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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모큐멘터리(혹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대개 ‘신랄하거나 웃기는’ 성격을 띤다. <데이비드 홀츠만의 일기>(1967),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1984), <개를 문 사나이>(1992), <포가튼 실버>(1995), <거프만을 기다리며>(1996) 등을 기억해보라. 그러한 이미지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작품은 아마도 <블레어 윗치>(1999)일 것이다. 이후 페이크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카메라를 거칠게 흔들며 귀신 나오는 공간을 들락거리는 영화, 불시에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재연 스타일의 영화로 인식하게 됐다.
이 장르는 딱 잘라 말해 시시해져버렸다. 요란한 소문을 몰고 온 <랑종>을 보면서도 별로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놀라게 한 건 이 영화의 전반부가 일부러 평범한 비디오 다큐멘터리를 흉내낸다는 점이다. <곤지암>처럼 카메라의 흔들림을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장르영화를 오가는 '랑종'의 구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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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곡성>(2016)의 무속인 일광(황정민)의 전사를 다른 양식과 스타일의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프로젝트가 <랑종>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랑종>에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포함한 장르적 외피와 태국이라는 시공간 등 영화의 뼈와 살을 다 발라내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때 그것은 아마도 나홍진의 정신(精神), 즉 세계관일 것이다.
<랑종>에서 시나리오 원안과 각본 그리고 제작을 맡은 나홍진 감독은 연출을 맡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보다 자신의 존재감을 더 표출한다. 이 역전된 상황을 송경원 기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피산다나쿤 감독이 “나홍진에게 빙의”됐다고 할 수 있다.
악귀의 탄생 조건
나홍진의 세계관 확장 측면에서 <랑종>을 <곡성>의 프리퀄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랑종>의 배경인 태국 이산 지역에서 악마의 씨가
나홍진의 자장 안에서 '곡성'과 '랑종'은 어떻게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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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종>이 개봉 첫날 12만9913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을 동원하며 <블랙 위도우>를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공포영화 오프닝 스코어로는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18만명)에 이어 역대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다.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 돌았던 만큼 관객의 폭발적인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아니 그렇기에 더욱 <랑종> 이 어떤 영화인지 그 소문과 실체를 구별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이에 <씨네21>에서는 감독, 장르, 재현의 윤리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랑종> 비평의 자리를 마련했다. 우선 오진우 평론가가 나홍진 감독의 세계를 중심으로 <랑종>을 분석했다. 이어 이용철 평론가가 페이크 다큐멘터리와 장르영화를 오가는 <랑종>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조
[스페셜] '랑종'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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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영관협회가 19일, 공식 입장을 통해 정부에 “극장 업계 지원책을 마련해 달라”고 촉구했다. 극장업계는 그동안 여러 차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영난을 토로하고 극장업계와 영화산업의 생존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으나 명확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국상영관협회는 서울극장이 8월 31일 영업을 종료할 예정임을 언급하며 “개인 극장, 위탁 극장, 멀티플렉스까지 쓰러지고 나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지원책 마련에 나설 것이냐”라고 질문했다. 또한 현재 재난지원금 및 소상공인 피해 지원을 위한 추경이 추진되고 있지만, 영화 산업을 위한 예산은 ‘영화 소비 쿠폰 100억 원’ 뿐이라며 보다 실질적인 지원과 피해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상영관협회가 제시한 지원책은 총 세 가지다. 첫째로 ‘영화발전기금 면제 환급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다. 영화발전기금 면제에 대한 근거 법안은 국회에서 이미 마련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법안이 통과되기 이전의 영화발
한국상영관협회, “극장 한계 ... 생존을 위한 지원책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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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킹덤: 아신전> 온라인 제작발표회에 전지현, 박병은, 김시아, 김뢰하, 구교환, 김성훈 감독, 김은희 작가가 참석했다. <킹덤: 아신전>은 생사초의 기원을 밝히고 <킹덤> 시즌2 엔딩을 장식한 아신의 전사를 따라가는 <킹덤> 시리즈의 스페셜 에피소드다. <킹덤> 시즌1을 연출한 김성훈 감독은 발표회 초반 등장한 “죽은 자를 되살리는 풀, 대가가 따를 것이다”라는 문구가 <킹덤> 시리즈와 <킹덤: 아신전>을 관통하는 말“이라 귀띔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킹덤: 아신전>의 주 무대는 압록강 일대다. <킹덤> 시즌1,2와 <킹덤: 아신전>을 집필한 김은희 작가는 “자료 조사를 하다가 북녘의 폐사군이라는 땅에 관해 알게 됐다. 그 넓은 땅에 근 백 년 동안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을 읽으며 ‘만약 그곳에 생사초가 피어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
전지현, "<킹덤>의 세계관이 무한 확장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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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국제영화흥업 / 감독 이장호 / 상영시간 102분 / 제작연도 1974년
이장호는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데뷔했던 감독이다. 20대 때 만든 <별들의 고향>(1974)은 개봉관인 국도극장에서만 46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그때까지의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웠다. 이 영화의 성공은 기성 제작 시스템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었다. 신상옥의 연출부 출신이었지만 감독이 카메라를 직접 잡는 특유의 촬영 현장에서 실질적인 연출 수업을 받지 못했던 이장호는 감독 데뷔의 기회를 잡은 순간 백지 상태의 자신을 깨닫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영화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낸 배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렵게 원작 판권을 확보한 일부터 촬영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연출, 편집실에서 비로소 완성된 구성 그리고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의 창작까지 배짱 반, 행운 반으로 돌파한 첫 연출 행보는 이젠 꽤 알려졌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스토리다.
불세출의 데뷔작 <별들의 고향>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신인감독 이장호의 역동적인 장르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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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시리즈 <스타트렉>의 제작 비화를 다룬 다큐멘터리 <함교 위의 혼돈>에 소개된 일화 하나. 1980년대 말 <스타트렉>의 두 번째 시리즈인 <스타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의 캐스팅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 한 배우가 제작진 앞에서 역사적인 오디션을 보게 된다. 그의 이름은 패트릭 스튜어트. 그는 그때도 대머리였다. 스튜어트의 연기는 훌륭했지만 제작진은 난색을 표했다. 왜냐하면 대머리였으니까.
그들을 위해 짧게 변명하자면 당시는 1980년대였다. 거액의 투자가 결정된 TV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머리카락이 없는 배우를 발탁하는 것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쉽사리 결정하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시리즈의 총책임자인 진 로든베리가 이런 말을 던졌다고 한다.
“24세기잖아. 아무도 대머리는 신경 안 쓸걸?”
조금 더 과거로 돌아가서, 1966년 <스타트렉>이 역사적인 방영을 시작하던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함교 위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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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구운 쿠키를 싸들고, 친구와 함께 돌담길을 거닐다, 문득 궁궐 안 미술관에 들어가보지 않을까. 김종관 감독의 프레임에 들어올 배우 신세경의 한나절을 상상했다. 작품 밖 스타의 삶을 기록하는 시네마틱 다큐멘터리 시리즈 <어나더 레코드>(가제)의 첫 작품을 두 사람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제작을 맡은 쇼박스는 캐릭터 너머의 모습이 궁금한 배우, 그와 어울리는 감수성을 가진 연출자의 조합을 구상하다 가장 먼저 이들을 떠올렸다고 한다. 제안 수락 후 촬영을 준비 중인 김종관 감독과 신세경 배우를 미리 만나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안테나를 조율 중인 이들의 영화는 올해 하반기 KT 시즌에서 독점 공개될 예정이다.
-<어나더 레코드> 시리즈의 첫 파트너가 되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다큐멘터리는 새로운 영역이다.
김종관 영화 작업을 할 때 배우와 공간이라는 테마를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배우의 매력과 비하인드 스
'어나더 레코드'(가제) 김종관 감독·배우 신세경…함께 산책하듯이,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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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사이 ‘블랙 위도우’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궁극적으로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만큼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를 변화시킨 엄청난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이야기를 쌓아올린 <블랙 위도우>의 각본가 에릭 피어슨과 온라인으로 만나 인터뷰했다. 피어슨에 따르면, <블랙 위도우>는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감정적인 여정”이다.
-스토리텔러로서 나타샤 로마노프라는 캐릭터의 어떤 면에 끌렸나.
=나타샤 로마노프는 치명적일 정도로 미스터리하다. 내가 나타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만의 방식이 있고 그것에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나타샤는 알렉세이(데이비드 하버), 옐레나(플로렌스 퓨), 멜리나(레이철 바이스)로 인한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올린 방어벽이 무너진다.
'블랙 위도우' 각본가 에릭 피어슨, 스토리와 캐릭터가 드러나는 액션 시퀀스를 중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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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만한 영상을 찾아 스트리밍 사이트의 목록을 훑는다.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시원한 여름을 위한 공포 특집’, ‘혼밥족을 위한 드라마’ 같은 분류명이 붙은 포스터 목록이 나타난다. 여기도 남자, 저기도 남자, 여기는, 어디 보자, 남자 다섯에 여자 하나…. 몇번이나 화면을 다시 당겨 보다가, 결국 포스터에 남자만 있어도 장르상 납득은 된다 싶은 선협물을 고른다. 은거해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며 산다는 노인이 네명 등장한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다. 심지어 남자1은 현을 타고 남자2는 무공이 높고 남자3은 높은 벼슬을 했고 어쩌고인데, 여자1은 남자1의 아내란다. 이 조연 네명은 2화 만에 습격을 받고 사라졌지만, 개운치 않은 마음은 남는다.
성비가 맞지 않는 콘텐츠는 더이상 즐겁지 않다.
의식해 추구한 변화가 아니다. 소비자운동적인 행동도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보고 재미없는 것은 피하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전체 등장인물들의 생물학적 성비가 맞지 않는 영화나 드라마, 남자들끼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설정 구멍, 재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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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과 연애 사이에서 갈등하는 대학생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JTBC 드라마 <알고있지만,>에서 배우 양혜지가 맡은 역할은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하는 오빛나다. 밤마다 세상 쿨한 표정을 하고 클럽으로 향하는 이 친구의 모습이 양혜지라는 필터를 통과하니, 위태로워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건강해 보인다.
실제로 빛나와 흡사한 말투를 가진 양혜지는 “평소에는 빛나처럼 꾸미지도 않고 트레이닝복 차림에 민낯으로 다닌다. 촬영이 끝나고 화장 안 한 내 얼굴을 보는 게 낯설다”고 말한다. 2016년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 시즌2로 데뷔해 몇편의 드라마 조연을 거쳐 <알고있지만,>의 빛나를 만나기까지, 그에 관해 우리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헤어스타일 원작 웹툰의 팬이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머리를 빨갛게 탈색하고, 당시 단발이었던 머리에 피스를 사서 붙이고 옷도 웹툰 속 빛나처럼 사 입고 메이크업도 비슷하게 한 채 오디션장에 들
'알고있지만,' 양혜지…빛나는 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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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7일 프랑스 칸에서 개최된 제74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지난 6일 진행된 개막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개막 선언을 한 데 이어, 폐막식에서는 배우 이병헌이 여우주연상의 시상자로 등장했다. 이병헌은 “이번 칸 영화제는 제게 무척 특별하다. 영화제의 문을 연 봉준호 감독과 올해 심사위원인 배우 송강호는 저의 동료이고, 심사위원장인 스파이크 리는 저와 성이 같기 때문”이라며 분위기를 돋우었다.
올해 황금종려상은 프랑스 출신 30대 여성 감독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에게 돌아갔다. 여성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는 1993년 제43회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제인 캠피온 감독의 <피아노>였고 <티탄>은 그로부터 28년 만의 수상작이다. 연쇄살인을 소재로 한 <티탄>을 두고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은 “내 영화가 괴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다양성을 포용하고 괴물
제74회 칸국제영화제 폐막, 황금종려상은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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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트리스트럼 샌디>를 첫책으로 하는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가 20주년을 맞았다. 총 140종 166권의 책이 이 시리즈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그중 3권이 새로운 판형의 리커버판으로 선보인다.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의 <악의 꽃>,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 세권 모두 시집이며, 대산세계문학총서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책들이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번역을 맡은 윤영애 교수의 옮긴이 주, 옮긴이 해설, 작가 연보야말로 이 책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알아갈 수 있는 든든한 힘이다. 시대 분위기, 철학과 정치, 경제의 변화상황 속에서 ‘악의 꽃’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시어들을 다시 꼼꼼하게 읽게 만든다.
다니카와 슌타로의 <이십억 광년의 고독>은 신기할 정도로 내 주변의 세상을 살갑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시집이다. 찌는 여름
씨네21 추천도서 <악의 꽃>, <끝과 시작>, <이십억 광년의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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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번역가로 활동해온 작가 아밀의 단편집 <로드킬>의 표제작 <로드킬>은 희귀 인종으로 분류된 여자아이들만 모여 있는 학교 이야기다. 유전자 변형을 통해 임신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한 여느 여자들과 달리 돈이 없거나 종교적 신념 등의 문제로 타고난 신체를 유지한 여자들이 딸을 출산하면 이 여학교에 보낸다. 학생들은 여자다운 여자로 자라도록 교육을 받다가 나이가 차면 결혼 상대를 찾으러 오는 남자들을 만나야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여성의 울적한 근미래를 다룬 SF 소설들이 떠오르는 설정이지만 동시에 ‘신붓감’을 찾는 설정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도 베트남 여성 유학생에게 어느 시에서 농촌 총각과의 결혼을 권유하는 사업을 추진했다가 중단된 일이 있었다. <로드킬>의 여학생들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다. 학교 밖으로 나갔다가 질주하는 차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데도 자유를 찾아 나갈 생각이다.
소녀들은 왜
씨네21 추천도서 <로드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