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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티 아킨/ 독일/ 2003년 /120분<미치고 싶을 때>는 몇가지 이야기와 감정이 뒤섞여있는 영화다. 거칠고 어두운 코미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파괴적인 사랑과 절망을 거쳐 쓸쓸한 결말까지, 몇 번이고 코너를 돌면서, 바로 조금 전과는 다른 풍경을 가진 길목에 가닿는다. 스무살 터키 처녀 시벨은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자살을 시도한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술마시고 자동차로 벽을 들이받은 중년남자 카힛을 만나고, 그에게 결혼해달라고 조른다. 카힛은 아내가 죽은 뒤에 부랑아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 터키 남자. 카힛은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시벨과 결혼하지만,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천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한 도구로만 카힛을 대했던 시벨도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바로 그날밤, 카힛은 말다툼 끝에 시벨의 남자친구를 죽이고 만다.터키계 감독과 배우가 만든 <미치고 싶을 때>는
<미치고 싶을 때> Head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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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감독 빔 벤더스/ 2004년/ 114분/ 부산 1관 오전 11시<풍요의 땅>은 이방인의 눈에 포착된 미국의 초상화이다. 비록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젊은 시절 미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영화 <해밋>을 연출하기 위해 헐리우드까지 날아간 경험이 있던 빔 벤더스. 지금 그가 바라보는 미국이란 거대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환자이다. 이 영화는 대조적인 두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며 어디에서 치유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주인공 폴과 라나가 그들이다.L.A에 살고 있는 폴은 그린베레 출신이며, 걸프전 참전 군인의 경력을 가진 자칭 애국자이다. 그러나 언제 테러가 일어날 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고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개조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수상해보이는 아랍인들을 감시하고 뒤쫓는 것이 거의 모든 그의 일과이다. 어느 날 그에게 이스라엘에서 살던 조카 라나가 찾아온다. L.A의 홈리스를 돕고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라나,
<풍요의 땅> Land of Ple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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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스 초이스/아르헨티나,프랑스/2004년/76분/ 감독 리산드로 알론소/메가9관 1시형제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온 남자 바르가스는 반백이 다 되어서야 출소한다. 그는 그길로 자신의 딸 올가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바르가스는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밀림으로, 그 밀림에서 다시 외딴 섬으로 딸이 옮겨간 자리를 찾아 다닌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는 그 여행길에서 딸을 만나지 못한다. 늙은 출소자 바르가스의 한없이 더딘 여행이 이 영화의 전부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는 어떤 숭고한 느낌마저 자아낼 만한 침묵의 의식을 치루고 있다.<죽은사람들>은 2001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첫 번째 장편영화 <자유>가 초청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신예로 주목을 모았던 리산드로 알론소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밀림을 헤매는 몽롱하면서도 기이한 오프닝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유유히 흐르던 카메라의 무빙을 따라가다 마주치는 아이들의 시체들, 칼을 쥔 누군가의 손. 리산드로 알론소
<죽은 사람들> Los Muer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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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레다 히로카즈/일본/141분/메가 5관 1시제목으로 걸려 있는 ’아무도 모른다’의 말뜻은 첫 신이 시작된 이후 곧장 밝혀 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경의 어느주택가. 단촐한 이삿짐이 들어오고 엄마와 아들은 집주인에게 아들을 소개한다. 자식이라곤 얌전하고 조용한 이 아이 하나 뿐이라고. 그러나 방으로 갖고 들어온 가방 안에서는 나머지 두명의 아이들이 나오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아이까지 몰래 들어와 식구는 모두 다섯이 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비극의 단초가 된다. 엄마가집을 나가버리고, 그 후 네명의 아이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필사적으로 살아 갈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애써보지만, 굶주림은 끝에 달한다. 어쩔 수 없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이 된 12살 소년 아키라는 너무 빨리 삶의 슬픔을 본다.1988년 동경에서 있었던 실화에 기초하여 이 슬픈 영화를 만든 고레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답게 미세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영화는 별다른 주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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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오기 전에 나는 <씨네21>을 보면서 관람영화 리스트를 만들었다. 1순위는 국내에서 절대 개봉안할 것처럼 생긴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사회적 학살>, 그리고 개봉 여부와 상관없이 에밀 쿠스투리차 신작 <인생은 기적처럼>(상영시간 154분, 자그마치 2시간34분. 개봉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2순위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슈퍼사이즈 미> <타네이션>. 여기다 <미낙시>라는 인도 영화. 인도영화는 효과100%의 자장가라는 선입관 때문에 비싼 KTX 타고 가서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5년 동안 소설을 못 쓰고 방황하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라는 작품소개를 보니 나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하지만 부산에 머무는 건 개막날부터 2박3일간, 안타깝지만 몇편은 탈락이다. 입장권은? 못 구해도 좋다. 부산에서 놀면
소설가 조선희의 부산의 추억 - 시월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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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영화, 단편영화의 약진에 힘입어 다양성의 시대에 접어들어인도네시아의 경우, 아직 한국이나 태국처럼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도 높지 못하고, 전반적인 영화산업의 성장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가린 누그로호 이후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희망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영화평론가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가 언급하였듯이 90년대의 인도네시아영화는 ‘침묵의 시기’였고, 그것은 산업적으로는 제작 편수의 급격한 감소와 관객수의 급감, 미학적으로는 저급한 수준의 상업영화(가린을 제외한)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라는 의미이다.하지만, 이전부터 대안영화의 성격을 지닌 소위 ‘게릴라영화’의 전통이 가린 누그르호의 출현을 낳았고, 기존의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면서(특히 젊은 영화인에게 커다란 장애요소였던 진입장벽의 타파)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가린의 활약은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등장한 젊은 세대들, 즉 미라 레스마나, 난 아크나스, 리리 리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기운, 인도네시아 영화는 지금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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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파티 아킨/독일/2003/120분<미치고 싶을 때>는 몇가지 이야기와 감정이 뒤섞여있는 영화다. 거칠고 어두운 코미디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파괴적인 사랑과 절망을 거쳐 쓸쓸한 결말까지, 몇 번이고 코너를 돌면서, 바로 조금 전과는 다른 풍경을 가진 길목에 가닿는다. 스무살 터키 처녀 시벨은 보수적인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자살을 시도한다.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술마시고 자동차로 벽을 들이받은 중년남자 카힛을 만나고, 그에게 결혼해달라고 조른다. 카힛은 아내가 죽은 뒤에 부랑아나 다름없이 살고 있는 터키 남자. 카힛은 죽어버리겠다는 협박에 못이겨 시벨과 결혼하지만,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천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자유를 얻기 위한 도구로만 카힛을 대했던 시벨도 그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바로 그날밤, 카힛은 말다툼 끝에 시벨의 남자친구를 죽이고 만다.터키계 감독과 배우가 만든 <미치고 싶을 때>는 경쟁부문
<미치고 싶을 때> Head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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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 오기 전에 나는 <씨네21>을 보면서 관람영화 리스트를 만들었다. 1순위는 국내에서 절대 개봉안할 것처럼 생긴 다큐멘터리 <어떤 나라>와 <사회적 학살>, 그리고 개봉 여부와 상관없이 에밀 쿠스투리차 신작 <인생은 기적처럼>(상영시간 154분, 자그마치 2시간34분. 개봉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2순위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슈퍼사이즈 미> <타네이션>. 여기다 <미낙시>라는 인도 영화. 인도영화는 효과100%의 자장가라는 선입관 때문에 비싼 KTX 타고 가서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5년 동안 소설을 못 쓰고 방황하는 소설가’가 주인공이라는 작품소개를 보니 나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하는 반가움이 일었다. 하지만 부산에 머무는 건 개막날부터 2박3일간, 안타깝지만 몇편은 탈락이다. 입장권은? 못 구해도 좋다. 부산에서 놀면
소설가 조선희가 들려주는 부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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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고레다 히로카즈/일본/141분/메가박스 5관 1시제목으로 걸려 있는 ’아무도 모른다’의 말뜻은 첫 신이 시작된 이후 곧장 밝혀 진다. 조용하고 한적한 동경의 어느주택가. 단촐한 이삿짐이 들어오고 엄마와 아들은 집주인에게 아들을 소개한다. 자식이라곤 얌전하고 조용한 이 아이 하나 뿐이라고. 그러나 방으로 갖고 들어온 가방 안에서는 나머지 두명의 아이들이 나오고, 바깥에서 기다리던 아이까지 몰래 들어와 식구는 모두 다섯이 된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비극의 단초가 된다. 엄마가집을 나가버리고, 그 후 네명의 아이들은 최악의 상황에 몰린다. 필사적으로 살아 갈수 있는 방식을 찾으려 애써보지만, 굶주림은 끝에 달한다. 어쩔 수 없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가장이 된 12살 소년 아키라는 너무 빨리 삶의 슬픔을 본다.1988년 동경에서 있었던 실화에 기초하여 이 슬픈 영화를 만든 고레다 히로카즈는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답게 미세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영화는 별다른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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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장난감이 아니며, 총을 쏘는 행위는 패션이 아니다. 명확한 대상과 이유를 모르는 자의 총질은 한낱 바보 같은 행위일 뿐이다. 싱싱하던 시절의 엘비스 코스텔로가 만든 앨범 제목처럼, 올바른 행동엔 ‘진실한 혹은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만 한다. 클로브 샤브롤이 마지막 공산주의 영화가 될 거라 했던 <의식>과 나이든 세 악동 래리 클라크와 에드 라크만, 하모니 코린이 만든 캘리포니아의 지옥도 <켄 파크>는 ‘나는 총을 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의식>의 마지막, 두 여자는 <돈 지오반니>를 보던 일가족이 사냥감인 양 장총을 발사한다. <켄 파크>의 처음,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켄 파크는 셀프카메라 앞에서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그리고 또 다른 친구는 보호자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가정부가 주인을 살해한 이유를 우리가 궁금해하는 만큼, 켄 파크의 친구들도 그의 자살과 그의 살인이 이상하기만 하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DVD vs DVD] <의식> vs <켄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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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2004년/114분/감독 빔 벤더스/부산 1관 오전 11시<풍요의 땅>은 이방인의 눈에 포착된 미국의 초상화이다. 비록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지만, 젊은 시절 미국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영화 <해밋>을 연출하기 위해 헐리우드까지 날아간 경험이 있던 빔 벤더스. 지금 그가 바라보는 미국이란 거대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환자이다. 이 영화는 대조적인 두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며 어디에서 치유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주인공 폴과 라나가 그들이다.L.A에 살고 있는 폴은 그린베레 출신이며, 걸프전 참전 군인의 경력을 가진 자칭 애국자이다. 그러나 언제 테러가 일어날 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고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이다. 개조 차량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수상해보이는 아랍인들을 감시하고 뒤쫓는 것이 거의 모든 그의 일과이다. 어느 날 그에게 이스라엘에서 살던 조카 라나가 찾아온다. L.A의 홈리스를 돕고 선교활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라나, 오용된
<풍요의 땅> Land of Plen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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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스 초이스/아르헨티나,프랑스/2004년/76분/감독 리산드로 알론소/메가박스 9관 1시형제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온 남자 바르가스는 반백이 다 되어서야 출소한다. 그는 그길로 자신의 딸 올가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바르가스는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밀림으로, 그 밀림에서 다시 외딴 섬으로 딸이 옮겨간 자리를 찾아 다닌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는 그 여행길에서 딸을 만나지 못한다. 늙은 출소자 바르가스의 한없이 더딘 여행이 이 영화의 전부다. 그런데 묘하게도 영화는 어떤 숭고한 느낌마저 자아낼 만한 침묵의 의식을 치루고 있다.<죽은사람들>은 2001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첫 번째 장편영화 <자유>가 초청되면서 아르헨티나의 신예로 주목을 모았던 리산드로 알론소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다. 밀림을 헤매는 몽롱하면서도 기이한 오프닝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유유히 흐르던 카메라의 무빙을 따라가다 마주치는 아이들의 시체들, 칼을 쥔 누군가의 손. 리산드로 알
<죽은 사람들> VLos Muer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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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의 약진에 힘입어 다양성의 시대에 접어들어지난 90년대 중반 금융위기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아시아의 국가들인 한국과 태국, 인도네시아의 영화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거나, 발전의 가능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아직 한국이나 태국처럼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도 높지 못하고, 전반적인 영화산업의 성장속도가 더디기는 하지만 가린 누그로호 이후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희망의 조짐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영화평론가 세노 구미라 아지다르마가 언급하였듯이 90년대의 인도네시아영화는 ‘침묵의 시기’였고, 그것은 산업적으로는 제작 편수의 급격한 감소와 관객수의 급감, 미학적으로는 저급한 수준의 상업영화(가린을 제외한)가 주류를 이루던 시기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대안영화의 성격을 지닌 소위 ‘게릴라영화’의 전통이 가린 누그르호의 출현을 낳았고, 기존의 인도네시아 영화계의 낡은 관행을 타파하면서(특히 젊은
성장의 기운이 이제 인도네시아로 몰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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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 테스트용으로 사용될 만큼 빼어난 화질과 사운드를 자랑하는 <세븐>은 출시 뒤 3년여가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레퍼런스급 명품 타이틀로 손꼽힌다. SE 버전으로 출시된 DVD에서는 디스크2에 담긴 양과 질 모두 뛰어난 서플먼트도 볼거리.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극중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연쇄살인마 존 도와 관련된 메뉴들이다. 존 도의 일기장 세부와 그 제작 과정을 볼 수 있는 ‘The Notebook’에는 디자이너들의 코멘터리를 통해 그의 광기어린 필체를 재현하는 과정과 실제 자살한 사람의, 눈물 자국까지 포함된 유언장을 입수하는 등 자료 수집에 대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다. 완벽한 캐릭터 소품을 만들고자 한 디자이너들의 이와 같은 노력은 마치 존 도라는 캐릭터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편집광적인 인상마저 들 정도다. 또한 ‘Still Photographs’에서는 존 도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설정된 탐식, 탐욕, 교만에 해당하는 범죄사진들과 사건현장
[서플먼트] 연쇄살인의 추억, <세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