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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극작가, 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1960년대 체코 뉴웨이브를 이끌었던 이리 멘젤 감독이 지난 9월 5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그의 사망 소식을 SNS로 전한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는 2017년 뇌수술을 받은 이후 몇 년 동안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리 멘젤 감독은 1960년대 체코 역사의 격변기에 태동한 ‘체코 뉴웨이브’의 주역이었다. 그는 프라하 공연예술 영화학교(FAMU) 출신으로서 밀로스 포먼, 베라 히틸로바, 야로밀 이레스, 얀 네메치 등의 감독들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은 감독 중 한 사람이었다. 이리 멘젤 감독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를 연상시키는 미학적 형식과 블랙코미디를 접목해 만든 첫 번째 장편 연출작 <가까이서 본 기차>(1966)이 196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곧이어 체코 역사의 격변기인 1968년 ‘프라하의 봄’이 찾아왔고
체코 뉴웨이브의 거장, 이리 멘젤 감독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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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직업이라 이틀에 한번꼴로 책을 추천해달라거나, 독서의 효용을 이야기해달라거나, 책 안 읽는 우리 상사와 우리 아이를 설득해달라는 강연 요청 및 구독자들의 메시지를 받는다. 강연을 하러 가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다른 매체가 아니라 책인지 말해달라는 주최측의 요구에 1시간30분정도를 들여 답한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강연을 마치고 나서 현장 질문을 받으면 두번 중 한번꼴로 누군가 묻는다.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
이 질문은 사실 외통수 질문이다. 나는 매번 “모두가 꼭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하면서 “영화나 게임 같은 다른 좋은 매체들이 있습니다”라고 부연한다. 문제는 내가 다른 좋은 매체에서 느낀 감상이 내가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생긴 감상 능력인지는, 대조군을 두고 실험을 해본 게 아니라면 알 수가 없는 일이라는 점이다. 2회차 정도에 책을 읽지 않고 살아봤다면 자신있게 답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간에 나는 진심이다. 훌륭한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게임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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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 행사 ‘2020 미술주간’(이하 미술주간)이 9월 24일부터 10월 11일까지 개최된다. 올해 6회째를 맞은 미술주간은 전국 7개 권역 30개 도시에서 진행되며, 300여개 미술관, 화랑,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이 참여해 일상에서 친숙하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또한 올해 미술주간은 ‘당신의 삶이 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코로나19 시대에 예술이 주는 치유와 위로의 힘에 주목한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미술주간 홈페이지(http://artweek.kr)에서는 VR과 ASMR 등을 통해 새롭게 전시를 경험하고, 미술여행 브이로그를 통해 여행을 떠나는 다채로운 온라인 프로그램도 함께 선보인다. 그중 미술주간과 <씨네21>이 협업한 ‘영화로 만나는 미술’ 코너에서는 영화를 통해 쉽고 흥미롭게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폴락> <바스키아> <
2020 미술주간과 <씨네21>이 함께하는 '영화로 만나는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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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최대치로 근접하려는 영화의 노력은 기술의 진일보와 더불어 가늠할 수 없이 빠르게, 그리고 드넓게 실현되고 있다. 지난 8월, 삼성전자와 김지운 감독의 8K 영화 협업 소식이 공유된 제작발표회 현장 역시 기술의 선두주자와 뛰어난 창작자의 만남으로 든든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아직 더위가 한창인 8월의 끝자락, 스튜디오도 세트장도 아닌 어느 모던한 가구점 쇼룸 안에 스탭들이 모여 분주히 촬영을 준비 중인 현장에 발을 들였다. 마스크로 무장한 프로들 너머로 곧이어 김지운 감독, 배우 김고은·김주헌, 진행자 박경림이 나타났다. 코로나19 시대에 시의적절하게 시선을 겨냥한 단편영화 <언택트> 제작발표회로 모인 이들은 100% 사전 녹화·온라인 중계로 공개될 제작발표회의 뉴노멀에 저마다 긴장감과 호기심을 드러냈다. 삼성전자 최초의 8K 영화인 <언택트>는 삼성 갤럭시S20과 노트20을 활용해 16:9 화면 비율의 8K 영상으로 촬영될 김지운 감독의 새로운 프로젝
김지운 감독과 삼성전자의 8K 영화 도전기 - 갤럭시S20과 노트20으로 찍는 단편영화 '언택트' 온라인 제작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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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온화한 인상을 받았을 때, 그 이유를 떠올려보면 그림의 색채, 인물의 미소 띤 표정, 둥근 턱 모양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데즈먼드 모리스는 미술 작품이 관람객에게 어떠한 인상을 남겼다면 거기에 작품 속 인물의 포즈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인간이라는 종성을 ‘털 없는 원숭이’로 규정하고 본성과 진화 과정을 분석한 데즈먼드 모리스의 책 <털 없는 원숭이>는 진화생물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이번에는 인간의 포즈를 9가지로 나누어 미술 작품 속 자세들을 설명하고 그 뒤에 숨은 사실들까지 아울러 책으로 묶었다.
데즈먼드 모리스는 “나는 나의 예전 저서 <맨워칭>(1977)에서, 몸짓언어라는 주제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말에만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할 때 훨씬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음을 말했다”며 새 책에서는 몸짓에 사회적인 기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도 참견 영상을 보면 매니
씨네21 추천도서 <포즈의 예술사: 작품 속에 담긴 몸짓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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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탕헤르의 앨리스는 어느 날 아침 집 앞에 찾아온 친구 루시를 보고 흠칫 놀란다. 미국에서 함께 대학을 다녔던 루시,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주던 영혼의 단짝 루시와 헤어지고 남편 존을 만나 아프리카까지 떠나왔는데, 루시가 어느 날 앨리스의 집 문을 두드린 것이다. <탄제린>은 1950년대 모로코를 배경으로 루시, 앨리스 두 여자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된다. 둘 다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공통점으로 금세 친해졌지만, 사실 루시와 앨리스가 처한 환경은 다르다. 가난한 장학생인 루시와 달리 앨리스는 신탁 수표가 매달 기숙사로 배달된다. 부모님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앨리스를 그녀의 고모는 미국으로 떠나보냈고 앨리스는 여전히 자기 상태에 대해 갈팡질팡한다. 고모로부터 ‘너는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듣고 자란 앨리스는 타인에 의해 쉽게 휘둘리고 자책한다. 사실 루시가 바라보는 앨리스는 그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출중한 여성이지만 앨리스가 화자가 된 페이지에서 그녀는 자신을 박하게 평가
씨네21 추천도서 <탄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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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작가와 나는 성장 배경도 다르건만 소설 속에는 내가 펼쳐진다. 이거 내 이야기인가? 내가 겪었던 일인가? <자두>의 화자는 번역 일을 하며 남편과 평화롭게 살고있다. 너무 신사다워 주위에서 로맨스그레이의 헌신이라 불리는 단정한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에 걸리며 그 평화가 깨진다. 염천에 시아버지 간병을 하며 둘은 지쳐가고 병원 소개로 전문 간병인을 고용한다. 간병인 황영옥씨는 출근 첫 날 시아버지의 침상을 둘러보더니 필요한 물품부터 상세하게 적어주며 전문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그리고 불면증을 앓고 거동만 불편하던 시아버지에게 섬망이 찾아오고 나는 시아버지와 남편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세계의 진면목에 대해 알게 된다. 황영옥씨는 ‘나와 남편’이 고용한 간병인이다. 우리와 저들로 세계를 나눈다면 ‘나’는 남편과 시아버지의 세계에 속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건 이후 나를 이해하고 걱정하는 것은 영옥
씨네21 추천도서 <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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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번을 읽어도 중간에 멈출 수 없는 책이 <어린 왕자>다. 재미있어서, 짧아서, 그림 구경하느라고. MD 상품으로도 만들어지는 <어린 왕자>가 작은 변신을 했다. 민혜숙의 자수가 더해진 <어린 왕자> 자수 그림책이다. 메이크업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유학 갔다가 자수를 만나게 되었다는 민혜숙은 2년 반 동안 이 책에 실린 자수 작업을 했다. 이경혜 작가는 책의 본문을 그림책에 맞게 썼다. 보아구렁이 그림에, 어린 왕자의 행성을 발견한 터키 학자 이야기에, 어린 왕자가 B612를 떠나 떠돌던 시절 방문한 행성들에, 여우에 멈춰 서 한참을 골몰하게 만든다. 글이 많지도 않은데.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를 연상시키는 비행기 조종사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는 어린 시절 보아구렁이 그림을 그렸는데 어른들은 그림을 보고는 모자라고 한다. 단 한번도 코끼리를 삼킨 보아구렁이 그림을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그는 비행기 불시착으로 사막에 내리게 됐는데,
씨네21 추천도서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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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수사팀을 이끌게 된 카트리네는 경찰을 떠난 해리 홀레에게 조언을 구했다. “살인범을 잡아.”답은 짧았다. 팀의 신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사건을 해결한다고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이번에도 비슷한 답이 돌아왔다. “다 풀려.” 카트리네는 질문을 바꾼다. “다요? 그럼 선배한테는 정확히 어떤 게 풀렸는데요? 순전히 사적인 면에서는요?” 해리의 답은, “아무것도. 하지만 방금 자네가 리더십에 관해 물었잖아”. 이 짧은 문답은 <목마름>의 주인공 해리 홀레를 잘 보여준다. 경찰(이었던) 해리 홀레. 연쇄 살인범을 잡는 데는 끝내주고 오로지 그 능력으로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지만 사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린 남자. 그랬던 해리 홀레가 달라졌다. 그는 이제 오랜 연인 라켈과 결혼해 안정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찰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순조롭다. 그런데 오슬로에서 목에 이상한 상처를 입고 죽은 사람들이
씨네21 추천도서 <목마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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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하는 명절은 한국 사회가 맞이한 초유의 경험이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인 이들에게 독서를 권한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나 자신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멋진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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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나도 어떤 순간이 선명하게 남으리라 예감한 적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강렬한 예감도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자신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예감의 바닥에 가라앉은 감정을 해명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새삼스러운 권태나 찰나의 충실감으로 인한 각성이 예감의 실체구나 싶을 때도 있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눈에 새겨넣는 그때, 상대를 훼손하고 관계를 망쳐버리고 싶은 충동을 곱씹기도 한다.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학도들’의 이야기.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보면서 예감으로 동요하고 감정 안쪽을 살피는 인물들에 공명한다. 이들에게 음악은 말을 대신하는 언어가 되고 또 짝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4수 끝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다시 입학해 졸업을 앞둔 채송아(박은빈)는 연주가로 살기엔 모자란 자신의 재능에 초라함을 느낀다. 송아가 무대 뒤편에서 지켜보던 피아니스트 박준영(김민재)에겐 ‘한국인 최초 쇼팽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위로가 필요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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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의 영화 <경주>(2014)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최현(박해일)의 ‘자살’을 목격했다. 그런데 영화를 본 주변에 물으니 아무도 그런 장면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수풀에 가려진 물결의 소리 너머로, 마른 강물로 뛰어드는 최현의 뒷모습을 분명 느꼈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번에 <후쿠오카>(2019)를 보고 나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같이 본 친구에게 “소담 역할은 육체가 있는 귀신이야”라고 말했는데,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 순간, 나는 장률의 최근작을 말하기 위해서 ‘모호함’ 자체를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어 <후쿠오카>는 추상적인 내용을,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영화였다.
두 남자와 이상한 여자
기묘한 에피소드가 영화에 차례로 등장한다. 첫째, 해효(권해효)가 농아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만난 소담은 그를 보자마자“말할 것
장률 신작 '후쿠오카'가 추상적인 내용을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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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영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회자되고, 다른 영화는 그렇지 않을까. <하워즈 엔드>를 보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중간의 기원
코로나19로 개봉작이 줄면서 재개봉작과 뒤늦은 개봉작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몇몇 작품의 개봉은 관객의 지지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톰보이>(2011)와 <워터 릴리스>(2007)의 뒤늦은 개봉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이후 감독을 향한 관심을 반영한다. 때로는 감독이나 배우가, 때로는 계절이나 영화를 둘러싼 상황이 특정 작품을 소환하는 원인이 되었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하워즈 엔드>(1992)의 재개봉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각색자인 제임스 아이보리의 전작으로 주목이 이어진 결과다. 앞서 개봉한 <모리스>(1987)가 동성의 사랑을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분명한 연결점
'하워즈 엔드',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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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저작권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저작물’의 정의다. 창작자가 인간의 삶과 희로애락에 몰두하는 동안 법과 계약의 문제는 전문가가 처리해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플랫폼의 다양화, 2차 창작물의 대두 등을 통해 저작권 분쟁이 더욱 첨예한 시대가 되었고, 특히 시나리오작가들이 처한 고질적인 문제인 크레딧 표기와 관련해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창작자가 스스로 더 많이, 그리고 정확히 알수록 자신은 물론 동료 창작자들의 권익 증진에 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제 적극적인 배움의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영화진흥위원회 공정환경조성센터 내 공정법률라운지가 업계로 막 첫걸음을 뗀 시나리오작가들의 집합소, S#1에서 저작권 강의를 열었다.
지난 7월18일 오후, 서울숲 인근에 위치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시나리오작가 양성소 S#1(이하 씬원) 강의실은 저작권 개념을 공부하기 위한 신진
영화진흥위원회 공정법률라운지 특강 ‘영화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의 기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