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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영화 각본집이 한국에서 출간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해당 국가에서 각본집이 출간된 경우여야 번역본을 출간하기 용이한데 출간 사례는 드문 편이고, 해외영화 각본집은 한국영화 각본집처럼 콘티, 감독 인터뷰를 포함해 다양한 부가 자료를 추가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플레인 아카이브에서는 <캐롤>을 필두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어느 가족> 각본집을 펴냈다. <캐롤>과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각본집은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출간되었다. 두 영화 모두 한국에서 팬층이 두터웠는데, <캐롤>은 한영 각본집으로, 각본가 필리스 나지의 최종 버전 시나리오와 제작자 엘리자베스 칼슨의 서문이 실렸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한불 각본집은 예약 판매 형식으로만 판매되었기 때문에 현재 중고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중이다.
해외영화 각본집: 그들이 서로 마주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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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세대를 사로잡은 인기 드라마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드라마 대본집 신간 목록을 보라. 최근 한국 드라마 대본집 출간은 인기작 여부를 입증하는 트렌드가 되었다고 할 정도로 붐이다. 이나은 작가의 <그 해 우리는> 대본집이 출간 전부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비롯해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쓴 넷플릭스 시리즈 <지옥 각본집>, 한희정 작가의 <연모> 대본집, 김은희 작가의 <지리산> 대본집, 김지혜 작가의 <인간실격> 대본집 등이 최근 연이어 출간되었거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작가의 말, 용어정리, 등장인물 등 드라마 홈페이지에 실리는 간략한 부가 자료가 함께 실리는 일이 통상적이다.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원작 만화부터 각본까지 함께 작업한 <지옥 각본집>은 2월 출간예정으로, <지옥>의 6회차 각본과 연상호 감독 인터뷰, 팀 그리어슨 LA비평가협회 부회장의 리뷰가 실렸다. 지옥의 사자들
시리즈 '지옥', 드라마 '스토브리그' 각본집과 ‘김수현 드라마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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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말할 때 서사 너머의 형식이 중요한 것처럼 책으로 새로 탄생한 각본집 또한 물성이 있는 출판물로서 구성의 새로운 미학을 갖는다. 이를테면 도서출판 아를에서 펴낸 <시>를 열면 시나리오 본문을 만나기 전에 ‘아녜스의 노래’를 먼저 읊조리듯 읽어야 한다는 것. 책의 초입에서 어느 가만한 음성을 복기하고 나면, 이어지는 <시>의 대사들에서 모두 양미자(윤정희)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시 수업 학생들이 ‘내 인생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고백하는 희곡적 독백은 활자로 읽을 때 새삼 도드라지는 문학성이 반갑고, 손자와 배드민턴을 치던 중 셔틀콕이 나무에 걸려 미자가 쩔쩔매는 동안 경찰이 손자를 연행하는 장면은 시나리오의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콘티까지 함께 만날 수 있어 명장면의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영화의 극장 상영용 프린트에 맞추어 일부 대사와 지문을 수정한 최종본 시나리오가 반영된 <시>는 그 덕분인지, 장면 하나하나를 생생히 복기하게 만드는 힘을
'시' '버닝' '윤희에게' '미쓰 홍당무' '남매의 여름밤' '세 자매 이야기' 그리고 '고양이를 부탁해' 각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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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글에서 시작한다. 로그라인, 시놉시스, 시나리오. 대사 없이 영상으로만 진행되는 장면도 글로 지시되고 상상된다. 최근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가 출간 붐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작품 팬덤의 규모와 지속성이 작품이 종영하거나 상영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이어진다는 증명이다. 영상화되어 공개된 최종 버전에서 삭제된 신이나 배우들의 행동, 장면 설정을 꼼꼼히 지시하는 지문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대본집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최근 연달아 출간된 이창동 감독의 <버닝> <시> 각본집, 출간을 앞둔 <고양이를 부탁해> 각본집, <남매의 여름밤> <윤희에게> 각본집을 비롯해 에릭 로메르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주요 작품들의 각본집부터 한정판으로 판매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각본집 등을 소개한다. 시리즈 <지옥>, 드라마 <스토브리그> 각본집과 ‘김수현 드라마 전집’은, 같은 영상 매체라 하더라도 영화와
국내외 영화 각본집과 드라마 대본집 출간 붐… 주요 출간작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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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얼굴>은 펍지유니버스 단편영화 프로젝트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태이고의 진실’을 전하는 2부작 단편 Part1 <그라운드 제로>, Part2 <방관자들>이 사건을 직접 보여준다면 <붉은 얼굴>은 그 잔혹한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1997년 태이고시에서 일어난 삼포조선 사택 참사의 유일한 생존자인 오준서(육준서)는 화가가 되어 그날의 트라우마를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화가 오준서의 회고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붉은 얼굴>은 독특한 모큐멘터리다. 예능 프로그램 <강철부대>를 통해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아티스트 육준서가 주연을 맡은 이번 작품은 한편의 단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오준서라는 캐릭터 자체가 아티스트 육준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일종의 아트 컬래버레이션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출발하여 미디어 전반으로 확장 중인 펍지유니버스 세계관에 이렇게 어울리는 프로젝트도 없을
'붉은 얼굴'로 처음 연기에 도전한 아티스트 육준서, "아트 컬래버적인 요소를 살려 그림도 직접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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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2015)를 각색하고, <더 킥>(2011), <협상>(2018) 등을 연출한 이종석 감독에게 단편 <방관자들>은 “새로운 도전이자 좋은 공부”였다. 100명이 훌쩍 넘는 스탭들을 이끌고 단 2회차 만에 찍어야 하는 현장 상황에서 이종석 감독은 노련하고 또 침착했다.
- 연출 제안을 어떻게 받았나.
= 펍지유니버스는 게임에서 출발한 세계관인데 단순히 게임 정보가 아닌 세계관을 하나둘씩 구축하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태이고시 호산 교도소 폭동 사건을 그렸던 유니버스의 전작 <그라운드 제로>도 재미있게 봤다. 제안을 받자마자 참여하겠다고 한 것도 그래서다.
- <그라운드 제로>는 어떤 점에서 흥미로웠나.
= 단순히 게임 광고가 아닌 내러티브를 갖춘 세계관을 구축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라운드 제로>는 펍지유니버스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모른 채 봤다. 보는 내내 ‘대체 이게
'방관자들' 이종석 감독, "세계관을 구축하는 작업이 시대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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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총 2회차로 진행된 이 영화는 90여명의 보조 출연자를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게 관건이었다. 김태진 프로듀서는 “짧은 회차에 많은 분량의 컷을 소화해야 하는 프로젝트라 청문회장, 복도, 화장실 등 이야기 속 주요 공간을 한 군데 모아 찍는 게 필요했다”라며 “장소 이동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곳이 로케이션 촬영 장소로 적합했다”고 말했다.)
인적이 드문 숲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건물을 비추는 조명탑차의 환한 빛이 눈에 들어온다. 혹여 동시녹음에 방해가 될까봐 까치발을 하고 오픈 세트 안으로 들어가자 QR 코드와 열체크 기계가 기자를 반갑게 맞는다. 옆에 있던 김태진 프로듀서는 “보조 출연자만 90여명이 넘는다. 방역 지침에 따라 배우도 제작진도 촬영 전 PCR 검사를 받았다”고 귀띔해주었다. 해가 바뀌기 전인 2021년 12월2일,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유네스코 평화센터의 한 건물에서 단편 <방관자들>의 1회차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긴 복도를 지나 사람들의 목
펍지유니버스 단편 '방관자들' 촬영 현장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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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김낙수 의원(이희준)이 태이고시의 의혹과 관련된 진통제 용기를 들고 정익제에게 질의한다. 검은색 정장 차림인 국회의원, 기자와 달리 김낙수, 정익제 두 사람은 의상 색감이 브라운 톤으로 설계됐다. 이종석 감독은 “검은색 의상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이 의혹의 방관자들이고, 김낙수, 정익제 두 사람은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 색감을 따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나. 살아남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세계 10억 유저가 즐기는 인기 게임 <배틀그라운드>(PlayerUnkown’ s BattleGround)에는 한 가지 숙제가 있었다. ‘외딴섬에 모인 100인의 플레이어가 다양한 무기와 전략을 이용해 라이벌들을 없애고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싸움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왜 싸워야 하는지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2019년 첫 시네마틱 트레일러 <에란겔의 첫 생
'배틀그라운드'의 탄생 배경과 비밀을 담은 펍지유니버스 신작 단편영화 '방관자들 촬영현장과 '붉은 얼굴' 주연배우 육준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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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학교는>을 향한 기대감이 심상치 않다. 1월14일 메인 예고편 공개 이후 <지금 우리 학교는>은 역대 한국 넷플릭스 시리즈 중 가장 빠른 조회수 상승 추이를 보이며 ‘K좀비’의 글로벌한 영향력을 증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처음 기획됐던 것은 아직 <부산행>과 <킹덤> 시리즈가 나오기 이전이었다. 드라마를 제작한 박철수 필름몬스터 대표는 “지금처럼 좀비물이 대세가 되기 전에 이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도시락 싸갖고 다니면서 말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한국에서 학원물과 좀비물을 결합한 시리즈가 탄생하기까지 제작진은 다양한 층위의 고민을 거치며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시리즈의 쇼러너와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에게 <지금 우리 학교는>의 제작 과정 및 이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한 웹툰 원작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 딱 7년 전이
이재규 감독이 말하는 화제의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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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메이커>의 김운범, 서창대에 비친 김대중과 엄창록은 각각 ‘도덕적인 원칙론자’, ‘수단을 가리지 않는 지략가’이다. 하지만 영화 속 서창대는 ‘김대중과 달랐던 엄창록’이 아니라 김대중의 지략을 응집한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이 말에 김대중보다 더 어울리는 한국 정치가는 없다.
김대중의 첫 선거는 1954년 전남 목포 국회의원 선거다.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는 무소속 후보로 나서 10명 중 5위로 낙선했고 그 뒤 한국노동문제연구소를 열었다. 그즈음의 김대중은 전형적인 ‘진보 정치인’이었다. 소련식 사회주의를 단호히 배척하면서도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노동자 복리를 지향하는 ‘반공 좌파’였다. 한동안 죽산 조봉암과 어울리기도 했고, 제3당 노선의 공화당에서 대변인도 지냈다. 하지만 그는 독재 정권과 그에 맞서는 야권 결집이 양당제를 강제하던 현실을 꿰뚫어보았다. 그는 제2당인 민주당에 가입하고, 당내에서 상대적으로나마 개혁 성향인
'킹메이커'가 모델로 삼은 실존 인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선거 귀재 엄창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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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은 <나의 PS 파트너>(2012)를 끝낸 뒤 <킹메이커>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시나리오를 동시에 썼다. 그만큼 “<킹메이커>는 오래 갖고 있던 시나리오”였다. 누아르영화 <불한당>을 준비하며 만난 설경구 배우가 첫 술자리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했던 사람이 왜 누아르물을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 시나리오까지 건넸을 정도다. 대선 정국에 정치영화를, 그것도 선거를 다룬 <킹메이커>를 개봉하는 변성현 감독은 외려 오랫동안 꿈꿔온 영화를 “대선과 떨어뜨리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창작자로서 “오롯이 영화로만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코로나19로 영화는 운명처럼 대선과 가까워졌다. 그러나 <킹메이커>는 정치라는 겉옷을 둘렀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다룬 영화다. 감정을 전하는 두 사람이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열렬한, 관계의 영화: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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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고등학교 논술 시험 단골처럼 익숙한 질문에 대한 답은 오래전부터 제시되었다. 우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고, 해서도 안된다는 ‘이상’을 배운다. 하지만 현실에선 수단이 목적을 앞지르는 일이 빈번하고, 이상을 지켜나가는 일은 고난과 어려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앞에서 쉽고 당연해 보였던 답은 규제와 제약으로 변모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았던 이들이 존경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정 어려운 건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는 것보다 그것을 끝까지 관철해나갈 수 있는지에 달렸다. 그렇다고 이상(목적)을 고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현실에서 성취되지 않은 목적은 공허한 구호로 흩어질 수도 있다. 철학자 파스칼의 말을 빌리자면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목적과 수단이 각각 이상과 현실이라는 평행선을 달리기 시작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인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존재
'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이 1970년대의 김대중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의 관계를 담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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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우의 첫 사극물 도전이다. <해적: 도깨비 깃발>에서 그가 연기한 부흥수는 무예가 뛰어나고 성정이 악독한 무관으로, 전장에 머무는 왕자 이방원을 찾아가 병사를 일으키라 부추기는 인물이다. 영화의 배경 연도는 태조 4년으로, 아직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기 전이다. 흥수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 주방이 황실 보물을 바다에 감춰뒀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찾아내 이방원에게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의 속내는 이방원이 왕이 되면 자신은 탐라의 왕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와 캐릭터 모두 권상우에게는 여러모로 남다른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우선 배우 인생 최초로 사극에 출연할 결심을 하게 했다. “언젠가는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마침 김정훈 감독이 연출을 한다고 해서 결정하게 됐다”라는 그는 여기에 더해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데 대한 부담과 기대도 함께 가져야 했다. 최근작인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그가 보여준 정의감 넘치는 호쾌한 박
'해적: 도깨비 깃발' 권상우, 언제나 새로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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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는 바다 위에서 촬영하지 않은 신이라 밧줄에 매달린 사람이 난 줄 몰랐다. ‘누구지?’ 하고 봤는데 그게 나였다. (일동 웃음)” 배우 이광수의 말 한마디에 인터뷰 현장의 분위기가 밝아진다. <해적: 도깨비 깃발>의 막이가 그랬듯 배우 이광수 역시 촬영장의 분위기 메이커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해 개봉한 <싱크홀> <해피 뉴 이어>에 이어 2022년, 이광수가 관객을 맞이할 첫 작품은 김정훈 감독의 <해적: 도깨비 깃발>이다. 그는 해랑(한효주)이 이끄는 해적단의 막내 ‘막이’를 연기한다. 바다에서 나고 자랐으며 유년기를 왜구선에서 보낸 막이는 충실하게 해적단 막내로서의 소임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해적왕이 되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바다에 숨겨진 왕실 보물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쥔 채, 막이는 해적단과 함께 긴 여정을 떠난다.
제작보고회에서 막이를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와 잘 붙는 캐릭터”라고 이야기했던 이광수 배
'해적: 도깨비 깃발' 이광수, 폭소의 치트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