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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파도가 크진 않았다. 올 여름 시장을 노린 한국영화 4편이 차례로 관객과 만난 후 조금 이른 성적표를 받아드는 중이다. 한국영화 시장이 역동적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올해만큼 변화의 조류가 급격하게, 그리고 자주 바뀐 적도 드물 것이다. 지난해 전세계 OTT 시장을 강타한 <오징어 게임> 이후 무게는 급격하게 OTT쪽으로 쏠려 2022년 설 연휴 극장가마저 한산했다. 그렇게 코로나19 팬데믹이 잡혀가는 분위기와 무관하게 극장이 침체 일로를 걷는가 싶더니 이번엔 첫 천만 영화 <범죄도시2>가 사랑을 받으며 다시 불을 지폈다. 올여름 극장가의 성적표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한두편의 흥행작을 넘어 향후 산업 전반의 흐름을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네21>에서는 2주에 걸쳐 올여름 시장과 상반기 한국영화를 분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우선 공개하는 건 한국영화에 대한 내적 분석, 비평적 목소리다.
지금 한국영화에 던지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분석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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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섹슈얼의 연애, 밀레니얼의 자아도취에 관한 최신의 마스터피스. 8월25일 극장가에 안착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이런 거창한 수식을 붙이는 모험을 감행해보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를 ‘실존적 장르’(Rom-coms are an existential form)로 명명하고, 영화의 본질이란 곧 시간의 감각을 새로이 축조하는 데 있다고 믿는 노르웨이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빛의 도시 오슬로의 거리를 방황하며 빚어낸 우리 시대의 클래식을 소개한다. 한편의 영화가 감수성과 기술, 유행과 전통, 통찰과 유머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영화는 그 최신의 대답이 되어줄 수도 있다.
불만족은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막 서른이 된 율리에(르나트 라인제브)에겐 아직 이 두 가지를 모두 누릴 기회가 있다. 그래서 그녀는 신음한다. 더 완전한 삶은 지금 아닌 언젠가, 여기 아닌 어딘가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과 직업이 삶을 최적화하리라는 헛된 갈망이 불
우리 시대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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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놉>은 그가 왜 지금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사람인지 증명한다. 흑백 차별 문제를 건드린 <겟 아웃>(2017), 미국의 계층 모순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어스>(2019)에 이어 이번에는 할리우드영화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쇼 비즈니스 산업의 매혹과 중독에 대해 탐색한다. 호러와 스릴러를 기반으로 다층적인 의미를 심어둔 영화는 그야말로 해석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영화광들이 열광할 만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의 카메라와 아이맥스 필름 등이 더해져 영화의 원초적인 쾌감, 스펙터클의 위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조던 필의 야심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마침내 당도한 ‘나쁜 기적’,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파고파도 여전히 미지의 매혹을 지닌 작품. 새로운 시대의 (UFO) 영화에 대한 듀나 평론가의 해석을 전한다.
UFO의 최근 공식 명칭은 UAP이다. 미 국가정보국장실에서 처음 사용한
듀나 평론가가 본 조던 필 감독 신작 ‘놉’: 새로운 시대의 (UF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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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개 촬영감독이 2020년 촬영한 <비상선언>과 2021년 촬영한 <헌트>가 올해 8월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다. 사상 초유의 항공 테러를 다룬 <비상선언>과 안기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액션 영화 <헌트>는 관객을 긴박한 상황과 특정한 공간에 몰입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가 있었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달랐다.
- <비상선언>과 <헌트>는 각각 어떤 목표를 가진 작업이었나.
= 두 영화는 감독이 각자 지향하는 바가 뚜렷했다. 두 감독 다 레퍼런스를 준비해서 보여줬다. 한재림 감독의 레퍼런스는 기존의 영화 이미지가 아니라 실험영상이나 광고영상 등 파격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헌트>는 배경이 80년대 초반이라, 그 시절을 다룬 한국영화가 꽤 있는데도 이정재 감독은 그런 영화를 레퍼런스로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재 감독이 보여준 레퍼런스는 대부분 한국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잘 만든 외국 영화의 깔끔한 이미지
'헌트' '비상선언'의 이모개 촬영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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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신드롬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영날이면 방송 이후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날의 에피소드로 뜨겁게 끓어오른다. 온라인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위원이 조사를 착수했고, 해양수산부는 모든 수족관을 디지털 수족관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드라마 한편에서 시작된 다양한 사회현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신지수 임상심리사, 정지우 변호사, 유선주 TV칼럼니스트를 만났다.
유선주 드라마 비평지 <드라마틱>에서 기자로 일했다. <씨네21>을 비롯한 다수의 지면에 TV드라마에 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신지수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심리실 슈퍼바이저. 정신장애와 심리학의 젠더 편향을 다룬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를 썼다.
정지우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임상심리사, 법조인, TV칼럼니스트가 말하는 우영우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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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야!” 끝까지 우영우(박은빈) 곁에 서서 부당함에 맞서길 주저하지 않고 퇴근까지 반납하며 맡은 사건을 준비하는 최수연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변호사라면 내 사건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배우 하윤경이 연기한 최수연은 한바다 로펌 소속으로 맡은 일을 꼼꼼히 해내는 정의로운 변호사이자 사랑에 있어선 실패도, 의외의 선택도 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은연중 최수연을 떠올리며 만난 하윤경은, 기사에 녹음본을 첨부하고 싶을 정도로 다부지고 단단하게 답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르기까지, 배우 하윤경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았다.
- 수연은 유도리도 있고 자기 일처럼 온 힘을 다해 사건에 뛰어드는 변호사다. 변호사들이 실제 일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참고했나.
= 감독님과 작가님이 현장에서 많이 이야기해주셨고,재판 진행에 관한 영상 자료 같은 것도 보내주셔서 참고했다.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배우 하윤경, “좋은 사람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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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등 뒤에 서 있다가 어느샌가 성큼 다가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준호(강태오)는 우영우(박은빈)를 서포트하는 팀원이었지만 영우와 가까워질수록 시청자와의 거리도 급격하게 좁혀졌다. 영우와 연인이 되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준호의 대사가 인터넷 기사의 제목이 되고 ‘짤’로 확산될 만큼 화제다. 올여름 가장 주목받는 배우 강태오를 만났다. 극중 준호는 바다 앞에서 하염없이 돌고래를 기다리지만, 배우 강태오는 직접 물에 뛰어들어가 돌고래도 얼러 데려올 것 같은 명랑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 “섭섭한데요”라는 대사가 인기를 끌면서 ‘국민 섭섭남’으로 등극했다.
= 그게 중요한 장면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섭섭한데요”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했을 텐데. 물론 그때도 최선을 다했다. (웃음)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준호의 비중이 높아진다. 작가의 고민과 애착이 많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이준호 캐릭터를 어떻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배우 강태오, “항상 그곳에 있는 듬직한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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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상한’ 변호사의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우영우여야 했을까. 주인공이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회문(回文) 혹은 팰린드롬(palindrome)의 개념을 상기시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020년 2월2일에 방영됐다면 더 근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드라마의 영문 제목은 ‘strange’나 ‘odd’가 아닌 ‘extraordinary’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를 설명한다. 문자 배열의 특수성 때문에 긍정적인 주목을 받는 회문처럼, 우영우의 장애는 그가 사건을 해결해갈수록 결함이 아닌 차별화된 개성으로 인정받는다. 일견 천재성에 국한돼 미디어에서 재현되던 자폐인 캐릭터 계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캐릭터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흥미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착한 드라마’, ‘힐링 드라마’로 압도적인 호평을 받던 초반보다 최근 에피소드들의 태도가 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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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남긴 것을 돌아보다
배우 강태오, 하윤경 인터뷰
전문가 3인의 대담
이미 올해의 드라마라 명명해도 부족함이 없다. 신생 채널의 한계를 뚫고 1화 시청률 0.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서 최고 시청률 15.8%(9화, 2022년 8월18일 기준)까지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줬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지만, 올해 가장 화제성 있는 성공작이 매화 다른 사회 이슈를 품고 후속 담론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8월18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국 사회에 남긴 것을 되돌아보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가 오롯이 좌절할 수 있게 옆자리를 지키는 송무팀 이준호 역의 강태오와 봄날의 햇살 최수연 역의 하윤경도 <씨네21>과의 만남에 응했다. 마지막으로 신지수 임상심리사, 정지우 변호사, 유선주 TV칼럼니스트의 대담은 다양한 시각으로 드라마를 재해석하게 해줄 것이다.
우영우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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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배우 박지환의 활약은 돋보였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비롯해 영화 <범죄도시2> <한산: 용의 출현>까지, 봄여름 두 계절을 지나는 동안 박지환은 대중의 희로애락을 책임졌다. 그는 20대에 극단 활동을 시작했고, 2006년 영화 <짝패>를 통해 매체 연기를 처음 선보였다. 그 뒤로 <베를린>(2012), <무뢰한>(2014), <검사외전>(2015), <아수라>(2016), <범죄도시>(2017), <마약왕>(2017) 등 다양한 영화에서 조연으로 종횡무진했다. 그는 주로 강렬한 외모에 성질이 고약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래서일까. 박지환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강하고, 악하고, 거칠다. 하지만 박지환은 고정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굳이 마음 쓰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한산: 용의 출현', '범죄도시2'의 흥행 배우 박지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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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형과 수렴형. 배우를 두 부류로 나눈다면, 임시완은 후자다. 비범함과 평범함을 오가는 <미생>의 장그래, 아름다우면서 퇴폐적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조현수, 독기와 웃음기를 동시에 품은 <트레이서>의 황동주처럼 그에겐 경계 지대의 인물들이 잘 어울린다. 이중성은 배우에게 너무도 뛰어난 매력인 나머지 과시되기 십상이지만, 임시완은 자기 무기를 휘두르는 대신 속 안에 침착하게 품는다. 그의 연기는 언뜻 연약해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지켜본 결과 그 기세가 집요하고 질기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완급 조절이나 힘 빼기 같은 기술적 표현으로는 배우 임시완을 근사치에 가깝게 서술하기 힘들다. 그는 오히려 깐깐하리만치 캐릭터의 당위와 진심을 파고들어 배우인 자신으로 하여금 인물을 완전히 믿도록 설득하고, 이 작업에 성공한 것 같으면 의도적인 방심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어떤 순간에 ‘무언가 애써 더 하
'비상선언'의 매력적인 빌런 배우 임시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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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교외에서 파리 시내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 교외에 살면서 먼 거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늦지 않을까,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 많을 테고 예쁘지도 않은 파리의 외곽 풍경을 보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고 싶었다. 이 삶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디테일하게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일하는 풍경,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풍경, 심지어 아이를 목욕시키는 풍경까지 일상의 디테일을 스크린에 담으려고 했다.
- 첫 장편 <충돌테스트 아글라에>(2017)에 이어 일하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 내 관심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의 이야기. 두 번째는 사람이 노동과 맺는 관계. 나는 커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주체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한번쯤 해봄직한 질문에서 내 영화도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단어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보편적이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삶과 노동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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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의 폭우로 출근시간 강변북로를 건너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린다는 속보가 들려온 8월. 전국적인 교통 파업으로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의 출퇴근이 어려워진 쥘리의 곤경을 담은 영화 <풀타임>은 스크린을 넘어 각자의 출근길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계속 차기만 할 뿐 아무도 내리지 않는 9호선 지하철역에 몸을 욱여넣어 출근해본 경험이 있다면, 강남역 혹은 광화문에서 경기도로 향하는 빨간 버스를 타기 위해 늘어선 행렬에 끼어본 적이 있다면 쥘리가 출퇴근길에 겪는 분투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테다. 반복적인 비트의 전자음악과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워크는 어둑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도 ‘제때 도착할 수 있을까’ 초조하기만 한 쥘리의 출퇴근길을 긴박한 장르영화처럼 담아낸다.
도처에 놓인 그림자 노동
에리크 그라벨 감독은 여러 사람이 이렇게 근무시간 외에도 고된 분투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노동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쥘리라는 싱
그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사정,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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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정우성을 26년 만에 한 스크린에 담아낼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다.”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헌트>가 완성되기까지 몇년에 걸친 시간이 마치 몇 개월처럼 짧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신세계> <무뢰한> <아수라> <공작> 등 선 굵은 영화들을 제작해온 한재덕 대표에게도 <헌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음에 하면 되지, 하다가는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갈수록 커진다. 지금 이 순간 전력투구해도 원하는 바가 성사될까 말까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 지금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를 헤치고 뚝심과 결기로 만들어진 <헌트>는 사나이픽처스의, 나아가 한국영화의 현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부문에서 먼저 공개한 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공작>(2017)에 이어 두 번째다.
= 전략적으로 구상한 마케팅은
‘헌트’ 제작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보고 싶은 걸 끝까지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