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월 18일 대한민국 광주에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시민 7천여명이 무참히 희생되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국가 폭력으로 3만여명의 시민들이 한순간에 실종자가 된다. 지구 정반대에 위치한 이 두 도시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역사적 비극을 겪었다. 아니, 여전히 겪고 있는 중이다.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 전후로 비슷한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한 두 도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고고학적인 다큐멘터리다. 임흥순 감독은 계속해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에 대해 조명해왔다. 이번엔 광주 5·18 민주화항쟁이다. 비교군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를 영화에 끌어들인다. 2채널 영상 설치 작품이었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두 도시의 이야기를 각각의 스크린에 담아 거울처럼 마주 보게 했다. 영화에선 두 도시가 마주 보는 것을 넘어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듯한 몽타주를 선보인다. 흑백 화면 사용은 이를 더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 1980년 전후로 비슷한 비극적인 역사를 경험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잇는 다큐멘터리
-
해병 출신의 명사수 ‘마크맨’ 짐 헨슨(리암 니슨)은 애리조나주의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은퇴 후의 삶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그는 얼마 전 아내를 떠나보냈고, 운영하는 목장은 곧 경매에 넘겨질 위기에 처해 있다. 국경수비대와 협력하여 밀입국자를 인도하는 일을 하던 짐은 어느 날 멕시코 마약 카르텔에 쫓기는 한 모자를 발견하고 그들을 돕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장의 동생을 사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총에 맞은 엄마는 짐에게 자신의 아이 미겔(제이콥 페레즈)을 친척이 있는 시카고로 데려가 달라는 부탁을 한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짐은 미겔과 함께 길을 떠나고, 그 뒤를 카르텔이 바짝 쫓는다.
<마크맨>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포함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여러 대표작들을 제작한 로버트 로렌즈의 두 번째 연출작으로, 이스트우드가 주연을 맡은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이후 9년 만의 작품이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픽
영화 '마크맨'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여러 대표작들을 제작한 로버트 로렌즈의 두 번째 연출작
-
냉전 시대는 스파이물을 만들려는 연출자들이 매료될 수밖에 없는 시기다. <더 스파이>는 소련과 미국의 핵전쟁 위기가 고조되던 1960년대를 배경으로 실제 활약했던 소련 스파이 올레그 대령의 실화를 다룬다. 그는 당시 소련에서 활약했던 스파이 중에서도 손꼽을 만큼 방대한 양의 정보를 서방에 넘긴 인물이다. 각본가 톰 오코너는 올레그 대령과 함께 정보 전달을 담당했던 영국 사업가 그레빌 윈의 인간관계에 집중한다. 여기에 도미닉 쿡 감독의 촘촘한 연출이 더해져 사람 냄새 나는 첩보물이 탄생했다.
<더 스파이>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만큼 기본에 충실하다. 흐루쇼프의 폭주가 두려웠던 올레그 대령(메라브 니니제)은 미국에 기밀문서를 넘겨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CIA 요원 에밀리(레이첼 브로스나한)는 영국 MI6에 공조를 요청한다. 이들은 의심을 피하고자 평범한 사업가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을 고용하여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는 정보망을 구축한다. KGB의 감시를
영화 '더 스파이' 섬세한 연출과 연기가 돋보이는, 웰메이드 스파이물
-
기다림은 너를 만나기 위해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가능한 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는 와중에 마음은 점점 더 깊어간다. 그렇게 자맥질해 들어간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마주하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순애보를 다룬 이야기는 대부분 성장담과 맞닿아 있는 경우가 많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비를 닮은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 일어난 9년 세월의 마음을 담은 영화다. 서울과 부산, 편지를 주고받는 두 남녀 사이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 영화 역시 기다림을 소재로 한 숱한 이야기의 자장을 벗어나지 않고 익숙한 궤적을 따라 맴돈다.
뚜렷한 목표도 꿈도 없는 삼수생 영호(강하늘)는 습관처럼 입시학원을 다니는 중이다. 마찬가지로 삼수 중인 수진(강소라)이 영호에게 호감을 드러내며 다가오지만 낯선 만남은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영호는 문득 초등학교 운동회 때 넘어졌던 자신에게 손수건을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비를 닮은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에 일어난 9년 세월의 마음을 담은 작품
-
-
2020년 2월 10일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엄청난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영화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4관왕에 오른 <기생충>.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러 발빠르게 움직였지만 너무나 다른 풍경에 먼발치에서 눈으로만 담아야 했다. 아쉽게도 돌비극장엔 들어가진 못했지만 같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함께 수상 소식을 들으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2021년 4월, 다시 한번 그 영광을 재현하려고 한다. 아카데미 최초, 그것도 한국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앞두고 있는 순간이다.
코로나19로 힘든 이 시기에 다시 한번 가슴 뛰는 시간이 흘러주기를 바라본다.
[ARCHIVE] 윤여정 배우를 응원하며
-
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1974년 11월 말, 파리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로테 아이스너의 병세가 위중해 곧 죽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영화비평가이자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 <파타 모르가나>의 내레이터이기도 했던 로테 아이스너의 회복을 위해, 걸어서 가면 로테 아이스너가 살아 있으리라는 확신을 품고, 헤어초크는 뮌헨에서 파리까지 혼자 도보 순례를 했다. 그 여정의 기록이 바로 <얼음 속을 걷다>이다. 11월 23일부터 12월 14일까지의 기록과 그 이후의 글이 실렸다.
이것은 마치 헤어초크의 미발표 영화를 글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다. 짐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무작정 나선 여정은 “오늘밤은 어디서 자야 할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헤어초크의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유용할 영화감독의 내면일기, 풍경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의 과정이다.
“또 눈, 진눈깨비, 눈, 진눈깨비… 천지창조를 저주한다.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흠뻑 젖은 채 사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얼음 속을 걷다>, 순례의 목적지
-
<눈이 부시게>
JTBC / 넷플릭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심덕출(박인환)의 뒤로 최백호의 노래 <바다 끝>이 깔린다. ‘나의 모든 노을빛 추억들이 저 바다에 잠겨 어두워지면 난 우리를 몰라’라는 가사에 드라마 <눈이 부시게> 10회가 떠올랐다. 김혜자(김혜자)와 노인들이 마주한 바다에도 석양이 지고, 그들이 바라보는 바다 끝에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가 흐른다. 여러 영화 삽입곡으로 쓰였음에도 처음 듣듯이 사무친다.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
넷플릭스
‘한번은 날아오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 <나빌레라>가 발레의 순한 맛이라면, 육체와 정신을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발레학교 무용수들의 자극적인 스릴러는 <사랑하는 작고 예쁜 것들>에서 구할 수 있다. 누군가의 추락으로 생긴 빈자리. ‘착지하지 말아야 할 곳’일까? 아무튼 아름다운 육체가 그득하다.
<
[HOME CINEMA] LINK - '눈이 부시게' 外
-
글이건 입말이건 누구나 자주 쓰는 부사가 있다. 내 경우는 ‘이를테면’과 ‘다만’을 많이 쓰고 입말로는 ‘약간’을 습관처럼 쓴다. 확언과 속단을 걱정하는 성격이 부사로 드러나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쓰는 부사가 내 말로 옮아왔다 떠나기도 한다. 부사 없이도 문장이 되지만, 이따금 대체할 수 없이 묵직하게 자리를 잡은 부사를 만나면 거기 사로잡혀 한참을 머문다. tvN <나빌레라>를 볼 때도 그랬다. 발레를 배우겠다고 스튜디오를 찾은 일흔살 노인 심덕출(박인환)은 취미나 운동이 필요하면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에 이렇게 답한다. “아니에요. 온전히 발레를 해보고 싶어요.” 흔히 쓰는 부사 ‘온전히’는 ‘본바탕 그대로 고스란히’와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게’라는 뜻이다.
무용수가 되기엔 한참 늦은 나이임을 알아도 덕출의 목소리와 눈빛은 확신으로 또렷하고, 내 시야는 눈물로 부옇게 흐려졌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발레를 원한다고 누군가에게 처음 말하는 순간일 테니까.
[HOME CINEMA] '나빌레라', 칠십대의 발레 무용수
-
“여정 윤.”(Yuh-Jung Youn) 지난 1년간 우리는 글로벌 무대에서 익숙한 한국 배우의 이름이 낯설게 호명되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봐왔다.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단숨에 2020, 2021 시상식 시즌의 가장 찬란히 빛나는 스타가 된 윤여정의 행보는 그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니크한 매력이 한국을 넘어 세계의 영화산업 관계자들과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이틀 뒤로 다가온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한국 시각으로 4월 26일 오전 9시)에서 다시 한번 ‘여정 윤’이 호명되는 순간을 기다리며, <씨네21>은 창간 26주년을 기념하는 마지막 특집호를 배우 윤여정 스페셜 에디션으로 구성했다.
두달 전 설 합본호를 통해 소개한 봉준호 감독과의 대담 기사가 배우 윤여정의 생각과 목소리를 오롯이 담은 특집이었다면, 이번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기자, 평론가, 감독, 배우, 작가, 제작자, 촬영감독, 매니지먼트 대표, PD, 스타일리스트 등 국내외
[장영엽 편집장] 윤여정의 여정
-
최근에 팬데믹과 관련된 책 한권을 마무리하고, 관련된 논문도 하나 썼다. 어쩔 수 없이 팬데믹의 영향을 받은 여러 분야를 살펴보고, 이런저런 예상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역시 언제쯤 코로나19가 끝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코로나19 백신을 청년 등 활동력이 높은 사람부터 맞게 할 것인가, 아니면 노년층부터 먼저 맞게 할 것인가? 활동력에 따른 전파를 생각하면 청년부터 맞는 게 더 효과적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는 젊은 노동자부터 먼저 맞는 전략을 선택했다. 청년층 확산도 막고, 젊은 노동자들이 경제에 먼저 투입될 수 있게 하자는 선택이다. 그렇지만 선진국 대다수는 노년층부터 맞는 것을 선택했고, 우리도 그렇게 했다. 바이러스를 조금 천천히 잡더라도 사망률부터 줄이는 선택이다. 백신에 의한 집단 방역에 가는 시간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같겠지만, 노년층부터 맞는 경우가 중간에 확진자가 급증할 위험이 조금 더 높다.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코로나19, 언제까지 갈까?
-
“기다려, 얼마 안 걸려.” 마 이사의 등장은 간결하다. 뒤로 족히 20명을 거느리곤 양 사장(박호산)에게 협박 전화를 하는 뒷모습. 이 익숙한 장면에 새로운 레이어를 얹는 건 배우 차승원의 존재감이다. “양 사장아, 이 개새끼야.” 어이없단 듯 웃으며 양 사장을 부른 뒤 이내 적대감으로 굳어버린 그의 얼굴은, 태구(엄태구)의 복수 이후 또 한차례 파란이 일 것임을 암시한다.
처음 배우 차승원이 <낙원의 밤> 출연 소식을 알렸을 때 많은 관객이 <독전>의 브라이언을 떠올렸다. 하나 차승원이 완성한 마 이사는 브라이언보다 거칠고,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희끗한 수염이 그의 나이를 가늠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도 좀체 놀라는 법이 없는 마 이사에게선 나이듦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연륜이 드러난다. 맡은 배역에 자신을 적절히 녹여낼 줄 아는 차승원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처음 마 이사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뭘 보고 이 역할을 나에게 맡겼
'낙원의 밤' 배우 차승원 - 섬세한 연륜
-
전여빈은 현재 대중이 가장 주목하는 배우다. 지난 2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에서 에너지 넘치는 변호사 홍차영으로 새로운 면면을 드러낸 뒤, 4월 9일 공개된 <낙원의 밤>에서는 냉철한 인물 재연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연기한 재연은 총기 불법 브로커 쿠토(이기영)의 조카로, 제주도로 내려온 태구(엄태구)와 함께 지내는 인물이다. 태구가 “총을 잘 쏘던데”라고 하자 재연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라고 답한다. 그처럼 재연은 슬픔으로 주저앉는 대신 서슬퍼런 총구를 겨누며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질주한다.
재연이 “정통 누아르의 변곡점이 되어줄 것”을 직감한 전여빈은 온전히 재연이 되기도, 또 완전히 타자화시켜 바라보기도 하며 재연에게 입체감을 더했다. 끝없이 튀어오르는 차영과 한없이 가라앉은 재연 사이에서 배우 전여빈의 세계가 다시 한번 확장했음을 실감한다. 상반기에만 두 작품을 선보이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전여빈과 마주 앉아 나눈
'낙원의 밤' 배우 전여빈 - 표현의 희열
-
<불신지옥>(2009)으로 범상치 않은 신인감독의 등장을 알렸고, <건축학개론>(2012)으로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세 번째 영화 <서복>을 만들었다. <서복>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자 죽지 않는 존재인 서복(박보검)과 죽음을 앞둔 민기헌(공유)의 동행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와 160억원이 넘는 제작비 때문에 SF블록버스터로 생각하기 쉽지만 <서복>은 사실 장르 규정이 무의미한 영화다. 이용주 감독 역시 영화가 SF로만 정의되는 것을 경계했다. <서복>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이용주 감독에게 물었다.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지 9년이 지났다. 세 번째 영화를 내놓기까지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나.
=나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이런 속도로 다음 영화 만들면 환갑이라던데. (웃음)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
'서복' 이용주 감독 - <서복>은 나의 또 다른 데뷔작이다
-
“창작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최대한의 지원, 창작에 대한 존중과 자유의 보장이 있다.” 김선아 프로듀서는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대해 한마디로 ‘합리적’이라고 정리했다. “처음 해본 프로젝트였던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도전이었고 전세계의 각기 다른 상황들을 조율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김선아 프로듀서는 이번 작업만큼 즐겁고 보람된 경험도 드물었다고 말한다. “이 기회를 우리만의 기회로 스쳐 지나가도록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보고 배워 다큐멘터리 업계 전반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정표로 삼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만큼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
영화계에는 흔히 과정이 힘들어야 영화가 좋다는 속설이 있지만 김선아 프로듀서는 단호하게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결과물이 어떻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자가 얼마나 오픈된 마인드로 창작자와 협업하는가의 문제다.
'인도·미국·스페인·브라질' 진심이 만나는 경험을 공유하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