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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서 잠든 애완동물의 몸을 손바닥 가득 쓰다듬어본 사람은 안다. 드넓은 우주 한복판에서 엄청난 인연으로 마주한 이 생명체가 나를 온전히 믿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감동을. 장 그르니에는 자신의 고양이 물루가 “잠깰 때마다 세계와 나 사이에 다시 살아나는 저 거리감을 지워준다”고 표현한 바 있다. 세상살이가 한없이 막막한 순간, 뜻밖에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 반드시 인간일 필요는 없다. 대문을 여는 순간 나를 위해 달려온 강아지가 보여주는 반가운 몸짓이 사뭇 눈물겨울 때가 있다. 무심하게 곁을 지키던 고양이가 모르는 척 따스한 앞발을 내 손에 얹어주면, 문득 행복해지곤 한다. 그것은 이 진중한 친구들이, 더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분양숍과 병원, 스튜디오와 장례업체, 서로 다른 네 가지 장소에서 인사를 건네는 친구들을 만났다. 물론 모든 애완동물 친구들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관건은 우리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달려 있을 뿐, 정답은
분양숍부터 장례식장까지, 애완동물 관련 업체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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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그런 머리와 몸통, 띠리릭거리는 독특한 음성, 실수도 가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만 보여주는 멋진 활약. 루크도 좋고 아나킨도 좋지만, R2-D2야말로 명실공히 <스타워즈> 시리즈의 진정한 주인공이다. R2는 C-3PO와 함께 <스타워즈> 시리즈의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 똑 부러지는 드로이드로만 알려진 그의 진정한 모습이 궁금한 사람은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DVD에 실린 다큐멘터리를 보라. 원래 웹 다큐멘터리인 <R2-D2: 반구형 머리 아래(Beneath the Dome)>가 그것으로, 영국 출신으로 풍부한 무대 경험 뒤에 할리우드로 진출한 ‘배우’로서의 R2를 만날 수 있다.
그와 숙명적 관계가 된 편집자 벤 버트와 조지 루카스, 내털리 포트먼 등 <스타워즈>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의 솔직담백한 평가는 경청할 만하다. 특히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R2를 <대부>에 출연시키려 했다든가, <인디아
[서플먼트] 할리우드로 진출한 스타워즈의 진정한 스타 R2-D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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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죄는 사랑에 빠졌다는 것. 그녀는 떠나버린 연인 때문에 미쳐버렸고, 그녀는 첫눈에 반한 남자에게 모든 걸 바쳤으며, 또 다른 그녀는 사랑의 교만에 빠졌다. 그리고 세 여자는 편지를 쓴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확인과 고백과 한숨이었다. 그녀는 왜 남자에게 여섯발의 총알을 쏘았을까? 나를 평생 사랑했다는, 그러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그녀는 대체 누구일까? 그녀는 피크닉에 나선 세 부인 중 누구의 남편과 마을을 떠났을까? 이렇게 미스터리로 시작하는 <편지>, <모르는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세 부인에게 온 편지>는 결국 희생자로 남은 세 여자의 비가가 되고 만다.
베티 데이비스는 서머싯 몸의 소설과 인연이 깊다. <인간의 굴레>로 스타덤에 올랐던 그녀는 <편지>에서 몸과 다시 만났다. 말레이연방의 이국적 분위기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과 서늘한 복수의 이야기 <편지>의 결말은 원작과 다른데, 달빛 아래 단죄의
[DVD vs DVD] 세 여인의 눈물로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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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 레빈 소설의 스멀거리는 공포는 예기하지 못한 곳에서 벌어진다. <죽음의 키스> <악마의 씨> <브라질에서 온 소년> 같은 작품은 시대의 분위기를 곧잘 잡아내고 있어 발표에 연이어 영화로 제작되곤 했다. 1960년대 후반에 밀어닥친 페미니즘의 물결을 반영한 소설 <스텝포드 와이프>도 1975년에 이미 브라이언 포브스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21세기에 다시 등장한 <스텝포드 와이프>에서 마을의 지배자는 디즈니사 출신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 출신으로, 사진을 찍던 여주인공은 거대 방송사를 경영하는 슈퍼우먼으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은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색하다. 도대체 지금 능력있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그래서 아내를 부엌데기로 가두고 싶은 남자가 얼마나 되겠냔 말이다. 게다가 지적이고 독립적이었던 여주인공을 꼭 그렇게 오만하고 공격적인데다 자기밖에 모르는 모습으로 바꿔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하긴
프랭크 오즈가 니콜을 칭찬한 이유, <스텝포드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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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전엔터테인먼트에서 오는 4월 중 한국 최초의 본격 트레인 호러 영화 를 출시한다.
는 의 김동빈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신영, 이동규 등 차세대 젊은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 특히 드라마 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송일국의 영화 데뷔작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호러 영화로서 기대치를 밑도는 평가를 받았다.
DVD의 구체적인 스펙은 아직 미정이며, 아이비전의 관계자는 김동빈 감독과 송일국이 참여하는 음성해설 녹음을 추진 중이나 성사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본격 트레인 호러 <레드아이> 4월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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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성룡의 영화들을 차례로 출시하고 있는 스펙트럼에서 오는 3월 25일 성룡의 또 다른 대표작 와 를 출시한다.
성룡이 감독하고 알람 탐, 관지림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는 ‘인디아나 존스’ 식의 모험담을 접목시킨 액션영화로 후속편까지 나올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 디지털로 리마스터링된 2.35:1 아나모픽 영상을 수록했으며, 성룡의 코믹 연기를 모은 영상 모음이 부록으로 담겨있다.
명절 영화로 우리에게 친숙한 는 성룡, 원표, 홍금보 트리오의 연기 앙상블이 일품인 코믹 액션물. 부록으로는 홍금보 인터뷰를 수록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스페인 출신의 미녀 배우 로라 포너가 출연하고 있는데, 그녀의 팬들에게 더욱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싶다.
스펙트럼, 성룡 대표작 두 편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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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여, 너는 정녕 죽으리라” 또는,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을” 같은 시구는 우리를 죽음과 대면시킨다. 이 시를 쓴 사람은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이고, 그의 시세계를 ‘위트’로 요약한 사람은 병상에 쓰러져 있는 비비안(윤석화)이다. 먼지 묻은 서가에만 파묻혀 일생을 보낸 여교수는 난소암 4기 판정을 받고 난 다음에야 자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누구의 죽음이든 그것은 우리를 위축시키고 우리로 하여금 정직하게 삶의 문제를 응시하게 만든다. 그 점에서 연극 <위트>(마거릿 에드슨 작, 김운기 연출)는 보기 드문 죽음의 연극이고 형이상학의 연극이다. 90분간 우리의 예고된 죽음(누구에게나 꼭 전달되는 편지의 내용이 바로 이것 아닌가)을 대신 죽어주는 윤석화를 향해 우리는 신체이탈에 맞먹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이 연극은 미리 한번 죽어보는 값지고 진지한 기회가 된다.
50살까
죽음의 대리체험, <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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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후 재즈와 록은 마일스 데이비스(밴드)와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런 표현은 물론 ‘고의적인 과장’이다. 하지만 재즈에 록을 녹여내고 싶어한 마일스 데이비스와 록에 재즈의 어법을 담아내고 싶어한 지미 헨드릭스가 1960년대 말 서로를 알아보고 만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함께 연주하고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재즈와 록의 나이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가정을 하다보면 새삼 그들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에서 묘목으로 자란 뒤 독립해 1970년대를 풍미한 다른 연주인들과 마찬가지로, 기타리스트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도 재즈 록 퓨전 스타일의 뿌리가 된 마일스 데이비스의 <Bitches Brew>(1969)에 참여한 뒤 1971년 자신의 밴드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Mahavishunu Orchestra)를 결성하였다. 이 밴드가 웨더 리포트, 리턴 투 포에버와 함께 ‘퓨전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재즈 록 퓨전의 걸작, 마하비슈누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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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 시나리오 작가가 적시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정도의 일이다. 1980년대 만화방 만화에 대량 생산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작화와 스토리의 분업이 시도됐고, 유명한 만화방 히트작에는 이름 모를 시나리오 작가가 숨어 있었다. 그들은 90년대가 되어 김세영, 야설록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기 시작했고, 야설록처럼 시나리오 작가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역전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시나리오는 만화에 있어 부가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좀더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하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만화의 완성도에 있어 시나리오가 차지하는 부분은 30% 정도라고 보면 된다(어느 유명 작가의 인터뷰에서 본 내용이다). 그렇게 시나리오는 만화의 한 부분으로만 조립되어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야기 만화에서 독자들에게 공명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등장인물의 감정을 감염시키는 것이, 한회 한회 독자를 붙들어놓아야 하는 서스펜스를 구조화하는 것이 ‘시나리오의 힘’이라는 사실은 무
시나리오의 힘, 윤인완의 프로젝트 단편집 <데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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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트럼에서 출시하는 의 메뉴 화면들이다. 총 6장의 DVD 중에서, PC용 WMD-HD 파일을 수록한 5번째 디스크와 OST를 수록한 6번째 디스크는 제외했다. 출시 예정일은 오는 3월 25일.
<여고괴담 : 두번째 이야기 UE>의 메뉴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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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근교에 있는 드레스덴은 매우 아름다운 도시다. 내 경우에는 거기에 가서야 비로소 독일도 유럽의 일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60년 전 그곳에는 무서운 일이 있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가 초토화되고, 소이탄이 만들어낸 불바다 속에서 수만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사실 드레스덴은 군사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도시였다. 독일이 런던을 공습한 것에 대한 다분히 감정적인 보복으로 바로크풍의 건물로 가득 찬 이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드레스덴 폭격 60주년 사진전을 보러온 이들 중에는 당시의 공습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민간인 살상의 일차적 책임이 연합국에 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부분 “전쟁은 우리가 시작하지 않았냐?”고 대답한다. 비록 연합군의 과잉행위로 고통을 받았지만, 먼저 다른 나라의 도시에 폭탄을 퍼부어 고통을 안겨준 것은 자신들이니 연합군을 탓할 주제가 못 된다는 것이다. 희생자는 추모하나, 먼저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맞아도 가학사관 할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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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컴퓨터 켜는 일이다. 웅웅, 부팅되는 소리를 듣고 타다닥, 바탕화면에 아이콘들이 뜨는 걸 본다. 그리고 아웃룩을 연다. 거짓말 않고 100개 넘는 새 메일이 받은 편지함에 들어와 있다. 아련한 옛시절의 친구가 보낸 메일은커녕 내 기사 엉망이라고 시비거는 독자 메일도 없다. ‘신용불량에서 탈출하세요~ 빚 독촉 이젠 해방~ 개인파산신청’, ‘일반칫솔 No! 전동칫솔 6개가 9900원???’, ‘컴컴한 새벽 이런 게 필요하시죠?’ 더 볼 것도 없이 왼손으로 쉬프트키, 오른손으로 마우스 잡고 한번에 다 지우지만, 어쩌다 시간내서 자세히 보면 신기하고 놀랍다. 매번 다른 제목들, 매번 다른 보낸이의 이름들. 내 옆 책상 쓰는 동료 이름은 어떻게 알았는지 ‘정한석4’, ‘정한석12’가 보낸 메일도 있다. 하루종일 아웃룩을 열어두면 이런 스팸메일이 30분에 열댓개씩 꾸준히 들어온다.
아주 간혹 궁금할 때가 있다. 대체 저런 메일은 누가 보내는 걸까. 내
[오픈칼럼] 안녕하세요? 스팸메일 보내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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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공력을 드러냄이 전혀 없으면서도 드높은 경지를 이루어내는 자야말로 진정한 고수라 한다면,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단연 고수의 영화다. 애써 공을 들인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어느 구석 하나 허투로 내버려두지 않는 자를 장인이라고 한다면,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솜씨 좋은 장인의 영화다.
멀리는 <알렉산더>, 가깝게는 <에이비에이터> 그리고 <여자, 정혜>에 이르기까지 ‘내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성의를 보였는데도 상 안 주면, 그건 니가 나쁜 놈인 거’를 탁 까놓고 역설하고 있는 각종 영화제용 영화들이 국내외 각계각층에서 양산되고 있는 작금, 자신의 범상찮은 재능을 오로지 스크린 안쪽으로만 조용히 집중시키고 있는 이 영화는, 그렇기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나, 털어 투덜거리 하나 안 나오는 영화 없다고, 이 영화에도 심각한 문제점이 하나 있는 바, 그것은 이 영화가 도무지 관객을 배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투덜군 투덜양] 울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네버랜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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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일, 휴일이라 회사가 썰렁하다. 주초에 휴일 있다고 마감을 하루 늦춰도 되는 게 아닌지라 기자들은 전부 나와 기사를 쓰고 있지만, 다른 부서엔 출근한 사람이 거의 없다. 인구밀도가 줄어서 숨쉬기는 편하지만 텅 빈 공간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남들 노는 날 일하는 것도 억울한데 휴일이라 난방마저 끊긴 탓이다. 명랑만화처럼 기자들 얼굴에 빗금이 그어져 있는 듯한 착시현상이 일어난다. 사무실에 앉아 외투를 걸친 채 일하는 기자들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떠오르진 않는다. 춥다고 투덜대는 기자들을 피해 약속이 있는 척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실은 추워서 도망가는 거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으면서.
문득 여기저기서 봄소식이 올라오는 3월이 진짜 겨울인 1, 2월보다 춥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꽃샘추위가 아니라도 얇게 입고 나섰다가 낭패 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1, 2월엔 ‘그래, 겨울이니까’ 싶어서 단단히 대비해 옷을 입고 난방이 끊길 리도 없지
[편집장이 독자에게] 꽃샘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