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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패러디를 넘어 창조의 순간으로
명화의 차용 - 김중만·<섬>·<친절한 금자씨> 포스터
물론 현대 이미지 중에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원작의 아우라를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살모사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운 이미지는 없다. 뒤샹이 모나리자의 복제화에 콧수염과 턱수염을 그려넣은 이래 표현을 위해 원작을 훼손하고 파괴하는 행위는 적어도 미술에서는 독창적일 것도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업 사진에서는 가치있는 원본이 예술성을 확보하고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는 사실이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생 로랑은 광고 사진에 벨라스케스, 프리다 칼로, 루벤스들의 미술 작품을 차용해 예술의 아우라를 불어넣기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림트의 그림을 그대로 재현한 한 보석회사의 광고 사진과 달리의 초현실적인 공간을 그대로 옮겨온 한 의류회사의 광고 사진에서 보듯이 지금 부유층에 소구하고자 하는 광고주들이 가장 즐겨 택
신 고전주의의 물결 [2] - 사진·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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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는 죽지 않는다. 다만 되풀이될 뿐이다
복고주의는 보수주의다, 반동이다. 창조를 가로막는 꼰대다. 손 안 대고 코푸는 장사다. 천박한 유행이다. 라면 하나를 먹더라도 추억에 기대야 하는 우리 시대 사람들의 영혼은 불안하고 불행하다. 그런데 그 감수성이 모여 복고주의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자신을 낳은 부모를 죽이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고 있다. 마리우스 프티파의 <백조의 호수>와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 <백조의 호수>, 최인호의 <해신>과 드라마 <해신>은 같은 부모에게서 나온 한 형제가 아니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옛 동료에 불과하다. 원래부터 그랬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며, 인간이 만든 것 중에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일 만큼 기발한 것이 어디 있었나. 과거에 빚지고 새 길을 가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다. 그래서 지금 복고주의로부터 무언가가 나오기를 학수고대한다. 안타깝게 조짐을 들여다본다.
공연: 성(性
신 고전주의의 물결 [1] - 공연·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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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모든 게 설익은 상태다. 몸은 급한 속도로 성장하고, 정신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허둥댄다. 누군가를 향한 연정을 쉽게 발전시키지만, 또한 금세 싫증을 내기도 한다. 그 대상이 막연하지 않은 욕망과 사랑에 시달리는 경우도 흔하다.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줄도 모르고 밤잠 설치는 일이 흔한 것도, 이 시기다. 그래서 많은 순정만화들은 이 또래의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하지만 실은,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에 너무나 진지했음을, 연애는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음을… 심각해서 죽을 지경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만화가 <우리들이 있었다>(오바타 유키 지음/ 대원씨아이 펴냄)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나나미는 같은 반의 인기남 야노와 티격태격하며 그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 시작한다. 야노는 못하는 것 없고 잘생겼으며 활발하지만 어딘가 그늘이 있다. 나나미는 야노의 옛 연상녀 여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야노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몰
아이들은 사랑하고 있었다, 오바타 유키의 <우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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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선스로 ‘지각발매’되는 음반들이 있다. 이른바 IMF 사태 이후, 메이저 직배사조차 라이선스로 발매하는 대신 음반을 수입해서 유통하는 ‘안전한’ 전략을 선호해온 까닭이다. 그래서 ‘소량의 수입 판매 → 국내외의 호평 → 뒤늦은 라이선스 발매’의 경로를 거치는 음반이 적지 않게 나왔다. 캐나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파이스트의 <Let It Die>(유니버설 발매)도 그런 경우다.
파이스트(본명은 레슬리 파이스트)의 첫 공연 경력이 ‘펑크의 전설’ 라몬스(Ramones)의 오프닝 무대였다는 사실은 그녀의 무명 시절을 상징적으로 요약해준다. 현재 파이스트의 음악성향으로는 짐작조차 어려운 후일담이지만, 그녀는 펑크 로커로 출발해 이를 5년간 지속했다. 그러던 중 성대 이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음악적 사형선고’를 듣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전화위복이 되어 그녀를 새로운 음악세계로 이끈다. 기타리스트, 세션 보컬,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길 말이다. 이를 갈
달콤하면서 씁쓸한, 관능적이고 해맑은 음반, 파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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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의 발표로 논란에 빠진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독일의 슈뢰더 총리도 분위기에 맞춰 발빠르게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과 독일은 물론이고, 나름대로 세계를 이끈다고 자부하는 나라의 정부들은 각자 자국 연구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주느라 바쁜 모양이다.
이와 관련해 독일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에는 배아복제연구의 찬반론이 실렸다. 독일의 저명한 줄기세포연구자 위르겐 헤셸러. 그는 황 박사가 이 분야에 “이정표”를 놓았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연구 제한만 없었다면 지금쯤 자기들이 연구를 주도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독일 정부를 원망했다. 다분히 시샘과 부러움이 뒤섞인 반응이다.
물론 이 연구에 원칙적 반대를 표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령 독일 연구자협회장 루드비히 비나커는 황 박사의 연구는 “과학도 아니고, 치료와도 무관하며, 그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첫 번째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미노타우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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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를 처음 봤을 때 고양이는 내게 스쳐지나가는 단역에 불과했다. 길도 잃고 아직은 연약하기 그지없는 그 동물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환유로만 보였다. 지영(옥지영)은 길에서 주운 새끼 고양이를 혜주(이요원)의 생일선물로 줬고, 혜주는 “키우려니 의외로 손 많이 탄다”며 다음날 덜컥 되돌려줬다. 고양이는 계속 떠도는 운명이다. 지영에게서 태희(배두나)로, 태희에게서 쌍둥이 자매에게로. 스무살 그녀들은 자신을 챙기기에도 벅찰 뿐이니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구석은 없다.
한달 전, 지영이와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바카스의 충직한 신도임을 확인하고 슬쩍 휘청거리며 새벽 귀가를 끝낼 무렵, 갑자기 “야옹” 소리와 함께 나타난 고양이. 아직 덜 자란 그 녀석은 고양이답지 않게 친한 척하더니 슬슬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엘리베이터를 거쳐 오피스텔 안까지 스킨십 하나 없이 입성했다. 원나잇스탠드를 끝내고 다음날 오전 가던 길을 가라고 내줬건만 녀석은
[오픈칼럼] 유사 고양이와 유사 개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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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남극일기>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관람 전 D-8일 14시간43분0.7초 내에 ‘남극 과학기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꿈과 사랑과 모험과 낭만과 역경과 우정이 너울져 파노라마치는 감동 드라마’ 뭐 이런 걸 연상시키는 제목 위에 난데없이 “남극 최초의 미스터리”라는 헤드카피가 박혀 있다. 하긴 최초겠지. 누가 굳이 거기까지 가서 미스터리를 하려고 했겠는가.
D-57분 표를 샀다. 여전히 ‘남극 미스터리’라는 대목은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는 상태다. 그런데 설마 그 미스터리라는 것이 ‘남극탐험에 나선 대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씩 미쳐가면서 서로를 죽인다…’ 뭐 이런 설정을 지칭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건 지난해에만 해도 <알포인트>가 한번 했던 얘기 아닌가.
D-18분 12초 전 회를 본 관객의 표정이 포스터 속 송강호 수염만큼이나 얼어붙어 있다. 불길한 조짐. 하지만 희망을 버릴 순 없다. 이 시점에서는 오로지 앞으로 나가는 길뿐이다
[투덜군 투덜양] 저 멀리 이해불능점을 향하여, <남극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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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씨네21> 홈페이지에 가장 큰 변화는 블로그를 만든 것이다. 인터넷 소식에 둔감한 나는 온라인팀 배성준 팀장이 블로그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필요하면 하죠, 뭐, 정도였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덧글을 달아가며 교류한다는 게 처음엔 상상이 잘 안 됐다. 돈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어, 싶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난 요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씨네21>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블로그부터 살펴본다. 하나하나 덧글을 달 만큼 부지런하진 않지만 블로그에 올린 글과 사진들을 보는 게 소소한 즐거움이 돼버렸다. 독자엽서만으론 알 수 없던 독자들의 모습을 아주 가깝게 들여다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씨네21 블로그에 몇몇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김혜리, 이종도, 손홍주, 오계옥, 백은하 등 기자나 통신원의 블로그도 인기지만 블로그 개설 전까지 전혀 몰랐던 독자들의 블로그 가운데 매일
[편집장이 독자에게] 웰컴 투 씨네21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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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영웅들>을 제작했던 로리마사는 영화 개봉 뒤 파산했고, 이후 영화의 판권은 MGM과 워너브러더스로 옮겨간다. 워너브러더스의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지옥의 영웅들>의 필름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영화평론가 리처드 시클이었다. 새뮤얼 풀러가 살아 있을 때 그로부터 복원판에 대한 염원을 들었던 시클은 워너브러더스와 기술진의 도움을 얻어 <지옥의 영웅들: 복원판>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옥의 영웅들: 복원판>은 2004년 칸영화제의 ‘칸 클래식’ 부문 등에 공개되면서 진정한 걸작으로 재평가받게 된다. 노병과 네명의 신병이 전장에서 살아남은 것처럼 영화도 20년의 세월을 이겨낸 순간이었다. 오리지널 각본에 있었던 ‘이것은 실제 죽음에 근거한 허구적인 삶이다’라는 문구와 붉은색이 또렷이 입혀진 1사단 마크가 등장하는 복원판은 감독이 원래 의도했던 3시간에서 4시간에 이르는 판본은 아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필름을 가지고 풀러의 원 의도에
[DVD vs DVD] 50여분 추가, 20년 만의 화려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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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놀라웠던 것은,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골똘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관람 이후에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첫 장면이 주인공의 뒤통수부터 시작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화면을 가리거나 접어버리기 일쑤인 이 영화에 대해 윤종찬 감독은 ‘상식적이거나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 싫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선영(장진영)이 그간 폭력을 행사해온 남편을 죽이는 장면을 생략하고 곧바로 암매장으로 넘어간 것도 설명보다는 상황과 영상만을 제시해도 얼마든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실제로 이 장면은 초기 편집본에는 있었지만 시사회 뒤 피드백에 의해 삭제되었다).
<소름>은 한번의 감상만으로 쉽게 파악이 가능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친절하거나 편안하지 않은 점이야말로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이 아닐까 싶다. 많이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이 그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갈 수 있고, 그들 각자의
[코멘터리] 컷과 컷 사이 켜켜이 쌓여 있는 속살을 벗긴다, <소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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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특수경찰 출신의 미르코 크로캅은 왼발 하이킥의 달인. 프라이드 FC 경기 네 번째 주인공으로 나온 크로캅의 명승부 모음은 총 12경기를 수록했다. 미끈한 외모와 깨끗한 경기 매너, 폭발적인 하이킥으로 상대를 침몰시키는 그의 경기는 웬만한 무술영화 몇 편을 보는 것보다 더 박진감 넘치며 재미있다. 다섯 번째 주인공은 일본이 자랑하는 격투가 사쿠라바 가즈시의 경기 모음. 이번 타이틀은 두 선수를 하나의 박스로 구성했다. 먼저 나온 Vol. 1, 2, 3까지 구매를 하면 부록으로 최무배 선수 경기 모음 디스크를 제공한다.
왼발 하이킥의 박력, <프라이드 FC Vol.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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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검객 아즈미.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초를 다 겪은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 전편에서 수백 명의 사무라이를 베고 또 베며 화면을 피로 물들였던 그녀. <펑성 가메라> 시리즈의 가네코 슈스케가 메가폰을 잡은 속편에서는 피를 뿌리는 빈도가 적어지긴 했지만, 아즈미는 여전히 검객으로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끊임없이 살인을 해야 하는 잔혹한 운명의 덫에서 내면적 성장을 꾀하는 그녀. 철저한 활극인 전작과 달리 드라마에 좀더 무게를 둔 것이 특징. 사운드가 뛰어나지만 부가영상은 부실하다.
내적으로 성장한 소녀검객, <소녀검객 아즈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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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세 시간에 육박하는 대작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점령했던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때문에 내레이션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중요한 사건에만 드라마를 할애한다. 박력 넘치는 전투장면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알렉산더와 그 주변 인물들과의 갈등 묘사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올리버 스톤의 열성적인 음성 해설을 들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화질과 음향은 우수하며, 코끼리 전투에서의 효과음이 탁월하다. 하지만 컬렉터 에디션치고는 부록 구성이 만족스럽진 않다.
알렉산더의 고뇌와 야망, <알렉산더 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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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미국의 원자력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일본 사세보항에 정박하려 하자 전학련 등 4만명의 시위대가 집결, 저항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사세보항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69>는 풋풋한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 녀석들, 혁명이 뭔지 모른다(나도 모른다). 그러나 녀석들, 혁명을 꾀한다. 뛰어다니고 농을 걸고 장난치는 그들에겐 혁명도 유희다. 희망과 분노를 품고 모든 권위에 도전하는 게 혁명이라면 선생의 뒤통수를 치고, 우중충한 집단주의에 불꽃을 던지며, 자유의 축제를 스스로 여는 그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듯 모두들 유성기판 위에서 맴도는 존재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어느새인가 중심부로 다가가고 있었다. 1969년에 태어나지도 않은 감독과 각본가, 배우들이 만든 <69>는 회고 취향의 <몽상가들>에 침을 뱉는다. 그들은 혁명과 꿈을 자기들의 방식으로 창조했으며, 1969년은 경쾌하고 역동적인 시간으로 새
녀석들의 상상력이 즐겁다, <69 식스티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