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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올해의 캐릭터.”(듀나) 도처의 균열과 상실에 온 세포가 반응하는 나이, 1994년의 중학생 2학년 은희는 2019년을 찾아와 모두의 그때 그 시절이 되어주었다. 한편의 영화를 이끄는 영웅이자 당당히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은희는 매 순간과 전투하고 거대한 세계를 감각하며 좀처럼 쉬는 법을 모른다. 이 캐릭터 하나만으로 올해 가장 궁금하고 기대되는 배우가 된 박지후는 그 출현 자체가 곧 “새로운 세대, 여성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장영엽)을 예고한다. “문제아도 아니고 우등생도 아니며, 부모와 교사의 관심에서 적당히 벗어난 은희의 인간관계와 내면의 물결을 섬세하고 담담한 연기로 풀어낸”(황진미)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로 선정된 소식을 전하자 “책임감이 더 무거워진 것 같다. 지금의 의미를 잃지 않고 계속 전진하겠다”고 단정하고 기운찬 대답이 돌아왔다.
[2019년 총결산⑧] 올해의 신인 여자배우 - <벌새> 박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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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뛰는 남자. 돌진하고 부딪쳐도 상대가 다치지 않는다.”(김현수)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로 호명된 정해인은 대체로 거친 남자들이 많던 충무로에 귀한 얼굴이다. <유열의 음악앨범>의 현우나 <시동>의 상필이나 어두운 심연을 품고 있지만, 그들은 폭력성을 과시하기보다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지 않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솔직한 소년들이다. “로맨스에 특화된 반짝스타라 생각하기 쉽지만 생각보다 다채로운 이미지와 안정적인 연기력을 갖고 있다”(이주현)며 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는 평가도 있었다. 지난 12월 13일부터 드라마 <반의 반> 촬영에 들어간 정해인은 소감을 묻는 짧은 전화 통화 내내 “기분이 좋다”와 “너무 긴장된다”는 말을 반복하며 심경을 전했다. 그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영화배우로서 보여줄 행보를 약속했다.
[2019년 총결산⑦] 올해의 신인 남자배우 - <유열의 음악앨범> <시동>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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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부터 거장의 경지를 보여준다.”(허남웅) “김보라 감독이 일으킨 바이럴과 신드롬은 동세대 그리고 후배 여성감독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것임이 확실하다.”(김소미) 그 어느 때보다 다수의 재능 있는 신인감독이 등장한 해였다. 하지만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절대적 지지와 찬사를 받으며 <씨네21> 올해의 신인감독으로 선정됐다. 김보라 감독은 “<벌새> 개봉 때도 <씨네21>의 별점이 좋아 감동했는데, 이런 상까지 주셔서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더불어 <벌새>는 <기생충>과 ‘올해의 영화’ 1, 2위를 다투기도 했다. “<벌새>를 두고 독립영화계의 <기생충>이라 말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함께 회자되어 기분이 좋다.” <벌새> 이후의 행보에 대해선 고마운 다짐을 들려주었다. “<벌새> 개봉 전엔 학교로 돌아가 강의를 하려
[2019년 총결산⑥] 올해의 신인감독 - <벌새>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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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배우 이정은의 해였다. 관객을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는 인물이었던 <기생충>의 문광은 ‘배우의 재발견’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을 뛰어넘는 아우라를 쏟아냈다. <기생충> 개봉 직후 <씨네21> 1211호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던 그녀의 활약은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연초에 출연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혜자 엄마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조연상을 수상하더니,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의 무시무시한 고시원 주인 복순과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 엄마 정숙 역으로 시청자를 휘어잡았다. 물론, 딱 한 장면으로 독특한 존재감을 보여준 영화 <미성년>의 방파제 아줌마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뚫어버린 주조연의 경계”(김소희)라는 평이 딱 어울린다. 올해의 여자배우 선정 소식을 해외에서 전해 들은 그녀는 “올해 큰 포문을 열어준 <눈이 부시게>와 <기생충
[2019년 총결산⑤] 올해의 여자배우 - <기생충> <미성년>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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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와 봉준호는 어느덧 실패를 모르는 복식조가 되었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처럼 <기생충>에서도 송강호는 독보적 리듬감으로 영화의 여러 장면을 조율하는데, <기생충>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송강호가 보여주는 앙상블이다. 듀나 평론가 역시 전반적 경향을 언급하며 “올해는 배우 개인보다 앙상블 연기가 빛을 발한 해이며, <기생충>에서 송강호의 연기가 경력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앙상블 전체를 놓고 보면 또 달랐다”고 언급했다. “봉준호라는 뛰어난 감독이자 예술가가 한국영화 100년사에 남긴 뚜렷한 족적과 성취. 그런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훌륭한 작품에 작은 디딤돌이 된 것만으로도 영광스럽다.” 해외에서 귀국하자마자 전화로 수상소감을 전한 송강호는 자신을 향한 관심보다 작품에 쏟아지는 찬사를 더 뿌듯해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는 “한평생 배우
[2019년 총결산④] 올해의 남자배우 - <기생충>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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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기쁘고 영광스럽다.” 봉준호 감독은 런던에서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귀국하는 과정에서 음성메시지를 통해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 소감을 전해왔다.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철학적 그리고 국제적이란 수식어까지 동반해야 하는 아이콘”(이용철)으로서, “여러 장르를 하나로 조립하여 장르 규칙을 새롭게 정의하고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연출력의 정점”(허남웅)으로서,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주년에 찾아온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천만 관객 돌파, 북미영화계의 열광적인 반응은 “거칠게 압축하자면 하나의 소동, 즐거운 해프닝”으로 볼 수 있겠다며 말을 아꼈다. “지난 20년간 영화를 만들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나와 이야기가, 또는 나와 매 장면들이 투명하게 일대일로 마주하는 상태가 되려고 노력해왔다. 나를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해준 <씨네21>의 평자 여러분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2019년 총결산③] 올해의 감독 - <기생충>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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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영화는 양적, 질적으로 모두 풍성한 한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업영화의 획일화와 하향평준화 등 규모가 큰 기획영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하지만 가능성의 씨앗을 틔운 한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감독의 영화, 작가의 영화가 보이지 않는다는 그동안의 지적에 응답이라도 하듯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결과물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올해 모두의 시선을 앗아간 영화는 누가 뭐라 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김보라 감독의 <벌새>였다. 각각 상업•독립영화 진영에서 빼어난 성취를 선보인 만큼 이에 대한 필자들의 지지 역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두 영화 모두 비단 국내외 각종 영화제에서의 수상이나 평단의 반응뿐 아니라 대중적인 관심을 모아 흥행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2019년 한국영화의 상징으로 기억될 만하다. 3위를 차지한 <강변호텔>의 홍상수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지만 아무래도 시대성을 적극 반영하고 올해의 지표가
[2019년 총결산②] 올해의 한국영화 총평, 6위부터 10위까지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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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한국영화 1위 <기생충>
예상된 결과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지지는 처음이다. 설문 답변을 보내온 25명의 기자, 평론가 중 5명을 제외한 모든 필자가 <기생충>을 1위로 뽑았다(무순 제외). <씨네21> 연말 베스트 역대 가장 높은 점수로 올해의 영화에 선정된 <기생충>은 “한국영화 100주년에 당도한 무시무시한 수작”(장영엽)이다. <기생충>을 수식할 말은 차고 넘친다. 우선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생충>은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만하다. 게다가 천만 관객의 선택을 받아 평단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의 효용적 가치와 더불어 시네마가 지닌 성찰성을 매우 고상하고 면밀하게 담았다”(이지현).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통찰한 뒤 자신만의 언어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그의 작가성을 새삼 증명했다. “계급투쟁이 사라진 시대에 계급의식/감정
[2019년 총결산①] 2019 한국영화 베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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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첫째, 영화를 많이 보고 둘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셋째, 직접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고 싶어진다. 한해 동안 본 영화들을 되돌아보고 정리한 후 나름의 지도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간 것들을 되새기는 건 단지 과거를 추억하기 위함이 아니다. 차라리 오늘 서 있는 자리를 제대로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가깝다. 한해 동안에도 수백편씩 쏟아져나오는 영화의 홍수 속에서 각자 영화와 보냈던 시간들을 발견하고 다시 마주하는 만큼 영화에 대한 애정도 깊어진다. <씨네21>이 해마다 진행하는 올해의 영화, 올해의 영화인 선정은 영화를 향한 우리의 러브레터다. 동시에 2020년, 앞으로 <씨네21>이 나아갈 방향과 갖춰야 할 태도를 지난 영화들을 통해 발견한다.
2019년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는 26명의 평론가와 기자들(정성일 평론가는 외국영화 베스
<씨네21> 기자와 평론가들이 선정한 2019년 최고의 영화•영화인 ①~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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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로 칸국제영화제에서 두번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은퇴를 고민하다 <미안해요, 리키>를 만들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최초 공개된 <미안해요, 리키>는 켄 로치가 왜 노동자들의 감독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으로, 긱이코노미(산업현장에서 계약직•임시직 등을 필요에 따라 고용하는 경제 형태)가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진실의 문>(2004), <이중섭의 눈>(2017) 등을 연출한 김희철 감독은 택배 배달업을 하는 리키에게서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프리랜서 노동자들을 보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운전 노동 프리랜서이자,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 <잠깐 운전하고 오겠습니다>를 쓴 김희철 감독이 <미안해요,
다큐멘터리 감독 김희철, <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프리랜서의 애환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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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젊은 영화감독들은, 나아가 젊은 세대들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며 살고 있을까. 올해 서독제에 특별초청되어 관객과 만난 노리스 웡 이람 감독의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서: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는 현재 홍콩 젊은이들이 직면한 여러 사회 이슈 가운데 결혼과 내 집 마련 문제 등을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한국의 젊은 세대도 똑같이 고민하는 이 문제는 결국 그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서: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는 홍콩의 현재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영화다. “주인공 퐁이 겪는 결혼 문제는 내 주변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다.” 방송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던 감독은 “지인들이 결혼을 고민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결혼에 대해 막연한 판타지를 갖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고, 그 고민은 첫 장편 시나리오로 이어졌다. 그런데 퐁이 결혼을 결심한 남자 ‘에드워드’와 극중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웨딩몰 ‘
<프린스 에드워드역에서: 내 오랜 남자친구에게> 노리스 웡 이람 감독 - 홍콩 청년들은 왜 가짜 결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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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 창 취이샨 감독은 홍콩의 농촌을 배경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회한의 정서를 접목해 공간과 사람에 관한 영화를 일관되게 만들어왔다. 여성감독으로서 그녀가 내놓은 작품들은 여성의 성장과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의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해낸다. <대람호>(2011)는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작품. 올해 서독제에 초청되어 한국을 찾은 그는 신작 영화가 소개된 책자를 조심스레 내밀며 “여성을 주제로 한, 내가 만든 첫 번째 상업영화”라고 소개했다. <대람호>를 다시 본다는 것은 급변하는 홍콩 사회를 통해 한 여성의 고뇌와 삶에 주목한다는 것일 테다.
-<대람호>는 당시에 홍콩의 자연과 전통문화에 대한 헌사라고 칭찬받았다. 어떻게 기획하게 된 영화인가.
=독립 단편영화를 만들던 시절부터 중국이나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종종 만들었다. <대람호>는 나의 고향과 실제 경험을 토대로 홍콩에 관한
<대람호> 제시 창 취이샨 감독 - 다큐멘터리의 현실과 극영화는 한끗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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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2015)은 미래를 일찌감치 예견한 옴니버스영화다.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2014년 우산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기획됐다. 앤드루 초이 프로듀서는 궉준, 웡 페이팡, 구문걸, 주관위, 우카릉 등 5명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10년 뒤 홍콩을 상상해 스크린에 담기로 했다. “왜 10년 뒤로 설정했냐고?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미래라 누구나 상상할 수 있으니까. 우산혁명이 시작되기 전 홍콩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앞으로 홍콩이 중국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 떠올리다가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앤드루 초이 프로듀서가 주제를 따로 정해주지 않았는데도 다섯 감독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당시 홍콩의 정치적 문제를 이야기의 소재로 선택했다. 국가보안법(<엑스트라>(감독 궉준)), 도심 재건축(<겨울매미>(감독 웡페이팡)), 중국어 표준어 교육(<방언>(감독 구문걸))
<10년> 앤드루 초이 프로듀서 –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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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트 챈 감독은 서독제 기간 내내 홍콩 시위를 보기 위해 자신의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 11월 24일 홍콩 지방선거에서 민주파가 압승한 뒤 열리는 첫 시위였던 까닭에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22여년 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직전 그는 <메이드 인 홍콩>(1997)을 시작으로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1998), <리틀 청>(1999) 등 반환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다. 서독제에서 상영된 <메이드 인 홍콩>은 그의 반환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차우(이찬삼)와 그의 친구들의 방황과 아픔 그리고 상처를 통해 반환 직전의 홍콩의 불안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야기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날 무엇을 했나.
=불꽃놀이(반환 기념 축제)를 찍었다. 인민해방군이 홍콩 국경을 넘어오는 풍경을 찍었다. 그때 찍은 장면들이 이 영화에 삽입됐다.
-인민 해방군이 홍콩에 들어오는 광경을 보았을
<메이드 인 홍콩> 프루트 챈 감독, “홍콩영화계는 겨울잠을 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