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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마지막 토요일, 달뜬 마음으로 귀가 후 한숨도 못 잤다. 7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프로덕션의 서울 공연을 만끽한 밤이었다. 두달 전 앙상블 배우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와 잠시 중단했다 재개한, 입장 전 서너 차례의 체온 검사와 문진표 작성 후 관람한 공연은 걱정을 잊게 할 정도로 황홀했다. 여운을 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TV를 틀었다. 유튜브를 연결해 본 클립은 조엘 슈마허의 영화 <오페라의 유령> 속 지하 호수 신. 무대에 오를 순 없었던 촛대 행렬과 깊은 물길을 보며, 영화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확인한 동시에 노래로 모든 걸 이해시킨 뮤지컬의 설득력을 되새겼다. 이어서 각국의 크리스틴과 팬텀을 차례로 소환해준 알고리즘은 슬슬 다른 작품들로 엄지를 잡아끌었다. 일레인 페이지가 부른 <Memory>(<캣츠>)를 듣고, <Defying Gravity>(<위키드>)를 옥주현과
'디어 에반 핸슨'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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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실린 <씨네21> 1332호에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린마누엘 미란다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엔칸토: 마법의 세계>의 음악을, <틱, 틱... 붐!> 연출을, 공연 실황 <해밀턴>의 주연과 작사·작곡을 도맡은 이로, 현재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모두에서 뮤지컬 1인자의 위용을 떨치는 중이다. 기세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프라인 공연이 어려워진 코로나19 이후 더 커지는 중이다. 그가 원작자인 뮤지컬 <인 더 하이츠>의 영화화 버전, 그의 영화 연출 데뷔작인 <틱, 틱... 붐!>, 그를 스타로 만든 뮤지컬 <해밀턴>의 공연 실황 모두 팬데믹 시기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스레 “뮤지컬영화가 새로운 트렌드가 될 거라 보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디즈니+ 가입자 수를 훌쩍 끌어올린 <해밀턴>의 사례로 “공연을 영화로 보여주는 게 관객을 빼앗기는 게 아
니라 오히려 팬층을 늘린다”는
뮤지컬이 스크린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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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4부부터는 완전히 달라진 세계가 펼쳐진다. 정진수 의장(유아인)이 사라지고 난 뒤 새진리회를 믿는 사람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사람들은 지옥의 고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여기 공포에 의해 억압되는 세상에 던져진 한 부부가 있다. 방송국 PD인 배영재(박정민)는 새진리회가 탐탁지 않다. 바쁜 업무 탓에 이제 막 출산한 아내 송소현(원진아)의 곁을 지켜주지 못할 때 죄 없는 아기에게 지옥의 고지가 내려진다. 절망에 좌절할 틈도 없이, 이들 부부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새진리회의 손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미쳐버린 세상 속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박정민 배우는 “부산국제영화제 때 3화까지만 공개됐는데 역할을 상세하게 소개해드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부산에서 반응이 좋았는데 내가 나오는 4화 이후로도 괜찮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하다”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송소현 역의 원진아 배우는 “<지옥>은 볼거리고 많고 무서우면서도
비틀린 신념 속 선택의 문제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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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신으로부터 죽음을 고지받고 목숨을 빼앗기는 시연을 겪어야 하는 <지옥>의 세계는 끔찍하고 미스터리하다. 최근 출연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대사를 소화한 배우 유아인이 대중을 압도하는 비뚤어진 카리스마를 내뿜는 고독한 인물 정진수를 연기한다. 그에 맞서 정의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상처 많은 형사 진경훈 역의 배우 양익준은 부성애 넘치는 아빠의 면모를 드러낸다. 시리즈의 절반에 해당하는 3화까지의 이야기가 정진수와 진경훈의 대립이라면 4화에서 6화에 이르는 극의 후반부에서는 극 전체를 아우르는 민혜진 변호사를 연기하는 배우 김현주의 진면모를 볼 수 있다. 세 배우는 작품의 어두운 세계관과 달리 즐거웠던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연상호 유니버스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정진수 의장, 민혜진 변호사, 진경훈 형사는 모두 <지옥>의 포문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캐릭터의 어떤 점에 끌려서 이 작품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시리즈를 관람한
"믿음과 두려움은 함께 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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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2003)
연상호 감독은 <염력>에서 초인적인 힘을 얻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세상과 맞설 때 필요한 동력과 효과에 대해 다룬 적 있다. <지옥>의 많은 인물들도 이런 저항정신을 지니고 있는데 <지옥>의 엔딩은 묘하게 곤 사토시 감독의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의 엔딩과 닮아 있다. 꿈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며 ‘꿈’, ‘망상’과 같은 주제를 다루던 곤 사토시 감독이 세 번째 장편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에서는 난데없이 도시 빈민층의 삶을 사실적인 터치로 그려낸다. 거친 알코올중독자와 소녀 같은 마음씨를 지닌 게이, 가출 소녀가 모여 도쿄 뒷골목에서 아이를 발견하게 되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구원’의 의미가 <지옥>의 메시지와 닮아 있다. 두 작품의 특정한 설정이 일치하는 것 또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이비&
의심하고 질문하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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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하는 시리즈 <지옥>은 <부산행> <반도>의 연상호 감독과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신과 지옥의 이미지를 배반하는 충격적인 설정과 사건을 통해 개인과 사회, 집단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일종의 재난 상황에서 이 사회는 어떤 대처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마치 테스트라도 하듯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지옥>이 제시하는 삶의 태도는 무엇일까. 연상호 감독이 창조한 지옥도 속으로 들어가보자.
천사의 고지, 그리고 사자의 시연에 의해 세상은 지옥이 되고 만다. <지옥>의 기본적인 설정은 신이라고 하는, 인간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영역의 어떤 힘이 물리적으로 발현되어 목숨을 거둬갈 수 있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선택에 의해 누군가는 천사로부터 자신의 사망 일
연상호 감독의 '지옥' 김현수 기자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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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가 함께 쓰고 그린 웹툰 <지옥>이 6부작 넷플릭스 시리즈로 재탄생했다. <지옥>은 웹툰이 완결되기도 전에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화제를 모았고 영국, 일본, 대만, 프랑스 등에서도 단행본이 출간됐다. ‘사람이 만들어가는 지옥’이라는 단행본 <지옥>의 소개 카피처럼 연상호 감독의 시리즈 <지옥>이 제시하는 세계의 풍경이 섬뜩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신의 분노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해치기 시작할 때 그것 역시 또 다른 ‘지옥’이라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상상 속 풍경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벌어질 수 있는 실재하는 지옥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이번호에서는 11월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 6부작 <지옥>이 지닌 이야기의 매력에 관해서 짚어보며 원작과의 닮은 점, 함께 보면 좋을 추천작을 소개한다. 시리즈의 주역인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원진아, 양익준 배우를 만나 연상호 감
지옥의 문이 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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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인간의 생존신고>
권하정, 김아현 / 한국 / 80분 / 2021년 / 본선 장편경쟁
하정과 아현이 가수 이승윤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그가 노래 경연 프로그램에 출전해 유명해지기 전인 2018년 말이다. 하정과 아현은 그들이 만든 단편영화 상영을 계기로 참여한 음악회에서 처음 이승윤과 만난다. 하정은 이승윤의 노래에 매료돼 그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노래 <무명성 지구인> 뮤직비디오 촬영본을 첨부해 그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낸다. 우려와 달리 흔쾌히 협업에 동의하는 답장을 받고 하정과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호기롭게 시작했어도 소품, 의상, 콘티, 편집까지 모든 작업을 스스로 돌파해야 하는 그들에게 뮤직비디오 제작은 난관의 연속이다. 영화는 모든 창작 활동의 고충을 축약한 작은 소품 같다. 무엇보다 후반으로 갈수록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아야 할 장면을 선택해 제시하는 전략이 영리하다. 김성찬 영화평론가
<포옹>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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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 영화감독들 사이에는 서로의 작품을 통해 배우고 교류하며, 그것을 자신의 연출 세계에 새롭게 적용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올해 서독제 해외초청 기획전은 ‘동시대 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이름들’이란 제목 아래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감독들의 작품 6편을 소개한다. 먼저 제7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며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해피 아워>를 만날 수 있다. 이 세편의 영화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배우, 연기, 대화’의 3요소가 집약된 작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를 연출한 미야케 쇼 감독의 초기 흑백영화 <플레이백>, 마리코 데쓰야 감독의 <미야모토>가 국내 최초로 상영된다. 이가라시 고헤이 감독이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연출한 <연인처럼 숨을 멈춰>도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기획
해외초청: 동시대 일본 영화의 가장 뜨거운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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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독립영화를 아우르고 재조명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11월25일부터 12월3일까지 9일간 CGV아트하우스 압구정과 CGV압구정에서 열린다. 올해 서독제는 연이어 등을 맞대고 나아간다는 의미로 ‘백투백’(Back to Back)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며, 극장과 영화가 단절된 과거가 되는 대신 서로 연대하기를 소망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독립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이자 소통의 공간인 서독제는 올해 개막작 <스프린터>를 포함해 총 120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올해 주목받은 화제의 독립영화와 함께 신인, 기성 감독들의 빛나는 연출작이 결집되어 있다.
개막을 앞두고 어떤 영화를 볼지 고민하는 관객을 위해 <씨네21>이 엄선한 11편의 추천작을 소개한다. 더불어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독립영화를 만날 수 있는 ‘독립영화 아카이브전: 아웃사이더들, 변방에서 중심으로’와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K-INDIE Back to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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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데뷔작은 잘 알려진 대로 <백색인>(1994)이 아니라, 며칠간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촬영한 스톱모션애니메이션 <낙원을 찾아서>(1992)다. 지난 11월7일, 제34회 도쿄국제영화제(TIFF)의 대표 프로그램, ‘아시아 라운지 컨버세이션 시리즈’를 통해 호소다 마모루 감독과 만난 봉준호 감독이 고백한 사실이다. “역시! <괴물> <옥자>에서 엄청난 ‘애니메이션 스피릿’을 느꼈어요!”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아이> <미래의 미라이> 등을 만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화답. 신작 준비차 잠시 LA에 체류 중이었던 봉준호 감독은 화상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꼼꼼한 관찰력과 집요한 애정 공세, 그리고 유머를 더해 동료 거장의 비기를 물었다. 두 감독이 셀애니메이션과 CG애니메이션의 조화를 고민하거나, 관객을 이끄는 설득력과 독창적인 표현법 사이의 줄다리기를 논하는 동안 준비된 1시간
작고 사소한 정감의 순간을, 애니메이션이라는 도구로 표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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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무실에선 어디로 눈길을 돌려도 디즈니의 친근한 캐릭터들과 눈을 맞출 수 있다. 미키 마우스와 인어공주, 백설공주 등 디즈니 프린세스들, <토이 스토리>의 친구들과 <스타워즈>의 R2D2까지 세대와 취향을 가로지르며 사랑받아온 캐릭터들이 손님을 반긴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의 출시 2년째 되는 날인 11월12일, 한국에서도 디즈니+가 출시됐다.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내셔널지오그래픽, 스타 등 기존 디즈니의 핵심 브랜드가 보유한 방대한 콘텐츠는 물론 디즈니+만의 독점 콘텐츠까지 OTT 서비스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즈니+ 한국 출시를 앞두고, 김소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DTC(Direct-to-Consumer) 사업부 총괄 상무를 만났다. 디즈니+만의 경쟁력과 디즈니+가 제작할 한국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디즈니라는 브랜드에 대한 김소연 상무의 높은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김소연 상무는 2
"콘텐츠의 확장성이 강점, 한국 창작 생태계의 판 키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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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가 은퇴한 뒤 다음 캡틴은 누가 이어받을 것인가. 이건 단순히 다음 히어로로 누가 등장하느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의 방패를 샘 윌슨/팔콘(앤서니 매키)에게 물려주었지만 캡틴의 자리는 좀더 특별하다. 캡틴 아메리카를 캡틴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슈퍼 솔저로서의 그의 능력이나 비브라늄 방패가 아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내내 캡틴 아메리카가 스스로 증명한 불굴의 투지와 정신력, 올바름에 대한 신념과 그가 거쳐왔던 크고 작은 시련이야말로 캡틴을 캡틴으로 만들어주는 힘이다. 다시 말해 캡틴은 하나의 히어로 이상의 상징적 존재이고, 그 왕좌를 이어받기 위해선 부단한 담금질 과정이 필요하다. <팔콘과 윈터 솔져>는 캡틴 아메리카가 남긴 유산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을 따라간다.
미 공군 파라레스큐 출신인 샘 윌슨은 레드윙 슈츠를 착용하고 히어로 팔콘으로 활약 중이다. 샘은 스티브 로
캡틴의 자격, 히어로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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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키(톰 히들스턴)는 매번 죽었다. 정확히는 죽은 척해왔다. 이 사랑스러운 거짓말쟁이는 매번 죽음을 위장하여 퇴장한 뒤 커튼 뒤에서 음모를 꾸미다 들키면 천연덕스럽게 돌아왔다. 하지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에게 목을 졸려 살해됐을 때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도 더이상 장난의 신을 만날 수 없으리라는 잔혹한 진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타노스는 선언한다. “이번엔 못 살아날 거다.” 그렇게 우리는 가슴 아픈 이별과 함께 로키를 떠나보냈다. 그런 줄 알았더니 장난의 신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또 한번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앞에 돌아왔다. 바로 시간 여행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무슨 억지냐고 따지고 싶다가도 바로 그 ‘로키’라면 납득이 간다. 총괄 제작자 스티븐 브루사드는 “타노스로 인한 죽음과 희생을 무효화하고 싶지 않았다. ‘농담이야, 없던 일로 해’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찾아낸 우회로가 바로 ‘TVA’(Time Variance Auth
로키 네버 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