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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시국과 어울리는 영화라는 반응이 많더라.
<남산의 부장들> 때는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터졌는데 <하얼빈>은 비상계엄 이후에 작품을 선보이게 됐다.
- <남산의 부장들>의 시대 배경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니까.
초등학교 다닐 때 비상계엄을 겪은 뒤 살면서 다시 경험하지 못할 줄 알았다. 우리가 역사를 잊는 순간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비극의 역사일수록 되짚어봐야 한다. 그래야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2월14일 탄핵소추안 제안 설명에서 “1980년 5월 광주는 2024년 12월의 우리를 이끌었다. (중략) 과거가 현재를 도왔고,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했다. <하얼빈>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인터뷰]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걷다, <하얼빈> 우민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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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두만강을 건너 연추로 오려 했지만 살아 돌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죽은 동지들의 참담한 비명이 귓가를 맴돌고, 팔다리가 떨어져나간 처참한 형상의 시신들이 눈앞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대한제국을 유린하는 일본 늑대 우두머리, 늙은 늑대를 반드시 죽여 없애자고.”(<하얼빈>의 안중근 대사 중)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현빈)의 실패로 시작한다. 그가 이끄는 독립군은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을 무찌르지만 카메라는 승리의 기쁨보다는 전쟁의 참상을 잔혹하게 담는 데 집중한다.
영웅보단 인간으로, <하얼빈>이 안중근 의사를 바라보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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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24일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이 공개됐다. 개봉 이틀 만에 관객수 125만명을 돌파하며 연말 극장가의 승자가 됐다.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뮤지컬 <영웅>부터 김훈의 소설 <하얼빈>까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거사를 다룬 작품은 많지만 영화 <하얼빈>은 고집스러운 실제 로케이션과 첩보물의 문법으로 익숙한 소재를 다르게 풀어낸다. 실제 역사에서 <하얼빈>이 취한 기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본 긴 리뷰와 함께 우민호 감독의 인터뷰,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를 실었다. 올해 한국영화 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하얼빈>을 좀더 내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하얼빈> 리뷰와 인터뷰가 계속됩니다.
[기획] ‘산 자여 따르라’, 우민호 감독의 <하얼빈> 우민호 감독 인터뷰와 홍경표 촬영감독의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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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엔 식구들끼리 더 자주 다퉜다. 한국영화 속에서 말이다. 동서고금의 서사 예술에서 가족이 한 사회의 숨은 풍경을 전경화하는 역할을 맡아왔다는 점을 상술할 필요는 없겠다. 최근 몇해 사이 한국영화에서 가족은, 완성형으로 치닫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본격화하는 개인의 곤경을 집약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2019)은 몹시 발빠른 출발이었다. 올해 <장손>을 비롯해 <딸에 대하여>, <은빛살구>(2025년 1월 개봉예정), <부모 바보>, <해야 할 일>에 이르는 작품들이 위의 풍경을 앞세웠거나 갈등의 동기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한국 근현대사에 흘러온 ‘가족의 역사’를 우선 개괄할 필요가 있겠다.
전후(戰後) 산업화를 이루기까지 한국의 가장 주요한 자원은 고품질 저비용의 노동력이었다. 가족은 근면한 노동력 공급원으로서 사회간접자본이었다. 이를 ‘사회인프라 가족주의’로 명료하게 개념화한 연
‘키워드 - 유산(遺産)들’, 2024년 한국영화는 보통(?)의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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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경향을 묻는 질문 앞에서 뜬금없이 떠오른 키워드는 ‘사이버 레커’였다.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와 함께 연상된 작품은, 이들 존재를 직접적으로 서사 안으로 끌어들인 <베테랑2>나 <지옥2>가 아니라 <살인자ㅇ난감>과 <노 웨이 아웃: 더 룰렛> 등이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대중에게 정의를 어필하는 방식이 사이버 레커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몇번을 망설였지만, 그럼에도 내 머릿속에는 사이버 레커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았다.
사이버 레커 영화 (드라마)에 대한 단상
사적 처벌(또는 사적제재)이 최근 한국영화와 드라마의 트렌드라는 사실을 굳이 길게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사법제도 등의 공적영역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경향을 낳은 원인이라는 일반적 견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러한 입장을 부정하지 않지만,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어지럽게 뒤섞인 지금의 상황을 가장
‘키워드 - 사이버 레커’, 2024년 한국영화는 사이버 레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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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체를 숨기고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드는 외설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2024년의 한국영화가 거듭해서 스크린에 불러낸 것은 불특정한 신체에 소란스럽게 덧씌워지는 귀신들의 목소리다. 올해 최대의 흥행작이자 화제작인 <파묘>의 악령과 요괴만을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영화가 불러낸 ‘귀신’이란 인간의 주변에서 인간을 잠식하고 흉내 내는 비인간 존재(혼령, 외계인, 디지털 프로그램 이미지)는 물론이고 특정한 목적으로 다른 인격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가상의 정체성을 모두 통합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김태용의 <원더랜드>에서 죽거나 혼수상태에 빠진 인간은 디지털로 생성되는 이미지를 매개로 가상의 프로그램 ‘원더랜드’에서 되살아난다. 스크린과 모니터 위에서 이미지로 다시 살아난 태주의 다정하고 이상적인 목소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낯선 회복기를 겪는 태주의 건조한 목소리와 나란히 놓인다. 류승완의 <베테랑2>에
‘키워드 – 복화술’, 2024년 한국영화는 떨쳐낼 수 없는 목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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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들을 떠올리다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입거나 두른 겉옷에 유독 마음이 쓰였다. 디자인이 독특하거나 색감과 촉감으로 계절을 드러내는 차원에서 출발해, 이런저런 생각을 부풀리게 되는 힘이 옷 속에 잠재해 있었다. 캐릭터의 개성이나 소속을 표현하는 기존의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간 인물의 외투는 영화에 가닿는 다른 방향을 안내하는 비밀 지도처럼, 자꾸만 만지작거리게 되는 실타래를 마음에 남겼다.
<리볼버> 속 하수영(전도연)의 걸음과 내내 동행한 점퍼와 <베테랑2>에서 박선우(정해인)와 함께 뒹굴던 패딩 점퍼는 이 글을 작동시킨 두 축이다. 특정 장면에서 받은 인상이나 사물이 영화에 관한 평가를 좌우할 정도로 강렬한 경우가 있는데, 두 영화 속 점퍼가 그랬다. <리볼버>에서 수영은 출소 후 점퍼 한벌을 갑옷처럼 두른 채, 내내 벗지 않는다. 색색의 실로 수놓인 점퍼의 후면은 뒤따르는 이를 기죽일
‘키워드 – 외투’, 2024년 한국영화는 몸을 휘감은 외투의 감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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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편과 리메이크. 재개봉작의 강세. 예술영화의 약진. 2024년 한국영화와 영화시장을 요약하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아마 이런 식일 것이다. 영화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되고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선 다양한 가능성과 변화의 흐름이 감지된다. 한해를 정리할 땐 대개 이런 식의 경향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조금 다른 각도의 다양한 시선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씨네21>이 비평 지면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프런트 라인’ 필자들에게 올해 한국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를 부탁했다. 여기 프런트 라인 필자들이 흥미롭고 다채로운 시선으로 관통한 글을 부친다. 예상치 못한 관찰과 곱씹고 싶은 통찰을 통해 한국영화 속 또 다른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히 관찰하고 다르게 말하여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작품 속 숨겨진 가능성을 싹틔우는 것. 평론의 재미는 거기에 있다고 믿는다. 2020년 4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프런트 라인은 김소희, 김병규,
[기획] 관객수 너머 보이는 것들, 4가지 키워드로 읽는 2024년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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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갛다 못해 투명에 가까워 보이는 얼굴, 여리여리해 보이면서도 무게감 있는 걸음걸이, 항시 우수를 머금은 듯한 읊조림의 목소리. 이처럼 배우 홍경의 겉보기를 표현하고 수식하기는 꽤 손쉽다. 하지만 그를 더 제대로 말하기에 무척이나 곤란한 점은 우리가 좋아하는 홍경의 외면이 스크린 위에서 가려지고, 왜곡되고, 어둠에 갇힐 때야말로 홍경이라는 형체의 다른 진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배우가 가진 힘이라거나 좋은 연기력이라거나 적절한 감정 표현 정도가 아닌 말 그대로의 영화적인 ‘무언가’. 특히 이 무언가의 순간은 영화 연출가가 배우의 형상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을 때 도리어 배우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모순의 찰나이기도 하다. 형언하기 어려운 이 순간의 감흥은 홍경이 보여준 (아직) 많지 않은 몇편의 영화들을 살피는 방식으로 복기할 수 있을 듯하다.
<정말 먼 곳>
화천으로 도망쳐 살다시피 하는 동성 연인 진우(강길우)를 시인 현민(홍경)이 찾아온다. 두 사람은 배를 타고 작
‘어둠을 먹는 형체’, 배우 홍경의 몇 가지 기이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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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에서 마사(틸다 스윈턴)는 암으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있다. 종군기자로 살아온 그녀에게 삶이란 차가운 총탄 한알로 언제든 소멸될 수 있는 위태로운 것이었기 때문일까. 마사는 전장에서 그녀의 곁을 무수히 스쳐 지나갔을 총알 대신 알약 한알을 자신의 몸 안으로 집어삼킴으로써 삶으로부터 부재하기로, 스크린에서 이탈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마사의 계획에 우연히 동조하게 된 잉그리드(줄리앤 무어)에게 죽음은 이야기의 끝을 의미한다. 작가인 그녀는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주며 덮여 있던 책 표지를 다시 열고, 이야기와 삶의 영속성을 매 순간 감각하려 한다. 그렇기에 마사의 예정된 죽음에 대항하기 위해 잉그리드가 선택한 방식은 마사의 전장 일기를 사후에 출간하는 것, 그러니까 이야기를 지속시킴으로써 부재의 틈을 메우려는 것이었다. 그런 잉그리드 앞에 마사가 그녀의 딸, 미셸이 되어 다시 나타났을 때, 부재해야만 하는 존재가 불현듯 다시 현전할 때, 영화는 생과 사를 구분
‘그(녀)는 영화와 함께 걸었다’, <룸 넥스트 도어> 틸다 스윈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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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체구에 분홍빛 볼, 웃을 때 세로로 살풋 들어가는 보조개까지 김혜윤을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소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밝고 명랑한 얼굴로 대중에게 화답한다. 하지만 그것이 김혜윤의 전부라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극이 클라이맥스에 접어들었을 때 김혜윤이 보여주는 이글거리는 눈빛과 정확성을 갖춘 발성은 작품이 반영한 사회문제를 명확하게 포획하기에 충분하다. 돌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면모는 장르나 작품 분위기와 별개로 우리가 김혜윤을 통해 사회적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번 돌이켜볼까. 김혜윤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 오직 그여서 가능했던 순간을 다시 보면 김혜윤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최애 아이돌 선재(변우석)의 죽음을 막기 위해 모든 시간선을 오가는 임솔(김혜윤)은 고등학교 시절인 2000년대 초반으로 회귀한다. 흔들그네가 있는 카페에서 당시 짝사랑한 태성(송건희)에게 의도치 않게 고백 영상을 틀게 되는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 김혜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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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마법을 체감하는 순간은 그가 완전히 예외적인 존재를 납득시킬 때 새삼스럽게 각인된다. 알랭 들롱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미남형도 아니고 맷 데이먼처럼 친근감을 자아내지도 않는, 외려 불안을 자극하는 눈빛의 리플리(<리플리: 더 시리즈>)를 앤드루 스콧은 기어코 응원하게 만든다. ‘이 사람을 이해해도 괜찮은 것인가?’ 스콧의 연기는 혼란스러움을 관객의 몫으로 기세 좋게 던진다. 교리에 적당한 부정을 저지르는 신세대 사제인가 싶다가 어쩌면 아주 어두운 과거의 소유자일 것만 같고, 종국에는 누구보다 신성해 보이는 가톨릭 신부(<플리백>)도 그라면 가능하다. 나이, 젠더, 직업, 국적 등을 불문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불완전성으로 스크린 너머를 자극하는 배우. 아일랜드 출신의 앤드루 스콧이 지난 20여년간 연극계와 영화, TV 업계를 매혹시켜온 비결이다. 겉보기에 때로 새침할 정도로 얌전하고 매끄럽지만, 이내 몰아치는 내면의 폭풍우를 비춰 보이는 연기로 2024년 한해
‘완벽한 불완전’, 의심스러워서 매력적인 배우 앤드루 스콧의 두 가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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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착할 수 없는(ungraspable) 사람.” <추락의 해부>의 감독 쥐스틴 트리에는 잔드라 휠러에게 단 하나의 요건을 주문했다. 남편의 살인 용의자로 법정에 선 <추락의 해부>의 작가 산드라와 아우슈비츠 옆에서 꿈의 집을 가꾸며 유유히 살아가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가정주부 헤트비히 모두 분명 쉽게 포착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2023년, 잔드라 휠러는 칸영화제에서 같은 해에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두편의 영화에 주연배우로 출연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포착할 수 없다는 표현은 무엇보다 이 배우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믿을 수 없는 간극을 자랑하는 두 영화가 국내에 상륙한 2024년. 잔드라 휠러가 남긴 크고 대담한 행보를 돌아본다.
1. 그녀는 악마였을까? <존 오브 인터레스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물러나고 거리감을 둠으로써 어떤 끔찍함을 드러낸다. 잔드라 휠러는 나치 사령관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를
‘누가 그녀를 두려워하랴’ 불투명성을 뚫고 들어가는 배우의 괴력을 마주할 때 - 잔드라 휠러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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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자극하고, 감정을 훔치고, 영혼을 움직이고, 마침내 우리가 될 수 없는 모든 것이 되어주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배우라 부른다. 2024년, 가장 빛나는 순간을 선보인 다섯 배우의 작품과 그들만의 고유한 매력을 심층적으로 조명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해외 배우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부여한 원색의 팔레트를 입고 살아 있는 회화적 존재로 거듭난 <룸 넥스트 도어>의 틸다 스윈턴, 결혼 생활의 미시사(<추락의 해부>)와 홀로코스트의 역사(<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선 굵게 관통하면서 양쪽 모두의 진실을 해부한 잔드라 휠러, 넷플릭스 시리즈로 되살아난 전설적 캐릭터에 희귀한 낯섦을 부여한 <리플리: 더 시리즈>의 앤드루 스콧을 선정했다.
국내 배우로는 <씨네21> 편집부가 10년 뒤의 활약까지 믿어 의심치 않는 차세대 주역의 이름을 모았다. 커버스타로 자리한 <대도시의 사랑법> <파친코> 시즌2의 노상
[특집] 잊을 수 없는 연기와 존재감을 각인한 배우 5인을 돌아보다, 우리가 사랑한 배우들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