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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테리언 컬렉션에서 출시된 영화 <영혼의 카니발> DVD를 보다 보면 '어라?' 싶은 부분이 있다. <영혼의 카니발>은 미국 텍사스의 지방 제작사인 센트론 필름에서 만든 유일한 극영화인데, 이 영화의 감독 허크 하비가 30여년간 몸 담았던 회사다. DVD에는 이러한 제작 배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센트론 필름에서 만든 광고와 교육용 영화, 다큐멘터리 6편의 발췌본을 수록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표정(Korea: Overview)>이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약 13분 분량으로 타이틀 크레딧에 표기된 연도를 확인해 본 결과 1980년에 발표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은 한국의 문화와 풍물 등을 나레이션(허크 하비 감독의 육성이다)과 함께 소개한 것으로 깊이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컬트 영화로 잘 알려진 <영혼의 카니발>을 보던 감상자라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80년의 한국 풍경이
<영혼의 카니발> 컬트영화와 80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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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내가 신문기자가 되겠다고 했을 때 대학교수인 한 어른은 “앞으로 10년 안에 신문이 없어지고 방송만 남을 텐데 왜 신문사에 들어가려느냐”고 했다. 기자가 된 뒤엔 한때 “전자신문이 등장하면 장차 종이신문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므로 실직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90년대 들어 PC가 대중보급되고 모든 직장이 곧 재택근무체제로 이행할 것처럼 이야기할 때, 출퇴근을 즐기는 편인 나는 벌써부터 서운해졌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을 여러 차례의 기술혁명들이 가로지르고 기술진보가 교과서에서 배워 익힐 수 있는 수준을 훌쩍 추월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큰 만큼 성급하고 과격한 예언들이 남발하고 또 금세 부인되곤 한다. ‘공식적으로’ 틀린 예언들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20세기 안에 석유자원이 고갈되리라는 예고도 틀렸고, 공황에 의한 자본주의 자멸설도 어긋났다. 컴퓨터 한대가 커다란 학교 교실만했던 1940년대엔 어느 누구도 그 교
[편집장이 독자에게] 즐거운 밀레니엄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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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주부터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난에 격주로 글을 쓰게 될 신현준입니다. “와, 신현준이다. 영화배우가 글도 쓰는구나” 하고 좋아하실 분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 면구스럽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흔한 박사학위도, 소속된 운동단체도 없는 은둔형 인간이 이 난을 맡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달력 한장 넘어가는 것이 새삼스러운 요즈음 뉴페이스도 아닌 사람이 등장하는 점도 좋은 그림은 아닌 듯합니다.
겸손 떨지 말라구요? 그런 건 아닙니다. 학문적 깊이 있는 연구 업적이 있는 아카데미션도, 비수처럼 꽂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저널리스트도, 그렇다고 아무 글이나 써도 되는 유명인사도 아닌 사람이 여기 글 쓰는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 앞을 가립니다. 오죽하면 10매짜리 원고 쓰는 데 사흘째 골머리를 앓고 있겠습니까. <씨네21> 기자들 중 알고 지내던 친구와 후배가 있다는 죄로 이 고생이라니(이때 속으로 드는 생각은 ‘위대한 대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새해에 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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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아카데미를 휩쓴 <셰익스피어 인 러브>를 보고 있노라면 열등감에 휩싸인다. 희대의 걸작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세계를 마치 자기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히 꿰뚫은 상태에서 이리 빠지고 저리 붙이고 하며 자유자재로 스토리를 펼쳐나가는 작가적 기량에 기가 죽을 뿐이다. 그뿐인가? 원전에서 따온 대사들을 위트 넘치게 각색하고,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비주얼의 강점들을 낱낱이 구사할뿐더러, 얄밉게도 상업영화의 핵심인 대중성 내지 흥행성까지도 단단히 틀어쥐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솜씨라니… 도대체 이런 수준의 시나리오를 쓰는 놈은 어떤 녀석일까? 자막에 크레딧이 떠오르는 순간 이 시새움 섞인 볼멘 투정은 쑥 들어간다. 바로 톰 스토파드다.
톰 스토파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츨린에서 태어났다. 두살 때 가족 모두가 싱가포르로 이주했으나 그곳에서의 체류 역시 길지는 않았다. 일본군이 침략해 들어오는 바람에 다시 인도로 피난을 떠난 것이다. 이때 남편을 잃은 그
[할리우드작가열전] 셰익스피어와의 농담따먹기, 톰 스토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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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정훈이 만화 대상
[정훈이 만화] 정훈이 만화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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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각색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씨가 결국 완성했다. 그는 쫓기는 사람처럼 부지런히 대학노트에 시나리오를 썼다. 어느 날 예고없이 돌연 염곡동에 있던 내 집에 나타나 훌쩍 그 대학노트를 던져놓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곧 그가 수사기관을 피해 도망다닌다는 소식이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그는 각색에 자기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영화를 위해 유리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송기원뿐만 아니라 그가 좋아해 같이 술자리를 자주 했던 시인 고은 선생도 수사기관에서 쫓는 모양이었다. 80년 봄이었다. 시국이 다시 어수선하고 정국이 뒤숭숭해졌다. 그러나 아직도 시사 감각이 둔한 나는 그저 오랜만의 영화 연출 작업에 신이 들려 신경을 다른 곳에 쓸 여유가 없었다. 즉흥 연출만 일삼던 내가 처음으로 콘티를 만들고 연출 계획을 사전에 준비했다. 눈을 감고 시나리오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떠올리는 일을 자주 했다.
그러나 캐스팅에서 나는 또 서툴게 아마추어의
이장호 [38] - 순자는 부르지 못한다, <바람 불어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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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각도에서 한번 접근해보자. 데이비드 핀처의 신작 <파이트 클럽>은 무뇌아적인 우수마발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존을 훌쩍 뛰어넘는 걸작도 아니다. (척 팔라닉의 도발적인 데뷔작을 꽤 충실히 재현한) 이 위악적이리만치 쾌활한 풍자극은, 도발이라는 측면에 관한 한, 지극히 재미있고, 놀랄 만큼 연기가 뛰어나고, 기획 또한 대담하다. 적어도 강철에 크롬 도금을 입힌 것 같은 그 외양이 달걀찜 거죽처럼 갈라져나갈 때까지는.
마천루는 마천루를, 총은 그저 총을 뜻할 뿐인 때도 가끔 있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남근주의로 떡칠갑한 억압적 장치들 속에서 펼쳐지는 영화 <파이트 클럽>은 일련의 심리적 사정행위를 목표로 삼는다. 내레이터를 겸하는 이름없는 주인공 에드워드 노튼은 입에 총구를 문 모습으로 처음 소개된다. 이후, 영화는 이 순응주의적 무산자가 왜, 그리고 어떻게 그의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수위에 불을 지피며, 왜 그리고 어떻게 원시적인 패거리들과의 육
사회적 은유도, 정신병자의 심상사례도 아닌 <파이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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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정지우 감독의 단편영화 <생강>을 처음 보았을 때 든 느낌은 감탄사였다. 총각 감독이(난 정지우 감독이 총각인 줄 알았다) 하필 파마약을 뒤집어쓴 채 동전 몇푼에 악다구니하며 살아가는 아줌마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것도 신기했고, 그의 단편 데뷔작이자 30만원짜리 영화 <사로>의 섬뜩함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닫힌 문 하나로도 새장 속의 여자를 이야기하는 미장센을 짜는 솜씨하며, 갓 서른을 넘겼을까 말까한 이 독립영화 출신의 감독은 운동권 아내로 대표되는 여자들의 삶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인화라는 남자 작가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소설에서 월경 전의 여자를 그렇게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읽었을 때와 같은 신기함이기도 했다.
생강의 신기한 맛 그 이후
며칠 전 정지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 <해피엔드>를 보았다. 처음 든 느낌은 의문부호였다. 도대체 싫으면
너희가 진정 여자를 아는가,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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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인터넷영화 사이버극장 우후죽순, 충무로와 따로 또 같이
12월26일 두대의 카메라가 서울 명동의 한 백화점 입구를 봉쇄했다. 입구 측면은 소니 VX9000이, 정면은 VX1000이 맡았다. 행인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과 엉거주춤한 동선을 피한 끝에 감독의 OK사인이 떨어지자, 무리들은 여느 촬영현장과 달리 다음 신을 촬영할 장소로 신속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날 보충 촬영을 끝낸 <밀레니엄 살인 행진곡>은 2000년 1월1일 인터넷으로 네티즌들에게 선보였다. 촬영현장에서 2대의 DV(디지털 비디오)가 유감없이 보여준 기동성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영화제작에서 기동성, 작동용이성, 경제성 등 디지털 작업의 매력은 그간 충무로와 독립영화계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고, 2000년 열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디지털 삼인삼색’이라는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진행중인 박광수 감독과 김용태 감독, 신작 <눈물>을 준비중인 임상수 감독처럼 전면에 디지털 카메라를 배치하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4] - 디지털과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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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미래를 여는 첨병 POP.com
지난해 연말, 타임 온라인을 비롯한 수많은 웹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의 투표를 통해 20세기를 규정짓는 단어를 결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자동차, 전쟁을 비롯한 다양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1위에 오른 단어는 인터넷 혹은 컴퓨터. 1983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인간의 생활을 급속도로 바꾸어놓기 시작한 컴퓨터가 90년대 초부터 인터넷이라는 강력한 무기까지 획득하게 되면서 20세기 말을 화려하게 장식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컴퓨터로 시작해 인터넷으로 불붙기 시작한 이런 변화의 물결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파장을 미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런 변화를 대표할 만한 사건이 바로 본격적인 인터넷 엔터테인먼트 서비스를 지향하면서 지난 99년 10월25일에 오픈한 POP.com의 설립. 어쩌면 그저 한 홈페이지의 개설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이 사건이 그토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3] - P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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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 선댄스영화제에서 보스턴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 토드 버로는 셀룰로이드의 죽음을 선언했다. 최근에 진행되는 영화계의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는 영화제작과 배급에서 35mm 아날로그 필름이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그 선언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사건은 98년 10월에 있은 스티븐 아발로스와 랜스 웨일러가 만든 <라스트 브로드캐스트>(The Last Broadcast)라는 영화의 개봉이었다. 이 영화는 한국영화인들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소니 VX-1000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DV(디지털 비디오 6mm)카메라를 가지고 저예산으로 촬영됐고 편집 또한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편집으로 완성됐다. 획기적인 것은 극장상영까지도 디지털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흔히들 하는 것처럼 완성된 DV영화를 키네코작업을 거쳐 35mm 필름으로 옮기는 대신 이 영화는 디지털 데이터를 인공위성을 통해 송출했다. 이것을 수신한 미국 내 다섯개 도시의 극장들은 고화질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터를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2] - 디지털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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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5년 디지달씨의 하루, "20세기 인간들은 불편했겠어…"
“아니, 영화 하나 만드는 데 정말로 이런 것들이 필요했다는 거야?”
디지달씨는 ‘영화의 역사’ 과목 첫 시간에 인터넷II 영화학교가 실시간으로 전송해준 이른바 ‘필름’이라는 것의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며 눈앞의 모니터를 향해 이렇게 내뱉었다. 20세기에는 전화를 쓰기 위해서 전화선 설치공사를 대대적으로 해야 했던 바보 같은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의 직업상 알고 있었지만, 불과 95년 전인 2000년까지도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름이라는 것이 필요했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름의 모양이라는 것도 일단 이상해 보이는 데다가, 그걸로 영화를 찍기 위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촬영을 한 후, 다시 현상이라는 것을 해 자르고 이어붙여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설명까지 듣고 나니 ‘20세기의 인간들이란 정말 불쌍했구나’라는 생각마저 떠올랐다.
남들로부터 최고의 직업이라고 인정받는 이동통신 전자상거래
영화의 미래, 미래의 영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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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일본 자국영화로는 최고의 오프닝 성적을 냈던 <용의자 무로이 신지>가 한주만에 <나나(NANA)>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나나>는 현재 단행본 누계가 2700만부나 팔렸을 정도로 일본의 여자 중고생들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야자와 아이(矢澤あい)의 원작 순정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일본 전역 301개 스크린에서 개봉해 주말이틀 동안 39만6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5억3천600만엔 정도의 수입을 올렸는데, 이는 작년에 85억엔의 수입을 기록한 비슷한 장르의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하 <세중사>) 오프닝의 89%에 달하는 높은 성적이다.
주요극장에서 연일 매진사례를 보인 개봉 첫날에는 <세중사> 첫날 관객을 20%나 추월해 배급사 도호가 최종 100억엔 정도의 흥행수입을 자신하기도 했다. 주말을 지나면서 <세중사> 오프닝 대비 89%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도호는 <세중사>
<나나>, <용의자 무로이 신지> 제치고 일본 흥행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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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SBS '진실게임‘에 출연한 ’4억 소녀‘에 관한 이야기를 아는가. 쉽게 말하면 불과 20세의 나이에 순수익만 4억을 올리는 여성이 출연했는데, 방송이 나간 뒤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어머니와 딸 불과 두 명이 운영하는 쇼핑몰에서 어떻게 연봉 4억이 나올 수 있느냐는 주장부터 이 ’4억 소녀‘에 대한 비난과 옹호, 그리고 당사자의 해명까지, 네티즌의 화제가 되는 일들이 모두 그렇듯, 이 일 역시 각자의 입장만이 남은 채 그냥 그렇게 잠잠해질 듯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건 이 ‘4억 소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심리다. 왜 사람들은 ‘4억 소녀’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까. 그건 돈 때문이다. 이 소녀가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사람들은 진위 여부에 그의 세금 부과 관계까지 따져가며 파헤치는 정도의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환호와 비난이 갈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린나이에 4억씩이나 벌 수 있다는 것,
강명석의 Shuffle! <우드스탁: 3 days of peace & mus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