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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포기해라. 이제 왕이 돌아왔으니!”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인용해 소리치던 바워리 킹이 웃으며 뒤를 돌아본다. “준비됐어?” 나무 기둥에 주먹을 내리꽂던 존 윅이 처음으로 입을 연다. “그래.” 최고회의에 “열 좀 받았냐”는 바워리 킹의 질문에 바닥에 널브러진 존이 “그래”라고 답했던 <존 윅3: 파라벨룸>의 결말을 상기해보자. 그 끝을 그대로 이으며 마침내, 존 윅이 귀환한 것이다.
오프닝 시퀀스가 주지하듯 <존 윅4>는 최고회의에 가열차게 반격을 가하는 존 윅을 좇는다. 세계관이 확장됨에 따라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로케이션도 다양해졌고 각 나라의 랜드마크를 활용한 독특한 액션 신들이 펼쳐진다. 액션에 힘을 싣는 시리즈의 특성을 강화하되 선악 구도의 인물들을 새로이 배치해 존 윅의 주변 관계를 다변화했다. “팬들을 위해 넘치도록 채워진 선물”(<버라이어티>)과 다름없는 이 영화는 현재까지 총 2억
[기획] '존 윅4'를 계기로 돌아보는 '존 윅' 시리즈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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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하 이사는 번역 과정에 자기만의 철칙을 두는 것으로 안다. 작품이 영원히 남기 때문에 특정 세대의 유행어를 지양하고, 일본 관객은 웃지만 한국 관객은 웃지 않는 번역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강민하 번역가로서나 통역가로서 내가 하는 일은 명확한 의미 전달이다. 한 작품이 관객에게 잘 수용되기 위해 자연스러운 의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이 철칙에는 변함이 없다. 특히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은 10대 친구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세대적으로 사어가 된 말을 피하려 했다. 유행어와 줄임말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오래된 느낌의 말은 고등학생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스즈메의 문단속> 엔딩곡에 ‘천변지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게 천재지변과는 뉘앙스가 약간 다르다. 천재지변이 자연현상에서 비롯한 재난을 말한다면 천변지이는 자연적인 변화를 이른다. 그런데 내부 시사 중 세대별로 이
[기획] 일본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관객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강상욱, 김민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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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이 누적 관객수 390만명에 이르며 역대 국내 개봉 일본영화 흥행 2위를 차지했다. 1위는 현재 441만명을 기록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대 1, 2위를 앞다투는 두 작품의 전면전을 실시간으로 보는 지금, 문득 근원적인 질문이 든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어떻게 한국에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 있었을까. 뛰어난 스토리와 아름다운 표현 기법 등 감독의 고유 영역을 잠시 차치하고, 문화와 정서, 감수성이 서로 다른 국가에서 공감과 환호를 얻을 수 있었던 배경을 탐색하기 위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국내에 소개한 영화 수입사 ‘미디어캐슬’을 찾았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일찍이 알아보고 그의 작품을 수입하기 위해 오랫동안 전략적 모색을 꾀한 강상욱 대표와 신카이 마코토를 포함한 다양한 일본영화를 번역한 강민하 이사를 만났다. 이들은 <스즈메의 문단속>이 고공행진할 줄 예상했을까.
- (4월6일 기준) <스즈메의
[기획] “신카이 마코토에겐 형식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강상욱, 강민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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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에 따른 올바른 표기는 '하라 게이이치'가 맞으나 영화사의 요청으로 '하라 케이이치'로 표기한다.”
하라 케이이치 감독은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시리즈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 연출자다. 특히 9기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어른 제국의 역습>(2001)은 어른들을 울리는 동화로 정평나 있다. 그 밖에도 연출작마다 일본 아카데미 우수상을 놓치지 않고 수상한 하라 케이이치 감독이 또 한번 가슴을 울릴 동화를 들고 찾아왔다. 국내 개봉을 앞둔 <거울 속 외딴 성>은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함께 제46회 일본 아카데미 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다. 등교를 거부한 학생 문제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하라 케이이치가 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지를 증명한다. 그에게 일본 애니메이션의 매력과 저력에 대해 물었다.
- 일본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부문
[기획] ‘거울 속 외딴 성’ 하라 케이이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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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관객수 439만명에 이른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열기가 아직도 뜨겁다. 2023년 1월4일 개봉 이후, 벚꽃이 다 저문 지금까지 장기 상영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열광적인 신드롬이다. 실제로 원작 <슬램덩크>의 신장재편판은 100만부를 달성했고, 농놀(농구 놀이)을 위해 공터와 체육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공식 굿즈를 쟁취하기 위한 클릭 전쟁과 아이맥스 버전 개봉 등 새로운 현상이 펼쳐지는 와중에 엔딩곡 <第ゼロ感>(제ZERO감)을 작곡하고 부른 3인조 밴드 텐피트(10-FEET)가 라이브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第ゼロ感>이 <더 퍼스트 슬램덩크> 흥행의 이유라면 텐피트의 내한은 흥행의 결과다. 인과관계 사이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파헤치기 위해 라이브 공연 전 텐피트 멤버를 만났다. 보컬과 기타 연주를 맡은 다쿠마, 드럼 연주와 코러스의 고이치, 베이스 연주와 보컬의 나오키와의 대담이다.
[기획] 텐피트 내한공연, 라이브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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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의 극장가를 석권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시작하여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를 거쳐,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이어진 애니메이션 붐은 4월 현재도 쉬이 꺼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그렇다면 일본의 현지 상황은 어떨까?
지난 2022년,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흥행은 700억엔에 육박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해에 개봉한 100여개의 작품들 중 흥행 수익이 10억엔을 넘긴 것은 열 작품 남짓하며, 실제로는 100억엔 클럽에 들어간 <원피스 필름 레드> <극장판 주술회전 0> <스즈메의 문단속>이 대부분의 수익을 독점했다.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생태계는 실사영화와 마찬가지로 작품들이 놓인 여건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나뉜다. 그 최상위에 존재하는 그룹이 바로 <명탐정 코난>이나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g
[기획] 2022~2023년 일본 애니메이션 경향과 시장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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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이 남긴 망령과의 사투가 시작된 한국영화
두 번째 착시는 시장 전반 상황에 대한 문제다.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유독 도드라지는 건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세 덕분이라기보다는 다른 영화들의 부진 탓이 크다. 3월까지 극장 관객수는 2514만명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동 기간(5507만명) 대비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통적인 비수기였던 걸 감안하더라도 3월까지의 성적은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한국영화 자체에 대한 불신이 학습되고 있다는 점이다. 꾸준한 시장의 침체, 대작 영화들의 잇단 실패가 맞물려 지금 극장가를 채우는 영화들은 일찌감치 완성되었던, 이른바 묵은 영화들이다.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영화들은 트렌드에서 멀어진 채 한국영화의 지나간 악습만 반복 중이다.
시장 상황이 좋아 많은 영화들이 쏟아져나올 땐 이렇게 방만한 양산형의 기획 영화들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
[기획]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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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때때로 이야기의 형태로 소비된다. 이야기의 세계에서 우연은 없다.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에 사람들은 인과관계로 정리한 뒤에야 안심한다. 어떤 영화가 흥행하고 나면 그토록 흥행 원인을 찾으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적지 않은 현상에서 원인은 결과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절대적인 필연성 따윈 없다는 말이다. 대다수 흥행 분석이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럴 땐 질문의 각을 달리하면 종종 본질과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현재 한국 극장가에 불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을 둘러싼 반응들을 보며 새삼 흥행 분석의 무용함을 생각하게 된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1월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41만 관객, 3월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39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중이다
[기획] 일본 애니메이션의 승리는 “착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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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2023년 1분기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 극장가의 승자는 누가 뭐라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들이다. 우선 1월에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4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국내 흥행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뒤이어 3월에 개봉한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은 390만명을 돌파하며 역대 순위 2위였던 감독 자신의 전작 <너의 이름은.>(2016)을 밀어내고야 말았다. 3월까지 극장을 찾은 전체 누적 관객수의 3분의 1에 가까운 관객 동원을 단 두편의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뤄낸 것이다. 한때 스튜디오 지브리로 대표되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세대교체는 <너의 이름은.> <귀멸의 칼날>등을 앞세워 일찌감치 이뤄졌지만 올해만큼 폭발적인 결과를 선보인 적이 있었나 싶다. 단지 애니메이션에 한정해서가 아니라 일본영화 전반으로 넓혀봐도 이례적인 열풍이다. 무엇보다 1월에 시작된 열풍이 아직까지 이어진다는
[기획] 한국에서 열풍 부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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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임수정
아직도 임수정 배우의 오디션 때 기억이 선명하다.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귓가에 또랑또랑하게 들리는 음색과 딕션이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면서 적개심과 죄의식을 느낀 적이 있는지 다소 에둘러 둘러댈 법한 어렵고 곤란한 질문에도 주저 없이 적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마도 촬영 내내 감독 다음으로 가장 많은 부담감을 느낀 사람은 임수정 배우였을 거다. 촬영을 끝내고 매일 밤 숙소로 돌아가 자신이 짊어지고 갈 엄청난 압박과 무게감에 끝없이 자책하고 절망하고 괴로워했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그 어려운 시간을 스스로 이겨내고 돌파하면서 훌륭한 연기자로 성장했고 비로소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가 되었다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문근영
당시 중학생이었던 문근영 배우는 자신의 촬영이 없을 때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선배 배우의 연기를 지켜보거나 스탭 사이에 끼어서 까르르거리거나(그녀가 현장에 오면 모든 언니,
[기획] 김지운 감독이 말하는 배우 임수정과 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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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여성 서사를 기다리며
- <장화, 홍련>처럼 본능적으로 연기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는 없나요.
문근영 그리워요. 배성우 선배님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너 <가을동화> 때 연기 진~짜 잘했어. 다시 하라고 해도 그렇게 못할 거야. 그런데 생각하고 고민하고 어느덧 연기에 대해 다 알게 됐을 때, 다시 그때처럼 똑같이 연기를 한다? 그러면 연기의 신이 되는 거야.” 그게 제가 가야 할 길이라고 하면서요. (웃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겠다고 했죠.
임수정 요즘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야? (웃음)
문근영 응, 추구하고 있어. (웃음)
임수정 근데 근영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옥> 시즌2도 정말 기대하고 있어요. 최근 연기 활동을 쉬어가는 동안 차곡차곡 내면에 쌓인 게 많을 거예요. 그게 어떤 캐릭터와 만났을 때, 특히 장르적인 작품을 만날 때 자기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저도 <장화, 홍련&
[기획] 임수정, 문근영 “또다시 만날 작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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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마주쳐도 울고, 뒷모습만 봐도 울고…
- 김지운 감독은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임수정 배우는 오디션에서 살면서 느낀 죄의식과 적개심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대답한 유일한 배우였다”는 말을 많이 했었죠.
임수정 신인배우에게 너무 큰 역할을 맡기는 데 반대 의견도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시 저는 굉장히 폐쇄적이었고 경계심이 많았고, 부조리한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만과 불신, 분노, 회피 같은 어두운 감정을 품고 있었어요. 감독님의 질문에 잠시 침묵하다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네”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고 제가 수미를 연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대요.
- 문근영 배우와 미팅했을 때는 ‘어떻게 이 아이는 이렇게 깊은 눈을 가졌지?’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김지운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문근영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나왔어요.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어?” “수연이는 어떤 아이인 것 같아?” “수미 역할은 누가 했으면 좋겠
[기획] 임수정, 문근영 “‘장화, 홍련’은 가장 본능적으로 연기했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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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한국영화의 화양연화였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올드보이>의 박찬욱, <장화, 홍련>의 김지운, <지구를 지켜라!>의 장준환 등 상업적 감각을 갖춘 작가 감독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한국영화 객석 점유율 50%를 돌파하며 최초의 천만 영화도 탄생했다. 특히 역대 한국 공포영화 흥행 1위(관객수 314만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의 자리를 20년째 유지하고 있는 <장화, 홍련>의 의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개봉 당시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입소문과 함께 흥행에 성공한 <장화, 홍련>은 일본, 태국과는 다른 감성을 품은 한국 호러영화만의 계보를 탄생시켰고, 이후 많은 장르영화가 포스트 <장화, 홍련>을 꿈꾸며 수미와 수연 자매의 애상적 이미지를 본보기 삼았다. 오히려 개봉 당시보다 비평적인 성취도 격상했다. 도전적인 제작자들은 신선한 얼굴이 주연을 맡은 공포영화의 가능성에
[기획] '장화, 홍련' 20주년… 임수정과 문근영을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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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2022년은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으로 이전되고 물가가 급등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치솟던 해였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과 금융시장이 큰 타격을 입고, 사람들은 보다 신중하게 소비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다시 호황을 겪은 산업도 있지만 10월29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이태원 참사 이후 긴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2021~2022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에 열광하며 숨 쉴 구멍을 찾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위로받았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기에 빠진 한국 극장가를 구한 것은 마블이 아닌 마블리였다. 마동석, 손석구 주연의 <범죄도시2>가 <겨울왕국2>(2019년 11월21일 개봉) 이후 처음으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칸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송강호
[기획]2022년 박스오피스 분석: 오직, 규모의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