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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 포터 감독의 <탱고 레슨>은 수많은 탱고 마니아들을 양산한 탱고의 이상향 같은 영화다. 영화 안팎에서 샐리 포터에게 탱고를 가르치는 파블로 베론은 <탱고 레슨>에서 주연을 맡은 뒤 세계 제일의 탱고 무용수이자 안무가로 ‘공인’받게 됐다. 아르헨티나, 프랑스, 캐나다의 세 나라를 거점으로 공연, 강습, 안무를 거듭하며 숨가쁜 스케줄을 보내는 그가 국내 탱고 마니아의 끈질긴 섭외로 아시아 최초로 내한했다. 하지만 그의 방문은 요란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황홀하게 국내 땅게로스(탱고를 추고 즐기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돌아갔다. 올 여름 <탱고 레슨>을 계기로 탱고계에 입문한 ‘초보 땅게로(탱고를 추고 즐기는 남자)’ 이성욱 기자가 파블로 베론을 취재한 뒤,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주관적인 탱고 입문기를 작성했다. 탱고 문화를 좀더 많은 이들과 나눠보자는 취지다.
P.S 탱고 동호인들은 스스로 지은 닉네임을 실명처럼 사용한다. 주어진 세계가 아닌 스스로
‘탱고 레슨’을 받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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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 이은 또 하나의 마이클 베이 표 리메이크 호러. 1979년도 오리지널 작품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지만, 영화는 실제 사건의 주인공들이 분개할 정도로 상당 부분을 허구적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엉뚱하게 실화 영화로 둔갑해버린 <텍사스...>의 경우도 그랬지만 중요한 것은 실화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호러 영화로서 관객들을 얼마나 겁에 질리게 하느냐’다. <아미티빌 호러>는 그 점에 있어 합격점을 주기 어려운 작품이다. 귀신들린 집에 이사 온 가족들의 고생담이라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산만한 구성과 뻔한 쇼크 장면만을 보여준다. 게다가 실화라는 사실에 집착한 어이없는 엔딩은 장르영화로서의 매력마저 감소시킨다. 스타일리시한 화면 질감과 으스스한 고문실의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그 이상의 장점을 찾기 힘든 것이 아쉽다.
DVD로서의 화질과 음질은 수준급.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아미티빌 호러> "이거 정말 실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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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사는 아내들이 종종 ‘아무리 그래도 맞을 만하니까 그랬겠지’ 하는 오해를 사는 것처럼, 우리는 은연중에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왕따를 당할 만하니까 왕따를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맞을 맞한 이유’나 ‘괴롭힘당해도 싼 이유’ 따위는 세상에 없다. <라이프>는 리스트커트(자신의 몸을 커터칼로 긋는 행위)와 이지메, 왕따라는 사회문제와 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정면돌파한다.
아유무와 시노즈카는 중학 시절 단짝 친구. 아유무는 우등생인 시노즈카를 좇아 같은 고등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노즈카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 학교에 합격한 것은 시노즈카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아유무. 이 일로 시노즈카는 아유무에게 심한 말을 하고, 아유무는 죄책감을 느끼며 리스트커트 증후군의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의기소침하던 아유무에게도 새 친구가 생기지만, 왕따 만들기에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유무는 오히려 왕따를 당하게 된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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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 EWF)가 고루하다고? 앤지 스톤? LL 쿨 J? 스눕 도기 독? 걔들 모두 EWF의 영향을 받았단 말이다!” 영화 <드럼라인>에 나오는 이 대사는 ‘Earth Wind & Fire’(‘땅, 바람 그리고 불’이라는 밴드의 이름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는 ‘지풍화’(地風火)로 통하는)가 미국 음악에 끼친 영향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23번째 앨범인 <llumination>이 발매되었다. 오빠들이, 돌아왔다!
EWF의 이름은 모를 수 있지만 그들의 음악을 모를 수는 없다. 매년 9월이면 라디오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그루브의 고전인 <September>, CF 배경음악과 시트콤의 간주로 자주 쓰인 <Boogie Wonderland>, 마음 한구석을 싸하게 만드는 러브발라드의 명곡 <After the Love Has Gone>, 오
오빠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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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날마다 일요일이길 원했다. 학교에 가지 않고, 나른하게 집에서 보내는 날들. 나이가 들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안다. 직장을 다니지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라면 오히려 일요일을 맞이하기가 부담스럽고, 무직자라면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진정한 일요일은 만사에서 놓여나, 평온하게 쉴 수 있는 날이다.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어제와 똑같은 오늘 때문에 한숨을 쉬고 있어서야 진정한 일요일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온다. 누구에게나. 아니, 어쩌면 일요일은 반드시 쟁취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시다 슈이치의 <일요일들>은 그 ‘일요일’을 테마로 엮은 연작소설집이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아메리카적인 사유에 익숙한 젊은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인생의 일요일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차분하게 그려낸다. 요시다 슈이치의 걸작은 역시 <퍼레이드>라고 생각하지만, <일요일들>의 나른함도 꽤 마음에 든다.
[B딱하게 보기] 무욕의 평온함이 있는 시간, <일요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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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술버릇은 고맙게도 ‘행복’이다
밑도 끝도 없이 행복해지고 나른해진다.
술자리에 내가 남몰래 흠모하는 사람이 있거나
꿈이 아니고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누군가가(음… 예를 들면 브리트니 스피어스?) 함께 있다면 그 행복은 제곱이 된다.
그날의 술자리는 너무 행복했고 꿈같았다.
왜냐하면 이선희가 그 자리에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마냥 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의, 짝사랑조차 불손하게 만드는 주일학교 여선생님스러움은
주변 몇 미터 내의 공기를 깊은 숲처럼 만들어버리는 강한 힘을 가졌다.
우리 모두는 많이 취해 있었다.
키득키득 웃을 일에도 껄껄껄 웃을 만큼 다들 기분이 좋았다.
무심결에 곁에 누군가의 옆얼굴을 보면 괜히 미소가 지어지고
일심동체 싫어하는 연예인 뒷담화를 나누다
친구가 내뱉는 구속될까 진심으로 염려되는 청산가리급 독설에 탄성하다가도
과연 내가 진정 진심으로 열심히 씹고 있는가에 대해 반성도 해보고….
건배~ 남발한다 욕도 먹지만 결국은
[이창] 이선희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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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미래의 키워드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문화의 콘텐츠를 선도하고, 그 바탕 위에서 제조업이라는 문명의 뼈대가 구축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콘텐츠와 제조업 사이에 상호연관성의 방향과 강도가 역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70년대 이후 세계 제조업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추면서 내세운 컨셉은 이른바 ‘경박단소’(輕薄短小)다.
가볍게! 얇게! 짧게! 작게!
이 발상의 전환, 상상력의 전복이 가져온 결과는 놀랍다.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 제너럴 모터스의 육중한 군용트럭 이미지는 이 한방에 무너졌다. 세계는 그 대신 일본식 경박단소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어갔다. 뉴욕에서 두바이에 이르기까지, 스톡홀름에서 산티아고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일제 상품으로 넘쳐났다. 일제 전기-전자제품과 자동차가 세계를 공습해댔다. 품질이 뒷받침되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높은 시장점유율까지 확보했으니 두려움이 없어질 법도 하다. 일본에서 ‘불침항모론’(일본을 결코 침몰되지 않는 항공모함으로 비유한 표현)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상상력 대전, 일본만화 vs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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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마다 10월이 다가오면 전화 통화를 맺는 말이 “그럼, 부산에서 뵙고 한잔해요”로 변한다. 말 그대로 지킨다면 부산영화제에 가서 3박4일 영화보기를 전폐하고 만남의 자리를 이어달리기해야 할 참이다. 내게 인사를 건넨 분들도 마찬가지리라. 곰곰 생각하면 아리송하다. 영화인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일하다가 1년에 한번 견우직녀처럼 해후하는 것도 아닌데, 약 360일을 보내는 서울에서는 뭘 하다가 꼭 부산에서 서로를 보고 싶어하는지. 부산영화제는 이를테면 불꽃놀이나 동해 일출과 비슷한 감흥을 영화계 관련 업종 종사자에게 주는 게 아닐까. “(어찌됐든)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최면 같은 것. 그나저나 올해는 가기 힘들 것 같은데.
#2 기자 절반이 부산으로 내려간 <씨네21> 편집실은 매우 정숙한 마감을 치른다. ‘부산안와’ 휴대폰에 날아든 담당사 PD님의 문자 메시지. 물음표도 벗고 훌쩍 달려온 단 네개의 글자가 많은 말을 전한다. 축제의 흥분, 바닷바람, 달콤한
[오픈칼럼] 그 여자는 거기 있었다, 간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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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가까스로 치유됐던 마음의 상처가 다시 재발했다. 2년 전 나에게 상처를 줬던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이고 그 아픔을 재발시킨 영화는 <사랑니>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나를 괴롭힌 건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반응들이 엄청나게 나를 기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혹자들은 이 말이 대충 무슨 뜻인지 이미 간파했으리라.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났을 때 나의 반응은 ‘괴상하기는 한데 웃기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잖아’였는데 주변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고, <사랑니>를 보고 났을 때 내 반응은 ‘별 이야기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복잡하냐’였는데 며칠 뒤 <씨네21>에 ‘올해의 발견’이라는 대빵 큰 제목을 달고 기획기사로 등장한 것이다. 그 제목을 보고 참으로 오랜만에 나의 고정 레퍼토리를 읊어댈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내 수준이 그렇지, 뭐….’
<씨네21>의 기획기사와 허문영, 김소영 평론가의
[투덜군 투덜양] 나만 재미없게 본 거야, 그런거야? <사랑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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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를 전자레인지에서 데운 뒤 꺼냈을 때 겉은 멀쩡해도 실제로는 끓는점이 한참 지난 것일 수 있다. 여기에 설탕을 넣으면? 순식간에 확 끓어 넘친다. 맹물도 마찬가지다. 전자레이지에서 데운 물에 커피를 타다가 물이 솟구쳐올라 화상을 입은 사람도 있다. 돌비 현상이다. 액체가 끓는점이 돼도 끓지 않고 끓는점 이상으로 과열돼 있다가 이물질이 닿으면 돌발적으로 끓어오르는 현상이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 문제가 며칠 사이에 국가정체성 수호를 위한 구국투쟁으로까지 끓는 걸 보니, 비록 말잔치라지만 비약과 속도에 아찔하다. 그러기에 지난해 눈 딱 감고 관 속에 넣어야 했던 것을…. 지가 무슨 전자레인지도 아닌데 겉면에 “이 제품은 평소에는 사문화된 척하고 있다가 틈만나면 이상한 것들을 끓어오르게 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우습게 할 수 있습니다”는 경고문구 하나 없이 철철이 쓰이나. 강 교수의 혐의가 고무·찬양죄인 것에 이르면 더욱 그렇다. 이건 한나라당에서
[이슈] 돌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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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인상적인 대목 하나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민들을 도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연탄 수십장을 자전거 뒤에 싣고 가는 연탄가게 아저씨와 엄청 무거운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떡집 아줌마가 실은 도를 깨친 사람들이라는 설명은 흐믓한 미소를 머금게 했다. 진지하게 힘준 장면이 아니라 웃고 넘어갈 장면이긴 하지만 가슴에 와닿는 농담이다.
비슷한 감흥을 <생활의 달인>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평택항에서 수출용 자동차를 주차하는 김현복씨. 그는 컨테이너 안에 자동차를 일렬로 집어넣는 일을 한다. 트레일러로 항구까지 운반된 자동차가 도착하면 그는 재빨리 자동차에 올라타 거대한 컨테이너 안으로 질주한다. 순식간에 옆차 간격 10cm, 앞뒤차 간격 30cm를 유지하며 자동차를 주차시키는 김현복씨. 눈을 감고 주차해도 간격을 유지할 정도니까 도가 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방영된 국수 포
[편집장이 독자에게] 생활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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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 등의 연이은 실패로 재정적 부담을 안게 된 RKO는 저예산 B급 공포영화라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난국을 해결하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작품의 성과는 이뤘지만 몰락하는 스튜디오를 파산에서 건져내지 못한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게 된다. RKO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지금 그가 남긴 공포영화들은 역설적으로 오손 웰즈의 영화와 함께 RKO의 가장 빛나는 영화 유산으로 남아 있다. 이 마지막 도박을 총지휘한 사람은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어시스턴트였던 발 루튼이란 무명의 인물이었다. 루튼은 감독 자크 뚜르네와 1942년에 발표한 <캣 피플>을 통해 기존의 유니버설 영화사의 공포물과 대비되는 새로운 유형의 공포영화를 창조해낸다. 공포의 근원이 프랑켄슈타인이나 드라큘라와 같은 괴물이 아닌 인간 내부에 잠재된 감정과 억압된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심리학적 접근 방법으로 공포의 영역을 심리적 공간으로 확장한 것이었는데, 이러한 심
[해외 타이틀] 제작자 발 루튼의 RKO 시절 공포 명작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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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카스의 데뷔작인 <THX 1138>은 프랜시스 코폴라와 그의 영화사 아메리칸 조이트로프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조이트로프는 60년대 미국 서부의 2대 영화학교였던 UCLA와 USC 출신의 두 젊은이-루카스와 코폴라-가 주축이 된 회사. 평균 연령 50~60대였던 기존 스튜디오의 고루한 제작 방식에 염증을 느낀 그들은 ‘카메라와 아이디어가 있는데 영화사가 뭔 소용이야?’라며 뜻을 모아 샌프란시스코에 소박한 전원주택풍 건물을 영화 기자재로 채운 것이 시작이었다. 조이트로프에는 젊은 영화인들이 모여들어 침실에서는 편집을, 정원에서는 식사하며 시나리오를 논하면서 무한한 영화의 자유를 꿈꾸었다. 때마침 새로운 인재들을 원했던 할리우드가 이들을 받아들여 만든 첫 영화가 바로 <THX 1138>이었던 것. 그러나 너무나 비관습적인 영화를 투자자들은 좋아하지 않았고, 편집권을 둘러싼 워너와의 갈등 과정에서 조이트로프의 황금 시대는 끝나고 말았다. 잭 케루악의 보헤미
[서플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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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누가 클로드 샤브롤에게서 누벨바그를 기억할까? 감독으로서 (아마도) 첫 번째 누벨바그 영화를 만들었고 평론가로서 앨프리드 히치콕을 작가의 만신전에 올렸던 그는 바야흐로 범죄와 살인의 수사법의 대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누벨바그의 동료들이 비틀즈라면 샤브롤은 롤링 스톤즈 같다. 예술과 상업적인 노선을 넘나들며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대중과 호흡하면서 살아남았으며 변함 없는 세계를 구축한 그들이다. 태생적인 부르주아이자 자본의 힘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 샤브롤의 영화는 자기죽이기, 자기증오, 자기보호, 자기비판의 어느 지점에 머물 터인데, 근작으로 올수록 부르주아의 원죄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는 듯하다. 그의 영화 속 부르주아는 그 계급을 물려받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인들이며 죽어 마땅한 존재로 다뤄지곤 한다. 또한 자기들 내부로부터 분열되는 모습이 점점 더 드러나기도 하는데, <어두워지기 직전에>에서 (과거 샤브롤 영화의 대표배우였던) 스테판 오드랑이 가족을 위해 초콜릿
[명예의 전당] 샤브롤식 좌파영화의 향연, <클로드 샤브롤 컬렉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