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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아사야스는 ‘절충적인’ 영화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이러한 그의 기질은 유명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장뤽 고다르, 루키노 비스콘티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그는 브라이언 드 팔마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홍콩영화의 옹호자로도 알려졌다. 또한 장르영화와 B급 영화, 실험영화의 수집가로도 정평이 나 있었다. 어쩌면 당시에 그가 공포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를 위해 사용했던 문장은, 지금의 그를 가리키는 적절한 표현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대중영화 내의 실험적인 형식과 역동적인 미학으로, 시네필의 중심 위치를 되찾고자 하는” 영화감독으로서, 어느덧 아사야스는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그의 여섯 번째 장편영화 <이마 베프>(1996)는 아사야스의 이름을 세계 시장에 알린 첫 작품이다. 이 영화가 27년 만에 디지털 리마스터링되어 극장 개봉한다. 단 9일의 시나리오 작업, 어떤 의미에서 신화와도 같았던
[기획] 시네필의 초상 영화 ‘이마 베프’와 HBO 시리즈 나란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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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영상화하는 일은 빈번하게 이루어지지만 감독의 이름이나 캐스팅, 원작의 명성에 따라 리메이크 소식이 새로운 기대감을 높이기도 한다. 여성의 시선으로 관능적인 사랑을 묘사하는 데 능한 레바논의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이 여성의 욕망과 탐닉을 다룬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리메이크한다거나, 돈 드릴로의 소설처럼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작품을 원작 삼은 노아 바움백의 <화이트 노이즈>의 경우 원작의 정수가 어떻게 옮겨졌을지, 어떤 시각으로 각색되었을지 궁금해진다. <이마 베프>처럼 감독 스스로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자신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도 있다. 이 경우도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원작 <이마 베프>(1996)와 캐스팅부터 러닝타임까지 변화된 <HBO> 시리즈 <이마 베프>(2022)를 나란히 놓고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원작과 리메이크 작품을 함께 보았을 때 재미도, 의미도 배가되는 세
[기획] 새로운 해석의 기쁨과 깊이: ‘이마 베프’ ‘단순한 열정’ ‘화이트 노이즈’ 원작과 영화 나란히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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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대담은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_zW6EduGSM)
말하기 힘든 감정, 보이지 않는 관계… 우리의 갈증
송강호 지지난해 <브로커>를 한창 찍던 어느 날, 홍경표 촬영감독과 촬영팀 스탭들이 어디론가 부리나케 가더라고요? 어디 가냐고 했더니 백신을 맞아야 한대요. 알고 보니 이상일 감독님 작품을 찍기 위해 <브로커> 촬영 끝나고 곧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야 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유랑의 달>이라는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됐죠. 홍경표 촬영감독님이 워낙 열정이 대단한 분이시잖아요? 감독님하고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 촬영감독과 함께한 건 이번이 처음이신가요?
이상일 네, 처음입니다.
송강호 어떠셨습니까?
이상일 홍 촬영감독님은 한국의 촬영감독이라고 말하기보다 그
[줌터뷰] ‘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속깊은 영화·연기론에서 찾은 공통점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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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대담은 <씨네21>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_zW6EduGSM)
송강호 안녕하십니까!
이상일 바쁘실 텐데도 불구하고 귀중한 기회를 주셔서 진짜 감사합니다.
송강호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이렇게 뵙게 돼서 너무 영광스럽습니다. <유랑의 달> 개봉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개봉 첫날 꼭 보겠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이상일 감사합니다. (웃음)
송강호 우리가 처음 만난 게 2001년이던가요?
이상일 제 기억에는 <조용한 가족>(1998)으로 형이 일본에 오셨을 때가 처음이었어요. 김지운 감독님과 강호 형이 오셨는데, 학생이었던 제가 아르바이트로 두분을 안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송강호 맞아요! 98년이죠? 그때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1년 <반칙왕>(2000)으로 도쿄필름
[줌터뷰] ‘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과 송강호 배우의 첫 만남부터 이어진 25년 간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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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한국판 포스터의 메인 카피처럼 “다시 만났다”. 2022년 봄 일본에서 개봉해 2023년 1월 한국 극장에 상륙한 이상일 감독의 신작 <유랑의 달>은 두겹으로 된 재회를 불렀다. 먼저 이상일 감독은 언젠가 자기 영화에 꼭 캐스팅하고 싶다고 말한, 어떤 감독이라도 그렇게 맘 한구석에 품고 있을 배우를 줌(zoom) 화면 앞으로 초대했다. 그는 <반칙왕>으로 일본 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이상일 감독의 통역 안내를 받았던 배우이자 <기생충> 전주 세트장에서 이상일 감독의 온 시선을 집중시킨, 제75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 송강호다. 이상일 감독과의 대화를 흔쾌히 수락한 송강호 배우는 오랜 시간 작품 안팎에서 이상일 감독과 연결됐던 일화를 들려줬다. 일본에서의 환대에 이어 이상일 감독이 보여준 폭넓은 작품 세계에 반했다는 이야기였다. 줌터뷰 자리는 <씨네21>이 마련했지만 해후는 예상치 못한 우연이었다. 덕분에 여기에
[줌터뷰] ‘유랑의 달’ 이상일 감독과 배우 송강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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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는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입니다. ‘다혜리의 작업실’은 다양한 분야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의 작품 세계와 글쓰기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듣는 코너입니다. 스페이스는 실시간 방송이 끝난 뒤에도 다시 듣기가 가능합니다. (https://twitter.com/cine21_editor/status/1614983416025579520)
이다혜 @d_alicante ‘다혜리의 작업실’ 열여덟 번째 시간을 시작하겠습니다. 게스트는 에세이 <문학이 필요한 시간>을 쓰신 정여울 작가님입니다. 이 책은 고전문학부터 최근 몇년 동안 출간된 소설, 에세이, 그리고 문학의 경계에 있는 듯하지만 문학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작품들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정여울 작가님, 이번 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정여울 @singingbird1871 문학으로 돌아오고 싶었어요. 문학평론을 할 때도 에세이적으로 자유로운 일상 속 대화라든지, 평론가답지 않은 뭔가를
[트위터 스페이스] 다혜리의 작업실: 산문집 ‘문학이 필요한 시간’ 정여울 작가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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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드한 컬러의 의상과 스타일로 캐릭터를 분명하게
<유령>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겨냥해야 했던 다섯 인물은 비주얼적인 변화를 거듭하며 각자의 성격과 기질을 드러낸다. 함현주 의상감독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동시대 인물을 표현한 방법과 다르게 구현하고 싶었다”라며 유럽으로 지역적 원천을 확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유리코는 유럽의 배우와 가수, 박차경은 퀴리 부인 등 당시 유럽의 지식층 여성, 쥰지는 탐정물 캐릭터를 차용했다. 이어 카이토는 영국 로열 패밀리의 귀족 이미지를, 천은호 계장은 프랑스 살롱 문화에 베이스를 둔 신사복을 바탕으로 의상을 제작했다. 큰 틀에서 복장은 작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새롭고 자유로운 방향에 맞추었지만, 단추 디자인이나 엠블럼 등은 역사 고증이 담긴 논문 등을 참고하여 디테일의 현실성을 높였다.
의상 색깔도 과감하게 선택했다. 함현주 의상감독은 “이해영 감독과 논의 끝에 영화 전반의 컬러톤을 비비드톤으로 맞추었다”며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표현하
[기획] ‘유령’ 미술·의상·분장·무술감독이 말하는 제작기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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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 조선총독부에 새로 부임한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는 항일조직 흑색단의 스파이 ‘유령’이 조선총독부에 잠식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설경구),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 박차경(이하늬), 정무총감 직속 비서 유리코(박소담), 암호 해독 담당 천은호 계장(서현우), 통신과 직원 백호(김동희). 그의 임무는 이 다섯 용의자로부터 유령을 찾아내는 것. 첩자의 정체를 의심하고 추리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담아내기 위해 이해영 감독은 이들을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몰아넣었다.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적 폐쇄성은 다양한 캐릭터간의 긴장을 팽팽하게 고조시키고, 해방을 꿈꾸는 유령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격추시킨다. 벼랑 끝에 선 서양식 호텔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지만 6인의 경계와 사투, 불신과 추궁으로 완전한 대비를 이룬다. 김보묵 미술감독, 함현주 의상감독, 김현정 분장감독, 허명행 무술감독과 함께 &l
[기획] ‘유령’ 미술·의상·분장·무술감독이 말하는 제작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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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의상
조희란 의상감독은 현지인의 의상을 제작하기 위해 다양하게 자료조사를 했다. “아프가니스탄 사진 작가들의 사진집을 주로 참고해 패턴, 자수 등 디테일을 추가했다. 팬데믹이라 원단과 소품 등은 주로 직구했고, 이태원의 이슬람 매장을 통해 구매대행을 했다. 카심은 페르한(긴 셔츠 형태에 바지와 세트로 입는 아프가니스탄 전통복)을 입히되 캐릭터 티셔츠 같은 것들을 믹스매치했다. 캐릭터가 밝아서 너무 가벼워 보일까봐 옷의 컬러엔 무게감을 줬다. 아프가니스탄은 계급별로 의상이 다르다. 가령 상층 계급은 주로 흰색의 옷을 입고 터번도 은사, 금사가 섞인 실크를 쓴다. 탈레반도 마찬가지라 지도자들은 흰색 옷을, 군인과 같은 낮은 계급은 어두운 색 옷을 입어 그에 맞춰 의상을 제작했다.”(조희란 의상감독)
자살 폭탄 테러 신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교섭단은 시장에서 자살 테러범과 마주한다. “특수효과팀, 무술팀, CG팀, 촬영팀, 미술팀이 전부 참
[기획] ‘교섭’ 스탭들이 말하는 제작 비하인드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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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탈레반에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소식을 접한 교섭 전문 외교관 재호(황정민)가 급히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 현지 경험이 오래된 국정원 요원 대식(현빈)과 합류한다. 인질 구출을 위한 작전이 현실적으로 구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섭> 제작진의 공이 컸다. <제보자>에서 임순례 감독과 합을 맞췄던 문영화 프로듀서는 요르단 로케이션 촬영이 가능하도록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였고 <리틀 포레스트>의 이승훈 촬영감독, 조희란 의상감독도 작품에 합류해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 <백두산>, 드라마 <수리남>의 김병한 미술감독은 현지와 국내 세트의 문양 하나까지 세심하게 조성했다. 문영화 프로듀서, 이승훈 촬영감독, 김병한 미술감독, 조희란 의상감독,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토어 및 현지 문화·의상 자문을 담당한 파헤르씨에게 <교섭>의 제작 비하인드를 들었다.
마침내, 요르단 입성
<교섭
[기획] ‘교섭’ 스탭들이 말하는 제작 비하인드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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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죽게 한 전투로 돌아가 성공할 때까지 무한히 반복한다는 점에서 정이(김현주)는 확실히 디스토피아에 산다. 복제에 지불하는 비용에 따라 인간이 자기 고유성을 보존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정이>의 상상력은 전사한 싱글맘 용병의 모친이 혼자 남은 손녀(박소이)를 위해 자기 딸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계약서에 서명하게 만든다. 정이 캐릭터에 입각해볼 때 이 영화는 홀로 생계를 건사하는 여성의 노동영화 <풀타임>(2021)의 AI 버전이기도 하다. 죽음의 루프에 갇힌 정이의 전투가 어쩐지 서글픈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따져보면 인간 윤정이는 오리지널 AI로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우월한 용병이지만, 가족의 생존을 위해 사후에도 그야말로 지옥에 처하는 절박한 여성 가장이라는 사실에서 극단적 두 얼굴의 소유자다.
“나보다 액션을 잘하는 배우는 많을 텐데, 왜?” 생애 처음 전사가 될 기회 앞에서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을 뒤로하고 스스로 자문했던 배우 대신 ‘
[기획] 필모그래피를 통해 김현주 배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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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과 리액션 속에서 배우는 것들
- <정이>와 달리 드라마 <트롤리>에선 캐릭터의 복잡다단한 결이 돋보인다. 혜주(김현주)를 자신의 고통을 소리내어 말할 때조차 선하고 연한 면이 도드라지는 인물로 그린 점이 인상적이었다.
= 혜주는 자기한테 가시가 박혀 있는데 그걸 뺄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빼 버리면 죗값을 다 치른 것처럼 홀가분하게 살아갈까봐 스스로 계속 아파하기로 한다. 윤리적으로 민감한 한편 10대 시절의 비극적인 경험으로 인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일에 두려움도 분명 갖고 있다. 그러나 트라우마 이전에 형성된 본연의 모습은 또 다를 거라고 봤다. 원치 않게 힘을 잃어버린 혜주가 원래의 혜주 위에 오랫동안 덮인 그런 그림을 상상했다. <트롤리>는 나의 선택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세 상처를 줄 수도, 전혀 의도하지 않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세상에서 너무 고통받은 한 사람에게 이제는 짐을 조금 내려놓아도 좋다고 말해주는 마음으로
[인터뷰] 인간 김현주와 배우 김현주가 쌓아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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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액션 장르에 처음 도전한 작품인데 출연 분량 내 액션 비중이 상당히 크다. 쉽지 않은 선택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 TV드라마 작업이 주가 되면서 캐릭터에 다양성을 주려고 노력은 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도 있었기에 늘 마음 한편에 갈망이 있었다. 그러다 <지옥>이 끝난 뒤 연상호 감독님의 새 프로젝트 <정이>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액션이 많다는 소리에 우선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정이>를 계기로 가만히 되짚어보면, 말로만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 정작 내면은 폐쇄적인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비율적으로 조금 더 컸던 게 아닐까. 좀더 마음을 열었더라면 이런 기회가 일찍 찾아왔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 세간에서 보는 이미지와 달리 배우 본인은 오랫동안 액션에 관심이 있었고 심지어는 잘하는 경우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활약한 양자경의 표현을 빌리면 그동안
[인터뷰] ‘정이’ 김현주, “크나큰 힘을 준 용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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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덕이>(2000), <유리구두>(2002)를 거쳐 <토지>(2004)로 역대 최고 개런티 배우라는 수식을 동반하며 ‘안방’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김현주가 2000년대 들어 처음 주연한 영화 <신석기 블루스>(2004)로 <씨네21>을 찾은 지도 조금 보태 20년이 흘렀다. 그사이 영화계와는 소원했지만, 김현주는 TV드라마에서 장르와 형식을 막론하는 전천후 배우로 자리 잡아 요란한 내색 없이도 인기와 존재감, 시대의 호흡에 부응해왔다. 김현주라는 세 글자의 친밀함 앞에서 불쑥 ‘다른 방식으로 보기’를 제안한 것은 넷플릭스에서 첫 시리즈 연출을 시도한 연상호감독이다. <지옥>(2021)으로 김현주를 OTT 플랫폼에 초대한 그는 신작SF영화 <정이>에서 갑옷을 입고 로봇과 싸우는 전설의 용병에 김현주를대입해 예의 부드러운 선을 지닌 그 얼굴 위로 처절한 쇳소리를 동반한흠집과 핏자국을 낸다. 연상
[기획] 유리구두를 벗고 갑옷을 입은 배우 김현주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