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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일,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에서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동현 집행위원장, 정지혜 프로그래머, 한준희 감독, 배우 권해효 등이 참석했다. 김동현 집행위원장은 “어려운 시기에 손을 맞잡고 함께 가자는 의미를 담았다”며 올해의 슬로건 ‘백투백’(Back To Back)을 소개했다. “올해 출품작은 1550편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지난해보다 더 많은 작품이 출품됐다. 이중 120편의 상영작이 선정됐고 여성 창작자 비율은 55.26%. 신진 작가, 장편 데뷔작을 만든 감독의 비율도 55% 이상으로 과반수를 넘었다”고 전했다. 또한 “최근 지역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추세다. 20여편 이상이 지역에서 만들어져 유의미한 결과를 낳았다. 창작자들과 함께 지역영화 포럼도 개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본선 예심을 맡은 정지혜 프로그래머는 “여성 서사, 그중에서도 기존의 모녀 관계와 다르게 맹렬하고 저돌적으로 욕망에 집중하는 서사가 많다는 게 특징”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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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와 켈리 라이카트, 2020년대 아메리칸 시네마의 가장 빛나는 이름인 두 감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로부터 창작의 영감을 받았다는 점이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퍼스트 카우>는 “새에겐 새집이, 거미에겐 거미집이, 인간에겐 우정이”라는 블레이크의 시 한 구절로 시작한다. 클로이 자오는 <이터널스>를 만들기 위해 마블의 수장 케빈 파이기를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며 “한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 영원을 보라”는 블레이크의 시를 통해 영화의 비전을 제시했다고 한다. <퍼스트 카우>와<이터널스>의 개봉 시기가 겹쳐 윌리엄 블레이크의 이름을 우연히 발견한 까닭도 있겠지만 두 감독이 같은 예술가의 이름을 모티브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단순한 우연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창대하고 유구해 보이는 세계와 전통도 결국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무언가로부
[장영엽 편집장] 클로이 자오와 켈리 라이카트, 아메리칸 시네마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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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유튜브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첫 앨범을 내기 전, 그러니까 약 15년 전에 유튜브에 노래하는 영상을 올려서 그걸로 어쩌고저쩌고했던 나지만, 그것과 현재의 유튜브를 즐길 수 있는지는 별개였다. 요즘 사람들은 검색할 일이 있으면 포털 사이트에 쳐보지 않고 유튜브에서 찾는다고 지인이 말했을 땐 그가 잘못된 정보를 들었거나 확대 해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상으로 검색을 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검색이라는 것은 검색어를 검색창에 넣어서 나오는 텍스트를 읽고 파악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블로그의 수많은 신나는 토끼, 점프하는 토끼, 난처한 토끼, 여하튼 갖가지 토끼를 보며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는 게 핵심 아니었냐고. 영상은 영상이고 텍스트는 텍스트인데 그게 어떻게….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패러다임도 바뀌었고 사람들은 내가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듯 영상을 톡톡 건드리며 원하는 구간을 찾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아침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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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이 21세기에 부활한다면
인간을 중심에 두는 드니 빌뇌브의 스펙터클과 <듄>의 사막
드니 빌뇌브와 크리스토퍼 놀란이 친밀한 관계라는 말을 들었다. 연출자의 궤적을 보면 비슷한 부분이 많은 두 사람이다. 각각 캐나다와 영국에서 작은 영화로 시작했지만, 영화적으로 인정받으면서 할리우드로 이동해 점점 더 대작의 영역을 장식하는 감독으로 변했다. 윌리엄 와일러가 존 포드와 하워드 혹스를 못 이기는 것처럼, 구로사와 아키라가 오즈 야스지로와 미조구치 겐지를 못 이기는 것처럼, 페데리코 펠리니가 루키노 비스콘티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못 이기는 것처럼, 스펙터클을 추구한 감독일수록 현혹의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스펙터클이 죄는 아니다. 스펙터클이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어쩌면 죄의 명목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스펙터클을 정의하려는 의도는 없다. 말하려는 것은 빌뇌브의 스펙터클이다. 나는 그의 스펙터클이 놀란의 그것이나 그들의 위대한 선배인 스탠리 큐브릭의
3인3색 비평, 이용철 평론가의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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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를 넘어설 각오가 필요해
프랭크 허버트의 <듄>영상화와 관련된 신화와 진실
프랭크 허버트의 <듄>은 1965년에 처음 출간된 뒤로 두 가지 미신을 끌고 다녔다. 하나는 SF 역사상 최고 걸작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화가 불가능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듄>이 최고의 SF 소설 또는 소설 중 하나라는 주장은 거의 직관적으로 반박될 수 있다. 일단 몇 페이지만 읽어도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대단한 야심작이기는 하다. 적어도 첫 번째 책은 재미있다. 장르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 하지만 걸작이 되기엔 문제가 많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 책이 결국 한 무더기의 패스티시 덩어리라는 것이다. <듄>의 세계는 어떤 곳인가. 인류가 항성간 여행을 통해 전 은하계를 커버하는 제국을 건설했는데, 그 세계에서 백인 남자들이 공후백자남 놀이를 하며 만년의 시간을 날리고 있다. 이 자체가 통탄할 일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3인3색 비평, 듀나 평론가의 '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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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태와 영자>
제작 화천공사 / 감독 하길종 / 상영시간 115분 / 제작연도 1979년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고뇌하던 하길종은 1979년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뒀다. 여섯 번째 작품 <속 별들의 고향>(1978)과 일곱 번째 작품 <병태와 영자>가 각각 1979년 흥행 1위와 5위를 차지하며 그의 상업적 역량을 확인시킨 것이다. 1978년 11월에 개봉한 <속 별들의 고향>은 명보극장에서 다음해 1월까지 상영을 이어가며 3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1979년 2월에 개봉한 <병태와 영자>는 스카라극장에서 18만 관객을 모았다. 자신의 연출작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그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2월28일 세상을 떠난다. 하길종의 마지막 작품 <병태와 영자>는 <바보들의 행진>(1975)의 속편으로 만들어졌다. <바보들의 행진> 때는 작가 최인호가 자신의 소설을 시나리오로
[정종화의 충무로 클래식] 고래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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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바다, 생명 그리고 우주. 극장판 <도라에몽> 시리즈로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2019년 <해수의 아이>를 통해 그간 축적해온 구상과 비전을 아름답게 실현한 바 있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신작 <항구의 니쿠코>는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BIAF)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첫선을 보였다. <항구의 니쿠코>는 항구의 배를 거처로 삼는 두 모녀 니쿠코와 키쿠코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았다. 개막작뿐 아니라 올해 BIAF의 포스터와 심사위원장까지 맡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을 만났다.
- BIAF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전작 <해수의 아이>가 지난해 BIAF 장편부문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신작 <항구의 니쿠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거기에 심사위원장까지 맡았는데.
=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방문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BIAF는
제23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장, <항구의 니쿠코>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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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최초로 마블의 슈퍼히어로가 된 마동석. 11월3일 개봉하는 <이터널스>에서 그가 연기한 길가메시는 맨손으로 빌런을 해치우는 괴력의 소유자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떠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성난 주먹의 새 경지를 보여줄 예정이다. 좀비든 사람이든 일단 ‘때려잡고’ 보는 마동석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에 반한 마블 제작진은 고대 바빌로니아 신화 속 캐릭터를 아시아인으로 바꾸는 과감한 변화를 꾀했다. <부산행>(2016) 이후 할리우드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시안 액션 아이콘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던 마동석은 지난 5년간 받은 여러 출연 제의들을 물리치고 결국 클로이 자오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7천년 동안 살아온 태초의 히어로 ‘이터널스’로 분해 MCU 페이즈4의 범우주적 세계관을 누빌 마동석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 길가메시 캐릭터의 능력치가 화제가 되고 있다. 엄청난 파워, 초스피드 비행, 눈과 손의 열선 발사, 사물 조종, 신
길가메시, 마동석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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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굿키즈 온 더 블록>의 파이널 시즌이 10월4일 공개됐다. 시즌3의 결말은 LA 지역 갱들의 대모인 쿠치요스의 죽음을 숨김으로써 위기가 일단락되는듯 했으나 공동의 문제가 사라지자 오히려 몬세, 세사르, 자말, 루비, 자스민 사이에는 거리가 생겼다. 형 오스카는 갱단을 떠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지만 동생 세사르는 갱에 남았다. 지난 6월 28일, <굿키즈 온 더 블록>의 여섯 주인공을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지난 5년 동안 각자의 캐릭터로 살아온 디에고 티노쿠(세사르 역), 시에라 카프리(몬세 역), 제이슨 헤나오(루비 역), 브렛 그레이(자말 역), 제시카 마리 가르시아(자스민 역), 훌리오 매씨아스(오스카 역)와의 문답을 전한다.
이제 마지막 시즌이다. 기분이 어떤가. (질문이 끝나자 일동 한숨을 내쉬고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제시카 마리 가르시아 시원섭섭하다. 우리는 ‘가족’이 됐기에 작품이 끝나더라도 서로의 삶은 연
파이널 시즌 맞은 넷플릭스 시리즈 <굿키즈 온 더 블록> 출연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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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성과가 낮은 직원을 계속 고용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 와서 나름 열심히 했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열심히 해도 성과가 나지 않는 직원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회사측 대리인이 열변을 토한다. 얄밉다. 사람을 앞에 두고 저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싶다. 얄밉다고 말할 수는 없어 반대편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딱히 쓸모도 없는 소심한 항의다. 속으로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법리적으로만 보면 당신들이 이길 사건이잖아요? 꼭 이래야 해요?’라고 생각한다.
질 사건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전문가로서 승패를 가늠하지 못하고 희망찬 가정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는 일이 되지 않는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져보고, 안될 일은 안될 일이라는 판단을 정확하게 하고,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출구 전략도 궁리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법리적, 현실적, 전략적.
허용, 인과관계, 취지, 예비적, 여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말의 어려움, 어려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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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ARE YOU
“제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차분하게 스튜디오에 들어선 장률은 드라마 <마이 네임>의 도강재를 보며 상상해본 모습과 전혀 달랐다. 해사하게 웃는 그가 얼굴의 흉터를 매만지며 복수의 칼을 가는 강재가 되기까지, 얼마나 깊이 인물을 탐구했을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계원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프라이드> <킬롤로지> 등 수많은 연극 무대에 올랐던 장률은, <마이 네임>에서 그의 “어머니도 무서워할 정도로” 날카로운 킬러 도강재가 되어 질주한다. 차기작인 연극 <마우스피스>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만나 작품 안팎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장률 배우의 인터뷰 영상은 <씨네21>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감과 확신 사실 오디션 때는 감독님에게 확신을 못 드렸던 것 같다. 그 뒤로 공연 무대에 올라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오늘 왠지 감독님이 오실 것 같다는 예
'마이 네임' 장률, 장률이 보여줄 놀라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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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건 누아르인데 어쩜 이렇게 멜로적이니?” 현(류승룡)과 이혼 후, 그의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인 순모(김희원)와 사랑에 빠진 미애(오나라)는 말한다. 느닷없이 순모의 거친 얼굴에 선크림을 쓱싹 발라주고, 순모가 짜온 살인적인 데이트 스케줄을 꿋꿋이 따르면서.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골칫거리인 전 배우자와 사춘기 아들도 잊는다. 전남편 친구와의 연애, 친구의 전 부인과의 연애에 놓인 두 사람 사이의 ‘멜로적’ 순간을 사랑스럽게 연기해낸 배우 오나라와 김희원은 “아마 이런 커플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며 우리를 설득한다. 영화를 찍으며 서로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촬영장 밖에서도 술 한잔 없이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남매 케미를 선보이며 <장르만 로맨스>였던 여름날을 회상했다.
귀엽고 유쾌한 영화다. 처음 시나리오는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다.
김희원 프랑스 예술영화 같았달까? 시나리오에 철학적인 구석도 있고, 사회적인 메시지도 있었다.
'장르만 로맨스' 오나라, 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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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룡과 성유빈은 <장르만 로맨스>에서 각기 다른 도전을 했다. <최종병기 활> <명량> <고지전> 등 장르영화에서 선 굵은 캐릭터를 연기한 류승룡은 슬럼프에 빠진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현’으로 생활 연기에 도전했고, <살아남은 아이> <봉오동 전투> 등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10대를 연기했던 성유빈은 “처음 받아본 코미디영화 대본” 속 고3 수험생 ‘성경’으로 변신했다. 극중 두 사람의 관계는 부자. 현의 이혼으로 따로 살고 있으나 두 배우가 함께한 첫 촬영이 부자의 말싸움 신일 정도로 왕래가 잦은 친밀한 사이다. 첫 촬영을 두고 류승룡은 “아들이 둘이라 생활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회고했고, 성유빈은 선배와의 첫 촬영을 “생각을 많이 안 하려고 했다. 생각을 하면 더 굳는다”라고 떠올렸다. “생각 많이 한 배우와 하얀 도화지 같은 배우가 만났을 때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공기” (류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성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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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장르는 없었다. 이것은 로맨스인가, 콩가루 집안의 이야기인가. 베스트셀러 소설가 현(류승룡)이 슬럼프에 빠진 사이 전 부인 미애(오나라)는 현의 친구 순모(김희원)와 비밀연애 중이고, 아들 성경(성유빈)은 이웃사촌 정원(이유영)에게 빠져 학교를 빼먹기 일쑤다. 무작정 현을 쫓아다니는 대학생 제자 유진(무진성)은 소설을 한 자도 쓰지 못해 괴로운 현 앞에 번뜩이는 습작을 들고 나타나 현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는 멀리서 보면 각자의 로맨스, 자세히 보면 관계의 복합성에 대해 말하는 코미디영화다. 한국판 <미스 리틀 선샤인> 같다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어쨌든 이곳에 모질고 모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렇다고 인물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창작력이 시든 소설가, 전남편을 배려하기 위해 비밀연애 중인 전 부인, 괜히 이혼한 부모 탓을 하고 싶은 고3 수험생 등 누구 한명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이
'장르만 로맨스' 류승룡, 오나라, 김희원, 성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