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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이후 15년, 그동안 이 작품이 내게 미친 영향은.
최동훈 원래 그렇게 리얼리즘적이지 않은 감독인데 <타짜>는 내가 했던, 할 수 있었던 리얼리즘이었다. 그리고 이제 마음껏 놀아도 되겠다며 바로 유턴을 해서 <전우치>를 찍었다. 이후 홍콩에서 해외 배우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며 <도둑들>을 찍었고, 원래 <타짜> 이후에 찍으려고 했던 <암살>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도둑들> 다음에 도전했다. 15년 전에 <타짜>를 하지 않았으면 지금 <타짜>를 만들었을 것이다.
조승우 원작 캐릭터를 전혀 다른 이미지의 배우가 연기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었는데, 허영만 선생님의 만화를 봤던 팬들이 거부감을 느끼기보다는 또 하나의 캐릭터로 인정해줬다는 점에서 나만의 성취감이 있었다. 앞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이만큼 파급력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는 또 만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
이제는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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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보는 조승우와 얘기 중인 백윤식과 최동훈 감독(왼쪽부터).
카메라 뷰파인더를 보는 김혜수. “당시의 나는 그리 시야가 넓지 않아서 현장에 가면 감독님과 배우들에만 집중했는데, 끝나고 보니 <타짜>의 모든 스탭들이 진심으로 영화에 애정을 쏟고 애를 많이 썼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든 작품이 그렇겠지만 <타짜>는 좀더 특별했다. 지금도 <타짜>의 스탭들을 만나면 강도 높은 애정을 느낀다.”(김혜수)
배우들에게 디테일하게 연기 시범을 보이는 최동훈 감독. “그저 배우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대화한다. 감독이 (배우들의 연기를)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4~5% 정도일까. 그들을 관찰하고 동선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배우의 시선이나 말하는 속도나 분위기가 나온다. 그외에는 모두 배우들이 각자의 호흡대로 연기하는 거다.”(최동훈)
백윤식의 손에서 마법처럼 화투 9가 나오는 장면을 찍기 전. “유유자적한 듯 보이는 저 사람(평경장)은 늙은
각자의 호흡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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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렬은 <타짜>의 밀도를 높이는 인물이다. 첫 등장부터 쉴 새 없이 고니(조승우)의 옆에서 조잘대는 그는 긴박한 사건이 터지지 않을 때에도 영화를 가속하고, 장면의 빈곳을 꼼꼼하게 채워간다. 도박판에서는 상대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귀가 따갑도록 딴소리를 하지만, 고광렬의 촐랑대는 혀는 139분 러닝타임을 쏜살처럼 흐르게 보는 이를 몰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타짜>에서 누구보다 많은 웃음을 책임졌던 유해진은 이후 <타짜> 시리즈를 관통하며 유기성을 책임진 장본인이기도 하다.
데뷔 이래 50편 넘는 영화에 출연해온 유해진에게도 고광렬은 특히 각별한 존재다. 유해진은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광렬을 꼽아왔다. 관객이 정말 사랑했고 배우 유해진에게도 큰 변화를 줬던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감초가 아니다. 고니의 가족이 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어설프게 둘러대는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고
웃음과 진지함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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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아귀와 악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었다. <타짜>의 세계 속 중심에는 고니가 있다. 영화는 정 마담의 목소리를 빌려 관객에게 고니의 일대기를 소개한다. 고니가 어떻게 도박판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에서 아귀는 고니와 악연으로 얽힌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고니를 둘러싼 모두가 아귀의 정체에 관해 언급하길 꺼린다. 아귀는 <타짜> 세계 속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타짜 중 가장 존재감이 무거운 타짜였음이 서서히 드러난다. 평경장도 정 마담도 고광렬도 아귀를 무서워하거나 멀리한다. 고니가 도박판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상대해야 할 최종 보스는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최동훈 감독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영화 경력이 많지 않았던 배우 김윤석에게 덜컥 맡겼던 것일까. 캐스팅 당시만 해도 출연 제의를 받은 본인조차 당황했을 정도다. “내게 아귀를 맡길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아귀는 전라도 출신이라는 설정인데 나는 경상도
"아귀를 데리고 춤 한번 추겠다, 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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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경장은 <타짜>의 삼분의 일 지점까지만 등장하지만, 그의 톤 앤드 매너와 가르침은 극 전체를 지배한다. 최동훈 감독은 “유유자적한데 늙은 사자일까 구렁이일까 헷갈리고, 어쩌면 가장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캐릭터를 설명한다. 첫 등장부터 “지랄하고 자빠졌네!” 라고 시니컬하게 욕을 하며 은둔고수가 주는 위압감을 무너뜨리고, 현역을 떠나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집에서 사는 처지지만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혼이 담긴 구라”를 예술의 경지로 자부하고 언제나 자기 자랑을 하는 귀여움까지 배어 있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평경장이 전하는 화투 혹은 인생의 법칙은 영화의 소제목이 되어 고니(조승우)와 아귀(김윤석)의 손모가지를 건 한판 승부까지 영향력을 뻗어나간다.
<타짜>는 파격과 연륜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증명해나가던 백윤식이 젊고 재능 있는 감독과 시기적절하게 조우한 기획이다. <지구를 지켜라!>의 강 사장과 <범죄의 재구성>의
혼이 담긴 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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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배우 김혜수는 하이틴 스타였다. 16살이란 어린 나이에 데뷔한 그녀는 <타짜>에 캐스팅 도장을 찍을 당시에 이미 연기 경력이 20년이 넘어가는 베테랑 배우였다. 그 긴 세월 동안 스타의 자리에서 결코 뒤처진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이후의 김혜수는 배우로서 새로운 시도, 새로운 면모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타짜> 개봉 직전에 <씨네21>과 나눈 인터뷰에서 그녀는 “2000년에 들어서기 전만 하더라도 저에게 시나리오가 들어오는 건 두 가지였어요. 밝고 경쾌한 로맨틱 코미디가 70%, 그리고 나머지는 영화라고 할 수도 없는 에로물. 정말 극단적인 거죠. 딱 그거였어요.”(<씨네21> 561호, 커버 기사 ‘20년 연기 경력,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타짜>의 김혜수’)라고 말한 적 있다. <쓰리> <얼굴없는 미녀> <분홍신> 등 이전에는 경험한 적 없던 호러영화에도
팀의 일원이 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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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드윅>의 공연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조승우는 <씨네21>의 <타짜> 리유니언 표지 촬영에 함께하지 못했다. 고니의 빈자리가 컸다고 하자 “이번엔 유독 공연 후유증이 컸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타짜>의 조승우, 조승우의 <타짜>는 떼놓고 언급할 수 없는 강력한 세트다. 조승우의 곁엔 그림자처럼 늘 <타짜>가 따라다녔고 그래서인지 <타짜>는 그에게 오래된 옛날 영화가 아니다. 개봉 이후 <타짜>를 다시 본 적 없다면서도 얘기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영화의 대사와 장면을 복사하듯 읊고 있는 조승우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다. 특유의 솔직한 화법 사이사이, 함께 사는 반려묘의 소리도 간간이 끼어들었다.(조승우는 이번 촬영에 함께하지 못해 <타짜> 개봉 당시 촬영한 사진을 싣는다.)
본인의 출연작은 쑥스러워 다시 보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타짜>가 재
"그때 나는 27살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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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석이 영화에서 입고 나오는 흰색 셔츠는 단추가 두개만 달려 있는 아르마니 셔츠다. 김윤석이 <타짜>에서 왜 그렇게 단추를 과하게 풀고 나왔는지 의아해했다면, 그건 단추를 잠그고 싶어도 잠글 수 없는 단추가 두개뿐인 셔츠였기 때문이다.
- 박찬욱 감독도 <타짜>의 연출을 제안받은 적 있다.
- “이거이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야.” 최동훈 감독이 꼽은 <타짜> 최고의 명대사다. 조그만 화투짝을 “대한민국 갑부의 대명사”에 빗댄 표현이다.
- 최동훈 감독은 <타짜>를 끝내고 <암살>을 찍으려 했다.
- <타짜>에 관한 유해진의 최초의 기억은 촬영 들어가기 전 다 같이 조승우의 뮤지컬을 보러 간 일이다.
- 아귀 역의 김윤석은 <타짜>를 단 7회차만 찍었다. 캐릭터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분량도 많아 보이는 대표적 예가 <타짜>의 아귀다.
- “아수라 발발타”에서 “이거이 정주영이고 이
'타짜'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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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흥행 감독 최동훈의 역사는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최동훈 감독의 영화적 에너지가 거침없이 폭발한 첫 작품은 <타짜>이지 않을까. 영화를 만드는 게 고된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작품이 <타짜>라는 최동훈 감독은 기분 좋은 추억으로 가득한 과거의 사진첩을 들추듯 두눈을 반짝이며 <타짜>에 관한 기억들을 소환했다. <암살> 이후 4년간 신작 <외계인>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최동훈 감독을 <타짜> 재개봉을 앞두고 만났다.
<타짜>가 15년 만에 재개봉한다. 디지털 리마스터링 작업 외 새로 편집을 하기도 했나.
그렇진 않다. 201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김혜수 배우 특별전을 했을 때 혜수씨랑 가서 영화를 봤는데 필름을 그대로 스캔해서 튼 거라 화질 상태가 좋지 않더라. 이걸 오래 남기려면 빨리 리마스터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더 찍으라면 더 찍을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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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가 15년 만에 재개봉한다. 2006년 추석 시즌에 개봉해 684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은 최동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타짜>가 12월1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다시 극장에 걸린다. <타짜>의 재개봉을 기념해 최동훈 감독과 배우 김혜수, 백윤식, 유해진, 김윤석이 15년 만에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타짜>로 인연을 맺고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을 웃으며 추억했다. 아쉽게도 고니 역의 조승우는 몇 개월간 뮤지컬 <헤드윅>으로 무대에서 온 힘을 쏟아낸 직후라 <씨네21>의 표지 촬영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전화로나마 <타짜>에 대한 시시콜콜한 추억들을 전해주었다. <타짜>의 출연 이후 싸이월드 방문자 수가 폭증했다는 김윤석의 에피소드는 물론 36살의 패기 넘치는 ‘신인감독 최동훈’의 숨은 노력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인터뷰를 실었다. 거기에 감독과 배우들이 직접 꼽은 명장면
전설의 레전드, 다시 만난 타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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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3일, 5·18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사태의 장본인인 전두환씨가 사망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한 인간의 죽음은 비극적인 현대사를 소환시켰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속 응어리를 건드렸다. 오랫동안 상처받은 이들을 위무하고 역사의 아픔을 후대에 전하는 역할을 한 건, 역사책뿐만 아니라 영화와 연극, 문학작품들이었다. 겨울로 향하는 길목, 박래군 4·16재단 상임이사, 박채웅 5·18기념재단 교육문화부 부장, 조정희 제주4·3평화재단 기념사업팀 팀장이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룬 문화 콘텐츠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씨네21>과 4·16재단이 기획한 대담에 참석한 전문가들 역시 정치의 영역 외에도 문화의 역할을 강조했다. 미래의 <택시운전사> <김군>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 <생일>을 기대하며 대담에서 오간 이야기를 정리해 전한다.
사회적 참사나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를 비롯한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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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을 만들 생각을 했나.
여주시가 ‘세종 관광콘텐츠 개발’이란 이름으로 공모사업을 펼쳤다. HJ컬쳐는 PT 등 여러 과정을 거쳐 선발됐고, 여주시로부터 트라이아웃(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작품을 무대에 올려 완성도를 실험하고 다듬는 과정. 작품 개발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편집자) 규모로 예산을 지원받아 작품을 개발했다. 세종대왕의 드라마 자체가 워낙 극적이어서 뮤지컬의 좋은 소재였다. 한글을 창제했고 천재였다는 점뿐 아니라 아버지인 태종으로부터 왕권을 이어받는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뮤지컬 한편에 세종의 일생을 다 녹여내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한 <세종, 1446>을 영국 웨스트엔드 무대에 올렸다.
<세종, 1446>이 해외에서도 통할 작품인지 한번 실험해보고 검증을 받고 싶었다. 영국 워크숍 당시 영국 배우들을 기용하고 영국 연출가들과 협업해서 무대에 올렸는데 현지인들도 흥미로워했다. 유럽인에게 ‘왕을 위한 백성’ 구
한국 콘텐츠의 독창성은 세종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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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세종, 1446>은 어떻게 탄생했고, 여주시는 어떤 역할을 했나.
여주시는 <세종, 1446>이 세종대왕의 일대기를 담은 뮤지컬이니만큼 제작사에서 세종대왕을 충분히 알고, 왕으로서, 인간 이도로서의 삶을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제작에 임하길 원했다. 작품이 나아갈 방향을 기획단계에서부터 함께 협의했고 연기자와 제작진이 세종대왕의 자취를 따라가고 느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작품이 완성된 이후 여주시는 여주 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세종, 1446>을 접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를 펼쳤다.
<세종, 1446>을 본 소감은 어땠나.
<세종, 1446>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들판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꽃들의 이름을 부르고 글자를 만든다.” 세종대왕은 이름 없는 백성 한명, 한명이 소중했고 그들이 적어도 자신의 이름을, 부모의 이름을, 형제의 이름을 쓰고 읽었으면 했다. 세종은 죄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한글은 애민정신의 집약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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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뮤지컬 <세종, 1446>은 2018년 세종 즉위 600주년을 맞아 탄생했다(연출 김은영, 극본 김선미, 작곡 임세영·김은영).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초연된 작품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단계적 일상회복이 이뤄지는 최근 전국을 돌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 10월과 11월 하남과 진주 공연을 전석 매진시킨 <세종, 1446>을 소개하는 리뷰와 함께 작품을 제작한 한승원 HJ컬쳐 대표의 인터뷰를 덧붙인다. 뮤지컬 <세종, 1446>은 민과 관이 협력해 맺어진 결실이다. 세종대왕의 왕릉이 있는 여주시와 여주세종문화재단이 뮤지컬 제작사 HJ컬쳐와 힘을 합쳐,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담긴 작품을 탄생시켰다. 민과 관이 함께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남다른 노하우를 지닌 이항진 여주시장의 인터뷰도 놓치지 말길 바란다. 다음 장부터 백성을 사랑했던 왕, 세종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막이 오르면 조선 궁궐이 눈앞에 펼쳐
백성을 사랑한 왕 세종을 무대에서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