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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같은 저 두눈이 무엇에나 반응 잘하고, 쉽게 놀랄 것 같고, 눈물도 많이 금방 투두둑 떨어뜨릴 것도 같은데 모두 다 억측이었다. 깊어서 혹은 넓어서 흔들리지 않는 호수처럼, 오랜 시간 천천히 식으면서 굳은 호박(琥珀)처럼 눈빛은 잔영없이 단단하고 야무졌다. 중학생 교복 차림으로 하이틴 잡지의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로 들어서던 때부터 그녀는 웬만한 일에는 감정의 출렁임이 거의 없는 대범한 소녀였다.
셔터 소리와 카메라 불빛에 적응이 되니, 오히려 즐기는 정도가 되었단다. “떨리는 건 요즘이 그래요. 그땐 너무 몰라서 그랬는지. 모르는 사람이 용감한 법이잖아요. 요즘은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하곤 해요. 예전엔 없던 일이에요.” 조급하게 몰아세우는 스케줄에 둘러싸이게 되자 고됐던 걸까.
그녀는 브라운관을 도망치듯 떠나 멀리멀리 몸을 숨긴 듯이 보였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이야 일이 고될수록 그 큰 두눈을 부릅뜨고, 악착같이 덤벼드는 성격의 그녀를
유혹의 아이콘, <천년호>의 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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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는 낮고 굵은 목소리를 가졌다. 그저 타고난 음성이겠지, 지나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좌절과 설움을 아는 배우다. 그늘을 아는 사람은 눈빛에서, 목소리에서, 사소한 인사 한마디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과거를 내비치게 마련이다. 그는 흠잡을 데 없는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그것과 상관없이 찾아왔던 실패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배우는 희로애락을 다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해요. 좋은 일이 생겼다고 해서 그저 좋아하는 게 아니라, 가슴에 한을 묻어야 하는데….” 일찍부터 ‘충청도 영감’이라는 별명을 달고 살았다는 정준호는 재주보다는 어쩔 수 없이 우러나오는 감정에 기대어 연기를 해야 한다고 믿는, 숙성되고도 때이른 가치를 품고 있었다.
막 연기를 시작했던 90년대 초반, 정준호는 너무 빨리 TV드라마의 주연이 되었다가 너무 빨리 추락했다. 몇년을 끈기로 견디고 난 정준호는 한국영화 역사에서도 상위에 기록될 법한 흥행영화 <두사부일체>와 <가문의 영광>
그가 신인처럼 사는 이유, <천년호>의 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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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는 김효진보다 열세살이 많다. 김효진은 표지 촬영을 하던 날까지도 열다섯살 차이로 알고 있었지만, 정준호는 그렇게 주장했다. 그렇더라도 띠동갑을 넘어서는 세월. 영화뿐만 아니라 사진촬영 경력도 한참을 더 쌓아온 오빠는 동생에게 “우리 영화 분위기에 맞게, 좀더 에로틱하게 해보자고. 얘가 연애를 안 해봐서”라고 가르친다.
조금 토라진 동생은 “해봤어…”라며 귀엽게 앙탈을 부리다가도 ‘에로틱하게’ 오빠의 목을 껴안고 만다. 한 시간쯤 전, 카메라와 조명을 들고 들이닥친 기자들을 두고도 “밥은 먹어야지”라고 챙겨주었던 데 대한 보답일지도 모르겠다.
<천년호>에서 저주와 죽음마저 이겨내는 사랑을 나누었던 두 배우는 그처럼 사이좋은 선후배가 되어 나타났다. 정준호가 직접 선택한 후배였으니 그 살뜰한 정은 남들에게 선보이기 위한 연기만은 아닐 터다. 정준호와 김효진은 문차일드의 뮤직비디오 <사랑하니까>에서 처음 만난 사이.
정준호는 발목 부상으로 촬영 시작 전
오누이보다 의좋은 연인처럼,<천년호>의 정준호&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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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모반자'라도 되기를신동엽이 <와우! 동물농장>만을 남기고 인기리에 방송되던 프로그램을 모두 접었다. ‘재충전’을 하겠다는 것이 이유다. 그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중 <맨∥맨>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는 막을 내렸다. <해피투게더>는 김제동, 유재석을 기용하며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해피투게더>는 KBS2TV의, <신동엽 김원희의 헤이헤이헤이>는 SBSTV의 야간 오락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있었던 프로그램이다. 이러하니 그를 향한 모시기 경쟁도 치열했다고 한다. 경쟁이 치열하니 출연료도 국내 최고 수준. 600만원+알파가 그의 회당 출연료라는데, 700만~800만원을 호가한다는 말도 들린다. 뭐, 어떻게 된 계산인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한달 수입이 1억원이 넘는다고 한다.신동엽이 ‘재충전’을 위하여 일을 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신동엽만의 일도 아니다. 자체적인 ‘충전’의 시간 혹은 타의
[TV방송가] 잠깐만 안녕 하는 MC 신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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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내, 살아가는 것이 뭘까. 생존 경쟁이거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달려들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이기 십상이다. 문승욱 감독의 <서바이벌 게임>(DV 6mm/ 2003년)은 그런 냉혹한 현실을 냉정하리만치 참혹하게 그려낸다. 현성과 그 선배들은 식당에서 진탕 술을 먹는다. 그리고 지들끼리 티격태격하다가, 식당 종업원과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벌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상이 반복되는 게 현실이고, 그런 현실은 한마디로 개판이다.
증권중개사인 현성은 일이 잘 안 풀리자, 친구가 있는 서바이벌 게임장에 간다. 우연히 게임에 참여하게 된 그는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게임이 진짜 전쟁터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사실 살아가는 게 곧 전쟁터가 아닌가? 게임인지 현실인지, 삶의 현장인지 전쟁터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 우리 사회의 모든 일들이 그렇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옥죄어오는 현실은 숨막힐 지경이다.
문승욱 감독은 그런 현대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술자리의 다
[독립영화관]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서바이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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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11월23일(일) 밤 11시
1950년대에 제임스 딘은 <이유없는 반항>에서 청바지와 강렬한 눈빛으로 온 세계 젊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성세대의 불합리와 권위에 반항하는 젊은이라는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그의 모습은 한국에서는 영화 <맨발의 청춘>으로 다시 살아난다. 젊은 혈기와 주먹만을 믿고 사는 거리의 깡패 두수(신성일)는 어느 날 우연히 외교관의 딸 요안나(엄앵란)를 위기에서 구해주며, 계급을 넘어선 사랑을 하게 된다. 신성일-엄앵란 커플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이 영화에서 신성일은 청바지와 짧은 머리, 반항적인 눈빛으로 한국의 제임스 딘으로 탄생한다. 결국 그들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동반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택하고 만다. 특히, 수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히게 한 마지막 장면은 한국 영화사 명장면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당시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 영화 <맨발의 청춘>은
[한국영화걸작선] 맨발의 제임스 딘,<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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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 1995년감독 뤽 베송출연 장 르노 SBS 11월23일(일) 밤 11시45분장 르노가 주연한 범죄영화. 레옹은 무표정한 얼굴로 권총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프로 킬러다. 마틸다의 가족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한 일당에 의해 순식간에 살해당한다.이후 레옹과 마틸다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레옹은 가족의 복수를 하려는 마틸다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치고 이 와중에 어떤 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폭력으로 얼룩진 둘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다. 프랑스 감독이지만 할리우드 오락영화에 가까운 작품을 만드는 뤽 베송 감독의 작품이다.영화 '그랑 브루'를 통해 누벨이마주의 대열에 들어선 프랑스 감독 뤽 베송의 흥행작. '레옹'은 킬러 레옹과 소녀와의 사랑을 다루면서 이색적인 느낌을 던져준다. 할리우드에 근접하려는 뤽 베송의 낌새를 눈치챌 수 있었던 영화이다. 이 과정에서 스피드한 액션이 선보인다. 레옹과 소녀 마 틸다가 함께 침대에 누운 장면을 비롯한 몇 장면이 삭제되어 우리나라에 1995년
[주말TV]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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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nto, 2000년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출연 가이 피어스 KBS2 11월22일(토) 밤 10시50분흥미로운 구성의 범죄스릴러. 몇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환자 레너드. 그가 기억하는 것은 세 가지뿐이다. 자신의 이름,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범인이 존 G라는 사내라는 것이다. 자신이 전직 보험 수사관이라는 것도 타인에 의해 기억하는 정보이다.이 증상은 아내가 살해당한 날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심지어 문신도 그렇다. 몸에 새겨진 글자들이 기억을 지탱해주고 있다. 필름누아르의 현대적 변형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높은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메멘토>는 심오한 해석이 요구되는 난해한 예술영화가 아니다. 복잡한 퍼즐일 뿐이다. 두뇌게임을 싫어하지 않는 관객에게 <메멘토>는 올해 최고의 오락영화가 될 자질이 있다. 창의적이고 정교한 구성에다 가이 피어스의 자로 잰 듯한 연기와 불안과 강박증을
[주말TV] 메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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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hu, The Little Stranger, 1989년 감독 바흐람 베이자이출연 수잔 타슬리미 EBS 11월22일(토) 밤 10시이란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봐도 어딘가 전에 봤던 영화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키아로스타미와 마흐말바프, 마지드 마지디 등 이란감독의 영화는 어린이와 전쟁, 가난과 진정한 우정 등 몇개의 소재를 공유하는 점이 있다. 바흐람 베이자이 감독의 <바슈> 역시 얼핏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간략한 서사만 보면 이 영화는 이란영화의 전형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소재와 키워드를 되풀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바슈>는 놀랄 만큼 신선하다. 영화의 진정한 힘은 이란영화의 전형성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느 한계선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 기이한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영화 <바슈>는 영화 매체의 근원적 매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숨은 거장이 빚은 강렬한 이미지,<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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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달러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석양의 무법자>(1966)를 완성한 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자기가 다음에 만들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을 반복해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했지만 이스트우드는 거절했다. 이후 두 사람은 다시는 감독과 배우로 함께 영화작업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트우드의 중요한 영화적 스승 가운데 하나인 레오네의 짙은 그림자로부터 이스트우드가 완전히 발을 뺀 것은 아니었다. 테드 포스트 감독의 <헌팅 파티>(1968)나 존 스터지스 감독의 <조 키드>(1972)에서든 아니면 이스트우드 자신이 직접 연출한 <평원의 무법자>(1973)에서든 레오네 이후의 웨스턴 세계 속을 배회하던 이스트우드의 과묵하고 냉정한 터프 가이들은 어김없이 레오네의 세계를 지나쳐 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그런 점에서는 <수녀와 카우보이>도 예외에 속하지 않는 영화
레오네적 스파게티 웨스턴의 세계,<수녀와 카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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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너 어느 별에서 왔니?>를 보며 어이없게 실소했던 사람이라면, 70년대 미국영화의 흥미진진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캐취22>에 경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크 니콜스의 초기작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의 신경쇠약 직전의 심리묘사라든가 <졸업>에 암암리에 깔려 있는 기성세대를 향한 조용한 반란의 정서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조셉 헬러의 전설적인 ‘파편’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 주인공 요사리안은 제2차 세계대전에 진저리를 내고 있는 폭격수다. 그는 전쟁터에서 달아나고 싶은 마음에, 군의관에게 자신이 미쳤다는 진단을 내려주길 부탁한다. 그러나 전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는 그들이야말로 ‘정신병자’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 한갓 ‘쓸데없는 이벤트’에 불과한 전쟁을 시종일관 사악한 유머와 초현실주의적인 냉소로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심지어 <풀 메탈
전쟁은 미친 짓이다!<캐취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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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권 기지에서 행해진 원자력 실험의 결과는 끔찍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1억년 동안 잠들어 있던 선사시대 공룡, 레도사우루스가 부활한 것이다. 공룡을 처음 목격한 톰 네즈빗 박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뿐이다. 그러나 선박과 등대가 부서지고 원인 모를 희생자가 속출하는 사건이 연일 벌어지자, 이 모든 것이 레도사우루스의 짓이라 확신한 톰은 고생물학자 엘슨 박사와 조수 리를 설득하여 공룡과 직접 대면코자 한다.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심해에서 온 괴물>은 심하게 썰렁하고 조잡하다. 첨단의 경계를 경쟁하듯 뛰어넘는 지금의 SF ‘디지털’영화 팬들의 눈에는 이 수공업적인 ‘인형극’은 정말로 애들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다(심지어 공룡 크기는 자꾸 바뀐다. 실제로 사용된 공룡 모형은 단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배경화면과의 싱크로가 제대로 맞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해에서 온 괴물>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가지다
50년대 괴물영화의 전통,<심해에서 온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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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들이 엮어가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
TV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로 숱한 `꽃미남'들을 제치고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래원. 영화 <장화, 홍련>에서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인 충무로의 차세대 기대주 임수정. <정사>에서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이르기까지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이미숙. 이들을 하나로 엮은 것은 28세의 여감독 이언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하고 <행복한 장의사> 연출부, <고양이를 부탁해> 각색, 단편영화 <앨리스와 사랑에 빠지다> 연출 등으로 내공을 다진 뒤 처음 장편영화 메가폰을 잡은 것이다.
오는 28일 선보이는 < …ing>(제작 드림맥스)의 얼개는 지극히 단순하다. 홀어머니와 혼자 사는 시한부 생명의 여고생이 대학생과 가슴 저미는 사랑을 나눈다는 것. 줄거리도 특별한 사건없이 잔잔하게 전개되지만 가랑비에
[새 영화] 김래원, 임수정 주연의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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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드라마 <대장금>이 드디어 시청률 50%를 돌파하며 올해 최고시청률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18일 시청률조사회사인 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17일 방영된 <대장금>이 50.4%의 가구시청률을 기록해 에스비에스 <올인>의 마지막회(4월3일) 시청률 44.7%를 깼다. 텔레비전을 보유한 전국의 두가구중 한가구는 지난 17일 <대장금>을 본 셈이다. <대장금>의 연출자 이병훈 피디는 <허준>에서도 62.5%(티엔에스조사 2000년 6월27일)~63.5%(닐슨조사 2000년 4월24일)라는 경이적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다.닐슨미디어리서치의 역대 최고시청률은 <첫사랑>(65.8%, 97년 4월20일)<사랑이 뭐길래>(64.9%, 92년5월24일) <모래시계>(64.5%, 95년 2월16일) 순으로 지난해에는 <야인시대>가 12월9일 51.8%로 최고시청률을 기록했다.지난 9월1
대장금 시청률 50%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