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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루탈리스트>는 총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감독, 주조연 배우, 각본, 촬영, 미술, 음악 등 영화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영화산업 업계인들에게 인정받았다는 뜻일 터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떠받드는 알짜배기 자재를 모아 소개한다.
감독 브래디 코베에 주목하라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거머쥔 자. 그리고 이르지만 모든 영미권 매체가 일제히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감독상 예측 1순위로 지명한 자. 브래디 코베는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상처에 함몰된 소년 브라이언을, <멜랑콜리아>에서 커스틴 던스트에게 집착하던 후배 팀을 연기한, 어쩌면 관객들에게 배우로 더 친숙할 이름이다. 2015년 로버트 패틴슨, 베레니스 베조 주연의 <더 차일드후드 오브 어 리더>를 만들며 감독으로 데뷔한 코베는 2018년 내털리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브루탈리스트>의 이모저모, 브래디 코베부터 영화를 둘러싼 잡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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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건축은 인간이 위대하다는 가장 위대한 증거다.” 구겐하임미술관 등을 건축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남긴 말이다. <브루탈리스트> 속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헝가리에서 위대한 건축을 남겼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는 아내 에르제벳(펄리시티 존스)과 조카 조피아(래피 캐시디)와 미국에서의 새 삶을 꿈꾸며 그들보다 먼저 미국으로 향한다. 라즐로는 도시 재건을 위한 공공건축의 잡역부로 일하지만 사촌이 운영하는 가구점의 쪽방과 노숙인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곤궁을 면치 못한다. 그런 라즐로 앞에 몇년 전 그를 매몰차게 내쫓은 부호 해리슨 밴 뷰런(가이 피어스)이 나타난다. 해리슨은 라즐로를 자신의 저택에서 먹이고 재우며 그에게 자기 어머니의 이름을 딴 지역 문화센터의 건축을 의뢰한다. 라즐로는 타향살이 중에 입지전적으로 살아남아 미국에서도 위대한 건축을 남긴다. 하지만 라즐로는 라이트의 격언과 달리, 위대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 그의
이민자 서사와 건축적 구조로 읽는 <브루탈리스트>, 대칭과 반복으로 설계한 미국의 부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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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을 시작으로 수많은 비평가협회와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수훈하고, 오는 3월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진격을 멈추지 않는 <브루탈리스트>가 2월12일 개봉한다. <브루탈리스트>는 시네마가 좀처럼 주목한 적 없는 건축과 건축가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라는 점에서 새롭고, 비스타비전 촬영과 긴 러닝타임으로 인한 인터미션을 갖추는 등 할리우드의 황금기로 회귀한 듯한 영화라는 점에서 고전적이다. 우리 시대에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할 <브루탈리스트>를 독자 여러분에게 자세히 소개한다. 영화의 리뷰와 제작기는 215분에 달하는 길고 아름다운 영화적 탐험에 긴요한 설계도로 자리할 것이다. 윤웅원 건축가가 투시 스케치한 <브루탈리스트> 감상기도 동봉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브루탈리스트>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새로운 고전 -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를 투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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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
감독 코랄리 파르자 | 디자이너 질 포앵토
<서브스턴스>의 굵은 대문자 타이포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명령문 같다. 그만큼 압도적이다. 알파벳 사이에는 틈이 없어서 숨이 막히는데 이는 엘리자베스(데미 무어)와 수(마거릿 컬리)의 일주일을 보는 동안에도 여지없이 느끼는 감정이다. <서브스턴스>의 타이틀과 카드보드, 크레딧 시퀀스를 맡은 건 프랑스 출신 디자이너 질 포앵토다.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코랄리 파르자 감독과의 회의 풍경을 살짝 묘사해주었다. “논의 끝에 나온 미니멀리즘, 거의 브루탈리즘에 가까운 디자인이 우리 마음에 쏙 들었다. 어쩐지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도 좋았다.” 감독이 처음부터 구상했던 것 중 하나가 “타이포그래피가 화면을 꽉 채우는 것”이었다며 영화에서 제목이 왜 그토록 큼지막하게 쓰였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시켜줬다. 그는 “하나의 브랜드를 창출하기를 원”했던 감독의 뜻에 따라 “‘더 서브스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타이포그래피가 눈에 띄는 최신 해외 포스터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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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이포그래피의 역사는 이견 없이 솔 배스에게서 시작한다. 이 미국 그래픽디자이너가 1950년대 할리우드에 입성해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영화 타이포그래피의 세계엔 이름난 인물이 없었다. 그전에 해당하는 무성영화시대에서부터 194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까진 미술팀의 누군가가 그때그때 역할을 해왔다. 광고 회사에서 근무하던 솔 배스가 할리우드로 건너가게 된 건 오토 프레민저 감독의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를 맡으면서부터다. 마약중독자인 재즈 뮤지션의 극복기를 다룬 영화의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를 헤로인으로 향하고 마는 팔의 이미지와 간격이 좁은 굵은 글씨를 사용해 디자인했는데 이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중 감옥에 있는 듯한 답답한 느낌을 주는 서체는 타이포그래피가 영화의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까지 전달할 수 있다는 걸 확실히 알리는 계기가 됐다. 솔 배스는 히치콕을 만나면서 대성하고 그와 함께 영화 타이포그래피의 예술성도 점차 발전한다. 현기증을 겪는
서체가 예술의 경지에 닿기까지, 주요 인물로 돌아보는 영화 타이포그래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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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의 엘리자베스(데미 무어)가 ‘더 서브스턴스’ 약물 키트를 열었을 때, 그는 이렇게 적힌 안내장과 마주한다. “REMEMBER YOU ARE ONE.”(기억해 너는 하나야) 굵은 대문자인 이 문구가 만약 ‘remember you are one’처럼 소문자에 흘림체였다면? 부드럽게 읽힐 안내장은 엘리자베스와 관객을 덜 긴장시켰을 테고 의미심장함을 심으려는 장면의 의도는 명확히 전달되지 못했을 거다. 영화 타이포그래피는 단순한 글자가 아니다. 포스터와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 등장해 영화의 첫인상을 좌우하기도 하고 한 장면의 의도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의 정체성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에 영화 타이포그래피를 역사적 흐름을 주도한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읽고 나면 이 거대한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기억해야 할 이름은 무엇인지 윤곽이 잡힐 것이다. 이번에는 직접 볼 차례다.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최근 영화들의 포스터를 살펴보는 페이지도 마련했다. 설 연휴
[기획] <서브스턴스>의 글씨가 대문자인 이유는?, 영화 타이포그래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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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말하기에 가장 어려운 영화감독의 이름을 꼽으라면 데이비드 린치를 빼놓을 순 없을 것이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의 난해함을 떠나더라도 그러한 작품들의 기반이 꿈의 공장인 할리우드였다는 것, 그 안에서 디지털 영화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통상적으론 컬트영화의 대부로 말해진다는 것 등의 난잡한 조각들이 그를 특정한 계보나 사조에 편입시킬 수 없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주변을 배회하는 몇개의 키워드를 통해 우리 곁을 떠난 데이비드 린치의 형상을 주물러본다.
컬트
‘컬트의 제왕’, ‘컬트영화의 대부’. 데이비드 린치가 떠난 뒤 그의 이름에 가장 자주 수식된 단어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데이비드 린치의 외적 행보는 컬트영화의 토대에서 출발했을 뿐, 지금 시점에서 컬트란 단어로 그의 전부를 통용하기란 부적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의 첫 장편영화 <이레이저 헤드>는 1977년 작은 영화관에서 개봉해 1981년까지 장기상영하며
그의 조각들, 데이비드 린치를 배회하는 몇개의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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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작업과 영감들 속에서 그를 대표하는 10여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가 전세계의 영화 팬들에게 선물했던 초현실적 궤적을 다시 살피며 그리움을 달래본다.
1977 <이레이저 헤드>
데이비드 린치가 빚을 지면서까지 만든 인디펜던트 영화다. 2만달러의 제작비로 북미에서 장기상영하여 7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황량한 미상의 도시에서 사는 청년 헨리(잭 낸스)가 메리(샬럿 스튜어트)와의 결혼과 출산을 이어가며 겪는 초현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물들의 살인 충동을 종용하는 환상의 존재 ‘라디에이터 속의 여인’은 이후 <트윈 픽스> 시리즈의 밥처럼 데이비드 린치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요 모티프가 된다.
1980 <엘리펀트 맨>
다발성 신경섬유종증으로 인해 남들과 다른 외형을 가졌던 실존 인물 조셉 메릭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엘리펀트 맨’으로 불린 메릭은 서커스단의 구경거리로 비극적인 일
초현실적 궤적, 데이비드 린치의 대표작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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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가 세상을 떠난 날. 자택에서 데이비드 린치 추모의 밤을 보낸 이경미 감독이 <씨네21> 앞으로 추도사를 보내왔다. 이경미 감독의 애통한 마음을 최대한 필자의 문체를 살려 싣는다. 린치와 협업한 영화인들이 남긴 메시지도 짧게 전한다.
이경미 감독(영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연출) 데이비드 린치, 데이비드 크로넌버그, 데이비드 핀처도 있지만 내 인생의 첫 데이비드는 만리장성을 통과하고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만든 환상의 마술사 데이비드 코퍼필드다. 마술사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그전에 숟가락을 구부렸던 유리겔라도 있지만 오늘만큼은 데이비드 이야기만 하고 싶다.
나는 코퍼필드의 충격적인 마술을 접한 뒤로부터 한참이 지나 남들보다 늦게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3인의 데이비드가 연출한 작품을 한꺼번에 접할 수밖에 없는, 대혼돈을 겪고 말았다. 참고로 나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놀랍도록 기억하지 못한다. 핀처는 비교적
못다 한 고백, 데이비드 린치를 향한 추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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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들은 요약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데이비드 린치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가 이 부류에 속한다. <이레이저 헤드>(1977)부터 <인랜드 엠파이어>(2006)까지, 끔찍한 현실과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담은 그의 영화들을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영화들을 보고 컬트라고 말했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그를 천재라 믿었다. 2025년 1월16일, 78살로 세상을 떠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현실주의자 데이비드 린치. 조각과 그림, 사진과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보인 위대한 영화예술가의 행적을 되돌아본다.
1946년 몬태나주 미줄라에서 태어난 린치는 농무부 소속의 과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서 미국 중부의 여러 곳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예술과 연관이 없는 환경이었지만 14살 무렵부터 그는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데이비드 린치가 만든 단편영화는 영화보다 조형예술에 더 가까웠다. 움직이는 그림의 형태들, 그의 작품이 시네마의 개념에 근접한 것은 세 번째 단
우리 시대의 마지막 초현실주의자, 데이비드 린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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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진 느낌이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가 지난 1월16일 영원히 눈을 감았다. 1977년 <이레이저 헤드>부터 2017년 <트윈 픽스: 더 리턴>까지 약 40년간 영화사의 대체할 수 없는 이름으로 불렸던, 늘 꿈의 세계에 둥둥 떠다니며 사는 현자 같았던 거장의 세계가 막을 내렸다. 이 영광의 행로를 모두 집약하긴 어렵겠으나 그의 생애를 요약한 글과 함께 필모그래피 정리, 그를 추모하는 영화인들의 코멘트를 실었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 붉은 커튼 뒤의 무한한 가능 세계로 남아 있는 데이비드 린치의 조각들을 할리우드, 컬트 등 몇 가지 키워드로 그러모았다. 한명의 삶이 끝난다기보단, 거대한 시대가 저문다는 감상으로 부고의 전언을 부친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데이비드 린치 부고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Fire Walk with Me, 데이비드 린치(1946~2025)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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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었다.” 아이즈원의 메인보컬부터 성공적인 솔로 활동까지 아이돌로서 탄탄한 경력을 쌓아온 조유리에게도 “고등학생 때부터 품었던 연기의 꿈”을 위해 도전한 배우의 길은 험난했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신 뒤 “두눈 가득 독기를 품고” 임한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오디션. 마침내 조유리는 “연기를 향한 간절한 염원”처럼 “뱃속의 아기와 반드시 게임에서 탈출하리라 다짐한” 어린 미혼모 김준희를 만나게 된다. 본격적인 시리즈물 데뷔는 처음이었던 그에게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임신”을 연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임신을 경험한 분들에게 전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했다.” 조유리는 어머니의 육아일지를 읽으며 모성을 헤아려보고, 임신을 경험한 주변 지인들로부터 신체적인 변화를 물었다. “산모들이 배에 손을 대는 이유가 배가 너무 무겁기 때문”이기에 “손을 배 밑에 두어 들어 올리듯 받쳐야 한다”는 점을 명심한 채 촬영에 임하느라 나중에는
[인터뷰] 희망과 불안 사이,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조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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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에게 <오징어 게임> 시즌2 캐스팅 이유를 들은 박성훈은 적잖이 놀랐다. “예전 출연작인 KBS 단막극 <희수>를 보고 현주 캐릭터를 떠올렸다고 하시더라. 극 중 평범한 가장 역할이었는데 말이다. 감독님이 내 안에 존재하는 여성성을 꿰뚫어보신 것 같았다.” 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조현주 역할을 맡은 뒤 감독과 함께 세운 첫 번째 원칙은 “절대 희화화하지 말 것”이었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던 시절에 게이 역할을 여러 번 하면서 성소수자에 관해 비교적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실제 트랜스젠더 분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고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특히 전형적인 과도한 제스처를 삼가”면서 인물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게임 참가자들과 달리 주변인을 앞장서서 챙기는 현주는 “이타적이고 강인한” 역할로 간단히 정의되곤 하지만 박성훈은 그 너머를 봤다. “특히 후반 반란 때 현주가 총을 거침없이 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굉장한 두
[인터뷰] 감개무량의 순간,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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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속이 시원하다”라며 <오징어 게임> 시즌2의 공개 소감을 말하는 박규영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꽁꽁 숨겨왔던 그의 역할은 게임 참가자가 아닌 진행 요원. 북한에 두고 온 어린 딸을 찾는 게 삶의 목적인 명사수 강노을 역이다. 누굴 맡을지 모르는 상태로 오디션에 참가, 합격 뒤 주어진 예상 밖의 인물은 박규영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핑크가드가 시즌1에서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만큼 매력적이었다. 또 다른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컸다.” 평소 밝은 성격인 박규영은 “기본적으로 마음 상태가 최저까지 가라앉은” 역할을 헤아리기 위해 촬영하는 동안만큼은 차분히 일상을 꾸려나갔다. “단순한 무표정과 낮은 목소리로는 황동혁 감독님이 생각하는 노을이의 감정적 깊이를 표현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는 건조하고 푸석한 느낌을 주고 싶어서 체중을 감량하고 액션스쿨에서 자세를 익히”면서 냉철하고 정확한 스나이퍼가 되는 과정을 거쳤
[인터뷰] 고요한 열정, <오징어 게임> 시즌2 배우 박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