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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는 것을 의식해본 것은 고3 수능이 끝난 이후가 처음이었다. 동생이 태권도 학원을 다닐 때 난 피아노를 배웠고, 점심시간 남자애들이 운동장을 차지하고 축구나 농구를 할 때 슬렁슬렁 그 주변을 산책하며 배를 꺼뜨렸고, 그리고 체육 시간! 피구는 정말 기분만 상하는 운동이다. 공을 던져 누군가를 맞히는 일에 재능이 없던 터라 공포에 질린 얼굴로 공을 피해다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는데, 갑자기 공을 맞으면 서럽고(머리나 얼굴에 맞으면 진짜 상처받고!) 남은 시간 지루하게 남들 하는 것만 구경해야 하는 심술궂은 스포츠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반드시 살을 빼야 한다는 분위기가 또래 집단 사이에 형성되자 덩달아 휩쓸려서 이제 운동을 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처음으로 생겼다. 요즘엔 모두가 말랐기 때문에 ‘초마름’으로 가야만 눈에 띌 수 있고 키에서 115~120을 뺀 체중을 만들어야 ‘미용 체중’에 다다를 수 있다나. 인터넷에서 본 다이어트 성공 후기는 한끼에 달걀 하나,
보이는 몸에서 말하는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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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축구화를 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선수를 좋아해서 사는 굿즈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축구에 미친 여자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저들과 같이 미쳐보고 싶었다. 개그우먼 신봉선은 연습장을 못 빌린 게 너무 서러워서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는데, 이렇게 좋아할 것을 왜 그가 40대가 되어서야 축구를 하게 한 걸까? Mnet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출연자들이 레슨을 하는 댄스 학원도 진지하게 알아봤다. 팝핀과 크럼프를 멋지게 보여주는 댄서들의 근육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저런 걸 할 수 있는 몸을 가지려면 어떤 운동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학자의 마음으로 분석하곤 한다. 그리고 김연경의 손바닥이, 지소연의 종아리가, 정유인의 어깨가 그 자체로 너무 멋있어 보인다. 최근 여성들의 다양한 운동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미디어가 담는 여성의 신체가 조명받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흐름은 여성배우의 움직임을 보다
마른 몸보다 멋진 몸을 갖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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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곳이 ‘필름’이나 ‘시네마’가 아닌, ‘활동사진’ (Motion Picture) 박물관이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영화로 가는 길’(The Path to Cinema) 전시는 시네마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직 랜턴 슬라이드, 광학 장치, 조에트로프(회전하게 만든 여러 장의 그림을 사용하여 작은 구멍을 통해 회전 드럼이 만드는 움직이는 환영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초기 애니메이션 기구.-편집자)가 그곳에 있다. 박물관은 활동사진의 오랜 역사에 관심이 있고 시네마는 그것의 일부분일 뿐이다.
미국영화만을 위한 곳이 아닌, 국제영화 박물관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전세계를 아우르기 위해 이 박물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카데미 시상식이 오랫동안 외국어영화상을 수여해왔지만 우리의 관심이 오스카상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마거릿 헤릭 도서관과 아카데미 필름 아카이브에 가면 아카데미가 오랫동안 세계영화를 보존하고 기록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클린 스튜어트,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최고 예술 프로그램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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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강>(1994)
햇빛 찬란한 누아르’라는 이름표가 잘 어울리는 켈리 라이카트의 데뷔작. 영화는 만사에 무심한 듯 나른한 여자 코지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엄마 없는 유년, 사랑 없는 결혼…. 녹록지 않은 가정사를 힘 쭉 빼고 들려주는 그의 독백은 공상으로 이어진다. 권태로운 삶에 연료를 붓기 위해 조금씩 시동을 걸어온 코지에게 드디어 사건다운 사건이 터진다. 한밤중 아이를 재우고 외출해 만난 남자 리와 술을 마시고 장난을 치다 주인 없는 총을 쏴버린 것. 실수로 살인자가 된 코지는 리와 도주하고, 형사인 코지의 아빠는 잃어버린 총을 찾아 헤맨다. 마이애미 이스트 해변에 가려던 이들이 길을 잘못 들면 마주한다는 ‘초원의 강’처럼, 코지는 사고가 준 긴장과 흥분에 점점 중독되어간다.
어딘가로 가고 싶지만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이들의 번민을 다뤄온 켈리 라이카트. 그의 첫작품은 노곤한 듯 펑키하고, 파격 끝에 기이한 운치를 피워낸다. 재즈 디바들의 초상을 끌어와 어제
길 위의 방랑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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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상황에서 박물관을 열었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 원래는 지난해에 박물관을 개관하기로 했던 걸로 안다.
그걸 다 얘기하려면 20시간 정도 걸릴 텐데 다들 시간이 되나? (좌중 폭소) 2011년에 박물관 구상을 시작해서 개관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아이디어로 시작해서 사적으로 자금을 지원받은 프로젝트가 완전히 실현되기에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미국에는 영화 박물관, 오로지 영화 만들기에 전념하는 박물관이 없다. 그래서 많은 실험과 반복, 대화가 필요했고, 그 결과 이 놀라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루비 슬리퍼를 보고 원주인이었던 데비 레이놀즈가 생각났다. 그는 생전 이런 곳이 만들어지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데비 레이놀즈의 놀라운 보존 작업을 기리기 위해 ‘데비 레이놀즈 보존 스튜디오’라고 명명한 곳을 만들었다. 그는 누구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 때 영화 기념품, 소품, 의상, 포스터를 수집했다
빌 크레이머,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디렉터 및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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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라이카트는 아마 예고편을 만들기가 가장 까다로운 감독 중 하나일 것이다.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또 모를까, 있을 법하고 기대할 여지가 있는 사건들이 도무지 발발되지 않거나 어물쩍 화면에서 생략된다. “로드 없는 로드 무비, 사랑 없는 사랑 이야기, 범죄 없는 범죄 이야기”라고 자평한 <초원의 강>은 몇발의 총성이 울리 지만 실제로 누군가가 죽는 순간은 보이지 않고, 훔친 자동차로 도주 하는 주인공들에겐 ‘보니와 클라이드’ 같은 히피 세대의 아이콘 같은 멋도 없다. 한때 반체제운동을 함께했지만 지금은 다른 길을 가는 두남자의 로드 무비 <올드 조이>는 온천에서 안마를 해줄 때 강력한 클로즈업을 제외하면 대부분 건조한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1845년 미국의 서부 팽창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도 <믹의 지름길>의 개척자와 인디언은 서로를 해치지 않는다. 두 남자의 죽음을 미리 보여주고는 지체 없이 1820년대 서부 개척 시대의 시작점으로 돌
동시대 미국영화의 가장 드물고 귀한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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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소문이 무성했다. 2019년 8월 텔루라이드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래,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 <퍼스트 카우>는 각종 매체의 연말 베스트에 꼽힌 것은 물론 세계 유수의 영화 시상식에서 20개 이상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국내 개봉 전임에도 불구하고 <씨네21> 1301호에 수록된 국내외 영화인 92명의 ‘2010-2020 영화 베스트’ 목록에 여러 차례 언급되기도 했다. 이 리스트에는 2010년대에 발표된 라이카트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믹의 지름길> <어떤 여자들>도 세번 이상씩 거론되었다. 라이카트의 세계는 이전부터 고유의 호흡으로 영화광들을 매혹해온 것이다. 그 정점에 다다른 <퍼스트 카우>는 서부 개척 시대 미국의 두 남자가 맺는 관계를 천연히 응시하며 새로운 관점의 서부극을 제시한다. “친절함, 우정, 충성, 음식의 질과 같은 사소하게 여겨지던 것들에 주목”(장 미셸 프로동)하는 이 작품을 “2010
미국 서부를 담아내는 새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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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의 루비 슬리퍼, 알프레드 히치콕이 <싸이코> 시나리오를 썼던 타자기, <스타워즈>의 R2-D2, H. R. 기거의 <에이리언> 캐릭터 디자인,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잭 스켈링톤의 머리, <드라큘라>에서 벨라 루고시가 입었던 망토,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 썰매 그리고 <죠스>에서 쓰인 1200파운드 무게의 상어 모형까지. 배우 톰 행크스는 이 공간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큰 매직 랜턴”이라고 묘사했다. “다른 도시에도 영화 박물관이 있지만 이곳은 파르테논 신전과 같은 장소가 될 것이다.” 9월30일 개관한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Academy Museum of Motion Pictures)에 아카데미 회원들을 포함한 저명인사들은 그들의 컬렉션을 기증하거나 기꺼이 대여했다. 가령 <시민 케인>의 로즈버드 썰매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박물관에 빌려준 것이다. 미국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영화의 신전으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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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대영박물관, 프랑스에 루브르박물관이 있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박물관은 앞으로 이곳이 될지도 모르겠다. 역사가 짧은 미국이 시작과 현재, 미래를 총망라하며 주도권을 쥐고 보여줄 수 있는 오브젝트는 역시, 영화다. 영화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 터를 잡은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이 9월30일 개관했다. 공식 오픈에 앞서 9월21일(현지 시각 기준)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이 개관식을 가졌다. 시민단체, 문화·엔터테인먼트 업계 핵심 리더 등은 물론 세계 각국의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참석해 박물관을 탐방했다. <씨네21>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프레스 투어에 참석했다. 먼저 임수연 기자의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 탐방기는 1300만점 이상의 박물관 컬렉션을 미리 엿볼 수 있게 할 것이다. 아카데미 영화 박물관을 이끄는 빌 크레이머 디렉터 및 대표이사와 재클린 스튜어트 최고 예술 프로그램 책임자의 인터뷰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의 비전과 야심을 보여준다.
3층 롤렉스 갤러리에
HOUSE OF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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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가정이다. 남편은 기업 임원이고, 아들은 결혼을 앞뒀으며, 딸은 성실하고, 반려견은 항상 가족의 곁을 지킨다.
하지만 옌 부인(천샹치)은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해 기 수련장을 찾고, 여러 약을 복용 중이다. <옌 씨의 수행>은 중년 여성의 억눌린 욕망과 심리를 사실적이며 섬세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다. <남색대문>(2002), <20 30 40>(2004), <요리대전>(2013) 등 수많은 대만영화의 촬영을 맡은 촬영 감독 출신의 치엔시앙 감독은 2014년 <회광 소나타>로 감독 데뷔했고, 이 영화가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회광 소나타>와 <옌 씨의 수행> 모두 지난 19회와 올해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 초청되었을 만큼 아시아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치엔시앙은 연출과 촬영을 동시에 하는 드문 사례의 감독이다.
- <옌 씨의 수행>은 어떻게 구상하게
'옌 씨의 수행' 치엔시앙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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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로맨스영화는 한국 극장가의 오랜 스테디셀러다.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나의 소녀시대>(2015) 등 많은 청춘영화들이 국내 관객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도 대만 청춘영화의 인기는 꺼질 줄 몰랐다. 지난 1년 동안 <남색대문> 극장판 <상견니> <해길랍> 등 여러 대만 로맨스영화가 침체된 한국 극장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대만 영화산업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청춘영화만 있는 게 아니다. <씨네21>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을 찾은 대만콘텐츠진흥원(TAICCA)을 통해 대만 영화산업의 트렌드와 다양한 개성의 대만영화 신작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대만콘텐츠진흥원은 2019년 6월 설립된 대만 문화부 산하의 기관이다. 영화뿐 아니라 텔레비전, 대중음악, 출판, 패션, 예술, 문화 기술
대만영화의 현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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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 <엘리트들> <인간수업>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 등 10대들의 일탈과 범죄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전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 KT 시즌과 플레이리스트가 공동 제작하는 <소년비행>(감독 조용익, 작가 정수윤) 또한 그 트렌드에 올라탄 오리지널 시리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마약 운반 수단으로 이용당한 18살 소녀 다정(원지안)은 시골로 가고, 그곳에서 소년 가장인 고등학생 윤탁(윤찬영)을 만나 어떤 사건을 겪는다. <소년비행>의 대본 리딩이 있었던 지난 9월 9일 오후, <씨네21>은 주연배우 원지안과 윤찬영, 정수윤 작가와 조용익 감독을 만나 이 시리즈를 미리 엿보았다. <소년비행>은 시즌1(10부작)과 시즌2(8부작) 촬영을 시작해 2022년 상반기 시즌 플랫폼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10대 마약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인물의 사연도, ‘10대 누아르’라
KT 시즌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비행' 리딩 현장, 정수윤 작가·조용익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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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리아> <엘리트들> <인간수업> <인터넷으로 마약을 파는 법> 등 10대들의 일탈과 범죄를 주요 소재로 다룬 작품들이 전세계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 KT 시즌과 플레이리스트가 공동 제작하는 <소년비행>(감독 조용익, 작가 정수윤) 또한 그 트렌드에 올라탄 오리지널 시리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마약 운반 수단으로 이용당한 18살 소녀 다정(원지안)은 시골로 가고, 그곳에서 소년 가장인 고등학생 윤탁(윤찬영)을 만나 어떤 사건을 겪는다. <소년비행>의 대본 리딩이 있었던 지난 9월 9일 오후, <씨네21>은 주연배우 원지안과 윤찬영, 정수윤 작가와 조용익 감독을 만나 이 시리즈를 미리 엿보았다. <소년비행>은 시즌1(10부작)과 시즌2(8부작) 촬영을 시작해 2022년 상반기 시즌 플랫폼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리액션이 액션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다"
대본 리딩 전에 몇 차례 만나서
KT 시즌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비행' 리딩 현장, 배우 원지안·윤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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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0세기 폭스의 라인업부터 마블까지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디즈니가 넷플릭스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이미 뜨거워지기 시작한 디지털 배급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워너미디어와 HBO를 보유한 미국 굴지의 통신회사 AT&T는 올해 디스커버리채널을 인수했고, 이에 질세라 OTT 시장의 선두 주자인 넷플릭스 또한 소니픽처스와 2022년부터 4년 동안 개봉하는 모든 소니 영화를 스트리밍 배급하는 독점 계약을 맺었다. 또한 다른 경쟁사에 비해 다소 수동적이었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도 올해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MGM을 84억5천만달러(약 9조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주고 합병했다.
이렇게 미국 회사들이 필사적으로 합병이나 독점 계약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 확보 때문이다. OTT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되도록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동시에 자신들만의 콘텐츠를 독점함으로써 다른 경쟁사에서 아예 손도 못대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런 점에서 O
'지옥' '마이 네임' '포비든' 미리 보는 부산국제영화제 온 스크린 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