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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전>이 극장에 빠진 날
10년 전 홍상수 감독이 첫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세상에 던졌을 때, 사람들은 그가 남루한 일상과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을 유례없이 정밀하게 영화로 옮겨내는 감독이라고 규정할 뻔했다. 그러나 <강원도의 힘>이 나오고 <오! 수정>이 뒤를 따르고, 그의 영화가 <생활의 발견>의 회전문을 돌아나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길 위에서 난데없이 멈춰서는 광경을 지켜보는 동안, 홍상수 감독이 동시대인의 위선과 위악과 남루함을 까발리거나 탄식하는 시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점점 명백해졌다. 홍상수는 메시지와 드라마투르기를 비워내고 대신 삶의 표면을 잇는 패턴을 발명하여 그 자리를 채우고 시간의 ‘골격’ 같은 것을 드러내는 작업을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집중력을 가지고 거듭했다.
네 사람의 이야기를 잇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두 사람의 시점을 연결해 하나의 사건을 그리는 &
<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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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라티에 감독의 <코러스>는 어린 시절 동화로 읽었거나 TV 애니메이션을 본 <사랑의 학교>(쿠오레)를 떠올리게 만든다. 불우하고 억압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따뜻한 스승의 감화로 마음을 열게 되는 감동적인 내용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 볼 만하다.
특히 아이들이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가 소년 합창단이라는 음악 활동을 매개로 삼기 때문에 단순한 드라마와 달리 아름다운 음악을 곁들여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생 마르크 합창단에서 활동하다가 모항주 역으로 발탁된 15세 소년 장 밥티스트 모니에르와 생 마르크 합창단의 노래는 천상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감미롭다. 다만 극적인 사건이 많지 않고 스승과 제자들이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도 다소 도식적이어서 식상할 수도 있으나 아름다운 음악이 이 같은 단점을 덮어준다.
그만큼 이번 DVD 타이틀은 영상보다 소리가 중요하다. 화음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소년 합창단과 맑고 투명한 장 밥티스트 모니에르의
<코러스> 천상의 소리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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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8일 어버이날 방문한 파주 아트서비스의 <가발> 세트장. 공포영화 현장이라면 기본 반찬으로 상 위에 오를 강렬한 조명과 화려한 인테리어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는다. 메인조명은 배경을 어루만지듯 희미한 톤으로만 깔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만들어내는 조명도 되도록 사절이다. 배우의 얼굴 윤곽과 암부를 잡아내는 것이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 “전형적인 장르 공포물을 만들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신연 감독의 출사표는 촬영 세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발>은 “귀신을 기다리는 영화가 아니라 사람을 지켜보는” 인물의 변화에 집중하는 공포물이다. 따라서 컷의 과도한 분할이나 카메라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전체 800여컷으로 이루어지는 <가발>은 느린 호흡을 통해 세심한 시선을 보여주는 화면 스타일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다.
세월의 흔적은 남기고, 인공성은 배제한 세트
흰색과 갈색이 주를 이루는 실내 거실. 목조로 이루어
<분홍신> vs <가발> [4] - <가발>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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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분홍신>_ 29켤레의 분홍신
영화 <분홍신>은 안데르센의 동화인 <분홍신>(The Red Shoes)에서 모티브를 따왔지만, 등장하는 신발은 말 그대로 ‘분홍색’이다. 장박하 미술감독은 개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디자인을 생각했으나 김용균 감독은 “신발이 지나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싫다”는 입장이었다. 이야기 자체의 힘이 분홍신보다 더 돋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영화의 내용상 지나치게 고전적이어서도, 현대적이어서도 곤란했다. 그래서 시대를 타지 않는 형광빛이 도는 비단천으로 제작했다. 보여지지 않는 신비감을 주려했기에 반사율이 지나치게 많은 소재는 피했다”는 게 장박하 미술감독의 이야기. 구두는 총 29켤레가 제작되었다.
<가발>_ 1천만원짜리 가발
<가발>의 촬영현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광경은 분장팀이 채민서를 따르며 끊임없이 빗질을 하는 일. 극중에서도 지현이 수현의 머리를 빗겨주는 장면은
<분홍신> vs <가발> [3] - 다섯 가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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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를 자르라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죄를 회개할 수가 없어지잖아요. 분홍신을 신은 발을 잘라줘요.” 사형집행인은 분홍신이 신겨진 카렌의 발을 잘라냈다. 분홍신을 신은 조그마한 두 다리는 곧 뜰을 가로질러 깊은 숲속으로 춤을 추며 사라져버렸다. -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 중에서
5월10일 오전 11시. 안산의 어느 오피스텔 지하 주차장. 스탭들은 “화면의 간지를 위해” 바닥에 연신 물걸레질을 하고 있다. 김용균 감독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빈 종이컵을 입에 물고 생각에 잠겨 있다. 폭풍 전야처럼 조용한 정적을 깨고 “감독님, 이 영화 벽지- 공포영화. 아니. 오피스텔- 공포영화예요?”라고 물어보고 싶어졌다. 몰래 방문했던 4월16일의 현장도 여의도 근처의 오피스텔 옥상이었고, <샤이닝>을 연상시키는 복도장면 역시 마포의 한 오피스텔에서 촬영되었다. 사실 한국의 오피스텔이라는 공간은 공포영화의 무대로서 더할 나위가 없다. 사각형 개인용 주거공간에서 사람들
<분홍신> vs <가발> [2] - <분홍신>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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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물건을 탐하지 말라!
<분홍신>과 <가발>은 한 다발의 기획서 뭉치가 잉태한 여름 한철용 공포영화다. 여자주인공이 ‘분홍신’과 ‘가발’을 주워오면서 공포가 시작된다는 설정도 비슷하다. 하지만 두 작품에서 기획영화 이상의 가능성을 본다면, 그건 김용균과 원신연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인물의 감정선을 정밀묘사하듯이 그려냈던 <와니와 준하>(2003)의 김용균 감독은 <분홍신>이라는 잔혹동화를 빚어내고 있고, 철로 위에서 죽음을 바라는 철도노동자의 삶을 담아낸 단편영화 <빵과 우유>(2003)의 원신연 감독은 슬픈 멜로 같은 괴기담 <가발>을 만들고 있다. 도통 공포영화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감독들이 낯선 장르에 뛰어들어 만들어가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현장에서 지켜본 김용균과 원신연의 도전은, 비슷한 동시에 대단히 상반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7월 개봉을 앞둔 두 편의 공포영화가 속삭여주는 비밀스러
<분홍신> vs <가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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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그냥 정공법으로 합니다”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씨네21>이 ‘한국영화의 현재를 묻다’라는 주제로 7회에 걸친 특강을 준비했다. 감독, 제작자·배우로 구성된 7인의 강연자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일정한 업적을 남기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끈 주인공들. 감독 중에선 박찬욱·홍상수·봉준호 감독이, 배우로는 백윤식과 문소리가, 제작자로서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와 MK픽처스 심재명 대표가 강단에 선다. 지난 5월11일 연세대 위당관에서 백윤식의 강연으로 시작된 이번 행사는 앞으로 3주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씨네21>에는 이들 강연의 재구성본이 실리게 될 것이다. 다음주에는 배우 문소리와 감독 박찬욱의 강연이 이어진다.
지난 2년에 걸쳐 한국 영화계가 재발견한 중견배우와의 진솔하고도 조심스런 대화가 이루어진 곳은 축제의 열기로 들썩이는 연세대 한쪽에 마련된 강연장.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진출작 <그때 그 사람들>의 임상수 감독
영화인 7인 특강 [1] - 백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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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무서웠다. 긴 머리를 질질 끌고 기어서 천천히 스멀스멀 계단을 내려오던 여인의 한, 그리고 이어지는 죽음들. 평이한 장면에서조차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소리들로 심장을 터지게 만들었던 끔찍한 영화 <주온>. 할리우드가 공포영화 마니아들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이 영화에 손을 댔다. 동양의 이 그로테스크하고 무섭기 짝이 없는 귀신을 서양은 어떻게 받아들여 변주할 것인가. 현실로 귀환한 혼에 대해 동서양의 시선은 어떻게 교차할 것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그루지>는 이러한 호기심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하다. <주온> 시리즈로 일약 혜성처럼 떠오른 시미즈 다카시가 여전히 이 미국판 <주온>의 감독이며 영화의 배경 역시 일본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루지>의 관심이 원작의 서사에서 시작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 영화의 목적은, 혹은 제작자 샘 레이미의 야망은 원작이 뿜어내었던 강렬한 공포 그 자체를 확장시키는 데 있
공포의 재료가 된 동서양의 만남, <그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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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어른들은 속수무책으로 아이들의 병 앞에서 나뒹군다. 어른들은 그저 울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한다면 아이들은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 아이들은 낯선 서로의 환경을 넘으며 친구로 길들어진다. 병이 죽음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사귐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커간다는 얘기로 읽는다면, 이 영화는 흔치 않은 성취를 거둔 셈이다.
이상한 일이다. 어른들이 없어도 아이들은 자란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꼭 초등학교만은 아닌 것 같다. 병에 걸려도 아이들은 자라며, 병원도 아이들의 훌륭한 학교가 된다. 아니 이 말은 틀린 말일 것이다. 아이들은 병을 거쳐 더 웃자란다. <안녕, 형아>는 자연스럽지만 잘 드러나지 않은 이런 이상한 진실을 보고하는 영화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병에 걸리고 죽는다는 자연현상은 얼마나 잔인하며 또 동시에 자연스러운가. 그러나 이 진실이 어린이에게도 예외없이 해당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 쉬운
병이 깊어도 아이들은 푸르구나, <안녕,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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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입문자들에게는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옛날, 멀고도 먼 한 은하계에서(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라는 익숙한 자막과 함께, 존 윌리엄스의 스코어가 울려퍼지면, 데자뷰처럼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이하 <시스의 복수>)는 막을 올린다. 몇날 며칠에 걸쳐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겐의 반지>를 상연하던 독일 바이에른주의 어느 오페라 하우스처럼, 극장은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집회에 참여한 신도들로 가득 찰 것이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3번째 에피소드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오페라의 마지막 장이다. <보이지 않는 위험>과 <클론의 습격>에 탄식했던 광신도들의 마지막 기대를 충족시켜면서 시리즈의 막을 내려야 하고, 동시에 4번째 에피소드인 <새로운 희망>과의 연결고리를 지으며 새로운 시작을
새로운 세계를 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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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작품번호 4번 <생활의 발견>은 감독의 모든 영화를 꿰뚫는 제목을 가졌다. 허위의식과 인과율의 미망(迷妄)을 걷어내고 살아 움직임(生活)의 정체를 직시하는 작업, 현실이 비로소 현실로 보일 수 있도록 ‘알맞은’ 양식을 부여하는 스위스 시계공 같은 작업이 홍상수 감독의 지난 10년이었다. 홍상수는 자신의 영화가 그리는 인간과 그들의 일상이, 달리 아무것도 되지 않도록 정밀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테면 무엇의 상징이나 내러티브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의 영화에서 자고새는 그저 자고새다. 그렇게 발견한 현실의 파편을 재구성하는 홍상수식 패턴은 대구와 반복, 모방과 차이였고, 덕분에 사람들은 그가 지식인의 위선과 소시민적 일상의 지리멸렬함을 조롱하고 있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작품 편수가 거듭되면서 홍상수 감독의 ‘일상’은, 꿈과 회상을 끌어들이며 영역을 슬금슬금 넓혀왔다. 꿈꾸고 회상하는 동안에도 생의 시계는 어김없이 간다는 점에 홍상수는 주목했다. 작품번호
회상과 꿈, 도취의 시간도 일상의 표면, <극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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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의 정관 개정안을 반려했다. 지난 5월9일 문화부에 제출된 PiFan의 정관 개정안에 대하여 문화부는 실무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여 5월12일 부천쪽에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반려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내용은 둘째로 하고, 기본적인 공문서의 형식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라고 밝히며 “조직위원회, 이사회 같은 용어가 전반부와 후반부에 혼용되어 중구난방으로 쓰이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부천시와 문화부는 PiFan에 대한 실무협상을 지속적으로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지역영화제에 대해 예산분배권을 유일한 권한으로 가진 문화부에서 PiFan의 파행에 대해 주시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는 문화부에서는 2년째로 접어드는 외부기관에 위탁한 개별영화제 평가를 통해 내년부터는 그 결과를 토대로 차등 지원하는 방식을 택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간섭은 하지 않되, 평가는 하겠다는 것이
[충무로는 통화중] 문화부,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지원 재검토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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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지역영화는 존재하는가. 오는 6월7일 크랭크인하는 김백준 감독의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신가요?>는 지역영화에 대한 본격적인 실험이다. 부산을 근거로 삼은 제작사 더 컴퍼니필름이 제작하는 <당신의…>는 스탭과 배우, 제작방향, 그리고 투자와 배급 모두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 등에서 그동안 축적된 부산, 경남권의 영화제작 역량을 총동원하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당신의…>가 내세우는 가장 특징적인 ‘지역성’은 배급과 투자다. 이 영화는 우선적으로 부산과 경남권에서만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도권 등 전국을 대상으로 한 개봉은 지역 개봉의 성과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이다. 김관 더 컴퍼니필름 대표는 “지역에서 우선 개봉한 뒤 차츰 범위를 넓혀가는 미국과 일본의 지역영화를 벤치마킹했다. 부산 경남권의 영화시장은 전체 시장의 18%를 차지하는 탓에 독자적 시장을 구축하는 게 가능하다고 본다”고 설명한다. 배급사인 대양시네마는 현재
본격 지역영화 향한 첫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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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정치스릴러<챈설러 매뉴스크립트>(The Chancellor Manuscript)에 캐스팅됐다. 이 영화는 <본 아이덴티티><본 슈프리머시> 등 제이슨 본 시리즈를 쓴 미국 작가 로버트 러들럼의 1977년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소설 판권을 두고 막판 협상을 벌이고 있다. 최근 <웨일 라이더>감독 니키 카로의 신작을 공동집필한 마이클 세이츠먼이 <챈설러 매뉴스크립트>의 각색을 맡을 예정이다.
디카프리오가 연기할 인물은 피터 챈설러라는 소설가. 미국의 국가정책을 바꾸려는 목적을 가진 정보조직으로부터 협박당하는 워싱턴 정치 브로커에 관한 스릴러 소설을 쓰다가 어느날 갑자기 소설의 내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챈설러 스스로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쫓기는 처지가 된다는 내용이다.
시나리오 작가 마이클 세이츠먼은 “우리는 지금 ‘애국자법’(Patriot Act: 9/11 테러 직후 테러 및 범죄에 관한
디카프리오, 러들럼 소설원작 스릴러에 캐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