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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수반돼야 할 교감은 어디까지일까. 선생과 학생이 눈을 맞추거나 서로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면 충분한 걸까. 코로나19와 함께 도래한 비대면 수업의 시대, 교육 현장에서는 복잡다단한 질문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반년간 작성된 하나의 대답이자 사례연구 같은 영화가 도착했다. <순환하는 밤>으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부문 감독상을 받고, 시각 예술가로서 여러 전시에 참여하는 등 형식과 소재에 있어 실험을 거듭해온 백종관 감독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의 2020년 2학기를 담은 <거의 새로운 인간>이다.
촬영은 “팬데믹으로 무대를 잃은 학생들이 그럼에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싶다”라는 학교의 제안을 받고 시작했다. 초유의 사태에 학기가 진행된 만큼 영화에는 다각도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교수가 강의하는 연습실을 그대로 찍은 영상이 있는가 하면, 웹캠을 타고 줌으로 송출된 버전이 따로 존재하며,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네모난 줌
'거의 새로운 인간' 백종관 감독, 팬데믹 시대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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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페미니즘 운동 가까이엔 늘 윤가현 감독의 카메라가 있었다. <바운더리>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여성단체 ‘불꽃페미액션’이 걸어온 길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윤가현이 주목한 4년은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로, 불꽃페미액션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인해 움츠러든 여성들에게 밤거리를 돌려주기 위한 ‘밤길걷기 집회’, 여성의 가슴 해방을 주장한 ‘찌찌 해방 운동’, 여성의 겨드랑이 털을 가시화한 ‘천하제일 겨털대회’ 등을 주도했다.
<바운더리>가 주목한 건 페미니즘 운동의 승리만이 아니라, 지난한 사회운동의 과정 그 자체다. 사회운동을 주도한 활동가들의 복잡한 내면까지 소상히 보여주는 게 다큐멘터리스트 윤가현의 선택이었다. “페미니즘 활동가들은 전선 최전방에 있어 겉으로 보기에 강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실패했던 운동도 있고 여성들에게조차 공격받았던 운동도 있었다. 이를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해
'바운더리' 윤가현 감독, 포기 없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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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이 닻을 올릴 무렵, 전세계인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지역이 있다. 사람들은 그 이름 뒤에 병명을 붙였고, 진행형 유령도시로 그곳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국 후베이성의 경제 중심지이자 양쯔강이 흐르는 교통 요충지 우한 이야기다. 팬데믹이 중대한 맥락을 부여하기 전부터, 우한에서 나고 자란 감독 주성저는 심상히 변해가는 고향의 풍경에 주목했다. 그는 이주노동자 가족을 따라간 <새로운 해>로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고, 라이브 스트리머들을 쫓은 <프레젠트.퍼펙트.>로 제48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타이거상을 수상하는 등 불안정한 배경에서 흔들리는 초상에 오래도록 집중해왔다.
우한을 찍은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20대를 보낸 그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떠나기 전의 고장을 알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매일 다른 우한!’(Wuhan, Different E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 주성저 감독 - 그래서 다시 우한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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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활동가였던 아버지에게 <디어 평양>을, 북한에 사는 오빠와 조카에게 <굿바이, 평양>을 띄워 보냈던 양영희 감독이 비로소 어머니에게 한통의 편지를 부쳤다. 남편이 떠나고 치매를 앓게 된 어머니가 문득 제주 4·3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어머니의 지난날을 향한 안부 묻기가 시작되었다. 일본과 한국, 북한 사이에 놓인 인간 강정희의 더께를 걷어내며 대화를 시도한 딸 양영희 곁에는 그의 남편이자 이 집안의 새로운 가족이 된 아라이 가오루가 함께였다. 그들 각자의 이데올로기를 뒤로한 채 가족의 이름으로 닭고기를 뜯던 시간이 영화에 기록되었다. 제13회 DMZ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양영희 감독을 만났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후반작업을 위해 한국에서 지냈다고.
=영화에 들어가는 애니메이션 작업까지 하느라 2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짧은 여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오래 있어본 적은 처음이다. 특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 - 아들을 북에 보낸 어머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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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야 제대로 된 대통령 선거를 치른 나라가 있다. 아프리카 대륙 중앙에 위치한 나라, 짐바브웨다. 짐바브웨는 1980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로 37년간 로버트 무가베의 독재 아래에 있었다. 무가베의 최측근이었던 에머슨 음낭가그와는 2017년 쿠데타를 일으키고는 스스로 후보가 되어 대선에 출마한다. 다큐멘터리스트 카밀라 닐손 감독이 헨리크 입센 촬영감독과 함께 짐바브웨를 찾은 건 대선을 한달 앞둔 때였다. 전작 <데모크라트>에서 대통령 연임을 제한한 짐바브웨 헌법 개정 과정을 다뤘던 닐손 감독은, 음낭가그와에 맞서는 야당 후보 넬슨 차미사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아 민주주의가 싹트려는 순간을 담았다.
촬영에 3년이 소요된 <데모크라트>와 달리 <프레지던트>는 2개월 만에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선거 전 1개월과 선거 후 1개월, 도합 2개월이면 충분했다. 관찰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따라 차미사의 속마음이 담긴 인터뷰 없이 정치인으로서 국민
'프레지던트' 카밀라 닐손 감독 -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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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다큐멘터리는 스크린을 넘어선다. 좁게는 관객의 지평을 넓히고 넓게는 사회적 담론을 촉발하고 마침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조직위원장 이재명, 집행위원장 정상진, 이하 DMZ영화제)가 9월 9일 개막식을 열고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 다큐멘터리의 현재를 확인하는 장을 펼친다. <씨네21>은 DMZ영화제 개막에 맞춰 국제경쟁부문에 오른 <프레지던트> 카밀라 닐손 감독과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 <강은 흐르고, 굽이치고, 지우고, 되비춘다> 주성저 감독에게 대화를 청했다. 각각 덴마크, 한국, 중국에 머물고 있는 다큐멘터리스트들을 온오프라인으로 만나 그들이 오랫동안 집중해온 다큐멘터리의 주제와 기록자로서 다큐멘터리스트의 자세에 대해 물었다.
한국경쟁부문에 오른 <바운더리> 윤가현 감독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의 면면을, <거의 새로운 인간> 백종관 감독은 코로나19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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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인 부모가 낳은 청인 자녀인 코다(CODA)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음악대학 오디션 도전기이자, 유일한 청인 구성원을 바라보는 농인 가족의 감정적 딜레마를 파고드는 <코다>를 보고 한 사람이 떠올랐다. 농인 부모의 세상을 코다의 시선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의 이길보라 감독이다.
한국 코다 모임 ‘CODA KOREA’의 대표인 이길보라 감독은, 같은 코다로서 주인공에게 깊이 이입했다며 서신을 작성해 <코다> 제작진에 보내는 실험에 동참해줬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작가 출신인 션 헤이더 감독과 <작은 신의 아이들>로 1986년 아카데미 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농인 배우로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말리 매틀린 또한 먼 곳에서 날아온 반짝이는 신호에 반갑게 화답했다.
이길보라 감독이 배우 말리 매틀린에게
우선 말하겠습니다. 저는 말리 매틀린 배우의 엄청난 팬입니다! 이렇게 인터
[코다②] 이길보라 감독과 '코다' 배우 말리 매틀린이 주고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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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다의 눈으로 그려낸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미국영화계를 들썩이고 있다. <코다>는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관객상, 앙상블상을 수상해 선댄스 37년 역사상 최초로 US 드라마틱 부문 4관왕을 달성했고, 애플TV는 아마존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코다>의 글로벌 방영권을 2500만달러(약 280억원)에 사들였다. 역대 선댄스 출품작 판매가로는 최고가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작가 션 헤이더가 프랑스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각색한 이 작품은, 농인 부모가 낳은 청인 자녀인 코다(CODA)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음악대학 오디션 도전기를 그린다.
어부의 딸로 가족의 생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통역사를 맡아온 루비는 고교 졸업을 앞두고 자기만의 길을 가기 위해 기꺼이 가족과 대치하는 시간을 갖는다. 로맨스가 섞인 10대 소녀의 성장담이자, 유일한 청인 구성원을 바라보는 농인 가족의 감정적 딜레마를 파
[코다①]이길보라 감독과 '코다' 션 헤이더 감독이 주고받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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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 비타민 하나를 건넸을 뿐인데 그 뒤로 영양제 이야기가 30분 동안 이어졌다. ‘나한테 별로 흥미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상대방이 “신체 외부의 균형을 잡기 위해 근육 코어 운동을 하듯이 신체 내부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미네랄 섭취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할 때였다. 소개팅을 마치고 주선해준 친구에게 이 상황을 보고했더니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래 그런 사람이 어디 있나? 사랑이란 첫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건데…! 그 사람이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면 처음 만난 날 ‘유산균은 여에스더’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걸…? 사랑을 <자유선언 토요대작전>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으로 배운 나는, ‘구애의 춤’을 추지 않는 상대가 야속했다.
온주완이 산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해>를 불렀을 때, 비로소 나는 사랑의 형체를 찾은 것 같았다. 그맘때 읽고 듣던 귀여니의 소설과 임창정의 노래도 모두 그게 사랑이 맞다고 했다. 상대를 향한 작은 관심
<산장미팅-장미의 전쟁>부터 <돌싱글즈>까지 ‘연애 예능’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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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호민이냐, 보현민재냐. 지금 가장 뜨거운 삼각관계 서사는 로맨스 드라마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별한 커플들이 한집에 모여 자신의 ‘X’와 새로운 인연을 포함한 이들과 자유롭게 데이트를 한다는 설정은 익숙함과 새로움, 서운함과 고마움, 경쟁심과 호기심 사이에 사랑이란 감정의 좌표를 고민하는 일종의 시험대가 됐다. 2기에 접어든 <나는 SOLO>는 녹화 두달 만에 (최종 선택에서 연결되지도 않은) 한 커플이 결혼식을 올렸고 또 다른 커플 역시 결혼을 앞두고 있다.
<체인지 데이즈>는 이별을 고민 중인 커플들이 한집에 모여 살며 각자의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 다른 이의 파트너와 데이트를 해본다는 파격적인 컨셉을 내놓았다. <돌싱글즈>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출연자들이 만나 미숙했던 과거를 갈무리하고 ‘결혼 2회차’에 도전한다. <투 핫!> <연애 실험: 블라인드 러브
요즘 다들 연애 예능 보더라?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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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호민 때문에 요즘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제발 재결합하길!” “성호랑 상미 헤어졌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못 헤어지는 것도 이해는 감.” “도대체 녹화 끝나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영철이랑 영숙이가 두달 만에 결혼을 한 거지?” “최준호, 배수진이 연결되지 않은 걸 보면 역시 자식 문제가 크긴 한 듯.” 처음엔 인기 드라마 주인공 이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 이름들이 전부 연애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반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시청자를 이토록 ‘과몰입’시키는 리얼리티 방송의 매력이 궁금해졌다. TV를 틀어도, 넷플릭스 같은 OTT에 들어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데이팅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시대다.
왜 창작자들은 끊임없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청자들은 지겨움을 토로하기보단 매번 새로운 것을 보듯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SOLO> <돌싱글즈> <체인지 데이즈> <환승연애> <솔로지옥> 제작진
연애 예능 프로그램의 화려한 부활… 왜 인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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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열여섯살 때부터 십년 이상 꾼 악몽을 받아쓴 것이다.” 2015년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당선작 <최선의 삶>의 작가 임솔아는 수상 소감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그가 스물아홉까지 꾼 꿈에는 세명의 중학생이 나온다. 강이는 늘 구부정히 서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모델 지망생 소영은 아이들을 주도한다. 아람은 언제나 마음 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동반 가출을 끝내고 돌아온 이후, 소영이 강이를 본격적으로 따돌리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알 수 없는 모양으로 어그러진다.
이야기는 2017년 영화 제작사 마일스톤컴퍼니 김형대 대표를 거쳐 이우정 감독에게 전해졌다. 단편 <옷 젖는 건 괜찮아> <개를 키워봐서 알아요> <애드벌룬>을 찍으며, 붙어 있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온 그다. 여자 고등학생들이 공유하는 잔인한 일상과 일상적 잔인함을 포착한 <애드벌룬>은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재상을 품에 안은
'최선의 삶' 이우정 감독, 임솔아 작가…악몽이 가져다줄 수 있는 최선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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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에서 정해인은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상대를 배려하느라 머뭇거리다가도 일순간 사랑 앞에 용감해지는 인물. 후회가 남지 않도록 사랑을 퍼주던 멜로 장르 속 정해인은 신기하게도 격정적이기보다 따스하게 기억된다. 그의 순한 눈빛과 미소, 안정감을 주는 목소리에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묘한 힘이 스며 있다.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가 되어 군복을 입었어도(특색 없는 사복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이 더 많지만) 정해인이 가진 특질은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
정해인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에서 D.P. 조장 한호열(구교환)과 짝을 이뤄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이병 안준호를 연기한다. 군대 내 괴롭힘을 목격하기도 하고 경험하기도 하는 안준호는 뜨겁게 치미는 복잡한 감정을 삼키며 조금씩 단단해져간다. 개가 되지 않고 인간이 되려는 안준호의
'D.P.' 정해인…흔들리는 청춘 사이, 굳건한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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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작가가 2015년부터 연재했던 만화 <D.P. 개의 날>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로 완성돼 지난 8월 27일 공개됐다.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Deserter Pursuit)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D.P.였던 김보통 작가의 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주인공 안준호는 탈영병을 쫓을수록 그들이 탈영할 수밖에 없었던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안준호의 시선은 자주 탈영병의 괴로움과 외로움에 가닿는다.
<뺑반>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감독이 연출을 맡은 6부작 시리즈 <D.P.> 역시 원작의 문제의식과 정서를 흡수한다. 군내 가혹행위와 그것을 알고도 묵인한 방관자들에 대한 일갈은 묵직하지만 <D.P.>는 대중 시리즈물로서의 재미 또한 놓치지 않는다. 탈영병을 쫓는 D.P. 안준호(정해인)와 한호열(구교환) 등 생생한 캐릭터들, 그들의 사연을 세심하게 엮은 각본, 캐릭터의
한준희 감독, 원작자 김보통 작가가 밝힌 'D.P.' 영상화 뒷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