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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이하 <킹메이커>)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으로 한국영화 팬덤의 역사를 새로 쓴 변성현 감독과 조형래 촬영감독, 한아름 미술감독 등 주요 스탭들, 무엇보다 주연배우 설경구가 다시 뭉쳐 만든 작품이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변성현 감독 앞으로도 ‘불한당원’들의 간식차나 커피차가 들어갈 만큼 든든한 응원을 받으며 진행된 작품이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킹메이커>는 <불한당>과 여러 면에서 결을 달리한다. 1960~70년대 한국 정치계를 배경으로 치열한 선거에 뛰어든 이들을 조망한다는 소재도 다르지만,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세련된 클래식’처럼 보이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불한당> 이전부터 <킹메이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자기 전에 팟캐스트 방송을 즐겨 듣는데 엄창록이라는 인물이 ‘선거판의 여우’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이 사람이 정확히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⑧]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변성현 감독 - 실제 인물과 닮지 않은, 하지만 진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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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에는 요란한 사건도 자극적인 상황도 없다. 그저 깊고 아름다운 관계가 있을 뿐이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깊어진다’는 한줄 문구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정약전과 그의 제자 창대의 관계를 그린 속 깊은 드라마다. “솔직히 긴박한 상황과 자극, 스펙터클에 매달리는 최근 상업영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영화인데 비슷한 영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런 호흡의 영화도 한편 있어야 하지 않나.”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가 도달하는 지점은 소중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워진다.
-정약전이 쓴 책 <자산어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조선 후기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정약용에 비해 그의 형인 정약전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약용이 유배생활 중에 수백권의 저서를 남길 동안 정약전은 <송정사의>와 <표해시말>, <자산어보> 딱 세 권의 책밖에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더 많은 책을 쓴 사람이 기록에 더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⑦]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 나이를 초월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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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2016)은 더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좀비물에서 여전히 보여줄게 남아 있다는 걸 증명한 영화다. 연상호 감독의 진가는 이렇게 익숙한 듯 보이는 것에서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그걸 다시 재미있게 풀어낼 줄 아는 태도에 있다.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긴 <염력>(2017) 이후 연상호의 세계는 한층 넓어지고 견고해지는 중이다. 그는 한 가지에 몰두해서 나만의 세계를 쌓아올리는 대신 플랫폼에 맞춰서 다양한 소통 방식을 모색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문을 두드리면서 배우는 중”이라고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은 훨씬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였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연상호는 한층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부산행>에 이은 이야기인 만큼 <반도>에 대한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부산행> 이후 다양한 버전의 시나리오들이 있었다. 프리퀄, 시퀄, 스핀오프 등 다양한 각도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⑥] <반도> 연상호 감독 - 좀비물, 여전히 보여줄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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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 중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15번 언급했다. 쉽게 덧붙인 표현은 아니다. <댄싱퀸>(2012) 때 함께한 정성화가 공연에 초대해 접하게 된 뮤지컬 <영웅>을 다섯번 봤고, 다섯번 모두 눈물을 흘렸다는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관객이 진심을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국제시장>이 아버지의 이야기였다면, <영웅>에는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영웅>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만들고 있다.” 뮤지컬을 처음 봤을 때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이 났지만, 나중에는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나문희)의 절절한 드라마에 눈물이 났다는 그는 “<영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와닿는 지점이 달라질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언가.
=처음엔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⑤] <영웅> 윤제균 감독 - 할리우드 못지않은 라이브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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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찍어도 이상하게 날이 서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로 출강했던 인사이트필름의 신혜연 대표는 당시 학생이었던 정지연 감독의 단편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졸업작품을 위해 썼던 <앵커>의 초안을 읽고 리뷰를 하는 과정에서 신 대표는 상업 장르영화로의 가능성을 봤다. <앵커>는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상영됐던 단편 <봄에 피어나다>(2008)를 연출한 정지연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디벨롭 과정에서 주인공이 앵커라는 설정이 추가된 것은 “뉴스에서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성의 내면에 뭔가 파고들 거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정지연 감독의 발상 때문이다. 사회에서 여자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시선도 영화에 반영돼 있다. “단정하고 지적이고 예쁘고…. 그렇게들 바라보는 여자 앵커의 이면을 다루면 재밌겠더라. 또한 남자들은 기자를 하다 앵커가 되는데 여자들은 아나운서를 하다가 앵커가 되지 않나. 그렇게 여자 기자와 앵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④] <앵커> 정지연 감독 - 여자 기자와 앵커 분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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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킬러’와 ‘추격’을 앞세운 범죄 액션 드라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제)에서 만났다. 데뷔작 <오피스>(2014)에서 직장 생활의 애환을 호러 장르 문법으로 풀어냈던 홍원찬 감독이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연출작으로, 현재 방콕에서 극비리에 촬영 중이다. 사전에 시나리오조차 공개하지 않은 탓에 방콕에 있는 홍원찬 감독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스무고개 놀이하듯 질문을 던졌다. “이야기는 심플하지만 현재로서는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며 곤란해하는 그는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두명의 청부살인업자와 한명의 조력자가 서로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요약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장소는 한국과 방콕이며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또 다른 나라까지 포함해 3개국에서 촬영 중이다. 2019년 9월 23일에 크랭크인해서 한국을 포함한 2개국 촬영을 마치고 타이로 건너가 <씨네21>과 전화 인터뷰를 한 1월 6일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③]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제) 홍원찬 감독 - 밤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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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빗발치는 내전통에서 남과 북이 손을 맞잡은 채 사막을 질주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 그것도 낯선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동고동락한 사연은 마치 소설 속 한 장면 같지만 실화다. 지난 1990년 12월 30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인 모가디슈 시내에서 반군이 쏘아올린 한발의 대포는 소말리아를 순식간에 내전으로 내몰았다.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생지옥에서 강신성 주소말리아 한국 대사와 김용수 주소말리아 북한 대사, 둘을 포함한 남북대사관 직원들은 12일 동안 동거하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류승완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 <모가디슈>는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다룬 실화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류 감독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직접 쓴 계기는 단순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극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빨려들어갔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②]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 촬영을 거듭할수록 진화 중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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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핵이 아니라 불안정한 정치체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패권국가 미국과 신흥강국 중국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한반도는 가장 첨예한 전선이 될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마치 북한 문제 전문가처럼 한반도의 상황을 술술 이야기했다. 양우석 감독이 <변호인>(2013) 이후 만든 <강철비>(2017)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영화적 상상력을 잘 아우른 작품이었고, <강철비>의 속편으로 알려진 <정상회담>(가제)은 <강철비>와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상호보완적 속편”으로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웹툰 <스틸레인> <강철비: 스틸레인2> <정상회담: 스틸레인3>(현재 연재 중)로 이어지는 ‘스틸레인 유니버스’ 속에 존재하는 작품이며, 이번엔 북의 쿠데타로 남북미 정상이 잠수함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정우성이 남한 대통령, 곽도원이 쿠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①] <정상회담>(가제) 양우석 감독 - 남북미 회담, 영화에서라도 실컷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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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이 밝았다. 쥐의 해답게 올해 한국 영화산업은 꼭두 새해부터 부지런히 신작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일단 류승완(<모가디슈>), 윤제균(<영웅>), 이준익(<자산어보>), 연상호(<반도>), 양우석(<정상회담>(가제)) 감독 등 스타 감독들의 복귀가 눈에 띈다. 탈출·실화(<모가디슈>), 뮤지컬(<영웅>), 사극(<자산어보>), 좀비·포스트 아포칼립스(<반도>), 분단물(<정상회담>) 등 장르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데뷔작으로 인정받은 젊은 감독들도 두 번째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오피스>를 연출했던 홍원찬 감독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제)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를 내놓는다. 최근 극장가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 서사 또한 눈에
[스페셜] 2020년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 빅프로젝트9 ①~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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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에 걸친 스카이워커 가문의 대서사시가 막을 내렸다. 조지 루카스 감독이 창조했던 <스타워즈> 시리즈의 9편이자 시퀄 3부작의 마지막인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이하 <스카이워커>)가 2019년 12월 20일 전세계 동시개봉(한국 개봉은 1월 8일) 이후 열흘 만에 7억 6천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이며 흥행 순항 중이다. 20세기 블록버스터영화의 산업 흐름을 바꿔놓고 시각특수효과(VFX)의 비약적 발전을 이뤄냈으며 SF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등 <스타워즈> 시리즈가 전세계 영화 역사에 끼친 영향을 나열하려면 이 지면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21세기 거대한 영화제국을 구축한 디즈니의 지휘 아래 성공적으로 부활한 새 시리즈는 이제 시리즈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엔딩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그 장대한 피날레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번 영화는 앞선 두편의 영화가 속시원히 풀어주지 않은 수많은 수수께끼들
5가지 키워드로 짚어보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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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씨네21> 1237호에 <벌새> 김보라 감독의 해외영화제 탐방기 그 첫 번째 이야기가 실렸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이스탄불국제영화제, 키프로스국제영화제에서 벌어진 일들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홍콩아시안영화제까지, 대륙을 횡단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보라 감독이 <벌새>로 경험한 지난 1년의 시간, 그 마지막 이야기다.
트라이베카영화제
화려한 뉴욕의 영화제 (2019년 4월 22일~5월 6일 체류)
트라이베카영화제는 <벌새>로 다녔던 영화제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제였다. 다른 해외영화제와 달리 경쟁 섹션의 영화뿐 아니라 비경쟁 섹션에 있는 <아폴로> <원 차일드 네이션> <미팅 고르바초프> 같은 대형 다큐멘터리들이 화제작이었다.
파티가 정말 많았다. 이스탄불국제영화제처럼 소규모의 파티가 아니라 엄청난 규모의 익명적 파티였다. 트라이베카영화제에는 나, 조수아 P
영화제 45관왕 <벌새> 김보라 감독의 해외영화제 순방기 연재 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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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한번 바뀐다고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하는 한국 영화산업은 강산이 적어도 세번 이상 바뀐 듯하다. <씨네21>은 지난 10년 동안 충무로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과 변화들을 되돌아보았다.
1. 필름에서 디지털로
2010년이 되기 전에 심상치 않은 변화가 벌어지고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디지털카메라 한대가 <국가대표>(2009) 현장에 처음 투입돼 자신의 이름을 알리더니,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은 필름카메라를 집어삼킬 기세를 보였다.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었다. 피사체를 2K 크기로 화면에 담는 기존의 HD카메라와 달리 이 카메라는 디지털이면서도 필름과 유사한 화질을 구현하는 4K 방식이었다. 작고 날렵한 이것의 정체는 ‘레드원’이다. 이 카메라는 촬영 현장에 기동성을 더했고, 비용을 대폭 절감하며 짧은 시간 안에 현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다. 레드원의 등장은 필름의 퇴장을 더욱 앞당겼다. 2012년 이스트만코닥은 파산보호
[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들⑤] 10개의 키워드로 되돌아본 2010년대 한국 영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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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론가 뱅상 말로사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작은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2010년 이후 데뷔한 한국 영화감독 중 자신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부터 화산이 분출하듯이 한국에서 새로운 작가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2007년 이후 갑자기 활동을 정지했다”고 평했다. 물론 이건 해외 한 평론가의 견해일 뿐 진실은 아니다. 우리는 2010년 이후에도 왕성히 활동한 감독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동시에 해외에 널리 알려질 만큼 도드라진 영화를 만든 데뷔감독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아니 어쩌면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의 한 자락을 외부에서 두드려 깨워주었을 때 새삼 2010년대 한국영화의 어떤 흐름을 자각한다.
<씨네21> 1237호 기획 기사 ‘2019년 한국 상업영화가 놓치고 지나간 것들’ 에서 한국영화의 경향을 진단하며 감독의 영역이 점차 소멸해
[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들④] 감독으로 읽는 2010년대 한국영화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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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영화들을 되짚어보는 건 <씨네21> 기자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동시에 이중 10편을 골라야 한다는 것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린 시간이기도 했다. 10편의 영화는 시대를 읽은 지표와 작품성을 고루 반영한 결과지만 그 어떤 잣대를 들이밀어도 주류가 되기 힘든, 사각지대의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주목받기 힘든 영화들이야말로 영화의 다양성을 풍성하게 해줄, 미학적 가능성을 품은 도전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애초에 이 리스트를 마련한 취지는 순위 선정이 아니라 점검과 재탐색 그리고 발굴에 있다. 이에 리스트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고자 <씨네21> 기자들이 각자 ‘제 맘대로’ 선정한 기억해야 할 영화 리스트를 전한다. 부디 이 사사로운 목록에서 당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길 고대한다.
[2010년대 최고의 한국영화들③] 기자들이 놓치기 싫었던 영화 5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