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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가 스파게티 웨스턴에 바친 헌사 에서 보듯, 아메리카의 서부라고 알고 있던 현장은 사실 스페인 알메리아 등지의 황야였다. ‘달러 삼부작’의 성공으로 미국의 초대를 받은 세르지오 레오네와 함께 스파게티 웨스턴은 드디어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에 발을 내딛게 된다(대부분의 장면은 여전히 스페인에서 찍었지만). 그런데 레오네는 내심 한편의 웨스턴을 기대했을 제작사와 생각이 달랐으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이하 국내개봉 제목 <웨스턴>)는 스파게티 웨스턴에 이별을 고한 작품이었다. 세르지오 코르부치나 다미아노 다미아니 같은 좌파성향 스파게티 웨스턴의 동료들이 피끓는 영화를 만들 동안 상대적으로 낭만적 세계를 견지했던 레오네는 <웨스턴>에서 정치적인 색채를 드러낸다. 모두가 혁명을 이야기하는 1960년대 말, 각본에 참여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곳곳에 좌파의 기운을 담아놓은 것이다. 죽음의 발레와 와일드 보이들이 떠난 곳에
서부극 최고의 미학,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스페셜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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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을 통해 감독은 <트로이>가 <일리아드>로부터 단지 영감받았을 뿐임을 분명히 하고 있기에 이 영화를 원작과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의미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트로이> DVD와 동일 장르이자 4년 전에 레퍼런스 타이틀로 등극한 <글래디에이터> DVD와의 비교는 어떨까?
화질부터 보자. 컴퓨터로 감상시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HD급 TV나 프로젝터로 감상시엔 종종 놀라운 수준의 디테일과 그라데이션을 보게 된다. 영상 비트레이트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것이 화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아니지 않은가? <글래디에이터>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잡티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선 <트로이>의 판정승. 하지만 전반적인 색감의 표현력과 해상력 면에선 <글래디에이터>가 앞서나간다. <트로이>는 편차있는 화질을 보여줘 레퍼런스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사운드 역시 DTS 트랙을 담았던 <글래디에
글래디에이터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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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기획만화의 봄이다. 이처럼 많은 만화들이 기획된 적이 없었다. 밀리언셀러는 대부분 만화들이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있다. 많은 돈이 흘러다닌다. 그런데 이 많은 기획만화(학습만화)의 모양을 살펴보면 판박이처럼 똑같다. ‘번안’에 머무르고 있다. ‘만화’는 단지 원작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책들에는 동일한 수식이 붙는데, “만화로 보는…”이 그것이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만화로 보는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만화로 보는 좋은 생각> <만화로 보는 세계민속 어드벤처> <만화로 보는 쿠오바디스> 등등. 이런 번안만화는 대부분 ‘좋은 만화’를 고민하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원작’을 고민한다. 만화는 단지 번안의 도구이기 때문에 개성이나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화면을 ‘빠르게 생산’하게 된다. 많은 기획자들이 만화와 원작의 조화나 원작의 새로운 해
명작이면 다인가? ‘만화로 보는…’시리즈 열풍을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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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꽤 오래된 김기덕의 지지자다. 그가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게 낯간지럽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간 김기덕을 지지하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1996년 <악어>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감동했다. 한강 물밑에서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숭고한 종교적 기적처럼 보였다. 나는 당연히 남들도 그렇게 느낄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당시 <악어>를 본 평론가나 기자 누구도 이 영화를 지지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지만 그때 난 풋내기 영화기자였다. 좋은 영화로 판단했다고 <악어>의 훌륭함을 다 표현할 능력이 내겐 없었다. <악어>를 좋게 본 평론가가 있을까? 나는 애타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내가 글로 쓰지 못한 이 영화의 진정한 새로움을 누군가는 봤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아는 한 그해 <악어>를 지지한 유일한 평론가는 정성일씨였다. 그의 글은 김기덕 감독뿐 아니라 내
김기덕 감독에 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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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극장에 가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텔레비전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명절’은 절호의 기회였다. 아침저녁으로 영화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텔레비전은 일종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이었다. 물론 모두 다 좋은 영화는 아니었다. 아니 좋은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쉽고 부족한 극장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비디오가 생겼지만, 그건 귀한 물건이었다. 나는 큰아버지집에 가야만 그걸 볼 수 있었고, 대개 그날은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었다. 추석 때 빌려보지 못한 <쾌찬차>를 7개월이 지난 그 다음해 설날에 겨우 빌려보면서 명절이 3개월에 한번씩 있었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을 했었다.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친척집에 가는 대신 친구들과 뭉쳐 동네 동시상영극장을 찾는 것이 명절 행사였다. 편집은 영사기사 아저씨의 전권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릴리아나 카바니의 <우편배달부>와 <천녀유혼>을 같이 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몇년이 더 훌쩍 지나서 진지하게
선택의 즐거움이 있는 명절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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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부터 영화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알포인트>가 관객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은 모양이다. 1975년 우리 현대사에서 삭제된 뒤 우여곡절을 겪었던 전쟁을 되새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기쁜 일이다. 이미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전쟁이 도착한 좌표는 어디일까? 유감스럽게도 <알포인트>의 좌표처럼, 우리는 아직도 이 전쟁의 언저리, 또는 과거, 또는 그 어디도 아닌 곳을 맴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알포인트의 좌표는 상징적이다. 63도32분, 53도27분에 위도와 경도를 대입하면 이 포인트는 남극이거나 북극에 근접한 지구상의 어느 위치를 가리킨다. 호치민의 서남부 150km 또한 유령의 지점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곳에는 섬이 없다. 미루어 짐작건대 호치민에서 383km 떨어진 푸쿠옥(Phu Quoc)섬일지도 모른다. 이 섬은 호치민의 서남부이며 캄보디아 국경에 접해 있고 프랑스 식민지 시절 제국군과 휴양소가 마땅히 있었음직한 섬이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함정, <알포인트>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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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심사 과정에 문제제기"한국영화의 진흥을 위한다는 곳이 어떠한 영화가 아카데미에 출품돼야 하는지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튜브픽쳐스의 황우현 대표(사진)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 선정을 두고 되풀이되는 촌극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무능을 질타했다. 그 자신 2002년 발생한 <집으로…> VS <오아시스' '분쟁'의 주인공이라 관심이 간다. 그는 "당시에도 영진위의 무능으로 문제가 엄청나게 커지고 왜곡됐다. 나 역시 영진위의 처사때문에 너무도 억울했다"고 밝혔다.황대표는 7일 "아카데미 영화제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어떤 작품을 올려야 할지는 영화를 안봐도 알 수 있다. 작품이 좋고 나쁨의 문제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탈 만한 작품인가가 중요한 것 아닌가. 아카데미의 성격에 맞는 영화를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심사위원도 필요없다. 심사위원을 내세우는 것은 영진위가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진흥을
튜브픽쳐스 황우현 대표, 영진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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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리> <복수혈전>과 더불어 본의 아닌 전설 영화의 트로이카 체제를 공고히 구축해낸 <납자루떼>. 이 영화를 만든 장본인 서세원 감독이, 켜켜이 먼지 쌓인 메가폰을 분연히 떨쳐 들어 만든 신작 <도마 안중근>이 최근에 개봉되어, <천사몽> 이래 오랫동안 대작 기근에 시달려왔던 ‘본의 아닌 코미디계’로부터 드높은 환희와 흥분을 끌어내고 있다.
하나, 그 화려한 환호의 스포트라이트가 <도마 안중근>으로만 향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처사인가. 우리는 냉철한 이성은, 최근 본의 아닌 코미디계의 일대 부활에 물꼬를 튼 또 다른 영화인 <연인>에 대해서도 정당한 평가를 내릴 것을 촉구하고 있다.전작 <영웅>에서, 한갓 대만 출신의 감독 나부랑이가 <와호장룡>이라는 제호하에 펼쳐 보인 스타일 따위는 자신을 위한 센터링 정도로 취급, 웅대무쌍한 물량공세를 듬뿍 가미하여 그걸 그냥 내 거로 접수해버리
오오, 코미디계의 새로운 지존께 경배드리오,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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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도마 안중근>과 세 가지 점에서 닮았다. 첫째, 장르가 느와르인 점, 둘째 상투성을 자신의 스타일로 삼는다는 점, 셋째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를 방패로 삼지만 결국 두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폭로하고야 만다는 점이다. 두 영화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른데, 이는 순전히 ‘이름의 효과’로 추정된다. 후자에 대한 악의적 평가가 감독의 이름과 무관하지 않으며, 전자에 대해 ‘그래도 감동’ 운운하는 것은, 제목이 <가족>이고 명절도 다가오니, 영화의 내용과 무관하게 각자 자기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것이 아니겠는가?
세 가지 공통점-가족/민족주의를 뒤집어쓴 상투적인 느와르
<가족>에 무심한 듯 삽입된 장면에, “날씨 추워지면 생태찌개 만한 것도 없죠”라는 아버지의 대사가 나온다. 실로 ‘결정적인 대사’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찬바람이 불고 경기가 어려울 때 땡기는 매운탕 같은 영화다. 얼큰해야 하므로 가벼운 웃음은 절대 금물이고
“정말 식상한데요~”, <가족>과 <도마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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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맞아 유럽영화를 모아 트는 작은 영화제 2개가 잇따라 열린다. 오는 27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3개관에서 열리는 제5회 서울유럽영화제는 지난 1~2년 동안 유럽에서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화제작 28편을 가져왔다. 90년대 중반 한때 국내에서 예술영화 붐을 타고 나름의 시장을 형성하는 듯했던 유럽영화는 90년대 후반부터 침체하기 시작해 2003년 유럽영화의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1% 안팎에 머물렀다. 이런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서울유럽영화제의 올해 상영작도 상당수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아 이번 영화제가 아니면 보기 어렵다.
명망가 감독의 영화로 빔 벤더스의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작 <풍요의 땅>, 켄 로치의 신작 <다정한 입맞춤>, 올해 칸영화제 각본상을 받은 아녜스 자우이의 <룩 엣 미>, 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수상작인 파티 아킨의 <미치고 싶을 때>(사진), 과격한 성표현으로 논란이 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서울유럽영화제·독일 특별전등 잇따라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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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는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걸 거는 남자다. 사랑하는 여자 샤오메이를 위해 3년 동안 스파이 짓도 불사하며 고진감래의 나날을 보내온 그를 순애보적 사랑의 결정체라 불러도 좋으리라.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그가 목숨걸고 사랑해온 그 여자는, 만난 지 불과 사흘밖에 안된 다른 놈에게 홀라당 빠져 버렸다. 삼각관계의 시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상적인 로맨스’의 완성이란 사랑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의미한다. 그 어떤 삼각관계도 결국 잉여를 남기기 마련이고, 그 잉여물의 이름은 ‘패배자’ 다.
치정과 애욕으로 얽힌 삼각관계의 작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기억하는가? 싸가지 없고 맹목적인 재벌 2세와, 자존심 강하고 불우한 청년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전국의 많은 여성들은 대리만족의 짜릿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복많은 기집애, 양손에 떡을 쥐었군!”)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서는 두
[정이현의 해석남녀] <연인>의 ‘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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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004년/ 감독 김기덕/ 85분폭력의 희생양인 여자는 세상에서 사라지길 원하는 듯 보이고,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빈집을 전전하는 남자에게서는 때때로 감출 수 없는 분노가 엿보인다. 그가 분노를 잠재우는 도구는 3번 아이언. 남자가 지옥같은 집에서 여자를 구해낸 것 역시 3번 아이언을 통해서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발견하고, 남자의 마음은 여자를 통해 치유된다. 그 어떤 세상의 오해에도 굳게 입을 다물었던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서 구원을 얻고 마침내 그들은 모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영화는 그 제작방식만큼이나 과감하게, 투명한 각종 비유와 상징의 세계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주인공들에게서 대사를 지워버린 만큼 표현은 간결하다 못해 경제적으로 느껴지고, 모든 장면들은 설명이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주인공이 마침내 모든 현실의 무게를 말 그대로 벗어 던진 결말, 관객들은 그 정체불명의 묘한 느낌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해질 것이다.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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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작 의 기무라 타쿠야가 부산영화제 방문을 취소했다. 기무라 타쿠야가 에서 연기한 인물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 그는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첫번째 버전에 비해 부산 상영 버전에서 비중이 크게 늘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부산을 찾지 못하게 됐다. 기무라 타쿠야와 같은 밴드인 SMAP 멤버 이나가키 고로는 예정대로 부산을 방문할 예정. 이나가키 고로는 야쿠쇼 코지와 함께 <웃음의 대학>에 출연해 영화배우로 부산을 찾는다.
기무라 타쿠야 부산 방문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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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감독들 프레젠테이션한국신인감독을 발굴하는 NDIF(New Directors in Focus)가 7일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 파노라마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열었다. 직접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한 감독은 단편영화 <동시에> <세라진>의 김성숙 감독, 단편 <나는 날아가고… 너는 마법에 걸려 있으니까>로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받았던 김영남 감독, 제1회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수상한 <링반데룽>의 박종영 감독 등 여섯 명. 가장 먼저 마이크 앞에 선 김성숙 감독은 87년 6월 항쟁을 장르영화에 녹이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는 영화 <하마>를 또박또박하게 분석해 설명했고, 독특한 외모와 말투로 눈길을 끈 이원석 감독은 “펑키한 코미디” <국민체조>를 그림까지 동원해가면서 설명해 웃음을 자아냈다. 손대균 감독은 조폭이 로또 당첨 복권을 이용해서 돈세탁을 한다는 <대박>을 소개하면서 진짜 로또
홍보부스 안내 등 부산영화제 단신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