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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어떤 경향이 유행하면 그 반대편에서 삭제되는 것들이 있다. 지난해도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올해는 한국영화 중 눈에 띄는 여성 캐릭터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송형국 <범죄도시2>는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는 걸 넘어 아예 여성 인물의 등장 자체를 삭제해버린 수준이었다.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표면적으로 여성 인물을 다루는 데 있어 조심하는 기류가 있는데 그 속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중한 염려가 또 다른 배제로 형상화될 수 있다.
김소희 여성 주연 흥행 영화가 없다는 사실이 조급하게 느껴지거나 남성 주연 영화의 부흥을 보면서 여성 캐릭터의 부재를 의문시하지 않았다. 스스로 왜 그럴까 생각하니 OTT를 중심으로 한 시리즈 영화가 부상하고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옅어지면서 여성 주연 영화에 대한 갈증을 거의 느끼지 않게 된 것 같다. 이것이 영화의 위기를 증명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상업영화 바운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한국영화에서 지워져가는 것들과 다시 보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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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헤어질 결심>과 <탑건: 매버릭> 이야기를 해보자. 두 영화의 흥행 패턴이 몇년간 보지 못했던 모양새다. 이 두편은 조금 결이 다른데 각각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의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초반 반응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초반엔 흥행이 저조했다. 그런데 입소문으로 차츰 관객이 모여 어느새 200만명을 바라본다.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몰아주었던 승자 독식의 한국 배급 상황에서는 보기 힘든 모델이었다.
김소희 <헤어질 결심>은 처음 보고 나왔을 때 ‘뭐지?’라는 생각이 들고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다시 봐도 너무 피로하지 않고 발견되는 것들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손익분기점이라는 고지를 향해 팬들이 합심해서 달려가는 느낌이다. 관객 n차 관람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송형국 15살 딸이 <헤어질 결심>을 처음 보곤 잘 이해하지 못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관객과 극장,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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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헌트>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해보자.
김병규 사나이픽처스의 <헌트>를 보면서 기존 한국영화의 스타 이미지, 기호, 서사에 기대는 매너리즘의 끝에 다다랐다는 생각을 했다. <헌트>의 도쿄 액션 시퀀스의 긴장감은 그 장면만의 밀도가 아닌 여러 배우의 얼굴이 특수한 분장으로 특정한 장소에 배치됨으로써 탄생했다. 매너리즘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파편화, 코드화된 장면은 한국영화의 습관처럼 자주 반복된다.
송경원 반복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론 그게 색깔 있는 제작사의 본질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나이픽처스는 뚜렷한 특징이 있지 않나. 그만큼 자신들의 색깔을 구축해가는 곳도 그렇게 많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범죄도시2>를 제작하는 마동석 사단도 그렇게 보인다.
송형국 한국영화가 테크니컬한 측면에서 제작 역량을 쌓아가는 것은 확실히 눈에 띈다. 총격 장면이나 흥미진진하게 액션을 설계하는 솜씨 등 뻔하게 보일 수 있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한국영화 스토리텔링의 오래된 습관과 '작가'의 오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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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한국영화 빅4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왔다. <한산: 용의 출현>이 63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를 넘겼고 <헌트> <비상선언> <외계+인> 1부 순으로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2022년 8월22일 기준).
송형국 <외계+인>은 세간의 비난이 많은 데 비해 비평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흐름이 부족해서 아쉬웠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를 향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거대한 실패’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실패이기도 하다.
송경원 궁색한 말이긴 하지만 아직 2부가 공개되지 않았으니 사상 최대의 실패라고 하긴 조금 이르다. 결과가 아쉽지만 CJ가 <명량>의 속편이 아니라 해외 시장의 확장까지 염두에 두고 <외계+인>을 선택한 건 나름 합리적인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송형국 <신과 함께>의 경우 1편과 2편을 따로 봐도 문제없는 2부작이잖나. <외계+인>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안전한 기획의 승리와 멀티캐스팅 시대의 종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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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박찬욱, 봉준호가 있었다. 목록을 좀더 뒤져보면 강제규, 강우석, 이창동, 홍상수, 허진호, 임상수, 장준환 등 일일이 열거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은 감독들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중반의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규모의 폭발, 전문적인 프로덕션, 장르의 다변화 등 뒤돌아보면 질과 양에 모자람이 없었던 당시, 한국영화의 뿌리를 더듬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통찰이 하나 제시됐다. ‘한국영화의 과거는 한국영화가 아니라 미국영화이거나 유럽영화이거나 일본영화’라는 가설(<씨네21> 508호, ‘전영객잔: 최근 한국영화 스토리텔링의 몇 가지 특징’).
한국영화의 역사는 대체로 단절되거나 시대마다 망각을 거듭해왔다. 박찬욱, 봉준호의 자양분은 ‘한국’영화가 아니라 모든 ‘영화’에 있다. 2000년 이후 한국영화의 어떤 특질들은 대체로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장르들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한국영화에서 과거로부터 이어온 영화적 전통이라는 건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스토리텔링의 희미한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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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기대했지만 예상보다 파도가 크진 않았다. 올 여름 시장을 노린 한국영화 4편이 차례로 관객과 만난 후 조금 이른 성적표를 받아드는 중이다. 한국영화 시장이 역동적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올해만큼 변화의 조류가 급격하게, 그리고 자주 바뀐 적도 드물 것이다. 지난해 전세계 OTT 시장을 강타한 <오징어 게임> 이후 무게는 급격하게 OTT쪽으로 쏠려 2022년 설 연휴 극장가마저 한산했다. 그렇게 코로나19 팬데믹이 잡혀가는 분위기와 무관하게 극장이 침체 일로를 걷는가 싶더니 이번엔 첫 천만 영화 <범죄도시2>가 사랑을 받으며 다시 불을 지폈다. 올여름 극장가의 성적표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한두편의 흥행작을 넘어 향후 산업 전반의 흐름을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씨네21>에서는 2주에 걸쳐 올여름 시장과 상반기 한국영화를 분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우선 공개하는 건 한국영화에 대한 내적 분석, 비평적 목소리다.
지금 한국영화에 던지
[2022 상반기 한국영화 결산①] 분석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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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섹슈얼의 연애, 밀레니얼의 자아도취에 관한 최신의 마스터피스. 8월25일 극장가에 안착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이런 거창한 수식을 붙이는 모험을 감행해보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를 ‘실존적 장르’(Rom-coms are an existential form)로 명명하고, 영화의 본질이란 곧 시간의 감각을 새로이 축조하는 데 있다고 믿는 노르웨이의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빛의 도시 오슬로의 거리를 방황하며 빚어낸 우리 시대의 클래식을 소개한다. 한편의 영화가 감수성과 기술, 유행과 전통, 통찰과 유머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 영화는 그 최신의 대답이 되어줄 수도 있다.
불만족은 가능성의 다른 말이다. 막 서른이 된 율리에(르나트 라인제브)에겐 아직 이 두 가지를 모두 누릴 기회가 있다. 그래서 그녀는 신음한다. 더 완전한 삶은 지금 아닌 언젠가, 여기 아닌 어딘가에만 존재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과 직업이 삶을 최적화하리라는 헛된 갈망이 불
우리 시대의 로맨틱 코미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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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세 번째 영화 <놉>은 그가 왜 지금 가장 주목받는 감독 중 한 사람인지 증명한다. 흑백 차별 문제를 건드린 <겟 아웃>(2017), 미국의 계층 모순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어스>(2019)에 이어 이번에는 할리우드영화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 쇼 비즈니스 산업의 매혹과 중독에 대해 탐색한다. 호러와 스릴러를 기반으로 다층적인 의미를 심어둔 영화는 그야말로 해석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영화광들이 열광할 만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호이터 판호이테마 촬영감독의 카메라와 아이맥스 필름 등이 더해져 영화의 원초적인 쾌감, 스펙터클의 위력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조던 필의 야심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마침내 당도한 ‘나쁜 기적’,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파고파도 여전히 미지의 매혹을 지닌 작품. 새로운 시대의 (UFO) 영화에 대한 듀나 평론가의 해석을 전한다.
UFO의 최근 공식 명칭은 UAP이다. 미 국가정보국장실에서 처음 사용한
듀나 평론가가 본 조던 필 감독 신작 ‘놉’: 새로운 시대의 (UF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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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개 촬영감독이 2020년 촬영한 <비상선언>과 2021년 촬영한 <헌트>가 올해 8월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했다. 사상 초유의 항공 테러를 다룬 <비상선언>과 안기부를 배경으로 한 첩보 액션 영화 <헌트>는 관객을 긴박한 상황과 특정한 공간에 몰입시켜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가 있었지만 풀어나가는 과정은 달랐다.
- <비상선언>과 <헌트>는 각각 어떤 목표를 가진 작업이었나.
= 두 영화는 감독이 각자 지향하는 바가 뚜렷했다. 두 감독 다 레퍼런스를 준비해서 보여줬다. 한재림 감독의 레퍼런스는 기존의 영화 이미지가 아니라 실험영상이나 광고영상 등 파격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헌트>는 배경이 80년대 초반이라, 그 시절을 다룬 한국영화가 꽤 있는데도 이정재 감독은 그런 영화를 레퍼런스로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재 감독이 보여준 레퍼런스는 대부분 한국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잘 만든 외국 영화의 깔끔한 이미지
'헌트' '비상선언'의 이모개 촬영감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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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신드롬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영날이면 방송 이후 각종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그날의 에피소드로 뜨겁게 끓어오른다. 온라인에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드라마에 등장한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전문위원이 조사를 착수했고, 해양수산부는 모든 수족관을 디지털 수족관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드라마 한편에서 시작된 다양한 사회현상을 들여다보기 위해 신지수 임상심리사, 정지우 변호사, 유선주 TV칼럼니스트를 만났다.
유선주 드라마 비평지 <드라마틱>에서 기자로 일했다. <씨네21>을 비롯한 다수의 지면에 TV드라마에 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다.
신지수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심리실 슈퍼바이저. 정신장애와 심리학의 젠더 편향을 다룬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를 썼다.
정지우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임상심리사, 법조인, TV칼럼니스트가 말하는 우영우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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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야!” 끝까지 우영우(박은빈) 곁에 서서 부당함에 맞서길 주저하지 않고 퇴근까지 반납하며 맡은 사건을 준비하는 최수연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변호사라면 내 사건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배우 하윤경이 연기한 최수연은 한바다 로펌 소속으로 맡은 일을 꼼꼼히 해내는 정의로운 변호사이자 사랑에 있어선 실패도, 의외의 선택도 하는 인간적인 캐릭터다. 은연중 최수연을 떠올리며 만난 하윤경은, 기사에 녹음본을 첨부하고 싶을 정도로 다부지고 단단하게 답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르기까지, 배우 하윤경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았다.
- 수연은 유도리도 있고 자기 일처럼 온 힘을 다해 사건에 뛰어드는 변호사다. 변호사들이 실제 일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참고했나.
= 감독님과 작가님이 현장에서 많이 이야기해주셨고,재판 진행에 관한 영상 자료 같은 것도 보내주셔서 참고했다.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배우 하윤경, “좋은 사람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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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등 뒤에 서 있다가 어느샌가 성큼 다가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준호(강태오)는 우영우(박은빈)를 서포트하는 팀원이었지만 영우와 가까워질수록 시청자와의 거리도 급격하게 좁혀졌다. 영우와 연인이 되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준호의 대사가 인터넷 기사의 제목이 되고 ‘짤’로 확산될 만큼 화제다. 올여름 가장 주목받는 배우 강태오를 만났다. 극중 준호는 바다 앞에서 하염없이 돌고래를 기다리지만, 배우 강태오는 직접 물에 뛰어들어가 돌고래도 얼러 데려올 것 같은 명랑한 에너지로 가득했다.
- “섭섭한데요”라는 대사가 인기를 끌면서 ‘국민 섭섭남’으로 등극했다.
= 그게 중요한 장면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섭섭한데요”가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했을 텐데. 물론 그때도 최선을 다했다. (웃음)
-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준호의 비중이 높아진다. 작가의 고민과 애착이 많이 느껴지는 캐릭터다. 이준호 캐릭터를 어떻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배우 강태오, “항상 그곳에 있는 듬직한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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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상한’ 변호사의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우영우여야 했을까. 주인공이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회문(回文) 혹은 팰린드롬(palindrome)의 개념을 상기시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2020년 2월2일에 방영됐다면 더 근사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드라마의 영문 제목은 ‘strange’나 ‘odd’가 아닌 ‘extraordinary’로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를 설명한다. 문자 배열의 특수성 때문에 긍정적인 주목을 받는 회문처럼, 우영우의 장애는 그가 사건을 해결해갈수록 결함이 아닌 차별화된 개성으로 인정받는다. 일견 천재성에 국한돼 미디어에서 재현되던 자폐인 캐릭터 계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캐릭터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대상화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흥미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착한 드라마’, ‘힐링 드라마’로 압도적인 호평을 받던 초반보다 최근 에피소드들의 태도가 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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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남긴 것을 돌아보다
배우 강태오, 하윤경 인터뷰
전문가 3인의 대담
이미 올해의 드라마라 명명해도 부족함이 없다. 신생 채널의 한계를 뚫고 1화 시청률 0.9%(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서 최고 시청률 15.8%(9화, 2022년 8월18일 기준)까지 무서운 상승세를 보여줬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지만, 올해 가장 화제성 있는 성공작이 매화 다른 사회 이슈를 품고 후속 담론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8월18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한국 사회에 남긴 것을 되돌아보았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우영우(박은빈)가 오롯이 좌절할 수 있게 옆자리를 지키는 송무팀 이준호 역의 강태오와 봄날의 햇살 최수연 역의 하윤경도 <씨네21>과의 만남에 응했다. 마지막으로 신지수 임상심리사, 정지우 변호사, 유선주 TV칼럼니스트의 대담은 다양한 시각으로 드라마를 재해석하게 해줄 것이다.
우영우가 쏘아올린 작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