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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을수 있다니 몰랐던 나, 연기에서 만나”
사진기 앞에 섰을 때, 임수정(23)의 얼굴엔 수줍은 듯 홍조가 생겼다. 영화 속 인물로 무비 카메라를 마주할 때와 달리, 임수정 본인의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직도 익숙치 않은 모양이다. 영화 데뷔 2년도 안 돼 확실한 주연급으로 올라섰지만, 임수정이라는 배우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듯했다. 6개월 전 <장화, 홍련> 개봉을 앞두고 만났을 때에 비해 인상도 달라졌다. 예민하고 차가운 느낌은 그대로이지만, 전보다 쾌활하고 원만해 보였다. “<…ing> 찍으면서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그 석 달 동안 살면서 제일 많이 웃었어요. 나한테도 활짝 웃는 표정이 있구나. 전에는 무표정하고, 뭔지 알 수 없는 <장화, 홍련>의 수미 같은 모습이 많았거든요. 항상 긴장돼 있어서 새로운 상황에 쉽게 마음을 못 열고 닫혀 있었고. 그래서 예전엔 활작 못 웃었는데 요즘엔 자신있게 웃
‘임수정·봉태규’ 떴느냐? 더 뜨거라! [3] - 임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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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2003년, 한국 영화는 50%에 가까운 사상 최대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서 2004년을 맞는다. 양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서 흥행을 주도했다. 새 얼굴들이 이런 발전을 한 몫 거든 건 두말할 나위 없다. 서울 관객 100만명을 동원하며 올해 공포영화 붐을 견인했던 <장화, 홍련>에서, 과거의 죄의식 안에 차갑게 갇힌 수미 역의 임수정은 영화를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올해 한국 영화 중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바람난 가족>에서 이웃집 유부녀 문소리와 사고를 치는 고등학생을 맡은 봉태규의 찰진 연기가 없었다면 이 우울한 이야기가 생동감과 리듬을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임수정은 대한민국 영화대상, 젊은 감독들이 뽑는 ‘디렉터스 컷’ 시상식 등 올해 말에 열린 6개의 영화제 가운데 춘사영화제를 뺀 나머지 5개의 신인 여자배우상을 휩쓸었다. 광고모델을 거쳐 지난해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조역으로
‘임수정·봉태규’ 떴느냐? 더 뜨거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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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의 계절이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어떤 영화를 좋게 보았으며 훌륭한 영화인들은 누구냐고 묻는 질문지들이 날아왔다. 다른 것은 어물쩍 넘겼는데 <씨네21>의 이영진 기자에게는 꾀를 피워도 통하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숙제를 했다.스물여덟명이 참여한 설문 결과는,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작품들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한 가운데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몇몇 상이한 응답들이 덧붙여져 있다. 특히 개성적인 목록과 선정자를 연결시켜 상상해보는 일이 내게는 흥미로웠는데, 소리없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그런데, 아뿔싸! 숙제를 하는 동안 내가 원천적으로 빠뜨린 영화의 목록들이 발견되었다. 다시 적어보니 리스트는 금세 죽 늘어났다. 이리저리 분류를 해봐도 작업은 여전히 매끄럽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망각도 일종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나만의 베스트 5’ 선정을 종료하기로 했다.건망증 덕분에 조금은 간단하게 마쳤지만, 한해 동안 이루어진 영화적 성과를 단칼에 평가하는 일이란 애초에
건망증이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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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기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저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주제에 책임져야 할 생명을 덜렁 세상에 내놓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 같은 놈을 세상에 또 하나 토해놓는 게 세상을 위해서도 별로 좋을 것 같지 않았다. 불쌍한 세상이 대체 무슨 죄가 있는가? 하지만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보채는 아내의 성화 덕에 결국 애를 갖게 되었다. 겁나게 먹어치우고, 먹은 만큼 겁나게 싸대면서 녀석은 무럭무럭 자라 지금 네돌을 바라본다.아이를 낳고 1년쯤 지났을 때 아내는 애를 뚝 떼놓고 저 혼자 독일로 떠났다. 그동안 아이는 집에서 아빠와 할머니한테 한국말을 들으며 자라야 했다. 자리를 잡은 아내가 6개월 만에 돌아와 애를 데리고 돌아갔다. 기억 속에 저장했던 한국말을 고스란히 지우고 아이는 그 자리에 엄마에게 듣는 일본말을 다시 입력해야 했다. 모국어(母國語)는 일본어, 부국어(父國語)는 한국어, 유치원에서는 독일어.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는가?남의 속도 모르고 “3개 국어를 할 테니
이상한 나라의 아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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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國家는 민족이 사는 집家이다. ‘국가와 민족’을 해체, 조립하면 ‘국민과 가족’이다. 가족이 모여 민족이 되고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고대사회의 도시국가의 발생과정을 보면 ‘풍요와 고립’이라는 얼핏 상반된 두 가지 환경조건이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능력있는 가장家長이 기둥이 되어 하나의 가정家庭을 이루듯이, 하나의 국가가 건설되는 데에도 역시 정치경제적으로 능력있는 민족의 가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리적 고립이다. 가장의 집안살림 방식이 맘에 안 든다고 가족들이 모두 가출해버린다면 어찌 가족과 가정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나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국민들이 통치자의 권력을 거부하고 다른 지역으로 맘대로 이주할 수 있다면 지금 국가의 시초가 된 고대의 도시국가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족은 국가라는 ‘홈그라운드’에서 보호받고 생존하고 번식한다. 그러나 거기서 벗어나면 그 누구도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었던 것이 고대의 국가라는 커다란
[김형태의 생각도감] 집4 - [국가 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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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문화가 나에게 다가선 건 비디오라는 기계가 보편화되기 바로 이전부터다.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그것도 스파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치밀한 계획하에 몰래보던 비디오, 제목은 전혀 기억에 없다. 다만 그때 친구들과 봤던 작품(?)에서는 여배우들의 풍만한 가슴은 전부 볼 수 있었던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로 인해 지금의 나의 상상력이 풍부해졌을지도 모른다.
난 영화를 단순하게 본다. 재미있다, 재미없다, 웃긴다, 슬프다, 감동적이다, 허무하다 등등. 이런 느낌 이외의 것은 전부 고리타분하다. 그래서인지 해피엔딩의 결말이 좋고, 화끈하게 때려부수는 영화가 좋다. 난 영화를 보면서 갖가지 직업의 꿈도 키워갔다. 톰 크루즈가 멋지게 술병을 돌리던 <칵테일>을 보며 소주병을 돌렸고, 진정한 남자의 세계를 탐닉하고자 프라모델 권총을 들고 경찰의 꿈을 키웠던 멜 깁슨의 <리쎌 웨폰>- 경찰이 안 되기를 잘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해서 무작정 그가 되어보고 싶은 심정
조스보다 무서운 첼로의 공포, <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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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식- 이른바 ‘젊은이’ 중에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꽤 많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장래가 어두운 건 아니라고 확신한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은 2002년 3월에 출간된 <옥중서한> 머리말에 “체제내화”라는 말을 몇번 썼다.“나는 이런 세태가 고통스럽다. 출렁이는 국가주의의 물결, 탈정치화의 거대한 에너지, 그리고 군사독재와 맞섰던 항쟁의 대대적인 체제내화에 바닥을 헤아릴 수 없는 두려움을 느낀다.… 진정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대규모로 진행되는 저항운동의 체제내화다.”“참다운 래디컬은 체제내화되지 않는다.”이런 말 하는 게 엉뚱해 보이는 세상이긴 하지만, 일단 이 텍스트들을 좀 분석해보기로 하자. 여기서 그가 말하는 “체제내화”는 운동가의 입장에서 보아 운동의 전선이 불투명해지고, 그에 따라 운동에서 제기되었던 이슈들이 국가에서 제시하는 법적 합리적 절차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고 간주하는 상황일 것이며, 무엇보다도 운동가의 대규모 전선 이탈 또는
법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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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미스틱 리버>의 하찮음에 대한 천착에 매혹되다해를 거듭할수록 몸과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진다고, 누군가 귀띔해준다. 그 말의 주술적 힘 때문인지, 정말 ‘아픈 영화’를 보면 몸이 아프다. <킬 빌> <올드보이> <미스틱 리버>. 올 겨울 극장가의 ‘복수 3부작(?)’을 연달아 본 결과 체력이 바닥났다. <올드보이> 상영 중에는 오한과 구토를, <미스틱 리버>를 본 뒤에는 몸살을 맞았다. 복수라는 테마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 몸이 무섭다. 나는 조화롭고 안온한,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위무를 주는 영화를 찾고 있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피해가고 싶었다. 그러나 인정해야 했다. 복수의 그늘을 피해갈 어떤 우회로도 지상에 존재하지 않음을.나는 내가 무엇인가에 복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자해하거나 엉뚱한 제3자에게 치명상을 남기는, 낮에도 가위눌리던 시간들. 핏발선 눈으
복수가 주는 경쾌한 고독,<미스틱 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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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간도>는 무엇보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화였다. 왕가위 스타일을 관객 머릿속에 스텝프린팅한 그는 질척이는 뒷골목 대신 유리 빌딩의 옥상에서 홍콩누아르의 신세기를 열어젖혔다. 누아르의 어둠을 표백한 <무간도>는 미끄러질 듯 깔끔한 이미지의 표면에서 존재론적인 누아르를 실험했다. 여기선 총보다 휴대폰이, 피보다 시스템이 한수 위다. 시스템은 유리벽의 반사 이미지처럼 정체성을 이중인화하여 각자의 더블이자 환영을 찾도록 내몬다. ‘무간지옥’이라는 표현은 그 무한 수색의 긴장과 피로에 대한 불교적 코멘트다. 너무나 화창한 첨단 도시는 존재의 무상함을 살짝 도금한 역설적인 지옥도인 셈이다. 죽음의 비장미를 생략한 자리에는 매끈한 광택 속에 갇힌 막막한 삶과 순식간에 그 막막함을 끝내는 마침표만 있을 뿐이다.
실로 <무간도>는 인간적 파토스보다 구조적 로고스로 지어진 하이테크 누아르였다. 대칭의 인물군으로 구축된 거울 구조는 내부의 적들이 활약하면 할
90년대 홍콩에 대한 장르적 갈무리,<무간도2 혼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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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아와 이드의 혈투를 담은 핏빛 일기
이상하게도 근자 들어 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면 김기덕 감독이 떠오른다. <복수는 나의 것>의 마지막을 보면서도 그랬다. 송강호가 가슴에 턱 칼을 맞고 땅에 쓰러지는데, 그 꼴을 그대로 버려두는 감독을 보며, 자동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나쁜 남자>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야… 정말 김기덕 감독은 순진한 감독이구나. 참 어리숙한 감독이구나. 찬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하늘 끝까지 올라갔던 <나쁜 남자>의 크레인 숏 좀 봐. 저게 구원이라는 거지. 그런데 이놈의 영화는 그 구원의 끝자락 하나까지도 손으로 밀어내니, 참 지독하다. 지독해.” 이 잔인한 성주들은 주인공들을 사지절단내는 것을 주특기로 하는데, 그러니까 강간이니 강제매춘이니 그런 걸 다루는 감독이 더 잔인한 것일까 아니면 감금이니 절단이니 그런 걸 다루는 감독이 더 잔인한 것일까?
<올드보이>의 마지막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올드보이>의 구약적 응징론에 대한 심영섭의 신약적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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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레이싱배급 EA코리아플랫폼 PC/PS2/Xbox언어 영어 음성/ 한글 메뉴현란한 액션과 철학적 스토리를 함께 담으려다 힘이 부쳐 결국은 밋밋한 게임 하나를 시장에 던져야 했던 다른 이들의 전철을, EA 게임즈는 밟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이 물리학적으로 얼마나 사실적인지 자랑하려 욕심부리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특수효과 스탭으로 활동한 릭 스트링펠로우의 아트디렉팅과 힙합으로 가득한 사운드트랙으로 스트리트 레이싱 팬을 정면 공격한다. 개조 차량들의 스트리트 레이스가 열리는 도시의 밤거리. 이곳이 바로 <니드포스피드 언더그라운드>(이하 <언더그라운드>)의 무대이다.스트리트 레이서로 성공하려면, 스피드말고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스타일’. ‘깻잎 한장’ 차이로 충돌을 피하고, 꺾인 길에서는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도록 파워 슬라이드를 구사해야 한다. 레이스가 끝나면 이에 못지않게 매력적인 튜닝 작업이 시작된
총과 마약만 빠진 ‘분노의 질주’,<니드포스피드 언더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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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M과 N의 이야기다. M은 미츠루의 M, 과자 만들기가 취미이고 고수머리가 매력적인 고교 1학년의 여학생이다. N은 나츠히코의 N, 수재에 학급대표로 하얀 피부가 눈부신 남학생이다. 그럼에도 방심은 금물. 이 정도의 미지근한 설정으로 요즘의 닳고 닳은 독자들을 구워삼을 수는 없다. 사실은 말이다. 여러분도 곧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M은 마조히스트의 M, N은 나르시시스트의 N이었다.<그 남자 그 여자> <타로 이야기> <미운 오리 왕자님>…. ‘다중인격자 러브코미디’라는 신종 장르를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학원로맨스의 분명한 경향 하나가 보인다. 겉과 속이 다른 남녀들의 좌충우돌 사랑 이야기. 히구치 다치바나의〈M과 N의 초상〉(대원씨아이)은 바로 그 장르의 틀을 조금 더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바깥으로 당기고 있다. 칼끝에 손가락만 닿아도 황홀경에 빠져 에로에로해지는 여학생과 유리창에 비치는 자기 모습만 봐도 실신할 정도로 도취되어
거울아 거울아, 더 때려줘, 〈M과 N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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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은 개봉 뒤 1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포스터와 (젊은 시절의 로버트 레드포드를 연상시키는) ‘풋풋한 브래드 피트를 볼 수 있음’ 등으로 늘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재발매된 <흐르는 강물처럼>의 사운드트랙에서는 영화를 다시 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선율이 첫 트랙부터 빼곡하게 실려있다.
<흐르는 강물처럼> OST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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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무단횡단>을 연출하고 소설 <슬로우 불릿>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진행한 소설가 방현석이, 영화와 소설의 밀접하고도 까다로운 관계를 살폈다. 민중의 오락으로 출발한 비슷한 이력, 문자와 이미지의 이질적인 권능, 같은 서사예술로서 두 장르가 벌이는 경쟁, 누벨 바그나 누보 로망이 시도한 장르의 랑데부를 분석했다. 소설과 영화의 거리를 검토하는 장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영화 <프라하의 봄>, 구효서의<낯선 여름>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견주었다. [방현석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김혜리
문자와 이미지의 이질적인 권능,<소설의 길 영화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