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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만 832쪽, 해설을 포함하면 847쪽이 되는 엄청난 두께의 만화가 찾아왔다. 백화사전쯤 되는 위용을 자랑하니, 책꽂이의 한 자락을 차지해도 폼이 난다. 오랜 시간 작업해온 오세영의 단편이 한몫에 묶인 것이다. 예전에 출간된 책이 3권 분량이었으니, 그만큼이 오롯이 묶였다. 우선 한권에 여러 이야기를 한꺼번에 보는 마음은 흐뭇하다.
이번에 묶인 단편은 거의 해방 전후 소설가들(북한 작가 림종상의 <쇠찌르레기>만 1990년 작품이다)의 단편을 만화로 옮긴 것이어서, 전근대와 근대가 만나는 미묘한 풍광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일면이 흥미롭다. 보통 원작을 만화로 옮길 때, 이야기의 주요 맥락만 따라가고 세세한 묘사는 생략하게 마련이다. 특히 어른을 위한 책이 어린이 책으로 번안될 경우 때에 따라 개작에 가까운 변화가 있기도 한다. 이럴 경우 원작에서 느끼는 품격 대신 줄거리만 남고, 만화는 시각적 이미지로 앙상해진 줄거리를 보충한다.
그러나 오세영의
소설에 숨을 불어넣는 만화, 오세영의 <한국단편소설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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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세계영화사>에 뒤이어 국내에 소개되는 <세계영화연구>는 아직 책을 펼쳐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킬 법도 하다. 따라서, 우선은 이것이 이른바 ‘월드 시네마’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것의 현황과 역사에 대한 것만은 아님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보다는, 원제가 <옥스퍼드 영화연구 입문>인 <세계영화연구>는 영화연구에로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통로들과 시각들을 제공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여기에는 영화 텍스트 분석, 영화이론, 할리우드영화, 영화사 등의 다양한 영역들에 걸친 80여개의 항목들이 리처드 다이어, 더들리 앤드루, 톰 거닝 같은 권위있는 필진들의 관여에 힘입어 체계를 갖춘 모양새로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다.
아무리 부피가 두텁더라도 그렇게 많은 내용들을 한권에 몰아넣은 책이 논제에 대해 상당한 깊이까지 다다르기가 어렵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당연히 <세계영화연구>는 본격적인 이론
영화 연구를 위한 충실한 가이드, <세계영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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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작가로 이름난 타무라 시게루의 작품으로, 지난해 출시되어 호평을 받았던 와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에메랄드 빛 유리바다 위에 사는 사람들이 6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고래의 도약을 지켜보는 모습을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20여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의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풍부한 서정성과 뛰어난 상상력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난 작품으로, DTS 사운드와 투니버스에서 방영된 우리말 더빙을 수록했다.
<고래의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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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계 역시 남성들의 철옹성이다. 여성은 늘 타자(他者)였고 ‘대상’이었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는 여성의 대두가 돋보인 분기점이었다. 여성 밴드는 물론 여성 멤버를 앞세운 록 밴드가 봇물처럼 쏟아졌고, 남성중심적 록신에 ‘여성 록’(women in rock)이란 화두가 이슈화되기도 했다. 앨라니스 모리셋처럼 강한 여성의 목소리를 설파하는 일군의 솔로 슈퍼스타의 등장이라든지, 록 스타 계보에 커트 코베인처럼 여성적인, 아니 최소한 마초적이지 않은 인물들이 등재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해둘 만하다.
이와 같은 측면을 대표하는 아티스트가 토리 에이모스이다. 이 싱어송라이터는 강간당한 경험을 다룬 <Me and a Gun>, 자위와 죄책감을 다룬 <Icicle> 등 종교적 성장배경과 성적 충동 사이의 갈등을 토로한 일련의 곡들로 1990년대 초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트라우마와 맞서면서 이를 자기 고백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목소리로 형상화한 그녀의 음악이 얼
무난함 아래 흐르는 도발, 토리 에이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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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트라볼타의 신작 이 미국에서 6월 7일 DVD로 출시된다. 의 F. 게리 그레이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1995년 공개된 히트작 의 속편으로, 음악 비즈니스계에 진출한 갱스터 칠리 파머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다.
MGM/UA에서 정가 27.98달러에 출시될 DVD는 1.85대 1 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 영상과 돌비 디지털 5.1 사운드가 제공되며, 메이킹 다큐멘터리, 삭제 장면, NG 컷 모음, 뮤직 비디오, 예고편 등의 부록이 수록된다. 국내에서는 4월 8일 극장 개봉되며, DVD는 20세기 폭스에서 6월에 출시할 예정이다.
존 트라볼타 신작 <쿨!> 6월 DVD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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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나름의 크기가 있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통상 ‘그릇’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릇의 크기가 그것이 담을 수 있는 용량으로 표시되듯이, 사람의 크기 또한 그것이 담을 수 있는 용량으로 표현된다. 그 크기는 그가 담아낼 수 있는 이질성의 폭에 의해 정의된다. 비슷한 종류의 사람들만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아도 그 그릇이 크다고 말할 순 없다. 반면 몇 사람 모으지 못했지만, 그 모인 사람들의 이질성이 크다면, 그 그릇의 잠재력은 아주 큰 것임이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그릇이 큰 경우는 아마 자아가 사라져버린 사람, 그래서 어느 것도 담을 수 있게 된 사람일 게다. 비움의 공덕, 그것은 비움으로써 세상 전체를 담을 수 있도록 커지는 것이다.
비슷하게, 나라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릇의 크기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어떤 나라의 직접적인 영토가 그 나라의 크기를 결정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역시 그 나라가 싸안을 수 있는 이질성의 폭에 의해 그 나라의 스케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일본은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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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가랑비가 옅은 안개와 뒤섞여 내릴 때 불영사 초입에 들어섰다. 불영계곡의 아늑하고 멋진 경치 사이로 난 길은 신비롭기까지 해서 ‘내가 무릉도원을 다 가보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가만히 모습을 드러낸 사찰은 고즈넉하고 정갈하게 나를 맞아주었고 속으로 터져나오던 감탄은 절정을 맞았다. 강원도 울진을 지나 그냥 내키는 대로 차를 몰고 달리다가 만난 곳이었다. 그때 느낌이 너무 좋아 다음해 봄 지인들을 몰고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그때의 신비로움은 반복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다. 5월의 빛나는 파리를 처음 보고 ‘세상에나, 도시가 이럴 수 있구나’ 싶었다가 11월의 파리를 가봤더니 음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홍콩이 그랬고, 런던도 그랬다. 처음 본 감동이 두 번째로 이어진 적이 별로 없다. 그래서 10년 전 첫 휴가 때 갔던 보길도를 도저히 다시 찾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꿈같았던 그때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으니까. 따지고 보면 그들은 늘 그대로다. 다만 내 눈
[오픈칼럼] 보길도, 유물론, 영화 그리고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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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연출실험 류 감독이 느껴지더군”
“김 감독 손 거치면 폼도 미학이 되더라”
“스탭 한명이 몰래 <주먹이 운다> 필름 중간 부분의 한권을 훔칠까 말하니까 누가 그럼 더 재미있어질 거라고 하지 말자더군”(김지운) “우리는 <달콤한 인생> 필름에 ‘쉬’할 생각도 했어요. 그럼 색 변해서 때깔 더 좋아질 수 있으니까 안 하기로 했지”(류승완). 4월1일 나란히 개봉하는 두 영화의 감독이 만났다. 한국 장르영화를 대표하는 두 감독의 작품이 그것도 극장 비수기에 경쟁한다는 건 분명 부담이 큰 모험이다. 그러나 부담이나 경쟁심만 느끼기에 둘은 평소에도 서로의 영화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절친한 사이다. 두사람은 혹시나 상대방에게서 훈수 받은 장면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히면 어떡하냐는 엉뚱한 근심도 했다.
“감독보고 영화선택, 기분 좋아요”
류승완: 2000년에 <플란더스의 개>와 <반칙왕>이 같은 날 개봉했다던데, 봉준호 감독
'달콤한 인생' 김지운 '주먹이 운다' 류승완 ‘띄워주기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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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얘기다만, 우리가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98% 이상은 상업영화다. 돈 들인 만큼 거둬들이는 것을 그 태생적인 목표로 하고 있는 영화들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영화를 만들고 홍보하는 주최쪽에서 관객과의 기초적인 상도의를 지키고 있는지 여부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 점에서 필자는, <잠복근무>에 대해 상당히 문제있는 영화라는 소견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이 영화는 두 가지 중대한 기초 상거래 질서 교란 행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영화는, 헤드 카피를 “출동이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로 뽑을 만큼 김선아가 교복 입은 학생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컨셉은 미니스커트 교복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내고 있는 김선아를 대문짝만하게 박아놓은 포스터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나 문제는, 김선아가 고등학생 노릇을 하는 부분의 영화의 전반부뿐이라는 점이다. 즉 관객은 본의 아니게 고등학생이 돼서 그 생활에 적응하려고
[투덜군 투덜양] 공유의 정체가 뭐냐고,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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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한국영화와 한국축구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한국영화가 칸, 베를린,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하자 월드컵 4강의 환호가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은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다는 사실이 월드컵의 광기를 보는 듯했다. 물론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 같은 눈에 보이는 이벤트는 없었지만 무언가 열광할 만한 것을 찾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의 환호를 즐거운 기억으로 간직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실망도 빨리 하는 편이다. 월드컵 이후 한동안 한국대표팀의 경기에서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만, 베트남, 몰디브 등 월드컵 근처에도 못 가본 나라들한테 쩔쩔매는 경기를 하는 걸 보면서 복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래서는 내년 독일월드컵에 참가도 못하겠다, 싶었다. 그런 점에서 상당수 한국영화는 한국대표팀의 오만전을 연상케 한다. 문전처리 미숙, 골결정력 부족, 수비불안
[편집장이 독자에게] 한국영화와 한국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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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앞을 못 보는 캐롤(카메론 디아즈)은 자살한 한 여자의 인생을 설명하며 이와 같이 말한다. “하긴 누가 여자의 인생을 그렇게 진지하게 보겠어.” 영화 속 대사와는 반대로, 여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루어진 로드리고 가르시아의 은 평범한 여자들의 외로운 일상을 감성적으로 묘사해낸 인상적인 데뷔작이다.
1999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직접 쓴 시나리오를 통해 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한 이 영화는 글렌 클로즈, 카메론 디아즈, 홀리 헌터, 발레리아 골리노 등의 화려한 여성 배역진으로 더욱 유명하기도 하다. 이 영화를 완성해낸 또 하나의 일등공신이 눈빛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말하는 멋진 여배우들이라는 사실은 감독 자신도 의심치 않을 것이다.
DVD로는 언제나 시끌벅적한 서라운드 음향에 시원한 시네마스코프 화면이 제격이라는 사람들에겐 실례의 말이지만, 나는 과 같이 세밀하게 짜여진 드라마야말로 DVD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필름으로 영
강신우의 모래 속의 진주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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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파도의 주인 할매들, 정말 대~단한 카리스마를 뽐낸다. 서울에서 잘 난 척 깨나 하던 뺀질이 비리형사와, 한여름에도 가죽재킷차림으로 ‘가오’ 잡기에 여념 없는 날건달도 이 할매들 앞에서는 반항 한번 제대로 못하고 꼼짝없이 무임금 머슴으로 복무할 정도다. 지금껏 한국영화 속에 (가뭄에 콩 나듯) 등장했던 ‘할머니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는지를 떠올려 보니 이 마파도 할매들의 엽기성이 더욱 선명히 도드라진다.
그동안 영화에서 늙은 여자는 대개 주인공의 할머니거나 잘해봐야 어머니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영화 밖의 현실에서도 그렇다. 55살 이상 나이든 여성의 삶에 관심을 드리우는 시선이 대체 존재하기나 하던가? 나이든 여성들은 욕망의 주체는커녕 욕망의 대상조차 되어보지 못했다. 판에 끼워주기만 한다면 그림자나 배경으로도 감지덕지해야했다. 두어 해전, 온 국민을 눈물바다에 빠트렸던 <집으로>의 외할머니처럼 아주 가끔 영화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에도 ‘할머니’
[정이현의 해석남녀] <마파도>의 할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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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처음으로 극장 개봉과 텔레비전 방영을 동시에 시도하는 ‘KBS 프리미어’의 첫 영화 <신부와 편견>이 2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함과 아울러 이날 KBS 2TV ‘토요명화’를 통해 공중파를 탄다. <신부와 편견>은 <슈팅 라이크 베컴>을 만든 인도 출신의 영국 감독 거린다 차다가 인도를 배경으로 찍은 인도 영화풍의 ‘발리우드 뮤지컬’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각색해 부잣집의 두 딸이 부유한 인도인, 그리고 미국인 남자와 키워가는 사랑과 실랑이를 그린다. 심각한 대화를 하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수십명의 인물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인도식 뮤지컬의 즐거움을 흠뻑 맛볼 수 있는 작품으로 할리우드와 한국 상업영화를 집중적으로 틀어온 텔레비전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영화다. 한 영화당 일주일씩, 6주 동안 6편을 개봉하는 이 기획은 이처럼 할리우드의 손맛과는 다른 재미를 구비한 예술영화들로 짜여져 있다.
KBS-단성사 동시개봉 1호 <신부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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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달콤한 인생>의 시사회를 보고 나오면서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요새 한국 액션영화의 진짜 스타는 오달수야.” 오달수는 같은 날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에서 비중있는 조역을 맡은 배우다. 특히 <달콤한 인생>에서 그가 등장하는 길지 않은 장면은 매력이 넘친다. <올드보이>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그는 ‘장도리 들고 설치는 그 아저씨’였지만 이제 오달수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 것 같다.
탄탄한 연기력의 조역배우들의 영화를 받쳐주는 지지대로 기능한 지는 꽤 됐다.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 등 한때 이들이 없으면 영화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적지 않은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번쩍, 저 영화에서 번쩍하며 ‘조연 전문배우’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그런데 요사이 영화들을 보면 조연배우 전성시대도 조금씩 진화해 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조역=코믹 연기라는 등식이 가능할 정도로 영화의
[팝콘&콜라] 번쩍거리는 조연배우 그런데 왜 남자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