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상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찰나적 관계만을 유지한다. 사랑해도 함께 할 수 없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한 꺼풀 들쳐보면 남과 진배없다. 이런 관계 속에 지속성이나 미래가 존재할 수는 없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효섭은 그 와중에 벌금을 대신 내주는 여유가 있었고 <강원도의 힘>에서 상권은 택시를 끝까지 기다려주는 매너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생활의 발견>에선 뱀으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선 세균으로 변해간다(헌준이 말한 보석의 영어발음은 Gem이 아닌 Germ에 가깝다). 그러니 섹스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고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섯 번째 변태를 겪은 이 세계의 군상들은 갑자기 태어난 것이 아닌, 제법 깊은 역사와 두터운 감염층을 지니고 있다. 근데 그게 바로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스승으로부터, 그런 부모로부터 혹은 그런 영화들로부터 무한 증식한(그리고 계속 증식할) 세균들 말이다. 그걸 우리에게
헤어 드레서 홍상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처녀자살소동>에서 자살을 기도했던 소녀는 의사의 질문에 ‘당신이 13살 소녀를 어떻게 알겠어요?’라고 되묻는다. 중년 남자의 표정을 보는 순간, 소피아 코폴라는 그의 머릿속이 궁금했던 걸까?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감독 소피아 코폴라와 배우 빌 머레이간의 속삭임 같은 영화이며, 두 사람은 어렵지 않게 영화 속 두 인물과 연결된다. 소녀 적부터 궁금했던 배우와의 작업에 행복해하는 감독이 그렇고, 각각 결혼에서 한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것도 그렇다. 그녀의 영화는 지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데, 별다른 사건이라곤 없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 매력을 느낀 사람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아름다움 그리고 기분 좋을 만큼의 우울에 빠졌음에 틀림없다. 다만 <처녀자살소동>의 아름다움이 소녀들에게서 배어나왔던 것에 비해 그것을 대부분 잠과 술에 취한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 찾아야 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덤덤할지 모른다. 굳이 크리스
코폴라와 머레이의 속삭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
지난 7월13일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 2004 코믹 어워드의 수상자가 발표됐다. 2001, 2003 SICAF 어워드 만화 공로상으로 진행되었던 상이 2004년부터 SICAF 코믹 어워드로 정리되고 대상, 작품상, 특별상 3개 부문의 7개 시상으로 정리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상의 수상 항목과 선정된 작품들이다. 기존의 만화상과는 달리 작품상 부문에는 ‘장편&연재만화상’, ‘단편만화상’, ‘만화스토리상’, ‘졸업작품상’으로 나누어 ‘작품의 완성도’를 중점으로 심사했으며, 시장의 확산과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는 작품을 위해 특별상 부문(‘만화기획상’과 ‘새로운 발견상’)을 운용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2001년 길창덕, 김종래, 2003년 고우영에 이어 2004년에는 이두호가 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80년대 이후 사극의 한길만을 줄기차게 고집해온 노장인에 대한 매력적인 헌사가 되리라고 본다. 작품상을 보자. 박흥용의 <호두나무 왼쪽길로>는 장편&a
우리 만화에 한국의 혼을, SICAF 2004 코믹 어워드
-
<그리스> <죠스> <탑건> <플래시댄스> …. 분명 당신의 머릿속에는 뭔가 불명확하지만 공통점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이미지를 남기는 캐릭터,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영화 속 이미지가 연결되는 매혹적인 음악들, 단 몇줄만으로 줄거리 설명이 충분해지는 명쾌함, 영화 개봉에 추가되는 수많은 부가상품들, 그리고 박스오피스에서의 대단한 성공…. 그리고 이 모든 특징들을 포괄하는 단어, ‘하이 컨셉’(High Concept)이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영화 시장 조사 분석가로 일했으며 현재 노스텍사스대학교에서 라디오·TV·영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저스틴 와이어트가 저술한 <하이 컨셉트>(저스틴 와이어트 지음| 조윤장·홍경우 옮김| 아침이슬 펴냄) 는 하이 컨셉 영화가 어떻게 후기 고전 할리우드영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화산업의 성장과 관련을 맺어왔는가를 들
영화 시장을 주무르는 핵심 열쇠, <하이 컨셉트-할리우드의 영화 마케팅>
-
-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회 http://www.koreaislam.org내가 이슬람을 처음 경험한 것은 우리 동네에서 먼발치로 보이던 흰색 모스크의 낯선 곡선이었다. 실제 이슬람 사원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놀이동산의 그것과 차이를 알 수 없었고 게다가 신도가 얼마나 있어서 한반도의 남쪽 도시에까지 세웠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뒤 이슬람에 대해 생각게 한 것은 일명 무하마드 깐수, 정수일의 일이 있고 나서다. 사건의 전말보다 그의 이슬람 연구가 상당한 학술적 성과를 이루었다는 평가에 더 귀가 솔깃했다. 간첩노릇 하면서 저 먼 이슬람으로 학술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이제 다시 이슬람에 대해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피부에 밀착된 사건으로 이슬람이 다가온 것이다. 예전처럼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이라는 낯설지만 바짝 다가와 있는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든 이해하고 정리해야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든
이슬람을 알고 있는가, 한국 이슬람교 중앙성회
-
장르 스포츠배급 EA 코리아플랫폼 Xbox언어 영어 음성/영어자막프로 시즌 개막에 맞추어 어김없이 발매된 신작 스포츠 게임을 앞에 둔 게이머는 고민에 빠진다. 일반 응용 프로그램과는 달리 신규 고객이나 기존 고객이나 같은 정가를 내야 하는 이상, 이것이 지난해보다 월등히 나아진 게임이라면 모를까, 만에 하나 스토브 리그의 선수 이동 결과만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속았다는 배신감과 그 돈으로 할 수 있었을 다른 일들을 머릿속에서 몰아내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문제는, PC의 그래픽 성능 업그레이드가 급속하게 이루어지던 90년대 후반 이후, 게임업계는 놀랍도록 발전한 스포츠 게임 타이틀을 매년 내놓는 데 실패했다는 점. 결국 스포츠 게임 장르는 광학 디스크를 매개체로 한 패키지 시장을 떠나 온라인 설치와 월 사용료를 근간으로 한 온 디맨드 시장으로 가게 될 것이란 일부의 예상은, 어떻게든 앞서 언급한 이슈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아직은 다소 때이른 위기의식에서
아이디어 하나가 가져온 놀라운 혁신, <파이트 나이트 2004>
-
나는 귀차니스트다. 나 자신은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렇게 말한다. 주위 사람들한테 그런 말을 듣고 정말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정말 그렇다. 무슨 경조사가 생길 때마다 나의 반응은 일단 “아이, 귀찮아”에서 시작한다. 이가 아파도 웬만하면 참다가 병원에서 “많이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았어요?” 하면 “병원 가기 귀찮아서요”라는 대답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심심해서 친구한테 만나자는 전화를 해볼까 싶다가도 전화번호 누르기가 귀찮아서 그냥 심심한 대로 시간을 보내는 일도 다반사다. 물론 이런 귀차니스트가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만화 <스노우캣>은 그런 면에서 진한 동지애를 느끼게 한다. 내가 귀찮아서 안 한 일 가운데 대표적인 한 가지는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었다. 시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두번 떨어져보고 즉각 포기했다. 아마도 마지막 시험을 봤던 시간이 오전 9시였던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9시가 넘어서 잠에서 깬 나는 다시는 운전면허시
어느 귀차니스트의 첫인사
-
얼마 전 일본의 평화박물관 몇곳을 둘러볼 기회를 만들었다. 세계 최대의 전쟁기념관은 있으나, 아이들 손잡고 평화를 만지고 느끼고 숨쉴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는 현실 때문에 뜻맞는 몇몇 분과 평화박물관 건립운동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외국의 평화박물관을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평화박물관 가이드북이 나와 있을 정도로 평화박물관이 많은 나라다.일본의 평화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원자탄 피폭과 주요 도시에 가해진 공습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졌고, 부질없는 짓일지라도 어머니는 아이를 감싸안았다. 네이팜은 하늘에서 붉은 비처럼 쏟아져내렸고, 그들의 일상은 처절하게 파괴되었다. 시계는 그렇게 멈춰버려 박물관의 유물이 되어 관람객을 맞는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공습과 원폭으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당했던 고통과 공포의 기억을 후대에 전하려 하는 것도 인지상정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일본의 여러 평화박
“아프냐? 나도 아프다”
-
<페이스>와 <령> 등 올 여름 극장가에서 부진을 면치못한 한국 공포영화의 ‘재기’를 다짐하는 공포영화 두편이 잇달아 개봉한다. 서구영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인형의 공포를 소재로 끌어온 <인형사>(7월30일 개봉)와 집단 따돌림 문제를 모티브로 하는 <분신사바>(8월5일 개봉)는 원귀가 등장하는 복수극이면서 두 편 모두 ‘슬픈’ 공포영화를 지향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버림받은 인형의 분노와 슬픔 <인형사>
악마의 영혼이 깃든 인형이 사람을 공격하는 영화 <사탄의 인형>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인형은 사람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공포영화가 애용해온 소도구다. <인형사>에서 공포를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와 도구도 인형이다. 한때 피붙이처럼 사랑받았으나 다른 장난감에게 자리를 빼앗겨 버림받은 인형이 영혼을 얻어 전 주인에게 복수를 꿈꾼다는 이야기가 영화의 뼈대를 이루며 사람처럼 자유롭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구체관절
<인형사> VS <분신사바> 공포 대결
-
1864년 4월21일. 영국의 한 소도시에서 인류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흉측한 외모의 인간이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존 토머스 메리크. 그러나 그는 엘리펀트맨으로 더 유명하다. 코끼리인간. 그러나 실제로 코끼리와 인간이 합체된다 해도 이보다 더 기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심각한 기형의 사생아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고 부모와 가족의 사랑은커녕 인간적인 대접이라고는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생물체였다. 사람들은 서커스 쇼에서 엘리펀트맨을 구경하면서 자신들의 정상(正常)을 확인하고, 안도하고, 우쭐했을 것이다. 기형의 인간에게 보내는 조롱과 경멸과 혐오와 약간의 동정심을 통해서 말이다. 죄없이 경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일종의 희생이다. 인간의 정신은 과연 외모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 건강하게 버텨낼 수 있는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라면 극단의 기형의 육체에는 어떤 영혼이 깃드는가.엘리펀트맨을 병원으로 데려와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런던 병원 의사 프레드릭 트레브즈는,
사람1-엘리펀트맨
-
다음달 4일부터 10일까지 열리는 제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시카프)의 해외전시전에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프로덕션 아이지(I.G)’ 작품들의 초기 도안과 원화 등이 공개된다. 이시가와 미츠히사(45·사진)가 1987년 설립한 아이지는 <매트릭스> 등 이후 에스에프 영화에 큰 영향을 끼친 문제작 <공각기동대>(1995)와 <인랑>(2000) 등을 만들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 1편에 나오는 애니메이션 부분을 만들어 그 역량을 다시한번 과시했다. 지난주 끝난 제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오시이 마모루 감독과 다시 손을 잡고 만든 <공각기동대> 속편인 <이노센스>가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부문에서 상영되면서 아이지의 이시가와 대표가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21일 서울 메리어트 호텔에서 만는 그는 “<공각기동대>의 성공이 <이노센스>를 만드는 데
<공각기동대> 속편 <이노센스> 제작 이시카와 미쓰히사
-
박찬욱 감독의 신작인 옴니버스 영화 <쓰리 몬스터>가 9월 1일 개막하는 제61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Venezia mezzanotte) 부문에 초청됐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섹션은 볼거리가 풍부하고 창의력이 있는 장르영화들이 상영되는 비경쟁 부문이다.
<쓰리, 몬스터>는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홍콩의 프루트 챈 감독 등 한국ㆍ일본ㆍ홍콩의 감독 3인의 옴니버스 영화. '몬스터'(괴물)로 상징되는 인간 내면의 악마성을 각자의 색깔에 맞춰 연출했다. 한국 편에는 이병헌, 강혜정, 임원희, 염정아가 출연한다. 이에 앞서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는 임권택 감독 <하류인생>의 경쟁부문 초청이 결정됐으며 김기덕 감독의 신작 <빈 집>도 초청작 물망에 오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쓰리 몬스터> 베니스영화제 초청
-
<알 포인트>, <분신사바>, <인형사> 이색 마케팅 눈길"도심 한복판에 베트남전에서 실종된 아홉 명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한여름 무더위를 겨냥한 공포영화의 개봉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들 영화의 '톡톡 튀는' 마케팅 이벤트가 눈길을 모으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의 극장가에는 하얀 얼굴에 판초우의를 입은 군인 9명이 행인에게 영화 전단지를 나눠줬다. 이들은 '귀신 전쟁 호러영화'를 표방하는 <알 포인트>(제작 씨앤필름, 8월20일 개봉)의 홍보 요원들.발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만큼 이벤트를 실제 사건으로 '오인'하는 식의 '문제'는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깜짝 놀라며 이들을 바라보는 행인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영화 속 내용처럼 30년 전 베트남전에서 실종됐던 병사들을 되살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어내겠다"는 게 행사를기획한 홍보사 래핑보아측의 의도다.‘1인’시사회, 노 스크림 영화보기, ‘분신사바’ 주문 이벤트까지또다른 공
공포물 마케팅 영화만큼 ‘오싹’
-
건달, 주변의 ‘아는 여자’들 중에서 천사를 알아보는 눈을 갈구하다살면서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꿈 중 하나가 천사를 만나는 것이었다. 의식적으로 기획하고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내 안의 어떤 결핍은 시도 때도 없이 멀리 있는 누군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흘러가고자 했다. 나의 선의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막연한 갈망. 나는 천사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천사를 만나는 방법을 몰랐다. 대학 때는 이왕이면 한적한 안면도의 겨울 바닷가에 이나영 같은 얼굴로 천사가 나타나주기를 바랐다. 그런 일은 없었다. 서른 즈음에는 출장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근사한 여자를 의식해서 12시간 내내 잠과 싸웠다. 혹시 침을 흘리거나 코를 골지 않을까 싶어서. 그 모습을 혹시 천사일지도 모를 이 여자가 보면 어쩌나 싶어서. 이 무렵에는 만나는 여자마다 천사가 아닐까 재고 찔러보고 계산하느라 분주하게 잔머리를 굴려댔다. 그 지난한 기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사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천사를 만나고파, <아는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