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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감독
<사라진 시간> 정진영
올해의 한국영화 4위에 안착한 <사라진 시간>은 올해의 영화인 설문에서도 감독, 신인감독, 시나리오 등 여러 부문에 호명되며 고른 지지를 얻었다. 정진영 감독에겐 그 세 이름 모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그는 이 작품으로 “기성감독들 사이에서 가장 신선한 결과물을 낸 신인감독”(김철홍)으로 각인된 동시에 “자신의 영감과 직관을 자유롭게 표출해 파편화된 기호들을 만든 후, 결코 공허하지 않은 방식으로 흥미로운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김소미) 각본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했다. 무엇보다 “데뷔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 숏이 유려하고 매혹적”(홍은미)인 한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 그런 그가 올해의 감독으로 선정된 배경에는 오랜 시간 연기자로 활약해오다 연출자로 첫발을 뗀 그의 행보에 대한 평자들의 감탄과 기대가 자리할테다.
“전혀 생각지 못한 거창한 타이틀에 어리둥절하고 고맙다”며 인사를 건넨 정진영 감독은 “개봉 당시 내가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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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영화는 전례 없는 위기의 한복판에 놓였다. 극장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지고 영화가 관객과 만날 창구를 잃어갔다. 하지만 본질은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법, 올해 한국영화가 내놓은 답들은 일말의 희망을 품을 만하다. 2020년 올해의 영화로 꼽힌 작품들의 특징은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1위에서 5위까지 5편의 영화 중 1위 <도망친 여자>를 제외하곤 모두 데뷔작이라는 건 의미하는 바가 남다르다. 10위까지 범위를 늘려도 신인감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8위 <남산의 부장들>과 9위 <반도> 외에 7편의 영화가 전부 개성 넘치고 야심만만한 데뷔작으로 채워졌다.
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상영 환경의 변화다. 극장의 위기 상황에서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인감독의 데뷔작이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수월한 측면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많은 상업영화, 대작영화가 개봉을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한국영화 총평, 6위~10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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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한국영화 1
도망친 여자
올해도 홍상수냐고, 다른 영화는 그렇게 꼽을 게 없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둘 다 긍정한다.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시네마’들의 흔적조차 점차 희미해져가는 자리에서 홍상수는 시간의 풍화에 아랑곳하지 않는 시금석처럼 여전히 자신의 작업에 몰두한다. 그뿐이다. 그뿐이지만, 아니 그뿐이기에 홍상수의 영화는 시간을 비껴나 언제나 신비로운 순간들을 자아낸다. <도망친 여자>를 올해의 한국영화 1위로 꼽은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올해의 홍상수 영화”(듀나)다. 그저 관성으로 믿고 보는 작가의 신작의 신작을 뽑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여백은 커지고 반복은 간결해지는데도 여전히 짙은 감정을 불러내는 홍상수 영화의 신비에 또다시 항복했다”(김소미)는 말이다. 둘째, 홍상수의 작업은 사방이 폐허가 되어가는 지금이라서 더 유효하다. “영화로부터 도망치는 것인지 영화로 도망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도망침이 2020년 가장 큰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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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시간은 간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세계가 멈췄고 영화 역시 함께 얼어붙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연말은 찾아오고 2020년의 달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도 <씨네21>에서는 한해의 흔적을 뒤돌아보는 연말 설문을 준비했다. 매년 그러했듯 지난 영화들을 정리하는 건 그저 순위를 정하는 줄세우기가 아니다. 혹여 놓치고 지나간 영화는 없는지, 영화 저널로서 더 찾아보고 언급해야 할 지점은 없었는지 점검해보는 시간이다. 각각의 영화와 보냈던 기억들을 써내려가는, 영화를 향한 우리의 반성문이자 러브레터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연말 베스트는 여러모로 각별하다. 본래 어려울 때 진심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힘들 때 곁에서 함께하는 친구가 진정 소중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올해 연말 베스트 설문은 지난 시간에 대한 점검인 동시에 2021년의 파도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2020년 <씨네21>이 선정한 올해
[스페셜]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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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상 콘텐츠 업계를 이끄는 전문가들은 2021년 어떤 작품, 어떤 창작자, 어떤 배우에 주목할까. <씨네21>은 급변하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현황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영화·드라마 제작사, 투자배급사, OTT, 매니지먼트사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움직이는 키플레이어 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번 설문은 영화와 방송 그리고 OTT 등 영상 콘텐츠 산업의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 결정권자들 대부분이 참여했고, 이들이 생각하는 한국 영상 콘텐츠 산업의 전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의미 있다.
<씨네21>은 이들에게 총11개의 질문을 던졌다. 2020년 인상적으로 본 콘텐츠, 2021년 엔터테인먼트 산업 키워드 3가지, 새롭게 주목해야 할 트렌드, 주목할만한 배우(남자, 여자), 신인배우(남자, 여자), 한국영화 기대작, 영화 외 영상 콘텐츠(시리즈 등) 기대작, 주목해야 할 스튜디오, 연출자, 2021년
2021년 어떤 작품, 어떤 배우가 뜰까... 대한민국 영상 콘텐츠 산업 리더 55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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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최측이 최근 미국 내에서 여러 비평가 협회상을 휩쓸며 어워드 시즌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미나리>를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버라이어티>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최하는 HFPA(할리우드 외신 기자 협회)가 한국어 비중이 많다는 이유로 <미나리>를 외국어영화로 분류했다. 때문에 <미나리>는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되며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될 듯하다"고 전했다.
HFPA는 작품상 후보 선정 기준으로 '50% 이상의 대화가 영어로 진행되어야 한다'를 내걸고 있다. <미나리>는 해당 기준을 적용시켜 외국어영화로 분류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영화인들은 이런 HFPA의 기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미나리>에서 제작, 주연을 맡은 배우 스티븐 연은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나리>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이야기
미 골든글로브 시상식, 영화 ‘미나리’ 작품상 후보에서 배제해 논란...한국어 대사가 너무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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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스른 낯선 전화, 이후 밝혀지는 충격적인 살인사건의 진실. 이충현 감독의 <콜>은 시간을 다루는 장르적인 특징과 시대상이 조화를 이루는 스릴러 영화다. 서로 다른 시공간이 오직 전화로만 연결된다는 <콜>의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서스펜스를 느끼게 만드는 장르적 제약조건으로 활용된다. 플롯의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 앵글, 속도감 넘치는 편집을 통해 인물의 감정과 관객의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영화인 것. 여기 한 가지 요소가 빠졌다. 바로 미술이다. <콜>의 인물들, 현재 시점의 서연(박신혜)과 20년 전 인물인 영숙(전종서)은 같은 '집'에 머물고 있지만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시대상이 미술을 통해 확실한 구분점을 지녀야 했다.
이 영화의 미술을 책임진 배정윤 미술감독은 <국가부도의 날>부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콜>에 이르기까지 최근 1990년대 배경의 영화 미술을 책임져왔다. <국가 부도의 날>
90년대 다룬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과 ‘콜’의 미술 감독은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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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신년특대호 1287-1288호에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한국영화 사랑 에세이가 실린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에세이를 통해 한국영화와 한국 감독에 관한 애정의 역사를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15년 전, 그는 박찬욱의 ‘복수 삼부작’(<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 <친절한 금자씨>(2005))을 시작으로, 이후 봉준호, 이창동, 김지운 등 여러 한국 감독들이 연출한 한국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이후 감독들과 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특히, <설국열차>(2013)에서 제이미 벨이 연기한 에드가는 봉준호 감독이 에드거 라이트 감독의 이름에서 따와 지은 이름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록다운된 상태에서 한국영화를 본 것이 나에게는 여행에 가장 가까운 선택”이었다며 “<씨네21> 독자 분들과 한국 관객, 영화인 여러분, 하루속히 만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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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등장인물 에드거의 실제 모델은 한국영화 광팬인 영국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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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시환 평론가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라는 이상한 논리의 시대다. 그게 참 이상해서 썼다.
2020년 한국영화의 키워드를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생존 투쟁’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죽자고 도망치는 인물들의 이미지가 순간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시작으로 <사냥의 시간>과 <#살아있다>를 거쳐 <반도>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콜>에 이르기까지 지겹도록 들려오던 날카로운 비명이 잔상을 남겼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들 영화 대부분은 어딘가로의 도주를 꿈꾸고 있었다. 때로는 일본으로(<지푸라기라도…>), 대만으로(<사냥의 시간>), 파나마로(<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아니면 익명의 또 다른 장소(<반도> <#살아있다>)로 말이다. 각자도생하며 살아남는 것이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린 세계는 곧잘 폐허의 이미지로 등
[스페셜④] 2020년 한국영화는 '생존 투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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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평론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거꾸로 눈에 보이지 않았던 다른 것들이 틈입해 들어온다고 믿는다.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고, 극장에 영화가 없다면 그런 버려진 조건들 속에서 영화의 자리를 재조정하는 시도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것들을 우리는 영화라고 불러야 할까? 그런 고민을 안고 굿바이 2020!
2010년대 한국 영화산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한 장면을 고르라면 <변호인>의 마지막 숏을 말해야 할 테다. 주인공 송우석(송강호)은 시위를 이끌다 구속되어 피고 신분으로 법정에 참석한다. 수의를 입은 송우석의 뒤로 그를 변호하기 위해 나선 변호인단이 차례로 일어선다. 송우석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장면이 바뀌면 ‘부산 지역 142명의 변호사 중 99명이 출석했다’는 자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결말은 군사정권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지키려는 정의는 훼손되지 않으며, 그의 믿음이 대다수 군중에 전파되고 있다는 인본주의적 가치를 찬미한다. 법정은 그러한 최소한의
[스페셜③] 2020년 한국영화는 '쓰레기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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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평론가 올해 한국영화를 생각할 때 특징적으로 각인된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작동시키는 동작이 될 수 있을지 몇편의 영화를 타고 넘어보았다.
어쩌면 올해 개봉한 다종다양한 영화를 묶어낼 하나의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나, 나는 올해의 영화들에서 발견한 어떤 행위를 물고 늘어져볼 생각이다. 내게 올해의 한국영화는 되감는 행위로 요약된다. 단순히 한국영화가 향수의 대상으로서 과거를 반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되감는 행위는 명확한 시대적 좌표 속에 놓여 있지 않다. 거기에는 궁극적인 이유도,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나 대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되감는 행위 그 자체만이 뚜렷할 뿐이다. 그들은 뒤로 간다. <반도>에서 운전석에 앉은 상태로 난자당한 서 대위(구교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기어를 돌려 후진을 시도한다. 후진은 이를테면 호락호락하게 죽지 않겠다는 마지막 발악이다. 때마침 그를 축복하듯 좀비 떼들이 선박으로 침투한다.
캐릭터
[스페셜②] 2020년 한국영화는 '되감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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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기자 이건 분석이나 평가라기보다는 반성문에 가깝다. 아님 기어코 희망의 자리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이거나. 프런트라인 순서상 피치 못하게 앞자리에 놓인 글이지만 가능하면 제일 마지막에 읽어주시길 희망한다.
올해는 ‘소리도 없이’ 한국영화들이 ‘사라진 시간’이었지만 ‘작은 빛’은 보였다. 빛의 이름은 애착이다. 마음이 끌리는 것을 가까이하고 유지하려는 행동. 무엇에 좀더 마음이 쓰이는지, 취향에 대한 고백이라고 해도 좋겠다. 삶의 조건이 점차 궁핍하고 버거워지는 건 사실이지만 취향이 있으면 마음이 덜 가난해진다. 이건 취향이라는 이름의 도피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연민하거나 타자화하는 대신 지금 현재 주어진 것들을 긍정하는 가운데 자신을 돌보는 자급자족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영화가 폐허의 풍경에 집착해온 건 이미 오래된 일인데 올해는 그 경향이 유독 도드라진다. 망가져버린 헬조선에서 시작하는 <사냥의 시간>이나 좀비 바이러스로 격리 지
[스페셜①] 2020년 한국영화는 '애착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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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씨네21>은 비평의 전선을 넓히고자 영화비평 코너 프런트라인을 신설했다. 한해를 마감하며 송경원, 김소희, 김병규, 안시환 네명의 프런트라인 필자들에게 2020년 한국영화가 남긴 것들에 대해 물었다. 각기 다른 경로에서 탐색해본 고민들이 올 한해 한국영화의 궤적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답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봄직한 질문들. 한국영화를 향한 네 갈래의 길을 소개한다.
[스페셜] 2020년 한국영화가 남긴 것들 ①~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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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안전하고 무사하게 연말을 보내고픈 마음은 전세계 어디나 같을 것이다. 중국 극장가는 그나마 자유롭게 영화를 관람하고 있지만 흥행과 입소문으로 관객을 불러모으는 ‘허세편’(연말 시즌 영화)을 찾아보기 힘든 분위기다. 주말 일일 관객수가 300만~400만명에 달하지만 예년에 비해 기대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연말을 장식하는 허세편 영화로는 코미디 장르가 사랑을 받아왔는데 12월 첫쨋주에 개봉한 <착요기> 시리즈 제작사의 야심작이던 판타지영화 <적호서생>은 그 명성과 달리 힘없이 막을 내렸다.
뒤이어 개봉한 팽욱창 주연의 <목욕지왕>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내고 있으며 팽우안이 주연을 맡고 <오퍼레이션 레드 씨>의 임초현 감독이 연출한 <긴급구원>만이 간신히 허세편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거기에 <원더 우먼 1984>가 가세했지만 이 또한 박스오피스 2위에 그치며 상위권에 머무는 데 만족해야 했다.
[베이징] 2020년 중국의 마지막 개봉영화는 따뜻한 위로 건네는 '송니일타소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