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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감독 이재용/출연 전도연, 배용준, 이미숙/화면비율 1.85:1 아나모픽/오디오 DD 5.1, DTS
해외에서도 여러번 영화로 만들어졌던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 배경으로 옮겨와 만든 사극. 두장짜리 디스크로 19세기 풍속문화사, 조선미 생활지사(##)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가 서플먼트로 담겼다. 그 밖에 배우 인터뷰, 관객과의 대화, 삭제장면이 수록됐으며 한정판에는 33페이지의 춘화화첩과 윤여환 화백의 해설이 들어있다. CJ엔터테인먼트.
패스트 앤 퓨리어스2
감독 존 싱글턴/출연 폴 워커, 타이리스, 데본 아오키/화면비율 2.35:1 아나모픽/오디오 DD 5.1
목숨을 건 자동차 경주를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액션영화. 역동적인 영상과 거친 자동차 엔진 음향이 생동감을 주는 디브이디. 특히 이 디브이디는 자동차 마니아들을 유혹하는 스페셜 피처가 돋보인다. ‘잘 나가는 수입차 개조하기’, ‘더 라이드’
새 DVD <스캔들>, <황산벌>, <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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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의 한국영화를 이리저리 가로질러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경향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지역성(locality)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투리에 부여된 전형화된 이미지를 끌어다쓰는 예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특정 언어와 인물의 기질적인 특성을 단단히 결합시킴으로써 문화의 지역성 자체를 영화의 핵심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지역성이 곧 캐릭터인 셈이다.영화 <친구>가 잭팟을 터뜨리는 데에 한몫 단단히 했던 지역성은 <똥개> <황산벌>에서도 자의식적으로 추구되었다. 이만큼 선명하진 않을지라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 인사동 문화, 과 강남 아파트촌의 관계가 내게는 매우 의미있는 코드로 다가온다.우연하게도 서울의 남북을 각각 내세운 영화가 연달아 개봉한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강남 영화라면 <안녕! 유에프오>는 강북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전자는 대한민국 수도서울 하고도 노른자위인 강남의
지역성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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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개봉예정이었으나 큰 영화들의 등쌀에 여러 번 개봉이 연기됐던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영화 이 1년여 만에 개봉한다. 프랑스 영화계의 유망주인 오종은 국내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여러 번 작품이 소개돼 젊은 관객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감독. 지난해에는 그의 최신작 <스위밍 풀>이 개봉됐다.
은 일단 출연진 목록이 화려하다. 카트린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에마뉘엘 베아르, 그리고 최근 개봉한 <피터팬>에서 팅커벨로 분한 루디빈 사니에르 등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프랑스인들을 사로잡아온 스크린의 뮤즈들이 모두 모인다. 이 목록은 불과 삼십대 초반의 오종 감독이 프랑스 영화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입지를 보여준다.
폭설로 외부와의 연락이 두절된 성탄절 아침, 아버지 방에서 하녀 루이즈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온다. 달려간 식구들은 등에 칼이 꽂인 채 싸늘하게 식은 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한다. 경찰에게 연락도 할 수 없는 고립 속에서 하나의 단서만이 사건의 실마리
개봉 연기 끝낸 <8명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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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 한국의 영화사는 고쳐 쓰이게 된다.<실미도>(감독 강우석)의 전국관객이 역대 최고인<친구>(감독 곽경택)의 기록을 뛰어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24일 간판을 내건<실미도>는 개봉 5일 만에 전국에서 159만명을 불러모은 것을 시작으로 평균 4일마다 100만명을 추가하며 기록행진을 펼쳐왔다.지난 23일에는 개봉 31일 만에 700만을 돌파해 2001년 5월 <친구>가 세운 기록을 21일이나 앞당기며 신기록을 사정권에 두게 된 것은 물론 불세출의 기록이라고 할 만한 1천만명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전국관객 공인기록은 없으나 제작사 씨네라인2는<친구>의 최종 흥행 스코어가 수립 당시 알려진 813만명보다 다소 많은 819만1천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적인 기록은 이보다 1만명 적은 818만명.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하지만<실미도>의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는 일단<친구>의 기록
<실미도>, 31일 관객동원 신기록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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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으로 싸우는 장면의 안무를 직접 했다고 들었다. 다른 사무라이영화의 검술 장면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검술장면을 위한 안무가가 있었지만, 나는 거의 모든 검술 대결신의 안무를 내 자신이 구상했다. 오기야 집에서 두 게이샤와 긴조 하수인들과의 대결신을 제외하고는. 나는 검술 대결장면들이 이전의 영화들에서 사용된 동작들의 조합들처럼 비슷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전문가들에 의해 잘 짜여진 결투장면들과는 무언가 다르게 하고 싶었다. 나는 검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결투를 싫어한다. 결국 이러한 결투장면에는 쨍그랑, 댕그랑거리는 쇳소리만 남는다. 운 좋게도, 자토이치는 보통 단칼에 일격을 가한다. 그래서 나는 정형화된 타입의 검술 대결장면을 피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나는 하토리 역의 아사노 다다노부에게는 수년간 내가 축적해왔던 풍부한 기교를 부릴 수 있게 허락했다. 아사쿠사의 코미디 장면에서, 나는 검술신들을 많이 연습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 마음속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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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가 말했다.“다케시, 난 자네 영화의 무례함이 좋아,계속 그렇게 만들어!”
-<자토이치>는 원작, 그것도 대단히 유명한 원작이 있는 영화다. 왜 <자토이치>를 영화화하게 되었는가.
=이 프로젝트는 기대하지도 않게 사이토 치에코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분은 20년도 더 전에 내가 아직 코미디언으로 초창기였을 무렵, 아사쿠사에서 일하던 시절부터 나의 조언자였다. 그녀는 또한 <자토이치>의 가쓰 신타로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몇년 전, 그녀는 나에게 <자토이치> 후속편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그 제안은 꽤 흥미롭게 들렸는데, 그 이유는 내가 항상 원했지만 전혀 해본 적이 없는 시대극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내가 직접 주연을 맡기 원하는지를 물었을 때,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가 가쓰 신타로를 대신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사이토 치에코는 거절의 응답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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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캐릭터를 해체하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를 리메이크하면서, 기타노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에 도전한다고나 할까. 시대극의 ‘시간’을 지워버리고, 머리까지 금발로 바꿔버린다. 아니 가장 중요한 신체적 특징까지 초월해버리고, 자토이치의 사회적 존재까지도 틀어버린다.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는 차별받는 약자의 편이었고, 그런 부류에 근접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세상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차별과 차별받는 자의 위치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대세’를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늘 허리가 굽어져 있었다.” 하지만 다케시의 자토이치는 유랑하는 자유인이다. 동류의식으로, 억압자에 대해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승부를 위하여 싸운다. 근원을 따진다면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보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쓰바키 산주로와 닮았다. “나는 이 영화에 나오는 녀석들 중에 제일 나쁜 건, 자토이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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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비트 다케시=<자토이치>
<자토이치>는 기타노 다케시가 처음으로 각색을 한 영화다. 기존의 작품들은 모두 기타노가 직접 스토리를 쓰고, 인물을 만들었다. 멜로영화인 <돌스>까지도 기타노가 직접 시나리오를 썼고, 그 덕에 가부키의 ‘사랑의 도피’를 잘못 이해했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자토이치’는 전후 일본에서 만들어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의 하나다. 원작소설에 만화, 가쓰 신타로라는 배우가 출연한 수십편의 영화가 일본인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 대중의 영웅을 다시 스크린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오래전 구로사와 아키라에게서 ‘자토이치 역이 어울릴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아사쿠사에 사는 절친한 친구가 부탁을 하여 만들어진 기타노의 <자토이치>는 과거의 캐릭터와 상당히 다르다. “<자토이치>는 지금까지 몇편이나 만들어졌기 때문에, 얼추 그 형태가 정해져 있다. 그것에 따라간다면 편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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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이치>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갖추게 된 것도 자신의 기획이 아닌 외부의 기획이라고 하는 '거리감'이 기타노 자신과 상승작용을 낳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토이치>에서는 배우로서의 비트 다케시를 포함해, 기타노 다케시에게서 일종의 '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여유가 <자토이치>를 훌륭한 오락영화로 만들어 낸 힘이었다고 생각된다. 비트 다케시의 이치는 피차별자가 아닌, 자유인에 가깝다. 이는 가쓰 신타로와 기타노의 기본적인 차이점이면서, 본질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타노 다케시판 <자토이치>와 가쓰 신타로의 <자토이치> 시리즈의 차이점이 생기며, 동시에 기타노의 <자토이치>와 <요짐보> 사이의 공통점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산주로도, 자토이치도 방랑하는 자유인인 것이다.
영화광이 아닌, 평범한 일본인이 알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는 ‘코미디언’이다. 20여년의 세월 동안 정상
득도한 대가가 만든 오락영화, <자토이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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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명 배우들의 생활 조련사-스케줄매니저 최지윤
In <태극기…>
현장에서 최지윤(26)씨의 별명은 ‘꼴통’. 워낙에 고집이 세고 하는 행동이 나이답지 않게 강단지고 야무진 까닭에 붙은 별명이다. 동시녹음기사와 “∼통!!” 하는 수인사를 주고받으면서 그녀의 아침은 시작된다. 전날 감독과 조감독이 리허설을 통해 짜놓은 촬영일정을 이미 배우들에게 연락은 넣어놓았으니, 현장에 오면 속속 도착하는 배우들 의상부터 챙긴다. 아침을 굶은 배우들에게 배낭에서 각자 입맛에 맞는 부식거리를 꺼내 먹이는 폼은 얼핏 동물원의 노련한 조련사 같다. “배우들은 모두 예민한 어린아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다음 수순은 부상자를 살피는 일이다. 작은 상처는 상비 구급약으로 처리하고, 부상이 깊은 배우들은 메모지에 적힌 인근 병원으로 전화를 돌려 왕진을 부탁하거나, 병원까지 직접 후송한다. 이제 쉬는 시간이다. 커피를 조르는 배우들에게 한방차, 율무차를 지급하고, 특히 골초배우들에겐 복숭아홍차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막힌 스탭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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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밖을 기록한다 - 다큐멘터리 사진 김진형
In <태극기…>
촬영현장에 긴장만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슛’과 ‘컷’이 만들어내는 진공의 세계를 벗어나면 여백이 있다. 김진형(36)씨가 렌즈에 포착하고자 했던 것도 그것이었다. 장동건과 원빈이 서로에게 돌을 던지며 오지에서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광경을 떠올려보라. 또 다른 카메라들이 배우들을 클로즈업하고, 제작과정을 따르는 동안 그는 여백을 쓸어담았다. 시나리오를 읽고나서 김씨는 “스펙터클에 압도되어 묻힐 수 있는 디테일한 풍경들을 건져올리자는 것”을 컨셉으로 삼았다. 그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풍경뿐만 아니라 나름의 실험도 감행했다. 특수분장으로 만든 시체들을 실제상황처럼 찍어놓은 사진 등도 그의 작품이다. 인물의 경우 처참한 전투를 치른 생존자의 모습을 연출해 극대화하려 했다. 하지만 현장이 매번 그의 의도를 응원해주진 않았다. 4일을 기다렸던 최민식의 경우, 촬영 도중 총기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곧바로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막힌 스탭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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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힘, 전쟁영화는 디테일! - 군사자문 김세랑
In <태극기…>
할리우드식으로 명명하면 김세랑(32)씨의 역할은 밀리터리 테크니컬 어드바이저. 영화 속 개별 전투장면의 구성이 실제 역사와 다른 부분은 없는지 시나리오를 감수하고 촬영에 쓰일 의상, 소품, 장비가 한국전쟁 당시 쓰였던 것과 다르지 않는지를 고증했다. 발품 팔아 남대문시장 등에 처박혀 있거나 외국 경매 사이트에 나돌던 50년 전의 군복들을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터라(군장의 경우 보는 것과 입는 것은 천지차이여서 직접 구입했다고) 의상팀에 본뜰 실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군인들이 입었던 옷의 종류만 100여벌. 갖고 있던 30벌을 들고 가서 이중 적어도 15종은 만들어야 한다고 했을 때 입을 쩍 벌리던 제작진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영화 속 진태와 진석이 입고 있는 군복이 달라지는 것만으로 한국전쟁의 진행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귀띔. 다만 예산과 시간 부족으로 몇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막힌 스탭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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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4년 정도 됐나요. 희귀 크레딧이 등장한 게 말이죠. 이젠 뭐 대단한 일은 아니에요. 그동안 충무로는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푸드 스타일리스트, 안무가, 공예전문가, 권투선수 등등 다른 직종에서 이력을 쌓아온 이들을 심심찮게 초빙해왔으니까요. 하지만 2월6일 개봉하는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무려 대여섯개의 희귀 크레딧이 등장한답니다. 제작부와 연출부만 무려 20명, 촬영현장에 상주했던 전체 스탭 수가 100여명에 달하는 이 대가족 가계에는 비록 핏줄(?)은 다르지만 엄연히 한몫을 담당했던 이들이 줄줄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프라모델 조립부터 시작한 군사자문가, 용병이라 불리며 제작부 일까지 겸한 단역배우, 자급자족 원칙의 특수촬영기사, 화기(火器)라면 사족을 못 쓰는 총기관리 요원, 숨겨진 1인치를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수백명의 일정을 책임졌던 스케줄매니저 등이 그들이죠. 이들의 짧은 스토리 모음은 그동안 쉽사리 털어놓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 고백
<태극기 휘날리며>의 기막힌 스탭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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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도 '슈퍼맨'으로 익숙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는 낙마 사고를 당해 불구로 생활한 지 10년째인 지금도 팬들의 가슴에는 슈퍼 히어로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1970~80년대 네 차례 영화 '슈퍼맨'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인기를 모았던 리브는 95년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 상태에 빠졌으나 이후 피나는 노력으로 휠체어에 탄 채 영화 '황혼 속에서'를 감독하고 드라마에 출연하는 등 활기찬 삶으로 장애인과 일반인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현재 그의 병세는 팔목과 손가락, 양 다리를 약간씩 움직일 수 있을 정도며 인공호흡기로부터 벗어나 숨 쉴수 있을 만큼 호전된 상태. 지난해에는 척수부상자를 위한 재단을 만드는 등 장애인 지원노력을 인정받아 미국의 노벨의학상으로 불리는 래커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최근 출간된 '크리스토퍼 리브의 새로운 삶'(인북스 刊, 원제 Nothing Is Impossible)은 98년 '절망을 이겨낸 슈퍼맨의 고백'(Still Me)에 이어 그가
휠체어 탄 ‘슈퍼맨’의 새로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