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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 영화·드라마 사업 부문 이사는 2022년 3월 바이포엠스튜디오에 합류했다. 이전엔 제작 현장부터 시작해 싸이더스FNH, 이스트드림시노펙스 등에서 투자 업무를 맡으며 산업의 흐름을 보는 일을했고, <82년생 김지영>의 제작책임을 맡기도 했다. 20년째 영화 업계에 있었던 그에게도 큰 작품의 투자·배급이 처음인 바이포엠스튜디오에도 <소방관>의 흥행은 각별하다.
-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소방관>이 관객수 300만명을 돌파했다. 내부적으로는 흥행 요인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영화가 갖고 있는 리스크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창고에 들어갔던 작품이라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유귀선 바이포엠스튜디오 대표님과 나는 영화의 진정성만큼은 의심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케팅 킥오프 두달 전부터 배우 이슈가 아닌 영화의 메시지로 이야기가 흘러나오게끔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방식을 벗어나 변화를 줬다. <
[인터뷰] 객관적인 눈과 빠른 손으로, 한상일 바이포엠스튜디오 영화·드라마 사업 부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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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은 악재란 악재가 모두 겹친 영화였다. 코로나19로 배우들의 소방 훈련 일정이 연기되고 공공장소 촬영에 차질이 생기면서 크랭크인 날짜가 밀렸다. 이 과정에서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배우 유승호가 일정 문제로 하차하고 배우 주원이 그 자리를 채우게 됐다. 2020년 5월부터 9월까지 촬영을 마쳤지만 다른 한국영화처럼 개봉 일정을 쉽게 확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 9월25일 주연배우 곽도원이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터졌다. 곽도원은 KBS에서 한시적 출연 정지 처분을 받았고 벌금 1천만원의 약식명령이 내려졌지만 그의 분량을 편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2001년 홍제동 방화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요구조자를 위해 희생한 소방관 캐릭터를 그가 연기했기에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개봉해도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2년 뒤, 원래 투자배급을 맡았던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가 영화 투자배급 사업을 중단한다는 소
[기획] 바이포엠스튜디오, 정체가 무엇이냐 - <소방관>의 흥행과 새 시대의 영화 마케팅 분석, 한상일 바이포엠스튜디오 이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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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산 위에 올라 멀리 내다본다. 그의 뒷모습에서 고독함과 비장함마저 느껴진다. 극복할 대상으로서 광활한 자연과 미약한 인간을 대비시킨 독일 낭만주의 화가인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마이클 만의 남성주인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히트>(1995)에서 대저택에 홀로 유리창 밖을 바라보는 닐(로버트 드니로)의 뒷모습이 이에 해당한다. 차이점이라면 만의 주인공들이 대적할 풍경은 바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시였다는 점이다. 그 삭막한 도시 속에서 표류하는 만의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다. 이번 신작도 예외는 아니다. <블랙코드>(2015) 이후 8년 만에 돌아온 마이클 만의 <페라리>는 1957년 이탈리아의 소도시 ‘모데나’로 우리를 초대한다.
평온하고 목가적인 분위기의 모데나 인근 카스텔베트로 지역에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잠에서 깬 엔초 페라리(애덤 드라이버)는 부인 리나(
[리뷰] 단독자의 고독, 마이클 만 고유의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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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잉 업>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 흰 종이에 가볍게 스케치된 몇개의 그림들을 카메라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줌인, 줌아웃하며 훑는다. 이내 화면이 바뀌니 벽 위로 아까의 그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공방에서 조각 작업에 몰두 중인 리지(미셸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시작의 그림들은 조각가 리지가 그려놓은 도안이다. 이미 엄연한 예술 작품으로 간주해도 부족함이 없을 이 그림들을, 영화의 제목 그대로 스크린에 가득 ‘드러내며’ 시작한 <쇼잉 업>은 리지의 도안이 어떻게 조각이 되고 불에 구워져 전시장에 들어서는지까지의 경과를 다룬다. 리지는 도자기 조각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어머니와 함께 예술대학 행정실에서 일하며 생업을 잇고 있다. 동료 작가인 조(홍차우)의 옆집에 세를 내고 살면서 작업하고, 낮에는 대학에서 일하는 생활을 정적인 듯 무료한 듯 반복 중이다.
그런데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이 일상의 리듬에 자꾸만 몇개의 노이즈가 찾아든다. 조
[리뷰] <쇼잉 업>, 켈리 라이카트와 평면의 세계 소박하고 견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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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라는 단어는 마치 ‘프랑스 바게트’나 ‘이탈리아 파스타’처럼 너무도 익숙해서 평소엔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말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개봉한 두개의 미국영화 <쇼잉 업>과 <페라리> 역시 사실 하나의 범주에 함께 넣기엔 꽤 달라 보이지만 통상적인 합의에서 미국영화로 묶이는 두편의 작품이다. 하지만 이 느슨해 보이는 연결고리를 들춰보면 두개의 익숙한 이름이 나와 흥미로움과 동시에 묘한 궁금증을 일으킨다. 그 이름들은 바로 <쇼잉 업>의 제작사이자 2012년 이후 전세계 영화 문화계를 주름잡고 있는 제작배급사 A24와 <페라리>의 배급사이자 <기생충> <슬픔의 삼각형> <추락의 해부> <아노라>로 근래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연이어 택하며 이름을 뽐내고 있는 제작배급사 네온(NEON)이다. 90년대부터 활동한 인디 영화계의 거장 켈리 라이카트, 그리고 약 40년간 할리우드
오늘날의 미국영화, 포용력과 향수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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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카우>로 2021년 평단을 휩쓸었던 미국 인디영화계의 거목 켈리 라이카트의 신작이자 감독의 오랜 페르소나 미셸 윌리엄스가 합류한 <쇼잉 업>이 국내 관객들의 오랜 기다림 끝에 1월8일 개봉한다. 그리고 같은 날, <히트><콜래트럴> 등으로 할리우드의 작가주의를 수호해온 마이클 만의 신작이자 애덤 드라이버의 연기 변신으로 이목을 끌었던 <페라리> 역시 극장에 걸린다. 2025년을 맞아 반갑게 찾아온 두편의 영화를 나란히 두고 동시대 미국영화의 흐름을 간략하게 짚은 리포트, 더하여 두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함께 조망한 <쇼잉 업> <페라리>의 리뷰를 전한다. 미국영화에 대한 넓은 시선과 두 작품에 대한 깊은 탐색의 창구가 되길 바란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쇼잉 업>과 <페라리> 리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변화와 보존 사이, 동시대 미국영화의 흐름 분석 <쇼잉 업>과 <페라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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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 마키나> <서던 리치: 소멸의 땅> <멘> 등 독특한 비주얼과 공상과학적 상상력으로 만드는 작품마다 평단의 주목을 받은 앨릭스 갈런드가 잠정적인 감독 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각본가로 돌아가 다른 감독이 자신의 텍스트를 시각화할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본래 <28일후…> <선샤인> 등 영화의 각본을 써 이름을 날린 갈런드는 자신이 쓰고 연출한 모든 영화에서 일관된 인장을 새겨왔다. 그의 신작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또한 흔한 전쟁영화가 아니다. 갈런드만이 건넬 수 있는 질문과 사유가 영화 곳곳에서 산탄하는 갈런드식 전쟁물이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의 개봉을 맞아 앨릭스 갈런드의 세계를 돌아보았다.
“제목에 ‘워’ (War)가 들어가는 바람에 기대했단 말이야. 이럴 거였으면 ‘프레스’(Press)라고 제목을 짓든가.” 한 관객이 <시빌 워: 분열의
[기획] 윤리, 분열, 그리고 전쟁, <시빌 워: 분열의 시대>로 읽는 앨릭스 갈런드 작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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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억압과 핍박, 부자유로 점철된 1908년, 일제강점기. 사계절 내내 겨울 같았던 엄혹한 시절을 생생히 담기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은 카메라 아리 알렉사 65(ARRI ALEXA 65)를 들어올렸다. 광활한 아이맥스 스크린에 펼쳐지는 독립운동은 음울하고 서글픈 시대상과 결연한 독립투사의 전의가 뒤섞여 처연하게 그려진다. 꽁꽁 얼다 못해 부서질 것만 같은 두만강 오프닝 시퀀스부터 역사가 기억하는 절규 섞인 처단의 장면까지 홍경표 촬영감독이 목격하고 기록한 이미지를 함께 나누었다.
일본군과의 치열한 전투 장면 중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수한 인파 속에서 안중근의 활약을 따라가는 동시에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등 다른 인물까지 한꺼번에 잡아내야 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위해 홍경표 촬영감독은 한대의 카메라만 쓸 것을 선택했다. “한칸 한칸 앞으로 나아가면서 촬영했다. 패닝 기법을 쓰면서 카메라 자체는 많이 안 움직였다. 다소 옛날에 사용하던 촬영 방식이다. 물론 인물을
어둠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얼빈>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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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국과 어울리는 영화라는 반응이 많더라.
<남산의 부장들> 때는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는데 <하얼빈>은 비상계엄 이후에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 <남산의 부장들>의 시대 배경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 비상계엄을 겪은 뒤 살면서 다시 경험하지 못할 줄 알았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 순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비극의 역사일수록 되짚어봐야 한다. 그래야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월14일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서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다. (중략)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하얼빈>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인터뷰]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걷다, <하얼빈> 우민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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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오려 했지만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처참한 형상의 시신들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유린하는 일본 늑대 우두머리,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자고.”(<하얼빈>의 안중근 대사 중)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현빈)의 실패로 시작한다. 그가 이끄는 독립군은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무찌르지만 카메라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잔혹하게 담는 데 집중한다.
영웅보단 인간으로,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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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이 공개됐다. 개봉 이틀 만에 관객수 125만명을 돌파하며 연말 극장가의 승자가 됐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뮤지컬 <영웅>부터 김훈의 소설 <하얼빈>까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를 다룬 작품은 많지만 영화 <하얼빈>은 고집스러운 실제 로케이션과 첩보물의 문법으로 익숙한 소재를 다르게 풀어낸다. 실제 역사에서 <하얼빈>이 취한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본 긴 리뷰와 함께 우민호 감독의 인터뷰,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를 실었다.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을 좀더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하얼빈> 리뷰와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산 자여 따르라’,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 우민호 감독 인터뷰와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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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엔 식구들끼리 더 자주 다퉜다. 한국영화 속에서 말이다. 동서고금의 서사 예술에서 가족이 한 사회의 숨은 풍경을 전경화하는 역할을 맡아왔다는 점을 상술할 필요는 없겠다. 최근 몇해 사이 한국영화에서 가족은, 완성형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본격화하는 개인의 곤경을 집약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2019)은 몹시 발빠른 출발이었다. 올해 <장손>을 비롯해 <딸에 대하여>, <은빛살구>(2025년 1월 개봉예정), <부모 바보>, <해야 할 일>에 이르는 작품들이 위의 풍경을 앞세웠거나 갈등의 동기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사에 흘러온 ‘가족의 역사’를 우선 개괄할 필요가 있겠다.
전후(戰後) 산업화를 이루기까지 한국의 가장 주요한 자원은 고품질 저비용의 노동력이었다. 가족은 근면한 노동력 공급원으로서 사회간접자본이었다. 이를 ‘사회인프라 가족주의’로 명료하게 개념화한 연
‘키워드 - 유산(遺産)들’, 2024년 한국영화는 보통(?)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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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경향을 묻는 질문 앞에서 뜬금없이 떠오른 키워드는 ‘사이버 레커’였다.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된 작품은, 이들 존재를 직접적으로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 <베테랑2>나 <지옥2>가 아니라 <살인자ㅇ난감>과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대중에게 정의를 어필하는 방식이 사이버 레커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는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사이버 레커 영화 (드라마)에 대한 단상
사적 처벌(또는 사적제재)이 최근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트렌드라는 사실을 굳이 길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법제도 등의 공적영역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경향을 낳은 원인이라는 일반적 견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한 입장을 부정하지 않지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어지럽게 뒤섞인 지금의 상황을 가장
‘키워드 - 사이버 레커’, 2024년 한국영화는 사이버 레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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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체를 숨기고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드는 외설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2024년의 한국영화가 거듭해서 스크린에 불러낸 것은 불특정한 신체에 소란스럽게 덧씌워지는 귀신들의 목소리다. 올해 최대의 흥행작이자 화제작인 <파묘>의 악령과 요괴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가 불러낸 ‘귀신’이란 인간의 주변에서 인간을 잠식하고 흉내 내는 비인간 존재(혼령, 외계인, 디지털 프로그램 이미지)는 물론이고 특정한 목적으로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가상의 정체성을 모두 통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김태용의 <원더랜드>에서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진 인간은 디지털로 생성되는 이미지를 매개로 가상의 프로그램 ‘원더랜드’에서 되살아난다. 스크린과 모니터 위에서 이미지로 다시 살아난 태주의 다정하고 이상적인 목소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낯선 회복기를 겪는 태주의 건조한 목소리와 나란히 놓인다. 류승완의 <베테랑2>에
‘키워드 – 복화술’, 2024년 한국영화는 떨쳐낼 수 없는 목소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