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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온 후에 오랜 시간 영화를 생각하는 사람을 시네필리아로 정의한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이야말로 가장 많은 시네필을 만들어온 감독이다. 그의 신작이 개봉할 때마다 관객은 복잡한 내러티브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혹은 모호한 타임라인을 정리한 누군가의 정밀한 분석을 찾아다니며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감독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촬영 비화를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은 대중적인만큼 그의 영화를 규정하는 몇 가지 키워드에 사로잡혀 오인하기 쉬운 감독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미·영 영화학자들의 글 17편을 수록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그의 작품을 각기 다른 렌즈를 투과해 조망하며 그간 간과됐던 시야의 사각지대를 들춘다. 해당 영화의 관련 스틸 등이 없이 비평 텍스트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힐 책은 아니다. 17편의 글에는 서로 중복되는 논의도 서로 상충되는 주장도 결론으로 가기 위한 비약도 이따금 밟힌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다각적으로 분석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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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의 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키키 키린의 대화를 담은 책이다.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키키 키린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의 단골 출연배우였다. <걸어도 걸어도>(2008)를 시작으로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태풍이 지나가고>(2016), 그리고 유작인 <어느 가족>까지 고레에다 감독이 연출한 6편의 영화에 출연해 주인공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연기했다.
출연 비중이 크진 않지만,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불어넣는 세심한 일상 연기 덕분에 그의 존재감은 보이는 것 이상으로 컸다. 키키 키린과 함께 작업했던 지난 10년 동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잡지 <스위치>를 통해 키키 키린과 여섯 차례 긴 인터뷰를 했다. <키키 키린의 말>은 <스위치>의 인터
<키키 키린의 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배우 키키 키린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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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유튜브 채널에 조현나 기자와 송경원 기자가 출연해 영화 평론에 대해 대담한 영상이 있다. 이 영상에서 조현나 기자는 영화를 자기식대로 재구성하는 것을, 송경원 기자는 영화를 보고 자신의 반응을 쓰는 일종의 에세이를 평론이라 말한다. 재구성과 에세이. 이 두 가지 관점을 글로 쓰는 영화 비평에 적용하면 비평은 영화에 물리적 훼손을 입히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이 가능하다. 영화를 눈으로 보고 머릿속에 든 생각을 손으로 키보드를 쳐서 정리하면 비평이 완성된다.
만약에 영화 파일을 다운받아서 글이 아닌 영상으로 비평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를 훼손하진 않고서는 답이 없다. 이때 마우스는 칼이 되고 영화 파일을 자르고 이미지와 사운드를 분리 및 해체하고 복사하고 붙여넣기를 반복한다. 재구성된 영화의 모습은 멀리서 보면 패치워크나 콜라주 혹은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새롭게 태어난 영화. 김혜리 기자의 책 제목(<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처럼 영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 “먼저 만들어보고, 나중에 생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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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주 다네와 나눈 대화에서 당신은 영화가 없었다면 이야기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며, 영화에 빚을 졌기 때문에 <영화의 역사(들)>로 영화에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발터 벤야민은 만일 구원해야 할 것이 지금 구원받지 못한다면 완전히 사라져버릴 위험이 있다고 했는데, 당신의 작품은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세프 이샤그푸르의 말에 장 뤽 고다르가 답한다.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이 말을 정리하면 장 뤽 고다르는 영화에 진 빚을 갚기 위해(영화 또한 장 뤽 고다르에게 빚졌다고 말할 수 있다), 일종의 영화를 구원하는 행위로서 100년의 영화 역사를 돌아보는 거대한 프로젝트 <영화의 역사(들)>에 착수했다. 고다르가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에 걸쳐 만든 <영화의 역사(들)>는 고다르의 후기 영화를 말할 때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만든 직후 고다르는 비평가 이샤그푸르와 이 영화에
<영화의 고고학: 20세기의 기억> , 장 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에 대한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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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두고 떠오른 정동과 사유는 어떤 형태로든 기록해야 휘발되지 않는다. 영화에 관한 책은 영화가 자신에게 줬던 감상과 새롭게 생성된 질문을 붙들어놓기 위해 쓰여졌다. 그리고 타인이 써내려간 흔적을 읽으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함께 확장해가는 독자들이 있다.
2020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나온 신간 중 <씨네21>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책들을 꼽아보았다. <영화의 고고학: 20세기의 기억>은 장 뤽 고다르와 비평가 유세프 이샤그푸르의 대담을 기록했고, <비디오 에세이 만들기>는 영상물 비평 워크숍의 산물이며, <키키 키린의 말>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직접 진행한 키키 키린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는 영화학자들이 각자 놀란의 영화에 대해 사유한 아티클 17편을 모았고, <에릭 로메르: 은밀한 개인주의자>는 에릭 로메르가 남긴 아카이브 자료로부터 시작한 그의 전기이며, <우연히, 웨스
'씨네21'이 추천하는 영화 관련 서적 - "읽어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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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인트로덕션'① 세번의 포옹과 한번의 파도, 그리고…> 에서 이어집니다.
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올해 3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세 번째 은곰상(각본상)을 수상했을 때 <씨네21> 1296호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본래라면 개봉을 앞두고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실어야 마땅하나 이번에는 아쉽게도 부득이한 이유로 <인트로덕션>에 대한 인터뷰를 싣지 못하게 되었다. 자기 위로를 해본다면, 사실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는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그리고 감독의 특질과도 연관이 있다. 최대한 의미를 곡해하는 것을 경계하다보니 짧은 답 또는 무의미해 보이는 답변들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답변들이 궁금하다. 그것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신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의 답변은 또 다른 형태의 창
'인트로덕션'② 세번의 포옹과 한번의 파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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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에 대한 간략한 정보는 올해 3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세 번째 은곰상(각본상)을 수상했을 때 <씨네21> 1296호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본래라면 개봉을 앞두고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를 실어야 마땅하나 이번에는 아쉽게도 부득이한 이유로 <인트로덕션>에 대한 인터뷰를 싣지 못하게 되었다. 자기 위로를 해본다면, 사실 홍상수 감독의 인터뷰는 영화를 이해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그리고 감독의 특질과도 연관이 있다. 최대한 의미를 곡해하는 것을 경계하다보니 짧은 답 또는 무의미해 보이는 답변들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답변들이 궁금하다. 그것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신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상수의 답변은 또 다른 형태의 창작물에 가깝다. 이후 비록 늦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홍상수 감독의 목소리를 전해드릴 것을 미리 약속드리
'인트로덕션'① 세번의 포옹과 한번의 파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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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디즈니·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루카>에서 호기심 많은 바다 괴물 루카의 목소리를 연기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와 일대일 버추얼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5년 <룸>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뒤 다양한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출연해온 트렘블레이는 어느새 운전면허증을 딸 수 있는 청소년으로 자라 있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단절감을 소셜 미디어로 해소하는 Z세대 배우와 나눈 인터뷰를 정리해 전한다.
-보이스 액팅 경험이 이전에도 많았지만 이번엔 픽사 애니메이션이다. 어떤 점이 특별했나.
=처음 <루카>의 보이스 레코딩을 시작한 때가 코로나19가 닥치기 전이었다. 그래서 픽사 스튜디오에서 직접 녹음했다. 멋지게 꾸며진 스튜디오를 보고, 여기서 창의적인 픽사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다른 배우들과 같이 녹음할 기회가 있었나.
=아쉽게도 코로나19로 내 녹음 분량을 캐나다에서 진행하면서 실제로 만날 기회는 없었다.
'루카' 제이콥 트렘블레이, "루카와 나는 상상력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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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루카>는 이탈리아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 루카와 알베르토의 모험담이다. 두 소년에겐 비밀이 있다. 그건 이들이 육지에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바닷속 세상에서 살아가는 바다 괴물이란 것이다. 인간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귀여운 바다 괴물 소년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청량한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할 수 있었는지, 제작진 인터뷰를 바탕으로 영화의 이모저모를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루카 목소리를 연기한 제이콥 트렘블레이와의 인터뷰도 덧붙인다. 영화는 6월 개봉한다.
여름
인생을 사계절에 빗대 이야기할 때, 여름은 가장 찬란하고 뜨거운 청춘이다. <루카>의 주인공인 루카가 겪는 파란만장한 여름은 20대의 뜨거운 여름은 아니지만 10대 소년이 훗날 자라서 기억할 때 반짝반짝 빛날 시절이다. 특히 그때 만난 친구가 인생의 친구가 되었다면 그 시절은 언제 되돌아보아도 기억에 남는 인생의 계절일 것이다. <루
'루카' 픽사가 창조한 귀여운 바다 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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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이하 영상자료원)은 5월 19일부터 6월 9일까지 22일간, 시네마테크KOFA 극장에서 ‘GAMExCINEMA’ 특별전을 연다. 1980년대~2020년에 공개된 영화 중 게임을 소재로 한 37편의 다큐멘터리, 극영화, 단편영화 등을 선정해 게임과 영화가 어떻게 함께 변화, 발전해왔는지 탐색하는 특별전이다. 독립예술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영상자료원에서 게임-영화 매체를 연계해 그 독창성과 발전 가능성을 조명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시도다. ‘GAMExCINEMA’ 특별전이 소개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게임, 영화의 긴밀한 관계를 살펴보았다.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대체로 실패작이라 불려왔다. 낮은 완성도, 실사화된 캐릭터의 어색함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럼에도 게임 원작의 영화는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올해 초 공개된 <몬스터 헌터>, 개봉을 앞둔 <레지던트 이블: 웰컴 투 라쿤 시티> <언차티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터운 팬층
[스페셜] 게임과 영화의 관계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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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해온 자동차 액션영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앳된 모습의 브라이언(폴 워커)이 처음 등장했던 1편이 나온 지도 어느새 20년이 다 됐으니 말이다. 오랜 기간 인기를 이어나가기 힘든 액션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흥행에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월이 지나도 자동차 액션 하나만큼은 제대로 만드는, 그러니까 영화 속 또 하나의 주인공인 ‘자동차’에 충실하다는 점, 그거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분노의 질주> 속 자동차들에 열광했다. 1편 마지막에 도미닉(빈 디젤)과 브라이언이 마지막을 걸고 철길에서 드래그 레이스(단거리에서 가속만 겨루는 자동차경주.–편집자)를 펼쳤을 때, 도미닉이 아끼던 오래된 닷지 차저(1960년대 크라이슬러가 만든 머슬카.-편집자)와 브라이언의 토요타 수프라가 맞붙었을 때,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몰입했다. 이 레이스는 많은 사람을 홀렸고, 본래 큰 인기가 없었던 수프라는
자동차 전문 기자가 본 <분노의 질주> 시리즈 - 분노의 질주 머슬카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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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시리즈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신들이 있을 만큼, 지난 9편의 영화에는 프랜차이즈의 시그니처가 된 멋진 시퀀스들이 있다. 오로지 자동차만 이용한 전통적인 카 체이스부터 <분노의 질주>의 방식으로 오랜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는 뭉클한 신까지 시리즈의 빛나는 순간들을 정리해보았다.
죽음을 불사하는 미친 레이스
<분노의 질주>(2001)
브라이언 오코너(폴 워커)가 위장 경찰임이 밝혀진 후,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마지막 드래그 레이스(자동차들이 나란히 출발해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순위를 매기는 레이스.-편집자)를 펼치는 장면. 도미닉의 닷지 차저와 브라이언의 토요타 수프라의 미친 질주는 맞은편에서 기차가 달려와도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속도를 낸다. 앞서 대규모 레이스 시퀀스에서도 1500여대의 자동차와 1천여명의 엑스트라를 투입해 실제 경주를 재현했던 영화는 이 신도 실제로 차를 운전해서 완성했다.
물론 약간의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명장면 5 - 차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극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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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상천외한 자동차 액션? 스트리트 레이싱의 속도감? 전세계를 누비는 화려한 볼거리? 물론 그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영화마다 색깔도 개성도 달랐던 <분노의 질주>가 하나의 시리즈로 성립할 수 있었던 구심점은 결국 가족이다. 20년을 이어오며 ‘그렇게 가족이 된’ 도미닉 패밀리를 소개한다.
도미닉 토레토
빈 디젤
<분노의 질주>의 엔진이자 팀원을 가족이라고 부르며 끌어안는 패밀리의 리더다. 처음에는 브라이언 오코너와 더불어 스트리트 레이싱의 중요 인물 중 하나였지만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도미닉 패밀리를 중심으로 연대기를 쓰고 있다. 브라이언 역의 배우 폴 워커가 사망한 뒤 <분노의 질주: 더 세븐>부터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와의 기억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드디어 경기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아버지에 얽힌 일화가 등장하면서 본인의 트라우마를 정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도미닉 패밀리 주요 캐릭터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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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두편 더 만들면 <분노의 질주> 사가는 막을 내린다. 프랜차이즈와 유니버스는 지속되겠지만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끝이 예고된 사실에 대한 소회가 궁금하다.
빈 디젤 우선, 실망한 팬들에게 그 점에 있어서는 혼자가 아니란 걸 이야기하고 싶다. 딸에게 다음 영화가 마지막이며 2편으로 나눠질 거라고 말했을 때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달래보려고 했는데 들으려 하지 않더라. <분노의 질주>가 오랜 시간이 지나 맞이하는 피날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어떤 기분을 느꼈는가 하면, (잠시 쉬고) 전세계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무언가의 한 부분이 된다는 건 엄청나게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함께 모여서 엔터테인먼트를 즐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기에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친구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며 긴장을 느끼기에 더없이 적절한 타이밍이라 생각한다. 영화관을 경험하는 일상으로
[인터뷰]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배우 빈 디젤, 존 시나, 미셸 로드리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