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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만 놓고도 심상치 않은 기대감을 불러내더니, 8월18일 시리즈 공개와 동시에 2화 ‘주오남’, 3화 ‘김경자’를 연달아 본 시청자들을 아연실색게 했다. 지금 안재홍은 <마스크걸>이 지닌 화제성의 중심에 있다. 올봄 영화 <리바운드>에서 실존 인물을 연기하면서 이미 굳건한 존재감을 보여주었음에도, <마스크걸>에서 다시 만난 안재홍의 얼굴엔 익숙한 구석이 없다. 탈모와 피부병 분장을 한 안재홍이 연기하는 인물은 주인공 김모미의 직장 동료이자 일본 애니메이션 오타쿠인 주오남. 외모 콤플렉스를 숨긴 채 인터넷 방송의 스타가 된 마스크걸에게 동질감을 넘어 사랑을 느끼는 남자다. 이른 죽음 이후에도 유령처럼 떠도는 주오남의 잔상은 자칫 희화화에 머무를 위험이 있는 캐릭터에 정확한 표정과 순정을 투여한 배우의 자질에 힘입어 선명히 지속된다.
“어떤 작품과 만날지는 내가 재단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이라지만 <마스크걸>이 결코 흔치 않은
[기획] '변신은 나의 성질', 정봉이에서 주오남까지, 배우 안재홍이 자신의 지도를 개척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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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얼굴을 완전히 달리 보이게 한다. 아무리 에피소드별 주인공이 바뀌는 독특한 구성에 힘입었대도 혹은 훌륭한 분장이 그들을 도왔대도 신묘한 일이다. <마스크걸>의 두 배우, 염혜란과 안재홍이 그것을 해냈다. 이들은 김모미로 뭉친 세명의 디바들(고현정, 나나, 이한별) 사이에서도 캐릭터의 파급력을 오롯이 심어넣으며 자기만의 기세로 빛난다. 배우 안재홍, 염혜란과의 만남을 토대로 두 배우가 쇄신해온 개성 있는 행보를 되짚어보았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마스크걸> 안재홍, 염혜란 배우 기획이 계속됩니다.
[기획] 연기라는 이름의, 냉정과 열정 사이, <마스크걸>에서 재확인한 배우 안재홍과 염혜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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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세계관을 새롭게 확장하는 것을 하나의 놀이문화로 정착시킨 팬들은 문 밖으로 나가 스스로 장을 마련한다. 이들은 작품 안에만 존재하던 인물을 현실로 꺼내 살아 숨쉬게 하고, 작품이 채 다루지 않은 이야기 공백을 애정 담긴 상상으로 채워나간다. 즐거운 과몰입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팬덤의 주체적인 탐험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주인공이 어딘가 살아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우리 모두가 연결된 듯한 감각을 일깨운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THE FIRST: 송태섭 생일 전시&광고
<슬램덩크> 팬들은 북산고등학교 농구부의 포인트가드 송태섭 생일(7월31일)을 맞이하여 갤러리 전시와 영상 광고를 진행했다. 후원자를 대상으로 펼쳐진 갤러리는 송태섭을 사랑하는 창작자들의 다채로운 2차 창작품을 내걸었다. 이들은 새로운 그림을 통해 NBA 선수로 거듭난 송태섭, 유명 잡지 화보를 찍은 송태섭 등 원작에서 볼 수 없던 농구부 소년의 미래를 빼곡하게 상상했다. 또 가족
[기획] 팬들이 직접 완성한 과몰입의 자리들, ‘우리 애들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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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의 어느 평온한 날, <슬램덩크> 팬들에게 일본으로부터 깜짝 소식이 전해졌다. 8월3일 오전 11시30분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인터하이 상영회가 열린다는 것이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등에서도 같은 시각에 같은 상영회가 열린다고 했다. 8월3일 오전 11시30분. 도대체 이날이 무슨 날인가. 원작 만화 <슬램덩크>에서 북산고 농구부가 고교최강자인 산왕공고 농구부와 경기를 치른 날이 아닌가. 이 인터하이 상영은 원작 만화와 똑같은 상황을 구현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초대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극장은 경기장이 되고, 관객은 관중이 되는 과몰입의 산 현장이 펼쳐지는 셈이다.
영화산업의 새로운 활로, 과몰입
인터하이 상영회를 본 사람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바로 인터하이 티켓. 실제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처럼 경기 티켓을 나눠주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티켓 디자인이다. 영화에서 전년도 우승 고교를 포스터(송태섭이
[기획] 8월3일 오전 11시30분, 극장에서 응원할 시간,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인터하이 상영으로 보는 과몰입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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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권하정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의 라이브 공연을 관람한다. 공연 이후 이승윤의 팬이 된 권하정 감독은 동서대학교 영화과 입학 동기인 김아현·구은하 감독과 의기투합해 2020년 이승윤의 노래 <무명성 지구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그에게 직접 헌사한다. 그리고 이승윤에게 본인이 직접 출연하는 뮤직비디오를 함께 만들어볼 것을 의뢰한다. 이들의 염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응답받는다. “내내 울다가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 어떤 꿈을 포기하셨는지는 제가 알 수 없지만 하정님 길에 제가, 제 노래가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함께하고 싶습니다. 권하정 감독님의 팬 이승윤 올림.” 이 모든 일은 이승윤이 2021년 리부트 오디션 <싱어게인-무명가수전>(이하 <싱어게인>) 시즌1에서 우승하며 스타덤에 오르기 전 일어난 기적이다.
두 친구와 함께 이승윤의 곡 <영웅 수집가>의 뮤직비디오를 만든 권하정 감독은 성공
[기획] ‘듣보인간의 생존신고’, 재밌으면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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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방영된 드라마 <다모>의 팬덤 이름은 ‘다모 폐인’이다. 당시 다소 과격하게 지어진 이 명칭은 ‘폐인이 될 만큼 <다모>가 좋다’는 직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같은 해에 방영된 <대장금> 또한 ‘애호 대장금’이라는 이름의 팬클럽이 존재했다. 장금이(이영애)의 스승인 한 상궁(양미경)은 10회 만에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었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애호 대장금의 ‘한 상궁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이 이어지면서 작품에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콘텐츠는 과몰입한 팬덤과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이루며 성장한다. 폐인이 될 만큼 중독되었다는 사람들은 한 시대를 상징하는 드라마 열풍의 증거가 되고, 가상 인물을 사랑한 팬들은 그의 목숨을 연장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혜택은 시장 논리에도 적용된다. 과몰입한 팬이 많으면 많을수록 콘텐츠는 보다 강한 힘을 얻게 된다. 방영 회차가 늘거나 다음 시즌이 확정되는 등 제작이 보장되기
[기획] 팬덤과 과몰입,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과몰입은 영화 관람 형태를 어떻게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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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디깅 모멘텀(Digging Momentum)의 시대다. 디깅 모멘텀이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를 일컫는다. 보편적 언어로는 마니아, 조금 더 편하게 말하자면 덕후에 가깝다. 이번 특집에서는 팬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과몰입하는 풍경이 콘텐츠 시장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현상적으로 정리해보았다. 먼저 <스즈메의 문단속> <최애의 아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통해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어떻게 과몰입 콘텐츠를 스스로 완성했으며 그것이 어떤 성과를 냈는지 들여다보았다. 좋아하는 것을 소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 문화를 만들어가는 팬덤의 주체적 태도가 눈에 띈다. 이어 과몰입한 나머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창작한 이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영화 <듣보인간의 생존신고>의 권하정, 김아현 감독과 이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 이승윤, 그리고 영화를 함께 만들어간 구은하씨의
[기획] 과몰입이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영향, '덕후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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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팀워크의 승리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한여름에 겨울 분장을 해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고생이 심했다. 한컷이 끝날 때마다 달려가서 배우들의 분장을 고치는 일의 반복이었다. 마치 레이싱팀처럼 일사불란하게 작업하고 빠지는, 그야말로 팀워크의 승리였다. 함께 고생한 만큼 유달리 애정이 더 가는 작품이다. 나중에 시사회 때 스크린을 보고 벅차서 우리끼리 따로 회식도 했다. (웃음) 영탁은 이병헌 배우의 괴력을 새삼 확인한 캐릭터다. 그는 디테일한 설정을 추가하면 그걸 마치 제 몸처럼 소화한다. 이병헌 배우만큼 성실하고 준비된 배우를 본 적이 없다. 오래 알고 지낸 만큼 서로 놀리면서 작업을 하는데, 너무 과한 거 아니냐고 투덜대면서도 캐릭터가 잘 표현되면 누구보다 기뻐하는 게 느껴진다. 배우 얼굴을 다르게 만진다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워낙 바빠서 분장 테스트 촬영을 제대로 못하고 넘어갈 뻔했는데,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해서
[기획] ‘콘크리트 유토피아’, ‘마스크걸’ 특수분장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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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집단 창작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종종 그 당연한 사실을 잊는다. 촬영, 미술, VFX 등 대표적인 몇몇 파트는 거론되기도 하지만 분장은 각광받는 경우가 드문 게 현실이다. 최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이병헌,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에서 염혜란, 안재홍의 강렬하고 개성 넘치는 연기가 화제를 모으며 덩달아 그들이 맡은 캐릭터의 분장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모든 캐릭터들의 탄생을 도운 송종희 분장감독은 분장 파트를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배우의 기존 이미지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얼굴을 발견해내는 것. 동시에 작품 속 캐릭터를 넘어서거나 잡아먹지 않는 것.” 배우의 육체를 빌려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분장 작업은 캐릭터에 생명을 부여하는 종합예술로 불러 마땅하다.
<그들만의 세상>(1996)을 통해 분장감독으로 입봉한 뒤 <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기획] “배우와 호흡 맞춰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마스크걸’ 송종희 분장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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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대충 수습하고 살자”던 오대수의 체념이 무색하게 <올드보이>는 아직도 오늘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2003년 11월21일 국내 개봉해 올해로 20주년.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의 기둥인 <올드보이>는 동시대의 클래식으로 불린다. 북미 배급사 네온이 20주년 재개봉과 함께 뜻밖의 흥행 성적을 받아들고 있는 배경에는 <올드보이>가 21세기 코리안 시네마의 한 상징이자 유수의 감독들이 창작의 영감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사실도 축적돼 있다. 비록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자신들의 화양연화가 기록된 이 작품이 현재 진행형의 영화라는 점에 이견이 없는 ‘오대수의 친구들’이 20주년을 기념해 흔쾌히 모였다. 10주년 기념 화보에 이어 20주년 기념 행사의 매개로 함께한 <씨네21> 독점 GV 현장을 전한다. “여기 <올드보이>를 처음 보신 분도 계세요? 어떠셨어요?” 박찬욱 감독의 느긋한 말 걸기로 시작된 관객과의 대화는 장
[기획] “그때는 우리 모두 미쳐 있었으니까”, <올드보이> 개봉 20주년 맞이 박찬욱 감독·배우 최민식, 유지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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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타주 속 은밀한 동조자 <비밀의 언덕> / 김소희
<비밀의 언덕>에서 마음이 흔들린 순간은 경희(장선)가 시에서 주최한 어린이 글짓기 대회 당선작이 실린 신문을 보는 장면에서였다. 단순하게는 경희의 반응이 상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자식을 무한히 자랑스러워할 부모의 존재를 연상시켰기 때문일 것이나, 감동의 경로를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이 장면은 혜진(장재희)이 대상 당선작을 낭독하는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가운데, 교내 방송을 통해 이를 청취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일련의 숏과 연속해서 등장한다. 즉 경희는 대상 수상작 청자의 자리에 불려나온 셈이다. 하지만 이어진 숏에서 경희는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명은(문승아)의 글을 가위로 오려내고 있을 뿐이다. 즉 이 장면은 대상 수상작의 무거움에 짓눌린 일련의 리액션을 중단하는 역할을 하기에 특별하다. 만약 명은이 대상을 받아들였다면 그 숏은 지금과 같은 힘을 지니기는커녕 홀로 무거움을 감내하는
[기획] 김소희, 김병규, 송경원, 송형국 평론가가 뽑은 2023년 한국영화의 결정적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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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문>과 <비공식작전>의 경우, 신파조차 남기지 못한
송경원 <밀수>와 <콘트리트 유토피아>가 나름 유의미한 얼룩들을 남겼다면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한국영화의 악습과 그림자를 증명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송형국 <더 문>과 <비공식작전>은 국적과 언어만 다를 뿐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문법과 똑같다. 빅4 영화의 홍보 포인트는 <비공식작전>의 자동차 추격 장면, <밀수>의 수중 액션 같은 것들이었고 이에 따라 기사가 생산됐다. <모가디슈>의 현지 프로덕션도 같은 예다. 분명 이런 지점은 성취가 맞다. 한국영화의 제작 역량은 이제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 상징적인 예가 <헌트>다. 연출 수업을 오래 받지 않은 신인감독이 영화계의 A급 제작진과 함께 정성껏 제작했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기술적 수준을 증명했다. 지난 20~30년간 한국영화가 쌓아온 자
[기획] “2023년 한국 여름 영화에는 ‘지금’, ‘여기’, ‘현재’가 없다.”, 한국 여름영화 ‘BIG4’ 대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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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한국영화 빅4의 흥행 성적이 대략 나온 상황이다.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좋은 반응을 얻었고 <비공식작전> <더 문>이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올여름 시장에 대한 총평부터 해보자.
김병규 우선 네 영화를 왜 묶어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 시기가 비슷할 뿐 만들어진 시기도 다르고, 대중적인 선택을 받은 것도 아니다, 모든 작품이 유의미한 담론을 형성한 작품인 것 또한 아니다. 몇몇 텐트폴 영화를 소위 ‘빅4’라고 부르는 관습이 정확한 맥락인지 회의가 든다. 아주 인위적인 마케팅 용어다. 그런데 영화 잡지나 비평가들이 이런 무기력한 관습을 따라야 하는지 의문이다.
송경원 왜 굳이 빅4로 묶어야 하냐는 질문부터 해결해야겠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여름 전에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지면서 오히려 여름 시장이 축소되는 모양새다. 사실 텐트폴 영화는
[기획] ‘최근 한국 영화는 어떤 경향성을 가지는가’, 한국 여름영화 ‘BIG4’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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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극장가는 한해의 경향과 흐름을 파악해볼 수 있는 중요한 무대다. 올여름 극장가를 공략한 네편의 대작 한국영화, 이른바 빅4 중 선두를 차지한 건 류승완 감독의 <밀수>다. <밀수>가 483만명으로 제일 먼저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그 뒤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295만 관객의 선택을 받았다. <비공식작전>은 104만명, <더 문>은 50만 관객을 동원했다(2023년 8월24일 기준). <밀수>는 긍정적인 반응과 흥행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대진표에서 맞붙은 <오펜하이머> 때문에 아직 손익분기를 달성하진 못했다. 한국 대작 SF로 기대를 모았던 <더 문>과 버디 액션영화 <비공식작전>은 흥행에 실패하며 아쉬운 결과를 남겼다. 올여름 한국영화가 선보인 네편의 영화를 놓고 ‘프런트 라인’ 비평지면을 맡고 있는 김소희, 김병규, 송형국,
[기획]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한국 여름영화 ‘BIG4’를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