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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배우 박지환의 활약은 돋보였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비롯해 영화 <범죄도시2> <한산: 용의 출현>까지, 봄여름 두 계절을 지나는 동안 박지환은 대중의 희로애락을 책임졌다. 그는 20대에 극단 활동을 시작했고, 2006년 영화 <짝패>를 통해 매체 연기를 처음 선보였다. 그 뒤로 <베를린>(2012), <무뢰한>(2014), <검사외전>(2015), <아수라>(2016), <범죄도시>(2017), <마약왕>(2017) 등 다양한 영화에서 조연으로 종횡무진했다. 그는 주로 강렬한 외모에 성질이 고약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래서일까. 박지환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강하고, 악하고, 거칠다. 하지만 박지환은 고정된 이미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굳이 마음 쓰지 않으려 한다. 물론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한산: 용의 출현', '범죄도시2'의 흥행 배우 박지환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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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형과 수렴형. 배우를 두 부류로 나눈다면, 임시완은 후자다. 비범함과 평범함을 오가는 <미생>의 장그래, 아름다우면서 퇴폐적인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조현수, 독기와 웃음기를 동시에 품은 <트레이서>의 황동주처럼 그에겐 경계 지대의 인물들이 잘 어울린다. 이중성은 배우에게 너무도 뛰어난 매력인 나머지 과시되기 십상이지만, 임시완은 자기 무기를 휘두르는 대신 속 안에 침착하게 품는다. 그의 연기는 언뜻 연약해 더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고, 지켜본 결과 그 기세가 집요하고 질기다는 사실 또한 인정하게 만든다.
그러나 완급 조절이나 힘 빼기 같은 기술적 표현으로는 배우 임시완을 근사치에 가깝게 서술하기 힘들다. 그는 오히려 깐깐하리만치 캐릭터의 당위와 진심을 파고들어 배우인 자신으로 하여금 인물을 완전히 믿도록 설득하고, 이 작업에 성공한 것 같으면 의도적인 방심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어떤 순간에 ‘무언가 애써 더 하
'비상선언'의 매력적인 빌런 배우 임시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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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교외에서 파리 시내까지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 교외에 살면서 먼 거리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늦지 않을까, 가다가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이 많을 테고 예쁘지도 않은 파리의 외곽 풍경을 보며 출근하는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보고 싶었다. 이 삶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면 디테일하게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텔에서 일하는 풍경,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풍경, 심지어 아이를 목욕시키는 풍경까지 일상의 디테일을 스크린에 담으려고 했다.
- 첫 장편 <충돌테스트 아글라에>(2017)에 이어 일하는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 내 관심사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의 이야기. 두 번째는 사람이 노동과 맺는 관계. 나는 커서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주체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들 한번쯤 해봄직한 질문에서 내 영화도 시작됐다. 프랑스에서는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을 단어
‘풀타임’ 에리크 그라벨 감독, “보편적이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삶과 노동에 대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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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만의 폭우로 출근시간 강변북로를 건너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린다는 속보가 들려온 8월. 전국적인 교통 파업으로 파리 외곽에서 시내로의 출퇴근이 어려워진 쥘리의 곤경을 담은 영화 <풀타임>은 스크린을 넘어 각자의 출근길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이 계속 차기만 할 뿐 아무도 내리지 않는 9호선 지하철역에 몸을 욱여넣어 출근해본 경험이 있다면, 강남역 혹은 광화문에서 경기도로 향하는 빨간 버스를 타기 위해 늘어선 행렬에 끼어본 적이 있다면 쥘리가 출퇴근길에 겪는 분투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을 테다. 반복적인 비트의 전자음악과 빠르게 움직이는 카메라워크는 어둑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도 ‘제때 도착할 수 있을까’ 초조하기만 한 쥘리의 출퇴근길을 긴박한 장르영화처럼 담아낸다.
도처에 놓인 그림자 노동
에리크 그라벨 감독은 여러 사람이 이렇게 근무시간 외에도 고된 분투를 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노동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쥘리라는 싱
그럴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사정, 에리크 그라벨 감독의 '풀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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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정우성을 26년 만에 한 스크린에 담아낼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다.”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는 <헌트>가 완성되기까지 몇년에 걸친 시간이 마치 몇 개월처럼 짧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신세계> <무뢰한> <아수라> <공작> 등 선 굵은 영화들을 제작해온 한재덕 대표에게도 <헌트>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다음에 하면 되지, 하다가는 영영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갈수록 커진다. 지금 이 순간 전력투구해도 원하는 바가 성사될까 말까다. 할 수 있는 건 할 수 있을 때, 지금 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를 헤치고 뚝심과 결기로 만들어진 <헌트>는 사나이픽처스의, 나아가 한국영화의 현재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중이다.
-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부문에서 먼저 공개한 뒤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공작>(2017)에 이어 두 번째다.
= 전략적으로 구상한 마케팅은
‘헌트’ 제작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보고 싶은 걸 끝까지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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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의 인물들이 1980년대 미국과 일본, 태국, 한국을 무대로 막힘없이 액션을 펼칠 수 있었던 데에는 박일현 미술감독과 허명행 무술감독의 힘이 컸다. <오케이 마담> <공작> <검사외전> <무뢰한> 등을 작업한 박일현 미술감독은 한국 올 로케이션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워싱턴과 도쿄, 방콕의 풍경을 스크린에 그대로 구현해냈다. <반도> <D·P> <킹덤: 아신전> <범죄도시2>에 이어 <헌트>에 참여한 허명행 무술감독은 이정재 감독이 요청한 ‘리얼리티와 박력’을 놓치지 않으면서 인물의 동선과 액션을 설계해나갔다.
방콕 총격 신의 액션 디자인
“이 많은 사람들의 동선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은 있었다. 그래서 상황의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아이디어를 많이 냈다. 대통령의 차에 큰 데미지를 주고 싶어서 저격병들로 하여금 마치 가미카제처럼
영화보고 읽으면 영화가 더 재밌어진다! : 주요 공간별로 살펴본 <헌트>의 미술과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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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데뷔작이 탄생했다. 이정재가 주연과 연출을 맡은 <헌트>는 쉴 틈 없는 전개와 밀도 높은 장면으로 관객을 만족시킨다. 시대적 모순을 담아낸 이야기,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의 대결을 보는 맛도 각별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액션의 짜임새와 정밀한 시대 재현에 있다. 1980년대 특유의 분위기를 생생히 살리는 가운데 미국, 일본, 한국, 태국을 무대로 다채로운 구성의 액션이 시각적 쾌감을 더한다. <씨네21>에서는 박일현 미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에게 <헌트>의 놀라운 장면들이 어떻게 완성되었는지 물었다. 여기에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가 또 다른 각도에서 <헌트>를 향한 여정을 안내해줄 것이다. <헌트>를 만든 사람들이 전하는 진짜 <헌트>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헌트'를 만든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 박일현 미술감독, 허명행 무술감독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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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제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 영화음악 작곡가 마켓이 열린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짐프 OST 마켓’은 신인 작곡가의 현장 데뷔를 지원하는 행사다. 올해로 17기 신입생을 모집한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수료생은 600여명에 달하지만 데뷔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지망생으로 남아 있다. 이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제천영화제가 직접 데뷔의 장을 마련했다. 예심을 통과한 다섯명의 최종 진출자는 영화제 기간 중 열리는 쇼케이스와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이전에 없던 기회를 모색할 예정이다. 산업 관계자들과 매칭에 성공할 경우 최대 5천만원의 음악 제작비도 지원한다. 제천영화음악아카데미 수료생들로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지만 쇼케이스 준비로 더욱 돈독해진 다섯명의 신인 작곡가를 만났다.
- 각자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만들어왔는지 소개해 달라.
손한묵 장편영화, 드라마 작업을 5년 정도 했다. 클래식 음악 전공인데 대학원에서는 전자음악을 했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에서 발굴한 신인 음악감독 5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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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예년처럼 단편애니메이션 지원사업을 기다리던 창작자들은 당혹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서울산업진흥원(Seoul Business Agency, 이하 SBA)에서 올해부터 예산을 대폭 줄여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애니메이션 발전연대를 꾸려 단 일주인 동안 9120명의 연명을 받아냈고 7월7일,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애니메이션 발전연대와 SBA는 거듭된 논의와 조율 끝에 7월29일, 다시 지원을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애니메이션 산업을 둘러싼 제도적 뒷받침의 필요성을 돌아보고 국내 애니메이션의 확장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장형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 회장, 강문주 애니메이션진흥위원회 위원장, 한창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선택전공 교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 SBA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지원 예산금을 크게 삭감하면서 업계의 반발이 있었다.
장형윤 SBA가 설립된 이듬해인 199
애니메이션 창작 산업인 3인의 대담 : 단편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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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는 국가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간부인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통해 정보기관 내부의 혈투를 그린다. 취조실의 이중유리는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보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정보기관은 그 반대로, 밖의 구석구석을 탐지하지만 밖에서 보기에는 불투명하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정보기관의 특징을 이용해 영화는 가정과 상상, 허구로 평행 세계를 만들었다. <헌트>는 한참 지나간 시대를 다루면서도 <남산의 부장들>보다 <26년>에 가까이 있다.
1983년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에 대한 테러 시도가 등장하는 도입부는 이 영화가 근본적·전반적으로 픽션임을 알린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없다. 영화 초반의 대통령 방미와 종반의 아웅산 테러는 실제로 각각 1983년 11월과 10월에 있었다. 영화 내내 도사린 ‘베드로 사냥’ 프로젝트도 창작인데, 극중 대통령의 세례명인 ‘베드로’는 실제
<헌트>와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 :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탄피처럼 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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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측면에서 예상을 기분 좋게 비켜간다. 배우 이정재가 첫 장편영화 연출작에서 기획·공동 각본·주연까지 맡았다는 점, 그가 필연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동반할 수 있는 전두환 신군부를 배경으로 삼았다는 점, 신인감독이 200억원대 제작비로 한국에서 흥행과 거리가 먼 첩보물에 도전했다는 점, 그런 작품이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정우성과 이정재가 스크린에서 재회한 작품이 됐다는 점까지. 8월10일 개봉을 앞둔 <헌트>가 이처럼 성공적인 상업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분석한 리뷰를 전한다. 더불어 김수민 시사평론가가 영화가 배경으로 삼은 198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 관해 보낸 글을 덧붙인다.
전두환 대통령의 사진으로 만든 인형이 불타오른다. 워싱턴 교민들의 시위를 지켜보던 CIA 태평양 아시아 지부장은 “이게 다 전두환 신군부가 무력으로 광주를 진압했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며 주한 미군은 물론 아시아 내 미국 입지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
‘감독’ 이정재의 첩보물, 베일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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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의 리얼리티를 찾다
‘관객이 체험한 것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한재림 감독과 스탭들의 목표는 확실했고, “모든 회의는 ‘무엇이 더 리얼한 재난 상황인가’를 묻는 것으로 귀결됐다”.(이목원 미술감독) <비상선언>팀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플라이트 93>과 해외 다큐멘터리들을 참고하며 다큐멘터리의 톤을 잡아나갔다. “필름 시절의 다큐멘터리는 특유의 질감이 있다. 조명을 제대로 치지 않아서 입자가 거칠어지는 건데, 솔직히 요즘 디지털 렌즈는 감도가 좋아서 밤에 찍어도 그리 거칠어지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는 일부러 후반작업을 통해 거친 질감을 덧씌우는 효과를 넣었다. 또 영화적인 시선이라기보다는 멀리서 지켜보며 포착하는 시선, 보기 좋게 만들어서 찍는 게 아니라 실제 거리감의 확보를 중시했다.”(이모개 촬영감독)
빅터 빌에서 공수한 보잉777 부품
<비상선언>의 기체 내부를 만든 이목원 미술감독은‘스카이코리아’의 내부 모습이 실제 보잉7
이모개 촬영감독, 이목원 미술감독이 말하는 ‘비상선언’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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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의 중첩, 뜨거운 믿음과 풍자를 동시에 꾀한 <비상선언>으로 한재림 감독이 5번째 영화를 선보인다. 중반부까지 돋보이는 항공 재난물로서의 준수한 완성도와 고강도 스트레스 상황을 장시간 끌고 나가는 후반부의 전개가 더해져 <비상선언>에 대한 세간의 추측과 평가는 개봉 당일부터 꽤나 엇갈리는 모양새다.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이 영화가 뜨거운 바이럴을 낳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재림 감독은 테러영화의 스릴로 영화를 이륙시킨 다음 재난 상황의 극한적 속성과 동시대 한국 사회의 살풍경에 대한 모사로 항로를 만든다. 이후 거듭되는 착륙의 위기 속에서 <비상선언>의 비행기가 최후의 연료로 택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용기, 그리고 집단의 희생 정신이다. 한재림 감독은 이 모든 것이 실제 현실의 일면이 불러낸 상상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거쳐, 어렵사리 회복한 극장가에 1년 만에 안착한 재난 블록버스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영화보다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 “‘비상선언’은 우리 시대 재난의 축소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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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행 비행기에 제약회사 출신의 테러리스트가 몸을 싣는다. 잠복기를 극도로 줄인 바이러스가 살포되자, 거대한 보잉777의 복도를 따라 승객들이 하나둘 기침과 가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한번 올라타면 착륙하기 전까지 꼼짝없이 상공에 갇혀 있어야만 하는 기내 스릴러의 제약을 극대화하고, 지상에서는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개인과 시스템의 혼란을 좇은 <비상선언>은 그 규모와 캐스팅(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은 물론, 재난 상황이 내포하는 지루한 유예의 시간과 고조된 감정까지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장면 너머에 쏟아부은 열정과 작품을 향한 호불호에 대한 생각까지, 한재림 감독을 만나 직접 들으며 뒷편의 야심과 공력의 과정을 정리했다. 한국에 전에 없던 사례를 처음 시도한 항공 스릴러로서의 도전은 이모개 촬영감독, 이목원 미술감독의 제작기로 전한다.
전례 없는 재난의 체험: 한재림 감독의 항공 스릴러 ‘비상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