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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뉴욕타임스>는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하비 와인스틴이 배우나 직원 등을 호텔 방으로 불러 마사지를 요구하고, 변태적 행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폭로했다. <그녀가 말했다>는 이 기사를 작성한 조디 캔터(조 카잔)와 메건 투히(케리 멀리건)의 보도 과정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범죄 당사자도, 그가 벌인 성추행도 아니다. 마리아 슈레이더 감독은 “탐사보도기자인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가 겪은 일을 관객이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첫 보도를 내기까지 두 사람이 감내한 것을 담은 영화”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는 <스포트라이트> <더 포스트>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처럼 뉴스룸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한다.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가 진실을 추적하고 보도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기존 뉴스룸 영화와 닮았지만 <그녀가 말했다>에는 탐사보도를 소재로 한 영화 특유의 열기와 고유
[기획] ‘그녀가 말했다’를 이해하는 몇 가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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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먹어야 산다. 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명제를 단어 하나만 바꿔 순식간에 공포스러운 문장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은’을 ‘을’로 바꾸는 것이다. ‘사람을 먹어야 산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본즈 앤 올>은 사람을 먹어야 살 수 있는, 살기 위해 사람을 먹는 ‘이터’(eater)들의 이야기이다. 단, 이 문장은 정확히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의 취향으로서, 예컨대 미식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본능적으로 식인에 대한 허기를 느끼는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적으로 보다 익숙한 소재와 비교하자면 ‘뱀파이어’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터와 뱀파이어 모두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인간의 살갗을 물 뿐이지만, 그 결과로 그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내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그 무엇도 아닌 인간의 목숨을 필요로 한다는 비극. <본즈 앤 올>은 비극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두 남녀 매런(테일러 러셀)과
[기획] ‘본즈 앤 올’, 사랑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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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에 시작해 1990년대에 마쳤다고 평가하는 대만 뉴웨이브의 파동은 주지하듯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그리고 차이밍량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새로운 물결이라는 명명에서도 알 수 있듯 이들의 작품은 전통의 재해석, 또는 배격, 더 나아가 완전한 재탄생으로 특징지을 법한데, 이런 수사도 2022년 현재 되레 도전과 반발 앞에 놓인 또 다른 전통으로 보인다. 최근도 이 개척자 세명을 자주 호명하지만 현 대만영화계가 주목을 요하는 다른 이름들이 있다. 청몽홍이 그 선두 주자라면 후앙시, 호위딩, 미디 지, 양야체, 수자오렌 감독 등은 꾸준히 레이스를 펼치는 성실한 러너들이다. 이번 서독제 해외초청 프로그램은 기존 대만 뉴웨이브 삼인방을 잇는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을 소개해 특정 분야로 편중했을지 모를 우리의 영화 경험에 기분 좋은 자극을 꾀한다.
뉴웨이브 이후를 말하지만 그렇다고 청몽홍을 포함한 새로운 대만 감독들과 이전 뉴웨이브 사
[기획]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③,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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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갈
이동우 | 한국 | 2022년 | 156분 | 본선 장편경쟁
<셀프-포트레이트 2020>에서 한때 단편영화로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이력이 있지만 지금은 알코올중독과 조울증에 시달리며 노숙 생활을 하고 구치소를 드나드는 인물을 선보여 주목을 끌었던 이동우 감독의 신작이다. 감독은 이번에도 문제적 인물을 내세워 지난 작품이 품은 진기한 기운을 재현한다. 감독의 대학 시절 영화과 동기이자 10살 많은 형인 박건호는 사채를 굴리는 동시에 본인도 빚에 허덕인다. 배달 대행 일로 삶을 꾸려가던 그는 도박에 손을 대면서 뱀과 전갈이라는 뜻의 사갈, 즉 남을 해치거나 혐오감을 주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자신의 처지와 책임을 객관화해 인식하는 듯하면서도 채무자에게서 수금한 돈을 재차 도박으로 날리고 자기 합리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자면, 지난 작품 속 노숙자의 초상이 오버랩된다. _김성찬 영화평론가
이어지는 땅
조희영 | 한국 | 2022년 | 88분 | 본선 장편경쟁
런던
[기획]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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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서독제가 12월1일부터 9일까지 CGV압구정에서 열린다. 이번 영화제에는 영화가 만들어내는 ‘사랑의 기호’로 독립영화들이 서로 대화하며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길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가 담겼다. 축제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도록, 개막작 <또 바람이 분다>와 본선 장편경쟁에 초청된 8편의 영화, 그리고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을 통해 선보이는 8편의 대만영화를 소개한다.
또 바람이 분다
김태일, 주로미 | 한국 | 2022년 | 103분 | 개막작
제48회 서독제의 개막작인 <또 바람이 분다>는 조금 특별한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상구네’의 ‘민중의 세계사’ 프로젝트의 네 번째 작품이다. 감독 김태일과 주로미,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김상구, 김송이 네 가족으로 이루어진 상구네의 발길은 2009년 광주에서 시작해 캄보디아와 팔레스타인을 거쳐 보스니아로 이어져왔다. “고립되어 빨갱이로 몰렸던 광주 시민, 자본에 밀려나고 있는 캄보디아
[기획]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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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모녀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의 수경과 이정
여느 때와 같이 마트에 같이 장을 보러 간 날, 사건이 벌어졌다. 씩씩대며 앞서 나간 수경(양말복)의 뒤를 이정(임지호)이 바삐 쫓는데 차에 타자마자 수경이 이정에게 손찌검을 시작한 것이다. 견디다 못한 이정이 차를 박차고 나가자 별안간 수경의 차가 이정을 들이받는다. 급발진 사고라 주장하는 수경과 달리 이정은 엄마의 고의를 확신한다. 그렇게 아슬아슬하던 둘의 관계가 완전히 뒤틀리고 만다.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라는 제목처럼 가장 내밀한 부분을 공유하면서도 서로를 증오하고, 종국엔 이해받길 바라는 수경과 이정의 관계는 강렬하고 처절하다. 둘의 서사를 모녀라는 프레임 안팎에서 유연하게 그려나가는 김세인 감독의 연출은 둘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올해의 미장센
<초록밤>의 윤서진 감독과 추경엽 촬영감독
소파 위로 쓰러지듯 누운 원형(강길우) 위로 창밖의 초록빛이 쏟아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⑥ 올해의 독립영화, 별별 리스트 2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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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자기 반영
<오마주>의 여성감독들
아들과 남편은 자꾸만 투덜대고 오래 함께한 PD는 떠나겠다 한다. 세편의 영화를 만들고 슬럼프에 빠진 영화감독 지완(이정은)은 신작 <유령인간>이 상영 중인 텅 빈 극장에서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영화는 신수원 감독의 <유리정원>이 묘하게 겹쳐지는 듯하고, 배우 이정은은 절박함과 묘한 낙천성을 동시에 품은 신수원 감독의 인상을 능청스레 모사한다. 한국영화 역사상 두 번째 여성감독인 홍재원의 필름 복원을 의뢰받은 지완의 여정은 곧 여성영화의 길을 닦은 실존 인물 홍은원 감독의 삶까지 불러낸다. 신수원의 자전적 이야기와 홍은원의 찬란한 생애, 그리고 픽션 속에서 이들 사이를 오가는 캐릭터 지완의 삶은 서서히 허구와 실제, 각색과 진심을 넘어 영화 만드는 여성의 삶에 관한 환상적인 수수께끼로 귀결된다.
올해의 메뉴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치킨 수프
4·3사건의 트라우마와 이산가족의 고통을 품은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⑤ 올해의 독립영화, 별별 리스트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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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에만 수많은 데뷔작이 영화과 졸업작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제작 지원작 등으로 완성되지만 그렇게 발굴된(혹은 사비를 털어 스스로 발굴한) 창작자들의 차기작을 보기는 어려운 현실이다. 2015년부터 한국 독립예술영화에서 데뷔작이 차지하는 편수가 급격히 늘어나 2022년 현재 증가세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영화는 약 120편으로 이중 장편 데뷔작은 59편이다(영화진흥위원회 2022년 개봉일람 기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장편제작 연구과정 작품 6편(<윤시내가 사라졌다> <낮과 달>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그 겨울, 나는> <썬더버드> <파로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합협력단 영화 3편(<거래완료> <세이레> <옆집사람>) 등이 있지만 데뷔작 대다수가 영진위 제작지원, 영화제 기획개발비, 지역 영상위원회 지원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④ 이들의 두 번째 영화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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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씨네21>은 1373호 ‘극장 중심의 체험들이 중요하다: 2022년 한국 독립영화의 현재를 말하다’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립영화 시장이 입은 타격과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의 확장 가능성, 독립영화가 일군 성장 등을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한 단계 더 나아가 독립영화 배급사·제작사·극장 관계자의 관점으로 올해 한국 독립영화 시장 전반의 성적과 관객의 수요 변화, 각 층의 출구 전략 등을 정리해보았다. 먼저 관계자 모두 공통적으로 올해를 독립영화의 암흑기로 꼽았다. 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는 올해 청년 문제를 날카롭게 다룬 <태어나길 잘했어>와 <홈리스>를 배급했지만 모객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저조했다. 유현택 그린나래미디어 대표는 “여름 시장에 기대가 컸던 빅4 영화(<한산: 용의 출현> <헌트> <외계+인> 1부 <비상선언>)가 흥행 예상을 빗나가면서 그에 따라 독립영화 시장도 더 경직되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③ 한국 독립영화의 정체기, 제작사·배급사·극장 관계자가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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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벌새> <윤희에게> <메기>가 연이어 개봉한 2019년은 명실상부 독립영화계의 호황기였다. 개별 작품의 개성이 뚜렷하고 완성도가 높아 입소문을 탔고, 팬층이 형성돼 N차 관람이 유행처럼 번져 <벌새>가 14만명, <윤희에게>가 11만명, <메기>가 3만명의 관객을 얻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2020년 초중반에도 크게 조명받은 독립영화들이 있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남매의 여름밤>의 경우 2만명대로 관객수는 어쩔 수 없이 감소했지만, 그럼에도 팬들의 두터운 지지를 얻었다. 그 뒤론 어땠나. 거론되는 작품의 수가 서서히 줄면서 팬데믹 3년차인 2022년엔 독립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 자체가 낮아진 느낌이다. 2022년 1월부터 10월까지 개봉한 101편의 독립영화를 놓고 보자면, 소재 면에서 다양해졌고 팬데믹으로 어려워진 제작 환경에서도 끈기 있게 주제를 밀고 나간 작품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② 점점 높아지는 관객 1만명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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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3년차, 위축된 현장과 축소된 예산에도 불구하고 창작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제작해왔다. 나름의 돌파구를 거쳐 완성된 영화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얼마나 유효하게 다가가는가. <씨네21>은 2022년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기획 기사를 통해 올해 독립영화에서 읽힌 경향을 짚고 제작과 배급, 마케팅, 소규모 독립예술영화관의 상황과 신진 창작자들이 마주한 고민을 다각도로 들어보았다. 오는 12월1일 개막하는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 상영작 중 기자들이 엄선한 9편의 영화와 ‘뉴웨이브 이후 대만영화의 기수들’ 초청전도 함께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올해의 독립영화 속 인물, 감독, 스탭을 꼽은 ‘별별 리스트’를 보며 지난 1년간 인상 깊게 본 작품의 요소들을 상기해보시기를.
2022년 1~10월 한국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 결과
*이어지는 기사에 한국독립영화결산 및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추천작 소개 기사가 계속
[기획] 2022 한국독립영화결산①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이후의 독립영화계는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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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전시’ 섹션은 TCCF 개막 6일 전, 11월3일부터 마지막 날인 13일까지 가장 오랜 시간 관객과 함께한 행사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작품 이용 시간이 마감됐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이회근 문화과학기술처장은 “이번 전시에선 단순히 테크놀로지와 영상 매체가 합작한 결과물 외에도 대만의 AR, VR, XR 기술이 어떤 성취를 이루어냈는지 폭넓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대로 총 19개의 AR, VR, XR 작품들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공감각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전시장의 풍경과 함께 그중 주목해야 할 몇몇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은 우주 컨셉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일종의 가상 세계를 탐험하는 것처럼 작품을 배치했다.
<The Man Who Couldn’t Leave>. 대만 작가 첸싱잉의 작품으로, 계엄령으로 다스려지던 1950년대 대만의 ‘백색 테러’ 시기를 VR로 경험할 수
[기획]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②, 경험하라, 체험하라, 탐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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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CF는 대만 콘텐츠의 강점을 선보이는 최고의 무대입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대만은 아시아 최고의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TCCF(Taiwan Creative Content Fest)가 11월9일, 타 이 베 이의 송산문화창의공원에 위치한 웨어하우스에서 성대한 개막식을 치렀다. TCCF는 2019년 대만 문화부가 설립했고, 대만 문화예술분야의 생산과 유통, 해외 시장 확대 등을 담당하는 대만콘텐츠진흥원(TAICCA)이 주최하는 국제 문화 콘텐츠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3회차를 맞이했으며 매년 11월, 대만의 콘텐츠 창작자와 제작사가 전세계 문화산업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장을 마련한다. 이번 해에는 ‘마켓, 피칭, 포럼, 이노베이션’ 등 네개 섹션을 기반으로 개발 단계인 IP부터 대만의 영화와 시리즈물, VR과 AR 등의 콘텐츠를 다각도로 소개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리융더 문화부 장관은 “올해는 TCCF의 규모를 확장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바이어, 전문가들을 초청했다”고 밝
[기획] 대만문화콘텐츠페스티벌①, 대만 콘텐츠의 현재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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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작가 모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을 수료하고, 올해 사업화 지원사업에 참여 중이다. 이 지원 사업을 통해 각자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권은령 2021년 서강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게임 업계에서 강력하게 추천하는 지원사업이라 익히 알고 있었다.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이 도제식 멘토링 방식으로 나의 작업물에 관해 1대1 멘토링을 해줬다면, 사업화 지원사업은 이 콘텐츠를 실질적으로 사업화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내 경우엔 멘토가 마케팅 전문가여서 모바일 게임에 적합한 마케팅 방식이나 메인 타깃층을 구체화하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모바일 게임은 마케팅이 90%를 차지한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중요한 요소였던 터라 큰 도움을 받았다. 비즈니스 모델(BM) 설계도 이번 지원사업을 통해 처음으로 해봤다.
김민하 2021년 서경대학교 산학협력단을 통해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지원을 받았
[기획]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창의인재 대담, “가장 큰 목표는 창작가가 꾸려낸 프로젝트를 다양한 형태로 사업화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