해맑은 인상을 부각시킨다. 제출한 포트폴리오 영상에서 ‘내가 솔직히 잘생기지는 않았잖아. 연기로 승부 보는 거지’라는 ‘연기 아닌 연기’로 자부심을 드러낼 정도였던 그는 안정적인 연기로 심사위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27살, 상명대학교 영화과 졸업반인 그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기 공부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했다. 20여편의 단편작업은 물론, 연기를 공부하기 위해 연극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꾸준히 연극 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기본기가 탄탄한 배우임에 틀림없다.
오디션 아는 형이 오디션 지원서를 보내주면서 내자고 했다. 준비하면서 친구들과 배우 류준열씨 이야기를 많이 했다. ‘혼자 잘나가서 주변에서 질투를 많이 했다는데,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그런
[신인배우] 문동혁 - 진짜의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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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해맑은 웃음을 짓는 사람이 누구였더라. 김우겸의 표정을 보면 환한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인 이병헌과 강하늘이 오버랩된다. 25살,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표정만큼이나 솔직하고 편안한 태도로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배우다. 몇년 전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게 해준 단편 <뿔>에서 소외된 친구에게 친화력을 나누어주는 고등학생 혁태에게서 김우겸의 매력이 드러난다. “큰 화면에서 나를 보는 게 그렇게 신기했다”는 그는, 음악을 하다가 우연히 연기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연기가 전부라고 말한다. 좋은 연기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질문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있다”는 김우겸. 심사위원들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는 말로 그의 가능성을 전했다.
오디션 내 매력을 다 보여주고 싶었는데, 내가 너무 과장한 건 아닐까. 오디션 끝나고 버스 타고 집으로 오는데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라. 잘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참가만으로도 좋은 기
[신인배우] 김우겸 - 자신 있게, 용기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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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cm의 큰 키와 시원시원하고 이국적인 마스크가 김예진을 한눈에 띄게 한다. 그 ‘매력’이 한때는 ‘엄청난 콤플렉스기도 했다’는 그녀는 이제 자신이 가진 ‘요소’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연기 하나만 보고 달리는 중이다. 합격 발표 이후 2주가 흘렀다. “아직까지 합격의 기분에 젖어 있다”는 김예진은 이번 오디션으로 자신감을 장착했다. 올해 25살, 마침 동국대학교 연극학부를 막 졸업하고 연기에 대한 고민도 한층 깊어진 차였다.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촬영과 오디션을 위해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온 시간들. 그녀는 방황의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 “연기를 향해 기다릴 거고, 그 기다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행운”이라고 말한다. 걱정과 달리 그녀는 심사위원들로부터 마스크뿐만 아니라 담백한 연기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오디션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울었다. 막상 졸업하고 나니 이 길에 대해 막막하기도 하고 의심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오디션으로 용기를 얻었다. 합격 여부를 떠나서 2차, 3차
[신인배우] 김예진 - 능동적인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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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김우겸, 문동혁, 유병용, 이주연 그리고 특별언급된 전채은. 여섯명의 신인배우들로 <씨네21> 스튜디오가 꽉 들어찼다. 오디션 합격자라는 흥분, 막 연기를 시작한 신인으로서의 마음가짐만으로도 이들은 벌써 ‘합격 동기’의 친분을 나눠가진 듯 즐겁다. 이들은 지난 8월 5일 파주 명필름아트센터에서 열린 경기콘텐츠진흥원과 사람엔터테인먼트, 그리고 <씨네21>이 함께한 다양성영화 신인배우 발굴 프로젝트 오디션을 통과한 합격자들이다. <끝까지 간다> <터널> 김성훈 감독, <굿바이 싱글> 김태곤 감독, 명필름 심재명 대표, 사람엔터테인먼트 이소영 대표, BA엔터테인먼트 장원석 대표, <씨네21> 주성철 편집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총 2043명의 지원자 가운데 400 대 1의 경쟁을 뚫은 만큼 합격의 순간도, 합격 이후 설레는 마음으로 보낸 지난 2주간의 시간도, 이들에게 배우로서 기록할 만한 특별한 기억이 되어주었
제1회 다양성영화 신인배우 발굴 프로젝트 오디션에 합격한 여섯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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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1988)가 8월 31일 국내에서 정식으로 재개봉한다. 말이 재개봉이지 사실상 첫 개봉이나 다름없다. 1991년 수입사가 영화를 재편집해 홍콩영화인 것처럼 속여 개봉했다가 상영 중단된 이후 완전한 판본이 국내 극장가에 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토모 가쓰히로 감독의 <아키라>는 사실상 일본의 수많은 애니메이션영화가 서구 관객에게 소개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 첫 번째 영화다. 당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서 최대 규모의 제작비와 인력을 쏟아부은 대작 프로젝트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후대에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지난 수십년간 씹고 뜯고 맛봐온 <아키라>가 지닌 매력의 정체를 재개봉을 맞아 다시 되돌아봤다. 사실 이 글은 그 이유를 꼼꼼하게 따져 묻는 글이라기보다 <아키라> 제작 과정 전반을 되짚어보면서 다시 한번 팬심을 고백하는 팬레터라 해도 무방하다.
할리우드는 지난 30여년간 오토
재개봉을 환영하며 <아키라>가 남긴 흔적을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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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소설 작가 스티븐 킹은 작품 외적으로도 노출이 많다. 그는 에세이집에서 자신의 자세한 개인사를 털어놓기도 했고, 영화에 직접 카메오 출연을 하기도 했으며, 366만여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트위터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 대한 주관을 드러낸다. 그만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도 많은 유명 인사 스티븐 킹에 대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거나 어쩌면 그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일 수도 있는 정보들을 모아보았다.
□ 2살 때 아버지가 “담배 사러 갔다 오겠다”고 말하고는 집을 나갔다. 스티븐 킹의 어머니는 그와 형을 홀로 키웠다.
□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녔다. 위스콘신주 드 피어,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코네티컷주 스트랫퍼드 등을 거쳐 메인주에 정착했다.
□ 어렸을 때 친구가 기차에 치여 죽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다.
□ 1960년경, 포리스트 J. 애커맨이 펴낸 잡지 <우주인>에 단편소설 한편을 투고했다. 퇴짜를 맞았지만 애커맨은 이 소설을 보관하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킹 잡학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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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에 순위를 매기는 건 큰 의미가 없다. 편수가 워낙 많을 뿐 아니라 소설의 완성도와 영화에 대한 평가는 거의 무관하기 때문이다. 꽤 인상적인 걸작에 못지않게 쏟아져나온 졸작도 있다. 대략 240편에 가까운 영화와 드라마 중 소설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기억되는 8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팬이 아니라도 이 정도라면 보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캐리>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 / 1976년
사실상 스티븐 킹의 상업 데뷔작이라 할 만한 소설. 오프닝부터 샤워 신을 배치하는 등 에로틱한 분위기 속에 긴장감을 이어가지만 본질은 호러영화다. 광신도 어머니 밑에서 억압된 생활을 하던 캐리(시시 스페이섹)는 학교에서도 괴롭힘을 당한다. 졸업파티 때 다른 학생들의 계략으로 파티 여왕으로 뽑혔다가 돼지의 피를 뒤집어쓴 후 초능력이 폭주해 자연재해와 같은 참극을 벌인다. 영화 최대의 장점이 캐리 역에 시시 스페이섹이 캐스팅된 것이라 해도 좋을 만큼 스페이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영화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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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을 약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1980)이 지금까지 만들어진 스티븐 킹 영화 중 최고 걸작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스티븐 킹은 지난 몇 십년 동안 큐브릭의 <샤이닝>이 얼마나 형편없는 영화인지 온갖 통로를 통해 꾸준히 설명해왔다. 심지어 그는 큐브릭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미니시리즈 리메이크 버전 <샤이닝>의 제작과 각색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결과는? 미니시리즈 버전은 이제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큐브릭의 영화는 여전히 걸작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스티븐 킹의 기가 꺾였느냐? 당연히 아니다. 난 종종 최근에 나온 <샤이닝>의 속편 <닥터 슬립>도 큐브릭의 <샤이닝>의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쓴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작품이 미니시리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 작품은 큐브릭 영화에 대한 스티븐 킹의 또 다른 복수가 될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질지 몰라도 요리사 할
영화가 짝사랑한 작가 스티븐 킹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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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맘때쯤 정정훈 촬영감독의 초대를 받아 <그것> 촬영현장인 캐나다 토론토로 갈 뻔한 적이 있다. 여러 이유 때문에 취재가 무산되었는데 그때 그가 들려준 얘기 중에서 아직도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안드레스 무시에티 감독도, 나도 할리우드에 정착하고 있는 신인이라 서로 통하는 게 많다. 우리는 <그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장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감했고, 피와 폭력이 낭자해 비명을 지르게 하는 전형적인 공포영화와 다르게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정훈 촬영감독의 이 말은 <그것>이 어떤 영화인지 짐작을 돕기는커녕 궁금증만 더욱 키웠다.
몇주 전, 그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만 해도 그는 미국 LA에서 <호텔 아르테미스>(감독 드루 피어스)의 막바지 촬영을 하고 있었다. <호텔 아르테미스>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스타트렉 비욘드> <미이라> 등에 출연한 소피아 부텔라, 조디
<그것> 정정훈 촬영감독 - 클래식하고 감각적인 공포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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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함께 맹세했었다. ‘그것’이 다시 시작되면 데리(Derry)로 돌아오겠다고.”
메인주의 작은 마을, 데리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이 일곱 남녀의 악몽을 되살린다. 전화를 건 사람은 고향 데리에 유일하게 남아 있던 친구 마이클. 그는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친애하는 동료들에게 두려운 소식을 전한다. “안녕, 나 마이클이야. ‘그것’이 다시 돌아왔어.” 과거를 잊은 채 소설가로 또는 디자이너로, DJ와 건축가와 회계사로, 도서관 사서와 성공한 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던 일곱 친구는 만사 제쳐두고 고향 데리로 향한다. 11살의 빛나는 여름, 물속에서 손을 맞잡고 약속했으니까. ‘그것’이 돌아오면 함께 막아내기로. 그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들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1986년 출간된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그것>은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 가운데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을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호러소설이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 중
<그것>의 공포를 즐기기 위한 친절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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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의 늦여름, 우리는 다시 스티븐 킹이라는 거대한 이름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그것>과 <다크타워: 희망의 탑>이 연달아 개봉하는 덕분이다. 호러(<그것>)와 판타지(<다크타워: 희망의 탑>)라는 각기 다른 장르를 취하고 있는 두편의 영화는 스티븐 킹이라는 대우주가 얼마나 다채로운 얼굴을 지니고 있는지 엿보게 해줄 것이다. 두 영화의 개봉을 차치하고라도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은 지난 수십년 동안 끊임없이 영화라는 매체에 풍부한 상상력을 불어넣어왔다. <캐리>(1976)부터 <쇼생크 탈출>(1995), <그린 마일>(1999)과 <미스트>(2007)까지, 영화사에 자신의 인장을 아로새긴 많은 수작들이 스티븐 킹이라는 하나의 예술적 토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스티븐 킹이라는 우주는 영화를 통해 어떻게 팽창하고 있는가. 영화는 왜 그의 작품에 끊임없이 매료되는
호러 기대작 <그것>을 통해 본 스티븐 킹의 작품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