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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인 사건과 그 이후는 어떻게 서로 긴장을 유지하며 대립할까. 코르넬 문드루초 감독의 <그녀의 조각들>은 중대한 사건과 그 후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20분이 넘는 롱테이크로 가정 출산의 과정을 묘사한 본편의 과감한 시도는 일찍이 알려진 바다. 이 장면은 롱테이크의 전형적인 기능대로 상황의 사실성을 충실히 견인하는 동시에, 출산이라는 행위가 지닌 격렬함과 긴박함을 극적으로 고양하며 관객의 숨까지 붙잡는다.
이음새 없는(seamless) 하나의 흐름으로 조직된 롱테이크가 활성화하는 것은 단연 체험의 파토스다. 그런데 체험이란 사건의 감각은 극대화하지만, 정연하게 정돈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관객에게 더욱 세밀한 감상을 요청하는 부분은 오히려 이 롱테이크 이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오프닝 타이틀이 롱테이크 직후 등장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이제 관객은 앞선 것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이 남아 있음을 상기하게 되고, 이 비극 이후를 살아가는 마사의
[씨네21 영화평론상 우수상 당선작] 조각난 신체의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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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의 <블랙클랜스맨>과 샤카 킹의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서로 대당이면서 거울쌍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클랜스맨>의 주요 서사는 백인 경찰이 백인우월주의집단 큐클럭스클랜(Ku Klux Klan, 이하 KKK)에 잠입해 발생하고,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이야기는 흑인 건달이 흑인인권운동단체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에 투입되면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전자의 이면에는 흑인이, 후자의 배후에는 백인이 있다는 설정 또한 두 영화를 번갈아 보게끔 만든다.
소수자의 권리투쟁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 영화를 비평할 때 가장 안전한 선택지는 서사가 전달하는 교훈과 정치적 요구를 실어나르는 것일 테다. 남다은 평론가가 켄 로치의 영화에 관해 “우리는 누군가의 비평적 견해를 참조하기 위해 켄 로치의 작품론 혹은 작가론을 읽지 않는다. 그의 세계에 대한 대부분의 비평은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나 상상력이 아니라,
[씨네21 영화평론상 우수상 당선작] 위장과 전복의 블랙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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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는 영화들을 선택하고,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프레임을 발견하는 시선이 돋보인다. 다음 글에선 또 어떤 작품들을 엮어 이야기할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저 영화를 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씨네21> 영화평론상의 문을 두드려왔다는 김성찬 당선자는 다섯번의 도전 끝에 올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가 들려준 ‘좋아하는 영화 리스트’,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엔 장르, 작가, 시대 등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는 영화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축하한다. 당선 소식을 전화로 전했을 때 “최우수상이요?”라고 반문하며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동명이인에게 잘못 전화를 한 건 아닐까 싶었다. (웃음) 지원 당시엔 심사평에라도 언급되자는 게 목표였다. 연이어 떨어지다 보니 소질이 없나 싶기도 했는데, 비평 쓰기를 워낙 좋아하고 한번쯤은 제대로 완성된 글을 써보고 싶어서 계속 도전했다. 적어도 10번은 시도해보자는 생각이었다. (
최우수상 당선자 김성찬, 잘 읽힌다는 의미에서의 명료한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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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은 유독 카메라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마치 정해진 일정 간격 안에서만 바라보라고 약속이라도 한 듯 피사체에 좀처럼 다가가지 않는다. 으레 등장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만한 상황이어도 규칙을 어겨서는 안된다는 듯 카메라는 관조의 태도를 고수한다. 부동의 시선과 롱테이크는 영화사에서 굳이 누군가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아도 쉬이 목격해온 장치다. 또 카메라 시선의 주체를 탐구하는 일도 빼놓지 않고 이어져왔다. <여름날>이라면 가장 쉬운 짐작은 일상을 보내는 승희의 모습을 적당한 발치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를 죽은 승희 엄마로 보는 것일 테다.
어느 밤 조용히 윗옷을 갈아입는 승희를 지켜보던 카메라의 시선은 화면이 암전되면서 잠시 사라진 뒤 선풍기 바람을 쐬며 낮잠을 자는 승희를 쳐다보는 시선으로 되살아난다. 화면 안에는 열린 문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닭들이 승희 주변을 오가고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주목하는 사람, 그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 당선작] 보편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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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신라고분군 발굴을 다룬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무덤의 주인은 왕족 중 10대의 공주로 추정되는데, 무덤에 부장된 바둑돌은 신라의 바둑문화를 남녀 모두가 즐겼다는 걸 시사한다는 점과, 왕릉급 부장품으로 금관이 나온 전례와 달리 금동관만 출토된 일은 의문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유물과 유적을 토대로 과거 삶의 양식을 상상해보는 일은 그 자체로 흥미로웠지만 일말의 무력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먼 옛날이긴 하나 인류인 우리가 직접 겪고 지나온 시간을 마치 완전히 잊은 것처럼 몇점의 유물과 유적으로 톺아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해당 기사에 쓰인 어휘도 추정, 시사, 단서 등이 주를 이룬 것을 보면 우리는 과거를 온전히 알 수 없고 추측할 뿐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우문이었지만 과거를 굳이 추정하고 상상해야 하는 현실은 한편으로는 미약한 단서들로 어떤 형상을 추정해낸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미래를 예측하는 일과 유사하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은 영화의 역사를 고려하면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 당선작] 영화에서 고고학적 발굴과 복원의 흔적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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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씨네21> 영화평론상 결과를 발표한다. 심사를 맡은 <씨네21> 장영엽 편집장, 김혜리 편집위원, 안시환·이지현 평론가는 최우수상 수상자로 김성찬씨를, 우수상 수상자로 이보라씨를 선정했다. 올해는 총 68편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으며, 급변하는 영화의 풍경을 반영하듯 특정 작품에 대한 논의뿐 아니라 영화 매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글이 적지 않았다. 올해의 공모는 막을 내렸지만 영화는 무엇이며,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성찬씨는 심사위원 전원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의 이론비평 ‘영화에서 고고학적 발굴과 복원의 흔적이 의미하는 것’은 <마틴 에덴>과 <트랜짓>, <맹크>와 <테넷>이라는, 지난 1년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화 팬들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을 대담하게 관통하고 있다. 균형 잡힌 분석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영화의 시간성에 관
제26회 <씨네21> 영화평론상 - 최우수상 김성찬, 우수상 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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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스펜서>가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영국의 전 왕세자빈 다이애나 스펜서를 연기하는 영화 <스펜서>가 올해 9월 개최되는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질 전망이다. <스펜서>는 <재키> <네루다> 등 역사적 인물들 내세운 작품을 연이어 발표해 주목받아온 파블로 라라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1991년 겨울의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궁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던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를 떠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알려졌다. 각본은 <로크> <세레니티> <거미줄에 걸린 소녀> 등을 집필한 스티븐 나이트가 맡았다.
한편 찰스 왕세자 역으로는 배우 잭 파딩이 낙점되었다. 잭 파딩은 <오피셜 시크릿>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다이애나 왕세자빈 연기한 <스펜서> 베니스에서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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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 앤더스 감독의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가 칸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됐다.
제74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현지시각으로 7월12일 밤 상영된 <프렌치 디스패치>는 <다즐링 주식회사> <문라이즈 킹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을 연출하며 독보적인 비주얼의 대명사가 된 웨스 앤더슨 감독이 애니메이션 <개들의 섬> 이후 3년여 만에 발표하는 신작이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초호화 캐스팅으로 먼저 주목 받았다. 배우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프랜시스 맥도먼드, 티모시 샬라메, 시얼샤 로넌, 레아 세이두, 오언 윌슨, 에이드리언 브로디, 엘리자베스 모스, 에드워드 노튼, 윌렘 대포, 베네치오 델 토로, 마티유 아말릭, 스티븐 박 등이 출연한다.
<프렌치 디스패치>의 배경은 20세기 프랑스의 한 가상 도시. 영화의 제목은 이곳에서 발행되는 미국 잡지 ‘프렌치 디스패치’를 뜻한다. 배
웨스 앤더슨 신작 <프렌치 디스패치> 칸영화제 시사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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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 그리고 김은희 작가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작업의 비기를 공개했다. 괴담을 주제로 한 극영화·시리즈를 전문가 멘토링, 마스터클래스 등을 통해 개발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제작 지원 프로그램 ‘괴담 캠퍼스’를 통해서다. 올해 영화제 개막(7월 8일)에 앞서 열린 괴담 캠퍼스는 지난 4월 미리 공모를 열고 108편 중 8편 작품 및 창작자를 엄선했다. 포스트 나홍진·김은희를 꿈꾸는 이들과 두 창작자의 마스터클래스는 영화제 공식 유튜브를 통해 7월 13일, 14일에 공개된다.
나홍진 감독, 당신의 ‘피’가 시키는 대로 나아가라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랑종> 제작 및 각본가로 활약하며 올여름 극장가를 달구고 있는 나홍진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일약 독한 기운을 뿜으며 등장했다. 연쇄살인마와 형사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담으며 한국 스릴러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추격자>(2008), 연변과 서울을 잇는 이주노동자의 하드보
[SPECIAL FOCUS] 당신의 피가 시키는 대로, 쉼 없이 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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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베타 테스트>의 공동연출자인 짐 커밍스와 PJ 맥케이브는 16년간 함께 공동각본가이자 공동연출자, 그리고 동료 배우로 함께 활동해온 친구 사이다. 2005년 대학에서 각각 영화 연출과 연기 전공자로 만난 인연이 지금까지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각본을 쓰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한 <더 베타 테스트>는 할리우드에 대한 우화로 요약할 수 있다. 주인공인 할리우드 탤런트 에이전트 조던(짐 커밍스)은 결혼을 6개월 앞두고 보랏빛 편지봉투에 담긴 유혹적인 초대장 하나를 받는다. 성적 취향을 체크해서 우편으로 부치면 그에 부합하는 상대를 지정해 정해진 시간에 한 호텔에서 만나게 해준다는 내용이 담긴 초대장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을 떠올리게 하는 <더 베타 테스트>의 랑데부는 단순히 유혹에 빠진 남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 아니라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사라져 가는 조던의 직업군, 즉 할리우드
'더 베타 테스트' 짐 커밍스, PJ 맥케이브 감독 - 할리우드에 대한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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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완료>는 중고거래와 관련된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로, 거래되는 물건마다 깊게 스며들어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물건마다 사연이 다양한데, LG 트윈스 팬인 초등학생(임승민)에게 야구잠바를 팔러 온 전직 야구 선수(전석호)는 안타까운 이유로 야구의 꿈을 접었어야 했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신체에 부착하면 바로 수면에 빠질 수 있는 장치를 중고로 사러 온 재수생(복권일)은 판매자인 고3 수험생(채서은)에게 찰나의 떨림을 느낀다.
밴드로 활동하고 싶은 신입 공무원(이규현)과 그에게 공무원 시험 수험서를 사는 기타리스트(이교형)의 운명도 얄궂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 비디오 게임 막판을 깨야겠다며 게임기를 중고로 사들이는 사형수(조성하)와 20년 가까이 신춘문예에 낙방하자 소장하던 세계문학전집을 팔러 온 작가 지망생(태인호)의 이야기도 안타깝다. <거래완료>는 인물들을 향해 알맞게 따스한 시선
'거래완료' 조경호 감독, 진솔하게 나를 담아서 만든 다섯 편의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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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숏버스 이별행>(이하 <이별행>)을 시작으로 각 장르와 소재를 순례하는 단편영화의 유람선이 닻을 올린다. 단편영화 배급사 퍼니콘과 자회사 언더식스티가 보유한 작품 중 동시대 단편영화의 색깔을 보여주는 26편이 엄선되어 6편의 옴니버스 장편으로 재탄생했다. 각각 <이별행> <감성행> <기묘행> <섬뜩행> <감독행> <배우행>이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기다리는 6편의 영화는 7월부터 12월까지 순차적으로 개봉한다. 단편영화의 항해에 나서기 전 참고하면 좋을 지도를 준비했다. 6편의 영화가 품은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별행>
<뜨거운 안녕.> 감독 유현 / 상영시간 11분40초 / 제작연도 2019년
<언프로페셔널> 감독 김세희 / 상영시간 11분 / 제작연도 2018년
<중성화> 감독 김홍기 / 상영시간 17분5초 / 제작
‘숏필름 유니버스’ 단편 영화의 우주를 항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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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짧아도 인연은 길다.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에 함께 출연했던 김재화·황미영 배우는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지만 이후 인연을 이어오면서 서로의 작업을 응원해주는 끈끈한 선후배 사이가 되었다. 둘의 인연은 ‘숏필름 유니버스’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진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사랑받은 26편의 단편영화를 6편의 옴니버스 장편으로 재구성해 7월부터 6개월 동안 상영하는 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먼저 개봉하는 영화 <숏버스 이별행>에 두 배우가 각각 출연한 <중성화>와 <그녀는요>가 포함됐다.
두 영화는 배우들간의 인연과는 정반대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김재화 주연의 <중성화>는 연인과 함께 키우던 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을 하러 가는 길에 남자가 지긋지긋해진 여자의 이별 다짐을 그린 이야기이며, 황미영 주연의 <그녀는요>는 소개팅 자리에 나온 상대 남자로부터 외모와 삶의 태도에 대해 손가락질받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다.
제작
'숏버스 이별행' 김재화 배우, 황미영 배우…그래서 단편 영화의 매력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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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사카모토 유지 작가가 2016년에 쓴 TV드라마 각본의 제목은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부제가 되어도 손색없을 것 같다. 일과 연애, 미래를 둘러싼 여러 가능성을 점치기 분주한 20대의 삶을 들여다보며 사카모토 유지는 꽃다발처럼 다면적이고 복잡한 이 시기의 경험이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추억이 될 거라 확신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2004)의 각본으로 이름을 알린 뒤 일본 드라마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최고의 이혼> <콰르텟> 등에서 꾸준히 현실의 일상사를 그려온 작가 사카모토 유지와 대화를 나눴다.
-대학생 무기(스다 마사키)와 키누(아리무라 가스미)는 막차를 놓친 후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오갈 데 없어진 두 주인공이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심야 영업을 하는 가게에 들어가 밤을 새우는데, 그 모습이 무척 자연스러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사카모토 유지 작가…사라지는 문화, 그 속의 청춘들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