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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교환 일기. 단짝 친구. <20세기 소녀>에 나온 추억의 장면 일부는 이미 변우석의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이다. 어릴 때 집 근처 공중전화를 이용했고 초등학생 때 교환 일기를 쓴 기억도 있다. “반 친구 7~8명이 함께 다이어리를 썼다. 그냥 아무 글이나 적자, 하고 노트를 돌렸는데 그때 좋아하는 반 친구가 있어서 거기에 슬쩍 마음을 적었다. 그러고는 괜히 창피해서 그 친구를 피해 다녔다. (웃음) 현진이 같은 단짝 친구도 있었다. 중3 때 전학 와서 만났고 그때부터 지금껏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 학교 갈 때마다 시간 맞춰서 같이 버스를 탔다. 차 안에서 MP3 이어폰을 한쪽씩 끼고 플라워의 노래를 듣던 기억이 난다.” 극중에서도 내내 붙어 다니는 현진과 운호의 모습이 떠오르는 말이다. 변우석은 이렇게 자신의 경험과 기억에 담아둔 감정을 꺼내 운호를 연기했다.
1999년을 배경으로 한 <20세기 소녀>에서 열일곱 풍운호는 달콤쌉싸름한 첫사랑의
[기획] ‘20세기 소녀’③ 변우석, “진심이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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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끌렸던 시나리오 <20세기 소녀>. 김유정은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를 묻는 질문에 털털하게 웃으며 “사실은 교복을 입고 싶어서”라고 첫마디를 뗀다. “학창 시절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났다. 영화를 모니터링할 때도 특히 보라와 연두(노윤서)가 함께하는 장면에서 감정적으로 많이 요동쳤다.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서 잘 울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마음이 자꾸만 이상해지더라.” 김유정의 반응은 오랜만에 한국영화계에 당도한 틴에이지 로맨스 <20세기 소녀>의 애틋한 디테일을 정확하게 건드린다. 방우리 감독은 친구의 사랑을 연결해주려다 자기가 사랑에 빠지고 마는 어긋난 큐피드 서사로 장르의 뼈대를 구축한 뒤, 10대 시절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여자 친구들간의 정서를 빛나는 파편으로 새겨넣었다.
2003년, 4살 나이에 CF로 데뷔해 <친절한 금자씨>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로 일찌감치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한 김유정의 학창 시절은
[기획] ‘20세기 소녀’② 김유정, “다시 교복을 입고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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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지막 사랑은 이정재라며!” 17살 나보라(김유정)는 짝사랑의 대상이 자주 바뀌는 김연두(노윤서)를 타박하면서도 금세 눈을 반짝인다. 서로가 언제 누굴 좋아하며 속을 끓였는지 줄줄이 꿰는 단짝인 둘은, 연두가 심장 수술로 잠시 출국하면서 졸지에 짝사랑처럼 절절해진다. 때는 1999년, 둘은 교환 일기 대신 메일을 주고받으며 동급생 백현진(박정우)을 탐구하기 시작하고 나보라의 백현진 관찰기는 곧 방송부 에이스인 풍운호(변우석)와의 추억으로 이어진다. 그 시절, Y2K 열풍 속에서 덩달아 성행했던 ‘보라비디오’의 운명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러나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아직 서서히 부식 중인 그곳이 <20세기 소녀>에 담겨 있다.
데뷔작을 만든 방우리 감독은 고향 청주에서 보낸 자신의 학창 시절을 생생히 되살리고 한동안 대만영화의 전유물로 여겼던 청춘 로맨스 장르를 한국영화계에 복귀시켰다. 노스탤지어 가득한 세계라지만 그 안에서 뛰노는 청춘
[기획] ‘20세기 소녀’① 네가 좋아서 청춘이 빛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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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이 10월21부터 25일까지 열린다. 아카데미 공식 지정 국제영화제로서 애니메이션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과 재미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과 최첨단 기술을 겸비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총 109편의 작품(장편경쟁 12편, 단편경쟁 69편, VR 5편 등) 외에도 ‘스페셜 스크리닝’, ‘애니투게더’,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세계’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동사 ‘Animate’의 본래 뜻처럼 BIAF는 애니메이션 산업과 창작자, 이를 사랑하는 많은 관객에게 생기를 불어넣고자 한다. BIAF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장고 끝에 여러 작품을 선정해 안내한다.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데일리를 통해 추천작과 특별 프로그램 소개가 계속됩니다.
[기획] BIAF 제24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 애니메이션의 언어로 도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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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③] 연표로 고다르의 생애, 1991년부터 그의 마지막까지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③] 연표로 고다르의 생애, 1991년부터 그의 마지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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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②] 연표로 고다르의 생애, 1968년부터 1990년까지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②] 연표로 고다르의 생애, 1968년부터 1990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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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연표로 고다르의 생애, 출생부터 1967년까지
[장뤽 고다르 추모 연속 기획①] 연표로 고다르의 생애, 출생부터 1967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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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족이 된 세 사람이 제주4·3평화공원에 함께 방문한다. 어머니에겐 아픈 상처를, 감독과 아라이씨는 경험해보지 못한 역사의 한 부분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이다.
양영희 어머니는 계속 한국에 대한 불신이 있으셨다. 내게 4·3사건에 관해 이야기하실 때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이야기하지 마라, 큰일 난다”며 여러 차례 당부하셨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조총련 사람들이 한국과 관련된 소식에 좀 느리긴 하다. 한국에 가본 적이 없으니 어머니도 민주화됐다는 말을 믿지 않으시다가 내가 한국을 오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한번 가볼까” 하고 말씀하셨다. 제주4·3평화공원이 워낙 잘 조성돼 있고 곧 4·3사건 70주년이니 같이 가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2017년 11월에 제주4·3연구소 분들과 인터뷰를 했다. 3시간 동안 진행했는데 전문가시다 보니 어머니의 기억을 엄청 깊게 파고드시더라. 어머니가 너무 소모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정작 어머니는 엄청 후
[기획] 수프와 이데올로기③ 양영희 감독, 남편 아라이 가오루, “4·3사건, 이젠 우리가 기억해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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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인터뷰에서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한국의 역사를 다룬 작품인 만큼 꼭 한국에서 개봉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라던 개봉을 앞둔 소감이 남다르겠다.
양영희 영화 초반에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4·3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촬영한 게 근 11년이 다 돼간다. 10년 이상 걸린 작품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기쁘다. 사실 우리 가족은 재일교포 중에서도 북한을 지지하고 또 가족의 상당수가 북한에서 생활하는, 정말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 중의 마이너리티이지 않나. 그럼에도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고 자기 일처럼 공감하는 일본 관객이 많았다. 가오루가 공감대를 형성하는 접점이 되어줬고, 영화를 보며 관객이 일본 역사와 4·3사건이 그리 무관하지 않음을 비로소 인지했던 것 같다. 개봉 이후 한국 관객의 감상도 궁금하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남편 아라이 가오루씨와 만난 뒤로 장편화의 가능성을 엿봤다고.
[기획] 수프와 이데올로기② 양영희 감독, 남편 아라이 가오루,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식탁에 수프를 올리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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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의 생존자이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활동가이며, 북한의 세 아들에게 꾸준히 소포를 보내는 어머니. 그의 생을 다룰 때 한 사람, 한 가족 이상으로 영화의 주제가 확장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디어 평양>이 조총련에서 활동한 아버지에 관한 작품이며 <굿바이, 평양>이 북한에 있는 오빠네 식구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당연하게도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오사카에 있는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에게로 초점을 옮긴다. 한때 “일본인 사위는 극구 반대!”라고 외쳤으나 인사를 하러 온 일본인 사위에게 어머니는 정성껏 끓인 닭고기 수프를 대접한다.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들은 진정한 가족이 된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국제경쟁부문 흰기러기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집행위원회특별상을 수상한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마침내 국내 개봉한다. 개봉 시기에 맞춰 내한한 양영희 감독과 영화의 시작 단계부터 함께한 그의 남편
[기획] 수프와 이데올로기① 양영희 감독과 남편 아라이 가오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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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순이라는 이름은 본명인가.
=그렇다. ‘이제 금’에 ‘순할 순’을 쓴다. 옛날 어른들이 오래 살라고 이름을 막 짓지 않나. 우리 아버지도 그런 맥락에서 내 이름을 지으셨다. 10~20대에는 진짜 장난 아니었다. 학교에서 김금순이 대체 누구냐며, 우리 장모님 이름이다부터 시작해서 고모, 이모 다 나왔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김금순씨’ 하고 호명하면 할머니들이랑 같이 일어나고. 예전엔 삐삐가 오면 커피숍에서 전화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이었는데 “김금순씨, 전화받으세요~” 하면 옆에서 다 웃었다. 그때마다 ‘이것들이 미쳤나. 전화하지 말라니까’ 하면서 속으로 화를 냈다.
-그런 정도면 배우로 활동할 땐 가명을 쓰고 싶었을 법도 한데.
=<집으로 가는 길>과 <변호인> <카트>를 촬영할 때 잠시 김선주라는 가명을 썼다. <카트>를 촬영할 당시 극중 계산원들의 이름표에 전부 배우 본명을 적었다. 그때 감독님이 물어보시더라. 선주라는 이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⑦ '정순' 김금순 배우가 생각하는 10년 전의 나, 현재의 나, 10년 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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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전달이 잘 됐을 때 희열을 느낀다. 감독님이 모니터를 보고 ‘오케이, 너무 좋아요!’ 하실 때, 연극 무대에서 나를 따라오는 관객의 시선과 호흡이 느껴질 때 가장 즐겁다.” 중학생 때 참여한 연극 <작은 아씨들>을 계기로 김금순 배우는 고향 경남 진주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수많은 연극을 올렸다. 가정을 꾸리고 잠시 공백기를 가진 뒤엔 매체로 자리를 옮겨 연기 생활을 이어갔다. 10년이란 경력 단절의 시간이 무색하게 그는 현재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트> <변호인> <달이 지는 밤> 등을 거쳐 만난 첫 장편 주연작 <정순>은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김금순 배우가 연기한 정순은 남자 친구 영수(조현우)가 유출한 동영상이 직장에 퍼지면서 삶이 완전히 어그러지는 인물이다. 김금순 배우는 정순이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럴 수 있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⑥ ‘정순’ 김금순, “나를 정신 차리게 해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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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엄마 역을 해왔지만, 당신이 연기하는 엄마는 헌신적일 때나 세속적일 때나 특유의 고집스러운 인상이 있다. <경아의 딸>에서도 딸을 걱정하는 모습 한쪽에는 고집스러움에서 빚어지는 외롭고 고독한 얼굴이 있다. 배우 자신에게 그런 면이 있는 걸까.
=생각해보면 계속 같은 직업을 고수해온 것, 아이들을 대안학교에 보내고 중도 하차 없이 졸업시킨 것, 극단도 한번 연을 맺고 나서는 다른 데로 옮기지 않았던 것도 고집이라면 고집이겠다. 연기에서 그렇게 보였다면 그래도 내 것이 연기에 드러나는 모양이다. 아무리 과장되게 하라고 해도 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림에 딱딱 맞춰주는 TV 연기가 필요할 때도 있고 독특한 카리스마가 필요하기도 한데 그게 잘 안되더라.
-이야기한 ‘내 연기’를 할 때는 어떤 점을 중요시하나.
=극단 한강에서 연기를 많이 배웠다. 극단 대표님이 배우가 작품 분석도 하고 시나리오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워크숍을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⑤ '경아의 딸' 김정영 배우가 꼽은 내 인생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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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극단 한강의 배우로 무대 연기를 시작한 김정영은 김기덕 감독의 <실제상황>(2000)으로 스크린에 데뷔했고, 이듬해 <나쁜 남자>(2001)의 포주 은혜로 관객에게 조명됐다. 스포트라이트를 누리기도 잠시, 육아로 인한 공백기가 이어졌다. 마흔 무렵 그녀에게 볕이 드는 무대를 내준 건 TV드라마였다. <풍문으로 들었소>(2015), <시그널>(2016),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 등 두고두고 회자되는 수명 긴 드라마 속에서 그는 과장되지 않은 현실감을 부여한 연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쌓았다.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 자주 호명되면서도 매번 다른 낯빛으로 친밀감을 드러내온 그는 <경아의 딸> 홍보로 바쁜 요즘에도 <안나> <피타는 연애> <더 글로리> 등 곧 공개될 드라마 속에서 쉼 없이 새 식구를 꾸리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좋은 시나리오라면 ‘시간이 비는 한 가리지
[기획] 중년 여성 배우④ ‘경아의 딸’ 김정영, “엄마도 장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