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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어린이 창작극 <강아지 똥> 연습현장
“어린이 연극은 본성으로 돌아가 자양분을 얻는 일”
과천시민회관의 극단 모시는 사람들 연습실을 찾은 날은 형광등 불빛이 청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황사가 심한 어느 오후였다. <강아지 똥>(원작 권정생, 연출·각본 김정숙)의 마지막인 강아지 똥이 민들레 꽃을 피우는 장면 연습이 한창이다. 연습실 한켠에는 일정표와 의상 옷걸이가 있었고, 배우들은 초봄인데 옷이 흠뻑 젖도록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강아지 똥>은 극단 모시는 사람들이 4년째 공연하고 있는 어린이 연극 주요 레퍼토리다. 김정숙 대표는 87년 어린이 연극을 시작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트럭을 세낼 여건도 안 돼 단원들과 버스를 타고 세트와 의상 소도구들을 나누던 ‘보따리 연극’ 시절이었다. 단원들은 “제발 우리도 <백설공주> 좀 하자”고 한숨 섞인 간청을 했다. 명작동화류는 흥행이 보증되어 있
어린이 연극의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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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의 전환 - 일방향적 계몽에서 쌍방향적 소통으로
“이젠 부모도 어린이와 함께 즐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비가 가문 땅을 적신다. 비 오면 진흙탕 흙바닥에 맨발 적시며 날름날름 빗물 받아먹던 어린 시절… 이 추억을 10년 전, 20년 전의 것으로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이제는 어른이다. 대신, 황사에 전 산성비에 살갗 타고 머리 빠질까 서둘러 집으로 귀가하는 21세기의 아이들. 그들은 자연을 익히기 위해 캠프를 가고 박물관을 찾는다. 이는 요즘 아이들에겐 매연에 누렇게 바랜 태양이 뜨고 저무는 나날처럼 자연스럽다. 하나 이들은 흙과 물, 나뭇가지 대신 만질 듯 손잡힐 듯 머릿속을 웅웅거리는 동화 속, 가상 속, 먼나라 속 이야기들과 만난다.
‘아동극’이라는 한자투의 말 대신 ‘어린이 연극’ 혹은 ‘가족극’이 연극계의 새로운 언어와 시스템으로 생동하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이 장사가 된다는 속셈으로 대형화, 상업화 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아이들
어린이 연극의 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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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아이들 눈높이로 세상을 만나자
“아이들은 미래다.” “꿈이다.” “희망이다.” … “거기다가 새싹이다.” 어린이날이 다가오고 있다. 한동안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캐럴만큼 듣게 될 말들이다. 한편… 아이들은 웬수다. 작은 괴물이다. 욕망덩어리다. 파렴치한이다…. 그렇다. 아이들은 우리가 잊은 세상에 대한 ‘원체험’을 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란, 구부려 낮추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시커먼 뱃속에 있을지 모른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세상만 담았던 어린이 연극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점잖지 못한(?) 어른들의 시선, 흘겨보지 마시고 흘낏흘낏 들여다보자.
어린이 연극의 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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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회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5월11일 저녁 7시30분(현지 시각) 평화롭게 개막했다. 지난해 공연예술분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영화제 개최 자체가 위기를 맞았던 흔적은 눈 씻고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축제 분위기에 이질감을 주는 것은 영화제 본부에 해당하는 팔레 데 페스티벌 건물벽 한 쪽에 걸린 현수막 정도. 최근 실종된 이라크 종군기자들과 통역관의 얼굴이 인쇄돼 있다. <리베라시옹>의 여기자 플로랑스 오베나와 그의 통역관 실종은 전세계 언론이 다룬 큰 사건이었지만 리비에라 해안의 화려한 5월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극장전’ 들고 온 홍상수감독 등
경쟁부문 스물 한명 감독 출사
심사위원장 “미학적 완성도 우선”
주목할만한 시선 김기덕 <활>
개막작 시사회 자리엔 꽉찬 관심
독일 출신의 프랑스 감독 도미니크 몰의 <레밍>으로 문을 연 칸영화제는 명백하게 작가영화를 지지한다. ‘거물들의 귀환’이라는 <르 몽드>의 표현대로
[칸 2005] 거물들의 귀환 칸은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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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사랑 때문에 미쳐서 죽는 사람이 계속 있으니 자네는 며칠 내로 그런 기회를 갖게 될 걸세.”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나오는 이 문장은 <바람의 그림자>에도 절묘하게 적용된다. 운명적 사랑으로부터 죽는 날까지 도망갈 수 없는 사람들이 역사의 비극과 사회의 통념 안에서 겪는 일.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낭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스티븐 킹의 말만큼 마술적 리얼리즘에 어우러진 고딕풍 연애담을 제대로 시사하는 말은 또 없을 것이다.
1945년 바르셀로나, 소년 다니엘은 아버지를 따라간 ‘잊혀진 책들의 묘지’에서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을 고른다. 훌리안 카락스라는 무명의 작가가 쓴 그 책은, 누군가가 카락스의 모든 책을 찾아다니며 불사르는 통에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한권이기도 하다. <바람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다니엘은 어느 날, 책 속에 나오는 악마를 닮은 남자가 오래된 책을 태우는
마술적 리얼리즘 어우러진 고딕풍 연애담, <바람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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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렵지. 사는 것, 내 뜻대로, 원하며, 사는 것.”(<들꽃을 보라>) 나만 그런 건가.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는 생각이 든다(<사람들은 즐겁다>). “눈발은 몰아치고”, “저 멀리 봄이 사는 곳”에 닿을 수는 있을는지(<오, 사랑>). “나는 이렇게 너무 또렷이도 기억하고 있는데 무심하게도, 그대 눈빛은, 언제나 나를 향하지 않”는다(<사람들은 즐겁다>). 그런 생각이 들 때, “헐벗은 나무, 모두 보낸 가벼운 가지들을 보며” 마음도 투영해보고 지혜도 얻는다(<이제 더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이런 내 맘 아는지….”(<삼청동>)
안다. 그래서, 아니 ‘그래 봤자’지만, 우리는 24시간 휴대폰을 켜두고, ‘몰래’라도 ‘싸이질’을 하며, 일면식도 없는 이들과 ‘1촌’(혹은 ‘이웃’)을 맺는다. 그럴 때, 음악만큼 마음을 ‘대변’해주고 서로를 통하게 해주는 게 없는 것 같다. 휴대폰
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루시드 폴 <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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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어느 한 나라에서 정부에 항거하거나 지배체제를 전복하려던 꿈을 꾸다 체포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망명, 여전히 전복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 혹은 전복을 꿈꾸던 삶을 등질 수 없어서 자신의 나라를 뒤로 한 채 이국 땅을 떠도는 행위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자국 정부가 자신에게 할당한 지위에서 벗어나 떠도는 이탈자들이고, 새로운 체제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자 꿈꾸는 탈주자들이다. 그들은 최소한 자국 정부와 혹은 자신의 국가와 맞서는 위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맞먹는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망명자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살지만, 다른 나라는 드나들 수 있어도 자신의 나라에는 드나들 수 없다는 점에서 여행자와 다르다. 또 그들은 자신이 태어났고 자신이 살던 나라를 벗어나야 했지만, 대개는 여전히 그 나라 안에서의 전복이나 저항을, 새로운 관계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는 점에서 이민자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 외부에 산다는 점에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난민이 필요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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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조선족을 만난 것은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터미널일 것이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던 중 한 아주머니가 사람들에게 길을 묻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웬일인지 사람들은 그녀를 슬금슬금 피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내쪽을 힐끔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거두고, 곁에 있던 인상 좋은 남학생에게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녀의 음성이 들려오자 내 머리에는 단 하나의 단어가 스쳐갔다. 북한 사람. 그랬다. 그때는 오로지 북한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처음으로 출장을 떠난 4월의 베이징에서 10일간 나를 인도했던 차량은 선양에서 만든 승합차 진베이였다. 진베이를 모는 베이징의 운전사는 하얼빈 출신 H 아저씨. 일과를 마치고 즐기는 양꼬치와 이과두주를 좋아하는 H는 먹고살기 위해 아들과 단둘이 베이징의 친척집에 기거한 지 반년째. 아내는 돈을 벌기 위해 홀로 인천으로 간 지 어언 4년째. 그는 나에게 “어떤 일도 잊지 않고 10년이 지나도 복수한다
[오픈칼럼] 조선족은 한국인일까 중국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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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고 나니, 우울해졌다. 결말 자체가 음울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점점 늪으로 빠져드는 그들을 보는 것 자체가 더욱 힘들었다. <모래와 안개의 집>은 한채의 집을 둘러싼 분쟁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의 유일한 유산을 실수로 경매에 넘겨버린 여인과 모든 것을 잃고 미국에 와서 새 출발을 하려는 이란 출신의 남자. 여자는 집을 되찾으려 하고, 남자는 내놓지 않으려고 한다. 서로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스릴러물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모래와 안개의 집>은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헤집어보는 것으로 일관한다. 그들은 자신의 것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었고, 그것을 위한 선택을 한다. 그들은 각자의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그걸 신념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신념과 선택 때문에, 그들은 파멸한다. 서로를 파멸시킨다. <모래와 안개의 집>을 보고 나서 우울했던 이유는, 그런 그들이 사악하다거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
[숏컷]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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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미술관 옆 동물원>이 개봉된 직후, 이정향 감독이 이런 고충을 토로했던 기억이 난다. “(심)은하씨가 너무 예뻐서 영화를 찍는 데 애먹었어요.”
이 발언은 영화 개봉 직후 판촉모드로 전환된 감독의 영업부장적 발언쯤으로 넘길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 말에 수긍했다. 사실 그렇다. 다 큰 처자가 혼자 사는 집에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남자가 불쑥 쳐들어와서 눌러앉아버렸는데, 그 남자가 이 처자를 전혀 여자로 생각지 않는다… 뭐 이런 설정에서 주연배우가 너무 예쁘면 대체 어쩌겠냔 말이지.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 관객에게는 본전회수 심리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정도는 알고도 속아주는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 모드’를 가동시킨 상태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덕분에, 딴 사람도 아닌 심은하를 ‘별로 예쁘지도 않고 털털하고 푼수기 범람하는’ 캐릭터로 끝까지 밀어붙인 <미술관…>쪽의 작전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집주인의
[투덜군 투덜양] 그녀는 너무 예뻤다, <댄서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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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라는 말에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게 있다. 태고의 순수를 간직한 듯한 신비로움과 사람들의 출입을 거부하는 완고함은 순연한 의미의 ‘정복욕’을 자극한다. 우주선을 띄우고 위성으로 전세계의 풍경을 방 안에서 지켜보는 세상이 됐어도 탐험가들의 극지 정복기가 주는 감동은 바래지 않는다. 사람을 거부하는 자연의 힘에 맞서 싸워 승리하는 탐험기는 그 자체가 한편의 드라마다. <남극일기>의 출발도 남극점이라는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사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며 모습을 드러내야 할 ‘승리’의 고지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진다. 영화 초반 순백으로 펼쳐졌던 광활한 설원은 뒤로 갈수록 좁은 병원 복도처럼 싸늘하게 푸른 기운을 드러내며 옥죄어 온다. <남극일기>는 이처럼 공간의 전형성을 뒤집으면서 기존의 탐험 드라마가 가는 길과 다른 고지에 다다른다. 그곳에서 영화가 꽂는 깃발은 정복이나 승리가 아니라 엇나간 욕망, 또는 거대한 환상이다.
도달불능점. 남극대륙 해안에서
<남극일기> 남극, 그 차가운 밀실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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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5일, <씨네21> 창간 10주년 기념 영화제가 끝났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지만 6천명 이상이 이번 영화제를 다녀갔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화를 못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었다. 극장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내 멱살을 잡는 꿈을 꾼 적도 있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번 영화제는 최근 몇년간 허리우드극장이 경험 못한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성황을 이뤘지만 매진은 딱 한번 나왔다. 지난 4월30일, 갑자기 한여름처럼 더웠던 날,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상영시간이었다.
당일 현장에 없었던 탓에 직접 목격하진 못했지만 이날 극장 환경은 끔찍했단다. 이른 더위에 무방비 상태였던 터라 에어컨은 작동이 안 됐고 때마침 매표시스템도 장애를 일으켰다. <안녕, 프란체스카>의 박희진 말투로 “아니, 이게 웬 당황스런 시추에이션”. 480석 좌석이 완전 매진된 상태에서 바닥에
[편집장이 독자에게] <씨네21> 영화제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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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12일(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는 세계 60여개국 175개 문화단체 대표들이 모여 국제문화전문가단체 제4차 총회를 열었다. 제3차 유네스코 정부간 회의에 부쳐질 두 가지 종류의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 협약안’(문화다양성 협약)에 대한 문화전문가단체들의 입장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였다.
총회 첫날 회의장인 마드리드 크라운 호텔에서는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흐르보야 흐르바르 크로아티아 영화감독협회 대표가 양기환 세계문화기구를위한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등 한국 대표단을 향해 왼쪽 손목을 열렬히 흔들어 보인 것이다. 흐르보야의 손목에는 ‘노무현’이라는 한글이 선명한 일명 ‘노무현 시계’가 반짝이고 있었다. 몇몇 다른 해외 문화전문가들도 한국 대표단에게 같은 시계를 내보이며 각별한 환영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렸던 국제문화전문가단체 제3차 총회 당시, 노 대통령이 세계 57개국 230여명의 문화전문가들을 영빈관 만찬에 초청해 선물한 시계였다.
[팝콘&콜라] ‘노무현 시계’ 와 문화다양성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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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문근영과 박건형은 빛났지만 배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나의 몫이 아니다. 이것은 ‘해석남녀’라는 칼럼이며, 나에게는 다만 영화 속 인물들의 성격과 욕망, 희망과 좌절, 혹은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주어졌을 뿐이다.
열아홉 살의 연변 소녀 채린은, 댄스트레이너 영세를 ‘아즈바이’라고 부른다. 아즈바이. 정겹고 순박한 발음이다. 위장결혼까지 해가며 이들이 함께 사는 이유는 3개월 남은 경연대회의 준비 때문이다. 기본스텝도 밟을 줄 모르던 채린은 영세의 혹독한 훈련을 받아 진정한 댄서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들은 점점 서로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간다. 누구나 짐작 가능한 수순이다. 이들의 사랑 앞에 위기가 놓여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위기가 결국 극복되리라는 것도, 누구나 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채린은 영세의 옥탑방을 찾아간다. 옥탑방 문 앞에서 채린의 손은 차마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못하고 허공에서 주춤댄다. 문을 열거나, 열지
[정이현의 해석남녀] <댄서의 순정> 채린과 영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