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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조너선 라슨이 그토록 선망했던 뮤지컬계의 살아 있는 전설,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사 데뷔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또 한명의 거장에게 처음이 되었다. 그 주인공은 이 작품의 감독이 되기까지 단 한편의 뮤지컬영화도 연출하지 않은 스티븐 스필버그. 현세에 발맞추는 원로의 시네마틱한 응답처럼 다가온 <더 포스트> <레디 플레이어 원> 이후, 관객으로서 스필버그에게 바라는 것은 충실한 각색 이상의 동시대적 전언이다. 이민자 커뮤니티간의 반목과 연결을 다루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1961년 한 차례 영화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스필버그의 ‘다시 찍기’ 욕망을 자극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기보다 반가운 이유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가장 좋아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자, 가장 위대한 뮤지컬 작품 중 하나”로 꼽은 스필버그의 첫 도전은 오는 12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시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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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커밍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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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반 핸슨>의 <Requiem>
자살 유가족들의 엇갈리는 속내를 들려주는 <디어 에반 핸슨>에서 가장 진지하고도 애끓는 넘버. 영화는 스스로 세상을 등진 코너를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가족들을 한명씩 비춘다. 엄마 신시아는 아이가 준 기쁨만을 간직하려 하지만 동생 조이는 오빠의 폭력성에 불안했던 나날을 잊을 수 없다. 아빠 래리는 아들을 잃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회피하고 싶을 뿐이다. 자살 유가족의 죄책감, 분노, 의문, 애도 그리고 사랑을 담은 노래 <Requiem>은 영화 초반 세 사람이 에반과의 연결에 절실해지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완성되었다.
<틱, 틱... 붐!>의 <Sunday>
영화 <틱, 틱... 붐!>에 조너선의 집만큼 자주 나오는 세트는 아마도 그가 실제로 10년 동안 일한 맨해튼의 비스트로 문댄스일 것이다. 문댄스는 <30/90>부터 조너선의 생일
이 장면, 이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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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 틱... 붐!>으로 린마누엘 미란다의 성공적인 할리우드 데뷔를 확인한 다음날은 공교롭게도 디즈니+의 한국 서비스 론칭일이었다. 그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토니상, 그래미상, 퓰리처상, 맥아더 펠로십까지 안기며 브로드웨이의 역사를 쓴 <해밀턴>의 공연 실황을 정식으로 볼 수 있는 날이었다는 뜻이다. <해밀턴>을 떠올릴 때면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허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은 <인 더 하이츠>를 마친 린마누엘 미란다가 공항에 앉아 알렉산더 해밀턴의 전기를 읽으면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10달러 지폐에 초상을 새긴, 고아이자 이민자 출신 초대 재무부 장관의 파란만장한 삶에 매료된 미란다는 그의 삶을 무대로 옮겨 정부의 알렉산더 해밀턴 10달러 퇴출 논의도 백지화시키는 뮤지컬 효과를 일으킨다.
그러니 디즈니+에 가입하자마자 <해밀턴>을 검색할 수밖에. 하지만 기대는 금세 당혹감으로 덮였는데, 한글자막이
'해밀턴' 한글자막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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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 뮤지컬의 호소력을 풍부히 견인하니 넷플릭스의 선택지도 늘었다. 넷플릭스 뮤지컬영화 <틱, 틱... 붐!>은 11월19일 스트리밍 서비스 실시를 일주일 앞둔 12일에 극장 상영을 시작했다. 양쪽의 경험을 모두 하고 싶어 온라인 시사 참석 후 집 앞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봤다. 연달아 두번 보고 싶었을 만큼 영화가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틱, 틱... 붐!>은 뮤지컬 <렌트>를 유작으로 남긴 조너선 라슨이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동명의 공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 안에는 35살에 죽음을 맞기 전 라슨이 뮤지컬을 꿈꾸며 살아온 세월이 서른살 생일을 앞둔 1990년 초입의 며칠로 압축돼 있다. 록 모놀로그로 기획된 최초의 <틱, 틱... 붐!>과 라슨 사후 3인극으로 재편된 <틱, 틱... 붐!>, 영화로 구현할 수 있는 회상과 환상 장면들이 멋들어지게 섞여 있다. 앞서 소개한 <디어 에반 핸슨>의 원안 작
'틱, 틱... 붐!'이 품은 여명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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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마지막 토요일, 달뜬 마음으로 귀가 후 한숨도 못 잤다. 7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프로덕션의 서울 공연을 만끽한 밤이었다. 두달 전 앙상블 배우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잠시 중단했다 재개한, 입장 전 서너 차례의 체온 검사와 문진표 작성 후 관람한 공연은 걱정을 잊게 할 정도로 황홀했다. 여운을 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TV를 틀었다. 유튜브를 연결해 본 클립은 조엘 슈마허의 영화 <오페라의 유령> 속 지하 호수 신. 무대에 오를 순 없었던 촛대 행렬과 깊은 물길을 보며, 영화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한 동시에 노래로 모든 걸 이해시킨 뮤지컬의 설득력을 되새겼다. 이어서 각국의 크리스틴과 팬텀을 차례로 소환해준 알고리즘은 슬슬 다른 작품들로 엄지를 잡아끌었다. 일레인 페이지가 부른 <Memory>(<캣츠>)를 듣고, <Defying Gravity>(<위키드>)를 옥주현과
'디어 에반 핸슨'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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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실린 <씨네21> 1332호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린마누엘 미란다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음악을, <틱, 틱... 붐!> 연출을, 공연 실황 <해밀턴>의 주연과 작사·작곡을 도맡은 이로, 현재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모두에서 뮤지컬 1인자의 위용을 떨치는 중이다. 기세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워진 코로나19 이후 더 커지는 중이다. 그가 원작자인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영화화 버전, 그의 영화 연출 데뷔작인 <틱, 틱... 붐!>, 그를 스타로 만든 뮤지컬 <해밀턴>의 공연 실황 모두 팬데믹 시기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스레 “뮤지컬영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거라 보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디즈니+ 가입자 수를 훌쩍 끌어올린 <해밀턴>의 사례로 “공연을 영화로 보여주는 게 관객을 빼앗기는 게 아
니라 오히려 팬층을 늘린다”는
뮤지컬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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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4부부터는 완전히 달라진 세계가 펼쳐진다. 정진수 의장(유아인)이 사라지고 난 뒤 새진리회를 믿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사람들은 지옥의 고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여기 공포에 의해 억압되는 세상에 던져진 한 부부가 있다. 방송국 PD인 배영재(박정민)는 새진리회가 탐탁지 않다. 바쁜 업무 탓에 이제 막 출산한 아내 송소현(원진아)의 곁을 지켜주지 못할 때 죄 없는 아기에게 지옥의 고지가 내려진다. 절망에 좌절할 틈도 없이, 이들 부부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새진리회의 손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미쳐버린 세상 속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박정민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 때 3화까지만 공개됐는데 역할을 상세하게 소개해드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부산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내가 나오는 4화 이후로도 괜찮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송소현 역의 원진아 배우는 “<지옥>은 볼거리고 많고 무서우면서도
비틀린 신념 속 선택의 문제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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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신으로부터 죽음을 고지받고 목숨을 빼앗기는 시연을 겪어야 하는 <지옥>의 세계는 끔찍하고 미스터리하다. 최근 출연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대사를 소화한 배우 유아인이 대중을 압도하는 비뚤어진 카리스마를 내뿜는 고독한 인물 정진수를 연기한다. 그에 맞서 정의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처 많은 형사 진경훈 역의 배우 양익준은 부성애 넘치는 아빠의 면모를 드러낸다. 시리즈의 절반에 해당하는 3화까지의 이야기가 정진수와 진경훈의 대립이라면 4화에서 6화에 이르는 극의 후반부에서는 극 전체를 아우르는 민혜진 변호사를 연기하는 배우 김현주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세 배우는 작품의 어두운 세계관과 달리 즐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연상호 유니버스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정진수 의장, 민혜진 변호사, 진경훈 형사는 모두 <지옥>의 포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캐릭터의 어떤 점에 끌려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시리즈를 관람한
"믿음과 두려움은 함께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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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
연상호 감독은 <염력>에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세상과 맞설 때 필요한 동력과 효과에 대해 다룬 적 있다. <지옥>의 많은 인물들도 이런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는데 <지옥>의 엔딩은 묘하게 곤 사토시 감독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엔딩과 닮아 있다. 꿈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꿈’, ‘망상’과 같은 주제를 다루던 곤 사토시 감독이 세 번째 장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는 난데없이 도시 빈민층의 삶을 사실적인 터치로 그려낸다. 거친 알코올중독자와 소녀 같은 마음씨를 지닌 게이, 가출 소녀가 모여 도쿄 뒷골목에서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구원’의 의미가 <지옥>의 메시지와 닮아 있다. 두 작품의 특정한 설정이 일치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이비&
의심하고 질문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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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시리즈 <지옥>은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과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신과 지옥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충격적인 설정과 사건을 통해 개인과 사회, 집단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재난 상황에서 이 사회는 어떤 대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마치 테스트라도 하듯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지옥>이 제시하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연상호 감독이 창조한 지옥도 속으로 들어가보자.
천사의 고지, 그리고 사자의 시연에 의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만다. <지옥>의 기본적인 설정은 신이라고 하는,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영역의 어떤 힘이 물리적으로 발현되어 목숨을 거둬갈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선택에 의해 누군가는 천사로부터 자신의 사망 일
연상호 감독의 '지옥' 김현수 기자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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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웹툰 <지옥>이 6부작 넷플릭스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지옥>은 웹툰이 완결되기도 전에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화제를 모았고 영국, 일본, 대만, 프랑스 등에서도 단행본이 출간됐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지옥’이라는 단행본 <지옥>의 소개 카피처럼 연상호 감독의 시리즈 <지옥>이 제시하는 세계의 풍경이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신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해치기 시작할 때 그것 역시 또 다른 ‘지옥’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상상 속 풍경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벌어질 수 있는 실재하는 지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호에서는 11월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6부작 <지옥>이 지닌 이야기의 매력에 관해서 짚어보며 원작과의 닮은 점, 함께 보면 좋을 추천작을 소개한다. 시리즈의 주역인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배우를 만나 연상호 감
지옥의 문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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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김아현 / 한국 / 80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하정과 아현이 가수 이승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그가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출전해 유명해지기 전인 2018년 말이다. 하정과 아현은 그들이 만든 단편영화 상영을 계기로 참여한 음악회에서 처음 이승윤과 만난다. 하정은 이승윤의 노래에 매료돼 그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노래 <무명성 지구인> 뮤직비디오 촬영본을 첨부해 그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낸다. 우려와 달리 흔쾌히 협업에 동의하는 답장을 받고 하정과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소품, 의상, 콘티,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스스로 돌파해야 하는 그들에게 뮤직비디오 제작은 난관의 연속이다. 영화는 모든 창작 활동의 고충을 축약한 작은 소품 같다. 무엇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아야 할 장면을 선택해 제시하는 전략이 영리하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포옹>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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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영화감독들 사이에는 서로의 작품을 통해 배우고 교류하며, 그것을 자신의 연출 세계에 새롭게 적용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올해 서독제 해외초청 기획전은 ‘동시대 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이름들’이란 제목 아래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감독들의 작품 6편을 소개한다. 먼저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해피 아워>를 만날 수 있다. 이 세편의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배우, 연기, 대화’의 3요소가 집약된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의 초기 흑백영화 <플레이백>, 마리코 데쓰야 감독의 <미야모토>가 국내 최초로 상영된다.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이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연출한 <연인처럼 숨을 멈춰>도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기획
해외초청: 동시대 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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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독립영화를 아우르고 재조명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1월25일부터 12월3일까지 9일간 CGV아트하우스 압구정과 CGV압구정에서 열린다. 올해 서독제는 연이어 등을 맞대고 나아간다는 의미로 ‘백투백’(Back to Back)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며, 극장과 영화가 단절된 과거가 되는 대신 서로 연대하기를 소망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독립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이자 소통의 공간인 서독제는 올해 개막작 <스프린터>를 포함해 총 120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올해 주목받은 화제의 독립영화와 함께 신인, 기성 감독들의 빛나는 연출작이 결집되어 있다.
개막을 앞두고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관객을 위해 <씨네21>이 엄선한 11편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더불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는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아웃사이더들, 변방에서 중심으로’와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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