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영화는 언제나 수작이 넘쳐나서 고르기가 어렵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러나 올해는 달라진 흐름을 감지한다. 평자들의 리스트에는 공통적으로 영화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물리적으로 평년에 비해 개봉영화 자체가 적은 탓도 있지만 영화의 폭과 층위, 다른 말로 영화의 영토가 점점 좁아져가는 걸 실감한다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씨네21>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극장에서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영화가 점차 줄어드는 지금, 전통적인 영화 관람 방식을 고수하고 따를 것인가. 아니면 영화의 가능성을 넓혀 새로운 형태도 받아들일 것인가.
올해 <씨네21>은 후자를 따르기로 했다. 해당 연도의 극장 개봉작을 대상으로 했던 종전의 기준을 완화하여 최초 개봉작이라면 예전 영화도 포함시켰고, OTT로만 공개된 영화까지도 선정을 받기로 했다. 이에 대한 평자들의 반응도 둘로 나뉘었다. OTT 영화를 순위에 적극 반영하거나 아예 순위에 올리지 않거나. 따라서 올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외국영화 총평, 6~10위의 영화들
-
올해의 외국영화 1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자체가 올해 하나의 현상”(송효정)이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한편의 영화 이상의 흔적을 아로새겼다. 올해의 외국영화 1위로 꼽은 평자들은 하나같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아니 셀린 시아마로 대표되는 하나의 파도에 주목했다. 여성의 이야기를 온전히 여성의 시선으로 포착한 여성의 영화. “<톰보이> <워터 릴리스> <걸후드>까지 올해 한국에서 개봉한 셀린 시아마의 전작을 모두 아우르는 의미”(김소미)에서 이 영화를 첫손에 꼽은 이가 적지 않았던 이유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셀린 시아마의 전작이 있었기에 도달한 성취이지만 “반대로 국내에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있었기에 <톰보이> <워터 릴리스> <걸후드>를 만날 수 있었다”(이주현). 물론 영화 자체의 타오르는 불꽃과 정념도 우리를 매료시켰다.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외국영화 베스트 5
-
올해의 신인감독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거장들의 영화를 영민하게 습득하고 자기 세계의 출발을 장대하게 알린 <남매의 여름밤>은 분명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데뷔작이다.”(홍은미) 옥주 가족의 여름을 섬세하게 조명한 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씨네21> ‘올해의 영화’ 2위에, 윤단비 감독은 ‘올해의 신인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윤단비 감독은 “순위를 떠나 <남매의 여름밤>이 거론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많은 분들이 <남매의 여름밤>을 알아봐주시고 많은 지지를 보내주셨다. <남매의 여름밤> 제작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를 쏟아붓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운도 따랐다. 신인감독상을 받은 것도 현재 나의 역량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다음으로 잘 나아가라는 응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윤단비 감독의 당찬 포부가 그의 차기작에서 다시 한번 빛을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인②
-
올해의 감독
<사라진 시간> 정진영
올해의 한국영화 4위에 안착한 <사라진 시간>은 올해의 영화인 설문에서도 감독, 신인감독, 시나리오 등 여러 부문에 호명되며 고른 지지를 얻었다. 정진영 감독에겐 그 세 이름 모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는 이 작품으로 “기성감독들 사이에서 가장 신선한 결과물을 낸 신인감독”(김철홍)으로 각인된 동시에 “자신의 영감과 직관을 자유롭게 표출해 파편화된 기호들을 만든 후, 결코 공허하지 않은 방식으로 흥미로운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김소미) 각본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데뷔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 숏이 유려하고 매혹적”(홍은미)인 한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그런 그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된 배경에는 오랜 시간 연기자로 활약해오다 연출자로 첫발을 뗀 그의 행보에 대한 평자들의 감탄과 기대가 자리할테다.
“전혀 생각지 못한 거창한 타이틀에 어리둥절하고 고맙다”며 인사를 건넨 정진영 감독은 “개봉 당시 내가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인①
-
-
2020년 한국영화는 전례 없는 위기의 한복판에 놓였다. 극장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지고 영화가 관객과 만날 창구를 잃어갔다. 하지만 본질은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법, 올해 한국영화가 내놓은 답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을 만하다. 2020년 올해의 영화로 꼽힌 작품들의 특징은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1위에서 5위까지 5편의 영화 중 1위 <도망친 여자>를 제외하곤 모두 데뷔작이라는 건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 10위까지 범위를 늘려도 신인감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8위 <남산의 부장들>과 9위 <반도> 외에 7편의 영화가 전부 개성 넘치고 야심만만한 데뷔작으로 채워졌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상영 환경의 변화다. 극장의 위기 상황에서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인감독의 데뷔작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수월한 측면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상업영화, 대작영화가 개봉을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한국영화 총평, 6위~10위 영화
-
올해의 한국영화 1
도망친 여자
올해도 홍상수냐고, 다른 영화는 그렇게 꼽을 게 없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둘 다 긍정한다.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시네마’들의 흔적조차 점차 희미해져가는 자리에서 홍상수는 시간의 풍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시금석처럼 여전히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다. 그뿐이다. 그뿐이지만, 아니 그뿐이기에 홍상수의 영화는 시간을 비껴나 언제나 신비로운 순간들을 자아낸다. <도망친 여자>를 올해의 한국영화 1위로 꼽은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올해의 홍상수 영화”(듀나)다. 그저 관성으로 믿고 보는 작가의 신작의 신작을 뽑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백은 커지고 반복은 간결해지는데도 여전히 짙은 감정을 불러내는 홍상수 영화의 신비에 또다시 항복했다”(김소미)는 말이다. 둘째, 홍상수의 작업은 사방이 폐허가 되어가는 지금이라서 더 유효하다. “영화로부터 도망치는 것인지 영화로 도망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도망침이 2020년 가장 큰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5
-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가 멈췄고 영화 역시 함께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연말은 찾아오고 2020년의 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도 <씨네21>에서는 한해의 흔적을 뒤돌아보는 연말 설문을 준비했다. 매년 그러했듯 지난 영화들을 정리하는 건 그저 순위를 정하는 줄세우기가 아니다. 혹여 놓치고 지나간 영화는 없는지, 영화 저널로서 더 찾아보고 언급해야 할 지점은 없었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이다. 각각의 영화와 보냈던 기억들을 써내려가는, 영화를 향한 우리의 반성문이자 러브레터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연말 베스트는 여러모로 각별하다. 본래 어려울 때 진심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힘들 때 곁에서 함께하는 친구가 진정 소중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올해 연말 베스트 설문은 지난 시간에 대한 점검인 동시에 2021년의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2020년 <씨네21>이 선정한 올해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영화인
-
안시환 평론가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이상한 논리의 시대다. 그게 참 이상해서 썼다.
2020년 한국영화의 키워드를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생존 투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죽자고 도망치는 인물들의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시작으로 <사냥의 시간>과 <#살아있다>를 거쳐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콜>에 이르기까지 지겹도록 들려오던 날카로운 비명이 잔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 영화 대부분은 어딘가로의 도주를 꿈꾸고 있었다. 때로는 일본으로(<지푸라기라도…>), 대만으로(<사냥의 시간>), 파나마로(<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아니면 익명의 또 다른 장소(<반도> <#살아있다>)로 말이다. 각자도생하며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세계는 곧잘 폐허의 이미지로 등
[스페셜④] 2020년 한국영화는 '생존 투쟁' 이다
-
김병규 평론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거꾸로 눈에 보이지 않았던 다른 것들이 틈입해 들어온다고 믿는다.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극장에 영화가 없다면 그런 버려진 조건들 속에서 영화의 자리를 재조정하는 시도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것들을 우리는 영화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 고민을 안고 굿바이 2020!
2010년대 한국 영화산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한 장면을 고르라면 <변호인>의 마지막 숏을 말해야 할 테다. 주인공 송우석(송강호)은 시위를 이끌다 구속되어 피고 신분으로 법정에 참석한다. 수의를 입은 송우석의 뒤로 그를 변호하기 위해 나선 변호인단이 차례로 일어선다. 송우석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장면이 바뀌면 ‘부산 지역 142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출석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결말은 군사정권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지키려는 정의는 훼손되지 않으며, 그의 믿음이 대다수 군중에 전파되고 있다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찬미한다. 법정은 그러한 최소한의
[스페셜③] 2020년 한국영화는 '쓰레기장' 이다
-
김소희 평론가 올해 한국영화를 생각할 때 특징적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작동시키는 동작이 될 수 있을지 몇편의 영화를 타고 넘어보았다.
어쩌면 올해 개봉한 다종다양한 영화를 묶어낼 하나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나, 나는 올해의 영화들에서 발견한 어떤 행위를 물고 늘어져볼 생각이다. 내게 올해의 한국영화는 되감는 행위로 요약된다. 단순히 한국영화가 향수의 대상으로서 과거를 반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되감는 행위는 명확한 시대적 좌표 속에 놓여 있지 않다. 거기에는 궁극적인 이유도,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나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되감는 행위 그 자체만이 뚜렷할 뿐이다. 그들은 뒤로 간다. <반도>에서 운전석에 앉은 상태로 난자당한 서 대위(구교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기어를 돌려 후진을 시도한다. 후진은 이를테면 호락호락하게 죽지 않겠다는 마지막 발악이다. 때마침 그를 축복하듯 좀비 떼들이 선박으로 침투한다.
캐릭터
[스페셜②] 2020년 한국영화는 '되감기'이다
-
송경원 기자 이건 분석이나 평가라기보다는 반성문에 가깝다. 아님 기어코 희망의 자리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이거나. 프런트라인 순서상 피치 못하게 앞자리에 놓인 글이지만 가능하면 제일 마지막에 읽어주시길 희망한다.
올해는 ‘소리도 없이’ 한국영화들이 ‘사라진 시간’이었지만 ‘작은 빛’은 보였다. 빛의 이름은 애착이다. 마음이 끌리는 것을 가까이하고 유지하려는 행동. 무엇에 좀더 마음이 쓰이는지, 취향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도 좋겠다. 삶의 조건이 점차 궁핍하고 버거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취향이 있으면 마음이 덜 가난해진다. 이건 취향이라는 이름의 도피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연민하거나 타자화하는 대신 지금 현재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는 가운데 자신을 돌보는 자급자족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영화가 폐허의 풍경에 집착해온 건 이미 오래된 일인데 올해는 그 경향이 유독 도드라진다. 망가져버린 헬조선에서 시작하는 <사냥의 시간>이나 좀비 바이러스로 격리 지
[스페셜①] 2020년 한국영화는 '애착인형'이다
-
2020년 4월, <씨네21>은 비평의 전선을 넓히고자 영화비평 코너 프런트라인을 신설했다. 한해를 마감하며 송경원, 김소희, 김병규, 안시환 네명의 프런트라인 필자들에게 2020년 한국영화가 남긴 것들에 대해 물었다. 각기 다른 경로에서 탐색해본 고민들이 올 한해 한국영화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답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봄직한 질문들. 한국영화를 향한 네 갈래의 길을 소개한다.
[스페셜] 2020년 한국영화가 남긴 것들 ①~④
-
영화와 드라마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주리라는 생각에 많은 OTT 콘텐츠들을 지나쳤을 독자들에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추천작을 소개한다. 모두 2020년 웨이브, 넷플릭스, 왓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통해 한국에 최초 공개된 해외 시리즈 및 영화로, 각자 뚜렷한 색깔을 내세워 확고한 팬층을 다졌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 집콕 생활이 길어지는 지금을 기회 삼아 취향에 맞는 작품을 정주행해보는 건 어떨까. 로맨스, 스릴러, SF 등 각종 장르 시리즈에 더해 성장담과 역사물, 다큐멘터리를 한데 모았다. 각 플랫폼 가입자들이 참고할 만한 콘텐츠 업데이트 및 프로모션 소식도 함께 전한다.
웨이브
<트와일라잇 존: 환상특급> 시즌1, 2
감독: 애나 릴리 아미푸르 외 / 출연: 조던 필, 스티븐 연, 존 조 / 10부작 시리즈
“여러분은 다른 차원을 여행합니다. 시청각을 넘어선 정신의 차원이죠. 여러분은 이제 환상특급에 올랐습니다.” 1950년대에 첫 방영된
연말 집콕하면서 볼만한 OTT 추천작
-
-에이든 체임버스의 원작 소설 <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를 17살에 읽었다고. 당신의 긴 커리어 중 지금이 이 작품을 영화화하는 데 적기라고 느낀 이유가 있나.
=17살 때 소설을 처음 읽을 당시 나는 이미 영화감독이 되길 소망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관객으로서 누군가가 얼른 영화로 만들어주길 기다리기도 했다. 그만큼 나를 즐겁게 한 이야기지만,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기까지는 35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이 작품과 나 사이에 놓인 긴 시간의 거리에 대해서는 정확히 답하기 어렵다. 나 자신이 10대를 한참 지나쳐왔기에 인물들을 훨씬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하다. 소아성애 범죄와 짙은 고통을 다뤘던 전작 <신의 은총으로>를 끝낸 후 좀더 가벼운 작품으로 가고 싶기도 했다. 젊음, 사랑, 석양, 그리고 해변이 있는….
-초창기에 작업했던 슈퍼 16mm 필름으로 돌아간 까닭은.
=1980년대니
[인터뷰] 세상의 모든 10대에게 던지는 질문, '썸머 85' 프랑수아 오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