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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호민 때문에 요즘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제발 재결합하길!” “성호랑 상미 헤어졌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못 헤어지는 것도 이해는 감.” “도대체 녹화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영철이랑 영숙이가 두달 만에 결혼을 한 거지?” “최준호, 배수진이 연결되지 않은 걸 보면 역시 자식 문제가 크긴 한 듯.” 처음엔 인기 드라마 주인공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 이름들이 전부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시청자를 이토록 ‘과몰입’시키는 리얼리티 방송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TV를 틀어도, 넷플릭스 같은 OTT에 들어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데이팅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다.
왜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청자들은 지겨움을 토로하기보단 매번 새로운 것을 보듯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SOLO> <돌싱글즈> <체인지 데이즈> <환승연애> <솔로지옥> 제작진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화려한 부활… 왜 인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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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열여섯살 때부터 십년 이상 꾼 악몽을 받아쓴 것이다.” 2015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당선작 <최선의 삶>의 작가 임솔아는 수상 소감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그가 스물아홉까지 꾼 꿈에는 세명의 중학생이 나온다. 강이는 늘 구부정히 서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모델 지망생 소영은 아이들을 주도한다. 아람은 언제나 마음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동반 가출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 소영이 강이를 본격적으로 따돌리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어그러진다.
이야기는 2017년 영화 제작사 마일스톤컴퍼니 김형대 대표를 거쳐 이우정 감독에게 전해졌다. 단편 <옷 젖는 건 괜찮아>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 <애드벌룬>을 찍으며, 붙어 있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온 그다. 여자 고등학생들이 공유하는 잔인한 일상과 일상적 잔인함을 포착한 <애드벌룬>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품에 안은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임솔아 작가…악몽이 가져다줄 수 있는 최선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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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서 정해인은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느라 머뭇거리다가도 일순간 사랑 앞에 용감해지는 인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랑을 퍼주던 멜로 장르 속 정해인은 신기하게도 격정적이기보다 따스하게 기억된다. 그의 순한 눈빛과 미소,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묘한 힘이 스며 있다.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가 되어 군복을 입었어도(특색 없는 사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더 많지만) 정해인이 가진 특질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정해인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D.P. 조장 한호열(구교환)과 짝을 이뤄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이병 안준호를 연기한다. 군대 내 괴롭힘을 목격하기도 하고 경험하기도 하는 안준호는 뜨겁게 치미는 복잡한 감정을 삼키며 조금씩 단단해져간다. 개가 되지 않고 인간이 되려는 안준호의
'D.P.' 정해인…흔들리는 청춘 사이, 굳건한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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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가 2015년부터 연재했던 만화 <D.P. 개의 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로 완성돼 지난 8월 27일 공개됐다.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D.P.였던 김보통 작가의 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주인공 안준호는 탈영병을 쫓을수록 그들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안준호의 시선은 자주 탈영병의 괴로움과 외로움에 가닿는다.
<뺑반>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이 연출을 맡은 6부작 시리즈 <D.P.> 역시 원작의 문제의식과 정서를 흡수한다. 군내 가혹행위와 그것을 알고도 묵인한 방관자들에 대한 일갈은 묵직하지만 <D.P.>는 대중 시리즈물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탈영병을 쫓는 D.P.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 등 생생한 캐릭터들, 그들의 사연을 세심하게 엮은 각본, 캐릭터의
한준희 감독, 원작자 김보통 작가가 밝힌 'D.P.' 영상화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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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켓소년단>의 윤해강(탕준상)은 우리가 사랑했던 스포츠 만화 속 소년들을 쏙 빼닮았다. 자기 재능을 뽐내고 으스대며 관심을 즐기는 배드민턴계의 ‘강백호’(<슬램덩크>)는 사실 누구보다 속 깊고 선의로 가득 찬 아이다. 미워할 수 없는 치기와 허세는 탕준상의 그 나이대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과 꼼꼼한 연기를 매개로 현실로 소환된다.
배드민턴 신동처럼 보이기 위해 실제 선수들이 받는 굉장히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한 것은 물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화면에 잘 담기 위한 계산이 모든 순간에 녹아 있다. “역동작(선수가 움직이려는 쪽 반대쪽으로 공이 날아와 몸을 급히 반대로 움직이는 동작)을 한다든지 자세를 잡기 전에 공을 따라가는 시선을 분명히 잡으면 그 상황이 더 긴박해 보일 수 있다.” 진짜 발목을 다쳤음에도 다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던 에피소드는 배우의 설명을 듣고 다시 볼 때 디테일이 더 돋보인다. “처음에 서브를 넣을 때는 아픈데도 참는 느낌으로, 마
2003년생 '탕준상', 겸손한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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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이 드라마 <라켓소년단>에서 연기한 배드민턴 선수 한세윤은 안세영 선수를 모델로 한 캐릭터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부상을 안고 8강까지 올라 뭉클한 감동을 준 안세영 선수는 중학생 때 태극 마크를 단, 세계가 주목하는 배드민턴계의 라이징 스타다. 마침 드라마 방영 시기와 도쿄올림픽 기간이 맞물려 이재인은 촬영 중 안세영 선수의 경기를 응원하며 지켜볼 수 있었고 안세영 선수에게 “드라마 재밌게 봤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최연소 국가대표를 꿈꾸는 중학생 배드민턴 선수를 연기하기 위해선 배울 것이 많았다. 4~5개월간 배드민턴을 1대1로 코칭받았고 “선수의 자세”에 대해서도 공부를 많이 했다. “세윤이가 성격뿐 아니라 실력 또한 성숙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단지 선수를 ‘연기’한 것뿐이지만 촬영하는 8개월 동안 선수로서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실력과 성격 모두 성숙한 노력형 천재 한세윤과 이재인은 닮은 구석이 꽤 있다. “세윤이의 부지런함을 따라갈 순
2004년생 '이재인', 외유내유 이재인의 외유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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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바깥에서 들려오는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노크 소리를 대신했다. 16살의 싱그러운 기운은 금세 주변의 공기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였다. 이제 막 패션과 뷰티에 호기심을 갖고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재미를 느끼고 있는 이레는 베레모에 안경까지 멋스럽게 쓰고 나타나 마치 <안녕? 나야!>의 반하니와 같은 텐션으로 “본 투 비” 배우의 모습을 보여줬다. 올해 상반기 방영된 드라마 <안녕? 나야!>에선 17살의 반하니와 37살의 반하니를 최강희와 2인1역으로 연기하며 드라마 첫 주연을 맡았다. 극중 이름처럼 모두를 반하게 만드는 자기애 가득한 10대의 반하니는 당돌하고 거침없다.
사실 이레의 에너지도 그 못지않다. “낯가림이 풀리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텐션이 치솟고,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밝고 쾌활하고 도전하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작 스스로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내 목소리 톤이나 성격이 잘 맞을까” 걱정이었다는
2006년생 '이레', 연기라는 홈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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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윤찬영이 되겠습니다.” 연기 학원에서 막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생 윤찬영이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했던 말이다.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은 중학생이 되어 이내 ‘착하게 살자’로 바뀌었다. 좌우명대로 “중학교 다닐 땐 친구들과 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고 늘 많이 웃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다시 최선의 의미를 곱씹는 중이다. 20살의 길목에서 꿀맛 같은 최선의 결실을 맛봤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대학에 합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에 캐스팅된 것이다.
윤찬영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대학 생활의 낭만을 경험하지 못한 비운의 2020학번이다. 지난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는데, 합격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윤찬영은 13살 때 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로 데뷔했고, <마마>로 아역상, <의사요한> <17세의 조건>으로 청
2001년생 '윤찬영', 최선과 진지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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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처음 카메라 앞에 선 순간부터 배우가 된다. 이는 결국 배우가 보는 사람에 의해 평가받는 직업군이기에 가능한 일인데, 예쁘거나 잘생겼다는 이분법적인 구분이나 기술적인 연기를 뛰어넘는 마술적 순간을 동반한다. 박지후를 처음 봤을 때부터 관객은 그가 가상의 캐릭터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이산적 기억을 공명하는 힘이 있는 배우임을 직감했다. <벌새>의 은희와 같은 중학교 2학년 때 첫 장편영화를 만난 박지후는 그렇게 필연적으로 배우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벌새>가 전세계 영화제 59관왕 기록을 세우고 배우 역시 트라이베카페스티벌 여우주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와중에도 쉽게 요동치지 않고 현실에 발 딛고 사는 학생의 모습을 잃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박지후는 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대단하지 않다고 묘사한다. 자신이 자라온 대구에서 학교도 계속 다니고 있다. “그냥 급식 메뉴 얘기하고 랜덤 게임 하면서 논다. 친구
2003년생 '박지후', 배우의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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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김제덕, 신유빈, 황선우…. 이번 도쿄올림픽의 화제성을 이끈 건 단연 2000년대생 선수들이었다. 벌써 2000년대생이 활약하며 이름을 알리는 시대가 됐느냐며 놀라지 말자. 이미 영화와 드라마계에서도 2000년대생들은 누군가의 아역이 아닌 독립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며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절대다수가 열광하는 무언가가 점점 사라지고 유튜브와 SNS가 발달하는 등 플랫폼이 다변화될 때 연기 활동을 시작한 세대다. 그리고 배우를 ‘내 직업’, ‘일터’로 인지하며 누구보다 프로 중의 프로로 성장했다.
그동안 어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단연 “그러면 2002 월드컵을 못 봤단 말이야?”. 하지만 본인보다 어린 세대를 볼 때 생경한 마음은 자신들도 똑같다고 한다. “이해한다. 나도 <라켓소년단>에서 동생으로 나오는 (안)세빈이가 2013년생인데 ‘쟤가 태어날 때 나는 뮤지컬을 하고 있었는데!’ 하고 놀란다.”(탕준상) “2013년에 태어났다고 하면 ‘엑
2000년대생 배우 5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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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28살의 이준익 감독은 봉급 30만원에 혹해서 서울극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15만원 받고 일했던 잡지 <주부생활> <여성자신> 일러스트레이터를 그만두고 그길로 약 2년간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영화 포스터는 물론 대형 간판, 작은 신문광고, 지하철역에서 나눠줄 지라시 광고까지 모두 디자인했다. 그가 처음 광고한 영화는 <변강쇠>였다. 영화에 대한 꿈이 없었던 청년 이준익은 서울극장과 인연을 맺으면서 영화를 시작했고, 오늘날 영화감독으로까지 성장했다. 1980년대 낭만이 가득한 서울극장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그에게 그 기억을 조금 나눠달라고 청했다.
-단관극장 시절 서울극장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서울극장 좌석 수가 1003석이었다. 그땐 단관극장 시절이기 때문에 좌석 수가 1천석이 넘느냐 안 넘느냐가 중요했다. 1천석은 굉장히 상징적인 숫자다. 서울극장 주변에 있었던 재개봉관 오스카극장, 금성극장, 성남극장, 화양극장
서울극장 선전부장으로 일했던 이준익 감독이 기억하는 서울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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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극장 블록화, 최초의 멀티플렉스. 서울 종로3가에 자리한 서울극장(회장 고은아, 사장 곽승남)은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 극장이다. 단성사, 피카디리극장에 비해 뒤늦게 개봉영화관 사업에 뛰어든 서울극장은 ‘막내극장’으로 출발했으나, 80~9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우리의 ‘시네마 천국’이었다. 그런 서울극장이 오는 8월 31일 관객과 작별을 하고 43년간 돌렸던 영사기를 멈춰 세운다. 서울극장을 운영해온 합동영화주식회사는 지난 7월 2일 “약 40년 동안 종로의 문화 중심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울극장이 2021년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영화를 매개로 관객과의 추억을 쌓았던 서울극장은 작별 인사도 영화 상영으로 대신했다. 극장은 ‘젊은 시절부터 평생 서울극장에서 영화를 봤다’는 관객에게 보답하기 위해 지난 8월 11일부터 3주간 ‘감사합니다 상영회’를 열고 무료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서울극장이 걸어온 길은 한국 극장의
'굿바이, 서울극장' 사진으로 추억하는 서울극장의 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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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기주봉 선생님은 한 사람 같지 않고 여러 사람 같다. 그는 예민하고 둔하며, 친절하고 불쾌하며, 이타적이고 이기적인 우리의 얼굴이다.”(임대형 감독) 데뷔 45년차에 접어든 배우를 수식할 만한 관록과 예우의 말들이 기주봉에겐 유유히 비껴나갔다. 홍상수·박찬욱·임대형·임선애 감독, 배우 예수정·권해효·전여빈이 보내온 기주봉에 관한 생각은 저마다 그를 재료로 쓴 몽상적 시나 일기처럼 자적했다. 권위 없는 방랑자적 면모, 야생과 감상(感傷)의 지대를 오가는 특유의 거칠거칠한 순수를 기억하는 동료들이 기주봉에 대해 남긴 목소리를 전한다. 여전히 그를 잘 모르겠다는 고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말과 태도가 또렷한 장면으로 각인되었다는 애호의 말들이다.
홍상수 감독
<강변호텔> <인트로덕션>
매번 그분을 뵙고 느낀 것들이 그 당시 그 신을 만드는 데 설명하기 힘든 경로로 깊은 영향을 주었고 그래서 영화가, 내가 억지로 추린 몇 마디 말보
동료들이 말하는 인간 기주봉, 예술가 기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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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어요. 대학로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누가 알아보고 ‘배우시죠?’라고 묻더라고요. 네, 하고 다시 길을 가는데 어디서 ‘어, 연예인이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렇게 또 한참을 걷고 있는데 낯선 분이 와서 탤런트 처음 봤다고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유난히 많이 알아보는 희한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차에 또 다른 분이 다가와 ‘예술 하는 분이시죠?’라고 하는 겁니다. 그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누구라도 자문해볼 만하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연기 경력 50년이 다 되어가는, 삶의 대부분이 연기로 채워졌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탤런트, 연예인, 예술가 그리고 배우. 이 농담 같은 일화에서 한 배우가 걸어온 길을 마주한다. 배우이자 연예인이고 예술가, 모든 합이 곧 기주봉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겐 좀더 구체적인 정리가 필요하다.
기주봉 배우가 1981년 <어둠의 자식들>로 영화계
‘기주봉 배우전’ 개최…기주봉이라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