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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잘 돌아가는 감독답게, 스파이크 리의 영화치고 따분한 장면이 별로 없지만, 그런 만큼 앞뒤가 맞는 작품 또한 별로 없다. 디테일은 물샐틈 없는데, 구조는 기우뚱거린다. 아이디어는 엄청 좋은데 뒷감당이 안 되는 이런 측면에서, 할리우드 감독 중에 스파이크 리 따라올 사람이 없다.
비록 못지않게 삐그덕거리기는 하지만, 그의 초기작들은, 심지어 <말콤X>조차도, 새로운 정치적 수사학을 기약하는 바가 있었다. 사회적 만족보다는 사회적 갈등에 기반한 과시적 교훈주의라고나 할까. 그러나 <브룩클린의 아이들>(Crooklyn) 이후, 리의 영화는 브레인스토밍 결과 탄생한 아류작들 냄새를 풍겼다. 저예산 소품이건 광활한 도시의 풍경이건간에, 붓은 내달리되 형상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일필휘지의 화폭이었다. 예외없이 꼭 봐둘 만한 영화이긴 했으되,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성취를 거둬낸 영화들은 또한 결코 아니었다.
7월4일 미국 독립기념일 개봉에 맞춰 서둘러 제작된
세 마리 토끼를 쫓다 망한 스파이크 리, <썸머 오브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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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해 열린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엇보다도 의외의 선택은 단연 힐라리 스왱크의 여우주연상 수상일 것이다.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성향에 비추어볼 때, <소년은 울지 않는다>(킴벌리 피어스)에서 남장여자를 연기한 배우의 수상 가능성은 거의 전무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 최근 영국의 영화잡지인 <사이트 앤 사운드>는 이 영화와 <리플리>(앤서니 밍겔라), <존 말코비치 되기>(스파이크 존스)를 묶어서 뉴 퀴어영화(New Queer Cinema)와의 관련성 속에서 논평하기도 했다. 이런 최근의 흐름들은 마치 ‘퀴어’라는 새로운 정치학 또는 담론이 미국의 독립영화는 물론이고 주류영화에서조차 하나의 상업성 있는 소잿거리나 두드러진 경향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레즈비언과 게이영화와 퀴어영화간의 구별도 분명하게 이해되지 못한 채 그 이름들이 소통되는 우리 현실 속에서 미국영화의 이런 흐름과 변화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또 이 영화들은
주류퀴어, 그 모순어법, 뉴퀴어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리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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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드디어 봄이 왔다. 봄비도 내렸고 조금만 있으면 꽃들도 사방천지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하지만 우울하다. 변화없는 일상의 초라함이 풍성한 자연 앞에 더욱 극명해지는 것도 ‘우울’하고, 유행따라 시작한 주식이 하한가 치는 것도 ‘우울’하다. 이도저도 모르는 철부지였다면 꽃구경에 신났을 텐데, 세상만사 쓴맛을 조금 알아버린 어른들은 그래서 더욱 ‘우울’하다.
30대 사나이들의 솔직한 우정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는 이제 겨우 8회분을 방영했지만 30대 이상의 성인이라는 분명한 타깃과 11시라는 시간대 등 틈새 공략으로 평균 시청률 20%, 점유율 33%의(AC닐슨 집계)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었다. 첫 녹화 날부터 오랫동안 일했던 팀 같았다는 천운의 팀워크와 <남자 셋 여자 셋>을 이끈 송창의 PD의 연출, 생활 자체가 ‘코미디’인 정웅인, 박상면, 윤다훈의 입담은 앞으로의 상한가도 점쳐볼 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세친구>의 미덕은
단기간에 인기 시트콤으로 부상한 MBC 주간 시트콤 <세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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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이 스크린의 평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환영을 주는 3-D 테크놀로지는, 1897년에까지 거슬러갈 만큼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 혁신의 절정기는 주지하다시피 50년대 초·중반이었다. 그것은 관객 수가 줄고 텔레비전의 위협이 등장하던 당시 관객을 영화관으로 다시 끌어 모으려는, 일종의 이미지 향상의 시도였던 것이다. 모든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손을 댔던 이 ‘획기적인’ 테크놀로지는 그러나 단지 진기한 볼거리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그 유행은 대략 52년에서 54년까지 3년도 채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쳤다. 3-D라는 이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과거의 역사 속에서나 언급되는 범작들이었지만, 아마도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 대해서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장의 손길은 테크놀로지의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는 것일까? 히치콕의 이 영화는 당시 가장 성공을 거둔 3-D 영화 가운데 한편일 뿐만 아니라, 또한
히치콕 전성기를 열다, 앨프리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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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Duel of the Fates!
<시스의 복수>에는 프리퀄 삼부작, 아니 <스타워즈> 6부작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분량의 광선검 대결 장면이 등장한다. 이번 편의 광선검 대결 장면은 전개 스피드나 박진감, 배우들의 칼놀림 솜씨 등 모든 면에서 전작들과의 비교를 불허한다. 모든 광선검 대결 장면은 스토리보드 및 애니매틱스(사전 시각화 작업) 등을 통한 치밀한 사전구상 과정을 거쳐 연출되었다. 이번 편의 광선검 대결 장면은 불꽃 튀는 검술 대결과 더불어 이전 에피소드들을 장식했던 각종 ‘포스 묘기’들이 함께 펼쳐지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포스 버라이어티 쇼’라 할만 하다.
배우들의 광선검 대결 장면을 지도한 스턴트 코디네이터 닉 길라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검술 실력을 이렇게 평가한다. “다스 시디어스(팰퍼틴)의 검술 수준은 10점 만점에 9점이다. 오비완은 8점이며 아나킨은 9점이다. 또한 메이스 윈두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모든 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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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Andrzej Wajda)는 소수의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겠다. 그러나 전후 폴란드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한 ‘노동자 영웅’의 부상과 몰락을 통해 현실 사회주의가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버렸는가를 그린 <대리석 인간>(cz owiek z marmuru)이나 연대노조 운동을 그린 <철의 인간>(cz owiek z elaza)은 실로 리얼리즘영화의 압권이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당통>이 소개됐다는 데, 작은 안도감을 느낀다.
바이다의 영화 <당통>이 지닌 매력은 당통과 로베스피에르로 대변되는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점이다. 바이다는 몇년 전 폴란드 신문 <가제타 뷔보르챠>와의 인터뷰에서, 연대노조운동에 참여하면서 부딪쳤던 운동 지도부의 다양한 성격들과 그에 대한 운동적 반성이 아닌 인간적 반성이 이
인간보다 혁명보다 인간! <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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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고도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스타, 섹스와 혼, 에로티시즘과 정신이었던 스타, 모든 것을 소유한 듯 보였던 스타(에드가 모렝).” 입술 위에 찍힌 점마저 시대의 기호였던 스타였지만 <노마진 앤 마릴린>의 마릴린 먼로는 처참하기만 하다. 그녀는 배우였지만 연기를 고통스러워했고 무진장한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한순간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무명 시절 그녀는 성공을 꿈꿨지만, “배우가 되려면 잘나가는 놈하고 배를 맞춰야 해”라며 천연덕스럽게 자기의 욕망을 밀고 갔지만, 막상 성공이 다가오자 감당을 못한다. 술과 진정제에 의지해 파멸의 순간을 미뤄온 그녀는 끝내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되려면 뭐가 필요하죠?”
<노마진 앤 마릴린>은 스타의 아우라가 거둬진 ‘인간’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를 냉정한 시선으로 되돌아본다. 그녀의 육체를 팔아먹으면서도 어떤 감독도 그녀의 연기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혼은 늘 실패였고 어머니의 자리는 박탈당한다. 얼굴이 눈물로 범벅
‘인간’ 마릴린 먼로의 일대기, <노마진 앤 마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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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한국의 관객들도 드디어 ‘<스타워즈> 신화의 마지막 장’을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영화사상 최초로 ‘결말이 공개된’ 블록버스터물인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의 개봉을 앞두고 전국의 ‘스타워즈 열혈 팬’들은 그야말로 ‘축제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지난 19일, 미국에서 개봉된 <시스의 복수>는 할리우드 영화사상 최고의 개봉일 수입을 올리며 거대한 흥행 행진을 시작했다. 특히 이번 편은 앞선 두 편의 프리퀄과는 달리 비평적으로도 대단한 찬사를 받고 있어, 이미 열혈 팬들의 기대치는 ‘측정불능’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여기 <시스의 복수>를 더욱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흥미진진한 ‘뒷이야기들’을 독점 소개한다.
스포일러 경고: 본문 중에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줄거리를 절대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영화 감상 후에 이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1. “베이더에게 산소 호흡기를
<스타워즈 에피소드 3>의 모든 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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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감독론 요지 - 노예에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감독들 혹은 영화들
‘노예에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는 감독들 혹은 영화들’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루이스 브뉘엘의 영화에서 제시되는 환상과 로베르 브레송, 잉마르 베리만의 작품에 나타나는 실존적 공허함에 대한 의미를 규명하고, 이를 주체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자 하였다(이들 감독들의 작품들에 더하여 <카게무샤> <메멘토> <거미숲> 등의 개별 작품이 포함된다).
먼저 브뉘엘의 영화에서 내가 주목했던 것은 내러티브의 구조였다. 브뉘엘은 일반적인 선형적 내러티브에서 철저하게 감추려하고 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보이는 손’으로 무대화한다. 이러한 서사적 특징은 상징계의 주체가 입각과 실각을 반복하는 기표 위에서 떠돌아야 한다는 사실을 ‘에피소드의 연쇄’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영화적 주제를 내러티브의 공식으로 성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브뉘엘은
제1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5] - 감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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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70s Show>의 소심남 토퍼 그레이스가 <스파이더맨3>에 출연한다고 콜럼비아 픽처스가 5월19일 발표했다. 토퍼 그레이스는 폭스TV 인기시트콤<70s Show>로 데뷔해 주인공 에릭 포먼역으로 인기를 얻었고 폴 웨이츠 감독의 <인 굿 컴퍼니>에 출연하는 등 영화 경력을 이제 막 쌓기 시작했다. 이번 <스파이더맨3>에서는 토비 맥과이어, 커스틴 던스트, 제임스 프랑코, 토머스 헤이든 처치 등과 함께 연기력을 겨루게 된다. <스파이더맨>시리즈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프랜차이즈 중의 하나로,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레이스에게는 영광인 셈이다.
감독 샘 레이미는 보도자료에서 “토퍼 그레이스는 매우 재능있는 연기자다. 우리가 만들어낸 복잡한 캐릭터에 완벽하게 들어맞을 것이다”라고 캐스팅의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맡을 역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지난번 토머스 헤이든 처치를 악당역에 캐스
<70s Show>토퍼 그레이스, <스파이더맨3>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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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표정에 담긴 모든 감정의 가능성
<아들> 안시환 작품비평 전문
다르덴 형제(Jean-Pierre Dardenne, Luc Dardenne)의 <아들>(Le Fils)은 상투적 도식이 찢겨진 ‘간격’(interval) 속에 현실을 돌출시키고 이를 통해 영화적 사유가 가능한지를 묻는 작품이다. 다르덴 형제는 이미 <로제타>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로하는 태도를 취하면서도 그 대상을 시각적으로 물신화하는 카메라의 능력과 삶의 고통마저도 엿보려는 관객의 관음증적 시선에 윤리적 질문을 담으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자살을 위해 가스통을 들고 돌아오는 로제타를 단 한번의 커팅도 없이 롱테이크로 담아낸 영화의 엔딩은 관객으로 하여금 못이 되어 자신의 눈으로 되돌아온 시선을 느끼게 함으로써 로제타의 고통을 타자의 것이 아닌 나의 체험으로 변형시킨다.
<아들>에서 청소년 재활센터에서 목공 일을 가르치는 ‘올리비에’에게 프란시스라는 소년이 배정된다. 다르덴
제1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4] - 안시환 작품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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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 그대여 깨어 있으라!”
감독론 요지 - 박찬욱 복수극에 나타난 ‘고통받는 신체’와 ‘훼손된 언어’에 관하여
박찬욱은 일련의 복수극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컷>을 통해 현대 예술의 신비화 전략의 한 방편인 ‘침묵’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인 대사는 절제되어 있는데, 이것은 일상적인 대사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 양식적 스타일에 대한 거부감과 실재의 언어적 왜곡에 대한 강한 반발 즉, 말을 통해서는 전해질 수 없는 진실을 전달하고자 하는 감독의 욕망을 드러낸다. 세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말하지 못하는 상태 혹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것은 언어 파괴의 과정이 바로 박찬욱 작품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복수’의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 복수극들에서 특징적인 것은 복수를 감행하는 이의 정신적인 고통이 복수심을 불러일으킨 이의
제1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3] - 김지미 작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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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다는 것의 미혹, 그뒤에 가려진 타자의 욕망
<클로저> 김지미 작품비평 전문
마이크 니콜스의 <클로저>(Closer)를 보고 있으면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hka)가 그린 티체(Tietze) 부부의 초상화가 떠오른다. 코코슈카는 25살의 젊은 예술가인 티체 부부의 결혼 기념 초상화를 그리면서, 그 둘을 따로따로 스케치하여 하나의 화면 안에 배치했다. 그려지는 동안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있던 그 부부는 하나의 화폭 위에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그들의 엇갈리는 행동과 시선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된 그들이 여전히 개인적인 공간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손인데, 분명히 서로를 향해 내뻗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개의 손은 결코 만나지 않는다. 이 네개의 손들처럼 <클로저>의 네명의 주인공들, 앨리스(혹은 제인), 대니얼, 애나 그리고 래리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다. 4년 동안을 사귀고 같이 살고 섹스를 하고
제1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2] - 김지미 작품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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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평론이여, 만개하라
영화비평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된 것 같다. 진지한 영화평이 관객의 선택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인터넷의 놀라운 속도전이 전문가의 평가를 무위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소리다. 그러나 이런 말은 영화평이 권력에서 멀어졌다는 뜻일 뿐 영화평이 무용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영화평은 그만큼 더 자유로워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올해 공모에 제출한 89편의 영화평에서도 그런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교과서에 의존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각은 영화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는 치열함을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란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제출된 영화평 가운데 상당수에서 치열함을 볼 수 없었던 것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공모에서 예심을 거쳐 최종 검토한 평론은 4편이었다. 임상수 감독론을 쓴 고대권씨는 독창적 시각에서 임상수 영화의 미덕을 논했으나 신선한 시각에 비해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다소 부족해 보였다. 이론비평으로 ‘공포영화
제10회 <씨네21> 영화평론상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