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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집요한 복수 행각을 그린 임영동의 <협도고비>.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날아가는 총알의 궤적을 멋지게 표현을 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이트클럽의 총격신은 지금 봐도 꽤 근사하다. 그외 선악의 대결구도가 아니라 거의 악당들이 판을 치는 설정도 나름대로 독특하며, 좋은 역과 악역을 빈번하게 오가는 임달화의 사이코 같은 연기와 살을 빼고 스포츠머리를 한 주윤발의 모습 또한 인상적. 특히 주윤발의 영화로서는 완전 성인용이라는 점도 이색적이다.
임영동과 주윤발의 액션, <협도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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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적이던 익스트림 스포츠와 액션을 결합, 새로운 스파이 액션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던 전편과 달리 속편은 한마디로 80년대 유행하던 <람보> <코만도>류의 ‘무데뽀’ 근성이 영화 전편을 메운다. 보고 나면 남는 건 없지만, 그 순간은 꽤 즐거운 것이 <트리플 엑스2: 넥스트 레벨>의 미덕이다. 액션의 스케일도 커졌지만 전편보다 월등히 뛰어난 점은 DVD 타이틀의 퀄리티. 특히 폭발적인 사운드의 공습은 비교 불가의 수준. 부가영상은 삭제장면을 비롯하여, 영화 속 군사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 메이킹필름 수록.
생각하지 말고 즐겨라, <트리플 엑스2: 넥스트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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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이 없는 개구쟁이 한이는 머리가 아프다는 형 한별마저 괴롭히기 좋은 상대. 한이의 장난은 더 심해지는 가운데 형은 종양으로 입원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한이는 소외감을 느낀다. 뜻밖에도 <안녕, 형아>는 최루성을 목적으로 한 영화가 아니라, 아이들의 성장이란 테마에 무게중심을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아역과 중견 연기자들의 안정적인 연기까지 만듦새가 제법인 추천할 만한 가족영화. DVD 타이틀에 수록된 독특한 부록으로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과 자막지원이 눈길을 끈다.
너무나 진솔한 우리아이 이야기, <안녕, 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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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의 대가인 엘모어 레너드와 영화의 인연은 의외로 <유마행 3:10발 열차>(1957), <옴브레>(1967) 같은 진보적인 서부영화로 시작됐다. 이후 범죄소설로 영역을 옮긴 그는 계속되는 작업에 지치게 되자 1980년대 말에 이르러 각색작업의 중단을 발표한다. 레너드와 그의 소설이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놓이게 된 건 1990년대에 만들어진 <겟 쇼티> <재키 브라운> <조지 클루니의 표적>이 성공적인 평가를 얻어내면서부터다. <겟 쇼티>의 후속편인 <쿨!>의 외양은 누가 봐도 레너드의 작품이다. 시시껄렁한 건달들이 복잡하게 얽힌 사건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 레너드가 한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작품은 이야기나 대사보다 캐릭터에 관한 것이어서 캐릭터가 자신의 대사를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공 여부는 달라진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한번씩 ‘나는 쿨하다’고 외치는 <쿨!>에선
유명가수들을 덤으로 보는 즐거움, <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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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 허커비>는 데이비드 O. 러셀의 재기가 너무 심하게 나아간 작품이다. <아이 ♥ 허커비>는 모자이크 같다. 하지만 아무리 퍼즐을 끼워 전체를 맞추려고 해도 모자이크는 곧 그리고 자꾸 무너지기를 반복한다. 대사는 혼란스럽고 그 의미는 머리에 전달되지 않으니, 줄거리를 요약하는 게 힘들 지경이다. 실존주의 탐정사무소와 허커비 유통 그리고 열린 우주란 이름의 환경보호단체에 속한 사람들의 주변을 맴도는 <아이 ♥ 허커비>는 우주와 정체성과 자연에 대한 공허한 잡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감독은 본모습을 찾고 싶은 자가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 주제라고 말했다지만, 글쎄다. 러셀의 전작인 <디제스터>나 <쓰리 킹즈>가 어수선한 가운데 하나의 결말로 응집됐던 것과 달리 <아이 ♥ 허커비>는 분열과 추락의 예술을 지향한다. 이 정도 화려한 출연진이면 뛰어난 앙상블 필름을 노려봄직한데 그 반대로 걸어간 러셀의 용기가 가상한 작품
아리송한 주제, 부록 토크쇼로 풀어라, <아이 ♥ 허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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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은 전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개봉을 앞둔 불안일까 짐작해 보았지만, 늦게까지 밑줄 쳐가면서 희곡을 읽다보니 그랬다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을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제작한 <웰컴 투 동막골>이 전국관객 200만명을 넘기면서 <박수칠 때 떠나라>의 앞길을 막을지도 모르는데, 그는 어쩌면 이렇게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걸까. “다들 별점을 잘 줬더라고. 나는 별 두개나 두개 반도 많을 것 같은데.” (웃음) 혹독한 자기 비판을 거쳤기 때문에 어떤 혹평이나 칭찬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장진 감독은 48시간 안에 살인범을 찾아내야 하는 미스터리 <박수칠 때 떠나라>를 두고 마치 남의 영화를 이야기하듯 장점과 결점을 찾아내곤 했다. 마지막이 정말 처연하잖아요, 그건 좀 아닌 것 같더라고, 그렇게 하지 말걸. 그러나 그가 가장 생기를 보이는 순간은 다음 작품을 이야기할 때였다. 30회를 숨가쁘게 촬영하고 개봉까지 해치우고선 곧
<박수칠 때 떠나라>의 장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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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내가 사는 영국에선 여름은 타블로이드 신문의 “우스꽝스러운 시즌”(silly season)으로 여겨진다. 중대한 뉴스는 별로 없고, 스포츠가 군림하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달에서 발견됐다”거나 “사람이 개를 물었다”는 식의 우스꽝스러운 기사가 대중 신문의 전면을 도배한다. 그런 태평스러웠던 9·11 이전의 세계를 기리며, 떠돌이 영화평론가들의 일을- 아니, 솔직히 적어도 내 일을- 조금 더 즐겁게 해줄 수 있는 7가지 방안을 영화계에 대고 제안할까 한다.
1. 단편영화 감독들에게: 제발 영화에 맞춰 엔딩 크레딧도 짧게 해달라. 어떤 때는 엔딩 크레딧이 영화만큼이나 긴 경우도 있는데, 아무도 그대의 어머니나 이웃이 정신적 지원을 해줬건 그렇지 않았건 상관하지 않는다(최근 DV로 찍은 1분짜리 인도 단편을 봤는데, 보도자료가 8쪽이나 됐다. 요즘은 누구나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듯하다).
2. 홍보사와 영화제 카탈로그 편집자들에게: 배우 이름만 나열하지 말고 제발 각 배우
[외신기자클럽] 영화계에 바라는 7가지 제언 (+영어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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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예상 밖의 저조한 흥행을 기록한 <아일랜드>, 이번엔 표절 소송이다. ‘<아일랜드>는 복제물인가’라는 제목으로 이 소송의 경과를 소개한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1977년에 만들어진 B급 SF영화 <Parts: The Clonus Horror>(이하 <클로너스>)의 시나리오 작가 마이를 슈라이브만과 감독 로버트 파이브선은 <아일랜드>의 극장 개봉을 중단하고 더이상의 배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클로너스>는 ‘아메리카’라고 알려진 유토피아에 갈 수 있다는 말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클론들의 비밀왕국에 대한 영화. 인간이 여벌의 장기를 필요로 할 경우에 대비하여 키워진 이 클론 중 한명이 도망쳐, 인간 복제 시스템을 폭로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아일랜드>의 개봉 직후 <프리미어>를 비롯한 미국 언론은, “<아일랜드>의 전반부 한 시간은 (<클로너스>의
[What’s Up]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 표절소송 휘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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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로 큰 성공을 거둔 안젤리나 졸리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서사영화<베오울프>(Beowulf)에 출연한다. 북유럽의 고대 신화 속에 등장하는 베오울프는 평생 동안 용 세 마리를 물리친 영웅으로, 이미 여러 번 영화와 게임, 소설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번 영화는 8세기경 영국에서 쓰여진 서사시를 바탕으로 제작된다. 저메키스의 전작<폴라 익스프레스>와 같이 ‘퍼포먼스 캡처’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톰 행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안젤리나 졸리도 온몸에 모션 캡처 장비를 붙이고 연기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졸리가 맡을 역할은 베오울프에게 죽임을 당하는 괴물 그렌델의 어머니다. 졸리 외에도 앤서니 홉킨스, 브렌단 글리슨, 존 말코비치, 로빈 라이트 펜, 앨리슨 로한 등이 출연을 확정한 상태다. 주인공 베오울프는 <섹시 비스트><킹 아서>의 레이 윈스톤이, 그렌델은 <미녀 삼총사>의 크리
안젤리나 졸리, 저메키스의 <베오울프>에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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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의 신작 <컨테이너의 남자>(가제, 제작 아이필름)가 지난 17일 첫 촬영을 시작했다. <컨테이너의 남자>는 컨테이너에서 사는 한 남자가 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이 소원인 꼬마소녀와 만나면서 펼쳐지는 감동을 다룬 휴먼 드라마로, ‘파리의 연인’ 박신양이 막장인생을 사는 주인공 ‘우종대’ 역을 맡았다.
8월 17일,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시작된 첫 촬영에서는 1만명의 인파가 모여 2002년 월드컵 응원 장면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날 촬영은 영화 속에서 축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꼬마소녀 ‘준’을 위해 월드컵 거리응원이 펼쳐지고 있는 해운대 백사장을 찾은 박신양이 포르투갈 전에서 박지성이 골을 넣자 흥분해 무대로 뛰어올라 즉흥적인 응원을 하는 장면이었다. 평소 투우사의 꿈을 키우던 종대는 이날 특별의상 ‘투우사복’을 입고 투우사 흉내를 낸다. 1만명의 군중신은 촬영 소식을 접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한 부산 시민들의 협조로 가능했으며, 박신양은 이 날 촬영
박신양 주연의 <컨테이너의 남자> 크랭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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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의 아버지가 아랑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1999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실 그분은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급 사업가로,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였던 필립 때문에 몇번 뵙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신분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분이 난데없는 부탁을 해왔다. 필립이 여행을 가는데 같이 가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아랑과 필립은 고등학교 때야 건들거리며 노느라고 어울리긴 했지만, 졸업 후에는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내왔다. 둘 다 변변한 대학에 들어갈 재주는 없었지만, 서로의 처지는 전혀 딴판이었다. 돈도 ‘빽’도 없는 아랑이 남은 불알 두쪽으로 군대에 갔고, 필립은 든든한 아버지 덕분에 미국으로 도피 유학을 가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없는 형편에 새 천년 동해 일출 구경이라니. 아랑은 그저 횡재거니 하고 필립의 집으로 찾아갔다. 필립과 아버지는 벌써 문 앞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있었다. “아버지, 제가 몇살이에요. 제발 좀 그만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태양은 아득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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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격정에 사로잡힌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그녀의 남편을 살해한다. 그러나 일단 살인이 실행되고나자 스토리는 전혀 예측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남자는 격정과 의혹 사이의 좁은 길로 나 있는 미로에 빠져 허우적댄다. 저 여자는 혹시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나를 유혹한 것이 아니었을까? 익숙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플롯이다. 만약 <블랙잭>을 떠올렸다면 당신의 한국영화 사랑은 감동적이다. <보디히트>? 정답들 중 하나일 뿐이다. 충분치 않다. 이 플롯의 원형은 <이중배상>과 <빅 슬립>이다. 그렇다면 <이중배상>과 <빅 슬립>의 공통점은? 두 영화 모두 레이먼드 챈들러의 손끝 아니 머릿속에서 나왔다.
바바리코트깃을 세우고 줄담배를 피우며 나직한 쉰 목소리로 짧게 말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세상에 닳고 닳은 인간이고, 사랑을 믿지 않는 냉소적인 남자이며, 돈을 받아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설탐정이다. 그
[할리우드작가열전] 추악한 얼굴의 천사, 레이먼드 챈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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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당당히 자신들의 세기로 규정한 미국인들에게 2000년 1월1일은 또다른 미국의 세기가 시작하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가 오히려 커 보였다. 그래서인지 미국 전역에서 실시된 특별행사들의 주제도 대부분 그들의 위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를 주제로 하는 것들이었다. 문제는 WTO회의중에 이미 한 차례 폭동을 경험한 시애틀이 새해맞이 행사를 취소한 데 이어, 뉴욕의 타임스퀘어 또한 테러리스트들의 목표가 되고 있다는 뉴스가 그런 밝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Late Show>의 데이비드 레터먼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지난 12월29일 방송에서 타임스퀘어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관객을 향해, 새 밀레니엄의 첫 테러 희생자 후보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간담이 서늘한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험악한 분위기에도 12월31일 뉴욕의 핵심인 타임스퀘어는 새 천년을 성대하게 맞이하기 위해 별러온 인파들로 인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아침 9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
<환타지아2000> 뉴욕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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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의 의미를 적어 달라는 몇몇 원고 청탁에 밀레니엄이란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한몫 잡으려는 장사꾼들이나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말로 현실의 문제를 덮으려는 정치꾼들에게나 필요할 거라는 독설을 채워 보냈다. 21세기가 된다고 파시스트의 뇌가 갑자기 민주주의적으로 바뀌는 게 아니고 21세기가 된다고 결식아동에게 갑자기 밥이 생기는 게 아니며 21세기가 된다고 갑자기 예술에 대한 검열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면 우리가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나 나 역시 21세기 도입부는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지난 세기말 내 몸에 침입한 독감균은 여전히 내 몸을 지배하고 있다.
기억의 범주 안에서 몸이 아파 병원에 가본 일이 한번도 없는 나로선 지난해 독감이 두 번씩이나 내 몸을 점령했다는 사실이 영 개운치 않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식은땀을 흘리며 나는 이제는 사라진 어린 시절의 질병 공포를 떠올린다. 그 시절 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