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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눈이란 어찌나 간사하고 의심이 많은지, 직접 보기 전까진 잘 믿지도 않고 실감도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올해 초부터 뉴욕의 많은 잡지와 뉴스에 솔솔찮게 등장했던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의 ‘게이츠’(The gates) 프로젝트를 내내 접하면서도 참 노인네들 뭐하러 그런 걸 만든담, 하고 심드렁하게 느꼈던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걸어 다니기에도 벅찬 센트럴파크의 모든 길을 주황색 천으로 뒤덮을 예정이라니, 어른들 말대로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닌 일이었다. 어쩌면 내 상상력의 팔이 그들의 예술에 닫기에 지나치게 짧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난 2월 12일 아침, 마침내 그 문들이 열렸을 때 나는 잠시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이. 럴. 수. 가. 규모도 규모거니와 그 주황색 문들이 맨하탄 겨울바람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펄럭이는 소리만 듣고 있는데도 이들이 뭔가 대단한 작업을 마쳤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시에 발맞춰 현재 모마(M
[백은하의 애버뉴C] 10th street / 문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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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독립영화는 학생영화 혹은 습작영화와 같은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영화과 졸업작품보다 그렇지 않은 독립영화가 더 많아졌다. 지난해 만들어진 독립장편극영화는 10여편에 달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바로 극장에서 관객을 만나도 좋을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들이다. 독립(단편)영화를 상업영화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던 예전과 달리 나름의 판단으로 독립영화의 작업방식을 택하고 있는 감독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독립영화의 이러한 성장은, 별다른 대가없이 전문적 기술을 빌려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고집과 끈기, 신념 하나로 무장한 독립영화인들에게 때로는 부담없이 작업을 함께하는 동료였고, 때로는 절실한 도움을 주는 선배였던 소중한 충무로 상업영화 무대의 친구들을 소개한다. 그중 일부는 ‘친구’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아 “무슨 엄청난 희생정신으로 그 시간을 함께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는 사실.
독립영화 찍는 충무로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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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이 촬영을 진행중인 <친절한 금자씨>가 일본의 도시바 엔터테인먼트에 300만달러(한화 약 39억원)에 선판매됐다. <친절한 금자씨>의 일본 판매는 현재 베를린 영화제의 부대행사로 열리고 있는 EFM(European Film Market)에서 이뤄졌다고 홍보사 올댓시네마가 밝혔다. <친절한 금자씨>의 일본 판매액 300만달러는 이병헌 주연의 <달콤한 인생>이 세웠던 최고 판매가 320만달러에 조금 못미치는 금액으로 역대 두번째이다.
<내 머리속의 지우개>, <B형 남자친구> 등이 각각 270만달러, 150만달러에 판매된 선례를 볼때 <올드보이>의 일본 흥행 부진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금자씨>가 높은 금액을 받을수 있었던 것은 주연배우가 이영애인 점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친절한 금자씨>는 현재 40%정도 촬영을 진행했고 올 6월에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친절한 금자씨>, 일본에 300만달러 선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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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머릿속엔 퇴행적 욕구가 잠복해 있다. 머리가 굵어지면 그 퇴행욕구를 세련되게 위장하고 퇴행을 미화한다. 술을 마시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어릴 적 구강기에 대한 강한 아쉬움 때문이다.
술병 주둥이는 어른 남자에게는 엄마의 젖꼭지 같은 것이다. 그런데 같은 술이라도 와인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와인엔 그런 퇴행 욕구를 덮을 만한 두터운 문화적 휘장이 있다. 오랜 역사, 다양한 품종은 섬세한 취향을 요구하고 이 취향은 어른스러운 것으로 인정된다. 물론 이 취향을 위해선 많은 돈이 든다.
결혼을 앞둔 일주일 동안 와이너리(포도주를 만드는 농가)를 돌아다니며 마지막 자유를 누려보겠다는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과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러 나선 마일즈(폴 지아매티)의 여행 이야기는 사실 귀가 솔깃해질 내용은 아니다.
“우리 나이에 돈, 능력 없으면 도축장 끌려가는 소”라고 느끼는 중년 남자 둘이 길을 떠난다는 내용만 들으면 벌써 이런 감탄사가 절로 떠오른다. 꽤나 지루하
가볍고 상쾌, 살짝 여운까지 있는 와인 같은 영화, <사이드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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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R-A-N-T-I-N-E.”
젊은 어머니는 발가벗은 아들의 몸을 씻어주며 ‘검역’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소년의 뇌리에 한자한 자 박아 넣는다. ”기억하렴. 너는 결코 안전하지 않단다.” 격리와 단절의 뜻을 포함하는 이 단어는, 18살에 고아가 된 하워드 휴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엄청난 돈과 함께 유산으로 남겨져 평생을 따라다닌다.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끝없이 호출당하는 백만장자라면,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 이미 오래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시민 케인>의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중얼거리는 ‘로즈버드’가 잃어버린 순수의 암호였다면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스가 되뇌는 ‘쿼런틴’은 깊게 할퀴는 저주다. 그것은 휴스를 어디에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밀폐된 방 안에 더러운 공중화장실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가둘 뿐이다. 실제로 하워드 휴스는 악명 높은 은둔생활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끝내 밀실로 돌아가 틀어박
거만한 고전기 할리우드의 심장 박동, <에비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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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서 새벽까지, 서울에서 여수까지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에는 다양한 승객들이 탑승해 있다. 사실 이 열차는 사상자가 100여명에 달하는 초유의 열차 사고 이후 그중에서 건져낸 객차 몇량이 연결되어 있는 열차이며, 오늘은 바로 예의 사고로부터 정확하게 16년이 흐른 그날이기도 하다. 열차 판매원 미선(장신영)은 기차가 터널에서 한번 급정거를 한 뒤 운행을 재개하고 나서부터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조금 전과 같은 객실이지만, 미선의 눈에는 80년대 옷차림과 세로쓰기 신문, ‘1988년 7월16일’이라고 찍힌 날짜가 보이기 시작한다. 혹시, 과거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일까?
한정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 한정된 시공간을 무너뜨리는 다른 시공간의 혼재가 빚어내는 공포. <레드아이>가 내세우고 있는 다른 공포영화와의 차별지점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린다. 열차 판매원 미선이 열차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판매카트를 끌고 죽 일직선으로 걸어가야 할 때, 대체
시공간과 또 다른 시공간의 혼재가 빚어내는 공포, <레드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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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독일)는 생기 잃은 창백한 얼굴이 됐지만 그 얼굴의 절반마저 마비돼버렸다. 이러지 말라며 욕실 문을 두드리는 어린 딸을 두고 가스를 들이켜며 자살을 기도할 만큼 생의 의지를 잃었다. 어머니(=독일)를 이렇게 만든 건 나치(=전쟁)이며 남편(=남자, 아버지)이다. 이처럼 <독일, 창백한 어머니>가 나치와 남자를 고발하는 방식은 파스빈더의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을 닮았으며, 어머니 곁에 있는 아이가 그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하며 창백해지는 모습은 폴커 슐뢴도르프의 <양철북>을 연상시킨다. 영화사적으로 정리하자면 <독일, 창백한 어머니>는 전후 독일사회의 정체성을 회의적으로 짚었던 뉴저먼시네마의 맥락 위에 서 있는 셈이다.
비슷한 테마이지만 연출 기법은 앞선 두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브레히트적이다. 메시지는 훨씬 단단하고 선언적이며 이를 전달하는 스크린은 마치 연극무대를 고스란히 옮겨온 듯 소격효과를 노린다. 그게 너무 지
세상의 모든 슬픔을 끌어안은 어머니, <독일, 창백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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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마칠 때까지 내가 본 영화들 속에 연인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여학생이되 여성은 아니었다. 내 10대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가 <엑소시스트>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를 본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전 교사의 지도주임화’가 이루어진 학교인데다 시내에 극장이라곤 두 군데뿐이니, 사복으로 위장했다 해도 영화관람이란 남의 집 담을 타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린다 블레어가 괴성을 지르고 얼굴이 칼자국으로 너덜너덜해지고 입에서 퍼런 똥 같은 물질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걸 눈을 반쯤 가린 채 겁에 질려 지켜보았는데, 주인공 소녀의 정신분열과 인체학대에 감정이입할 때 분출하던 아드레날린이야말로 우리의 제도교육 스트레스에 출구가 될 자격이 있었다.
한때 크리스 미첨과 올리비아 허시가 나오는 <썸머타임 킬러>가 유행했고 두 청춘스타에 대해 떠들지 않으면 대화에 낄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대세를 좇아 이 영화를 보았지만 어찌된 일
[스크린 속 나의 연인] <플레이어> 팀 로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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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과학으로 분석하면?
연인 뇌사진 찍어주는 이벤트도
발렌타인데이인 14일 거리는 초콜릿 바구니와 젊은 남녀들로 활기가 넘쳤다. 시대·장소의 가림없이 사랑은 최대의 관심사인 듯하다. 이런 사랑을 소재로 한 독특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화제다. 남녀간의 세 가지 사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한국방송 특집 3부작 다큐 <사랑>이 오는 3월15일부터 3주에 걸쳐 방영된다.
1부는 ‘900일간의 폭풍-사랑하면 예뻐진다’, 부제는 ‘Falling in LOVE’다. 열정적 사랑에 빠졌다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리는 사랑의 양태를 뇌과학으로 풀어본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지난해 4~11월 연애 100일째인 20대 연인 5쌍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장치’(fMRI)로 촬영해 보았다. 이를 통해 뇌의 특정부위 활성화와 열정적 사랑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본다. 진짜 사랑이란 초기의 열정인지, 아니면 그 뒤의 애틋함인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마련된다.
2부는 성에
KBS 감성과학다큐 3부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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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시작한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의 일일드라마 <금쪽같은 내 새끼>와 <왕꽃선녀님>이 지난 11일 나란히 8개월여의 대장정을 마쳤다. 서영명·임성한이라는 두 ‘문제 작가’ 덕에 기대와 우려를 함께 안고 출발했던 두 드라마는 방영 내내 20% 중후반을 넘나드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마무리는 애초 우려를 벗지 못했고 극적 완결성 따위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평가다. “욕하면서도 본다”는 시청자들의 특성을 적절히 이용한 결과로만 보일 뿐이다.
<이 남자가 사는 법>(94년), <부자유친>(96년) 등 내놓는 작품마다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을 담아온 서 작가의 <금쪽같은 내새끼>는 지난해 말까지 큰 무리는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6개월쯤으로 예정된 방송 기간이 연장되면서, ‘세대간 갈등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홈 드라마’라는 주제의식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다툼있는 집안에 착한 며느리가 들어와 가족을 화해시킨다는 주요
시청률 높지만 원성도 높은 ‘일일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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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규 감독의 1926년작 <아리랑>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다고 전해진 일본의 아베 요시시게(81)가 지난 11일 세상을 떠남( 한겨레신문 12일치 참조)에 따라 이 필름을 찾을 수 있을지에 영화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이 궁금증에 매달리기 전에 먼저 건너가야 할 다리들이 많다. 우선 필름이 과연 있느냐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다 아베라는 인물이 의문에 쌓여있기 때문이다.
아베가 <아리랑> 필름을 갖고 있다는 말은 90년대초를 전후해 한국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1992년 당시 영상자료원장이었던 호현찬(79)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이 직접 아베를 만나기 위해 일본을 찾아갔다. 호씨의 회고를 들어보면 아베에 대한 의문은 더 커진다.
아베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고 은둔하듯 사는 인물이었다. 오사카 근교 이시키리역 주변의 한 산 기슭에 창고처럼 붙어있는 아베의 집은 한쪽 지붕이 기울었고 입구도 찾기가 힘들었다. 그때까지 전해진 말로는 아베의 아버지가
“폭탄 연구 아버지가 <아리랑> 등 필름 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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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후손들의 성공담 엮여
1905년 제물포를 출발한 조선인 1천여명은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다. 이들은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용설란의 일종인 ‘에네껜’(henequen) 농장에서 비참한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무더위와 비인간적인 대우 속에서도 이들은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했다. 2세들을 위해 서당을 짓고, 조국 독립을 위한 성금을 모았으며, 군사학교를 만들기도 했다. 100년이 지난 현재 이들의 3·4세 후손들은 현지인들과 결혼해 스페인어를 쓰고 있으며, 멕시코와 쿠바에서 하원의원, 주 대법원장, 병원장, 화가, 연주가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화방송의 멕시코 이민 100주년 기념 특집 3부작 다큐멘터리 <에네껜>(20, 27일 방송)에서 이들의 성공담과 과거 한인노동자들의 실태가 소개된다.
3·4세들 하원의원 등으로 성장
에네껜 ‘주급 명세서’ 최초 공개
노라 유는 멕시코 한인 후손 중 첫 하원의원이다. 노라 유의 증조부는
MBC 멕시코 이민 100돌 기념 다큐 ‘에네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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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화장실에 앉아 임신 테스트기를 들여다보는 제니의 얼굴로 시작된다. 테스트기의 빨간 두줄을 바라보는 제니의 표정으로 클로즈업. 그런데 이 소녀는 꽤 담담하다.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거나 걱정하거나 불안해하는 기색이 없다. 15살 소녀의 이 의연한 표정이 바로 영화의 전체적 흐름 혹은 분위기를 전달해준다. <제니, 주노>는 연애, 임신, 출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절박한’ 이야기를 십대의 철없음으로 매우 유연하게 풀어가는 영화다. 그 험난한 주제는 잔혹하고 생생한 현실극보다는 어드벤처 판타지 모험극 속에서 ‘기특하고 올바른’ 두 청소년을 낳았다. 그러나 이 기특한 소녀와 소년은 왠지 진부하다. 어른을 흉내내는 이들은 흠잡을 데 없으나 앵무새 같다. 성인 세계의 클리셰를 완벽히 흡수하여, 심지어 거기에 책임감까지 더해 난관을 극복하는 뽀얀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어린 신부> 이후 쏟아지는 ‘무늬만’ 청소년물과 닮았다.
제니는 전교 5등 안에 드는 모
십대의 철없음으로 유연하게 풀어낸 절박한 이야기, <제니, 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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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면에의 마지막 기고임을 핑계삼아 <그때 그사람들>에 관한 소감 몇 가지로 평을 대신하려 한다. 시사회 직후에 씨네21에 짧은 평을 썼고, 이 원고를 위해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 더 봤다. 예술심리학의 대가를 자처한 법원의 판결에 따라 영화의 앞과 뒤에 배치된 3분50초 분량의 필름이 검정 처리된 극장 상영본을 보고 나서, 나는 이 판결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 나쁠 뿐 아니라 이 영화의 온전한 소통에도 나쁜 짓을 했다고 믿게 됐다.
검정 처리된 장면은 도입부의 부마항쟁 기록필름(김윤아의 기묘한 내레이션도 함께 사라졌다)과 엔딩 크레딧의 배경화면인 박정희 장례식 기록필름이다. 전자에선 학생과 시민들이 독재자 박정희에 맞서 울부짖고 있고, 후자에선 가족과 시민들이 ‘국부’ 박정희를 위해 울부짖고 있다. 영화의 본체와 내적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 기록필름들은 다시 생각해보니, 독한 질문이었다. 당신은 혹은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속했는가, 혹은 속하는가.
이 질문을 경유
[비평릴레이] <그때 그사람들>, 허문영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