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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상과 음악, 한결같이 높은 완성도로 전 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들. 국내에서는 일본문화 개방 이전부터 해적판으로 명성을 떨쳤던 작품들이 이제는 정식 DVD로서 우리 곁에 보다 친숙히 다가와 있다. 최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출시로 다시금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내년 1월 선보일 예정인 기대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발매에 앞서 국내 소개된 지브리 애니메이션 타이틀들을 점검하고 향후 출시될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했다.
흥행불패 지브리 애니메이션 DVD
2005년 한해는 대한민국 DVD 시장에 있어 특히 암울한 시기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불법복제로 위축된 시장과 제작사들의 무차별적인 할인, 그로 인해 등을 돌리는 마니아들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업계 전반의 분위기는 극히 침체된 상태다. ‘이래도 안 살까’ 싶을 정도로 할인에 할인을 거듭해도 일부 타이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비자
2005년 지브리 애니메이션 DVD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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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년 전, <댕기>라는 잡지에서 만화가 김진이 어두운 고교 시절을 회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버렸다고 마음먹었다 치더라도 그건 그냥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 죽어도 아무 남을 게 없으리라던 외로움들은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저가 될 것이다”라고 그는 썼다. 증오도 향수도 풍화된 그 문장에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김진과 그녀의 만화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일부러 위안하려고 애쓰지 않음으로써 위로했고, 꽃 속 같이 천진한 영혼들이 기어코 심연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혹한 성장담을 통해 살아갈 기운을 주었다. 슬픔과 기쁨 사이에 복잡한 표정으로 멈추어선 이야기를 통해 남들이 표현한 감정을 외워 말하는 것은 좋은 버릇이 아니라는 것을 엄격히 가르쳐주었다. 언젠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1983년 11월 월간 <여고시대>에 <바다로 간 새>로 데뷔한 김진은 다양한 작품으로 작가의 자리를 굳혔다. 내성적인 대학생 윤하의 이야
<레모네이드처럼> <1815> <바람의 나라>의 만화가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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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성형을 믿느냐, <닙턱>
<닙턱>은…
조물주보다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을 믿어라. 돈의 힘을, 성형의의 힘을.
의사들을 소개합니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 꺼풀’이라던 선조들의 말은 옳았다. 피부 한 꺼풀만 들어올리면 당신은 황신혜의 코를, 김혜수의 눈을, 안젤리나 졸리의 입술을 가질 수 있다. 40대라 해도 20대의 팽팽한 이마를 가질수 있고, 볼록한 아랫배를 쏙 집어넣을 수 있다. 유전과 시간을 모두 거부하는 현대사회의 총아인 성형수술 전문의들의 이야기를 그린 <닙턱>은 성형수술의 화려함과 그 이면을 보여준다. 2005 골든글로브 최우수 TV드라마상을 받았다.
‘닙턱’(nip/tuck)은 성형수술을 지칭하는 표현. 크리스찬 트로이와 션 맥나마라는 함께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의사들이다. 션은 답답할 정도로 착실하고 모범적이고, 크리스찬은 보기 불안할 정도로 대담하고 자유롭다. 죽음의 경계에서 신음하는 응급실 환자들과도 이름 모를
메디컬 드라마 [2] - <닙턱>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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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간이 평등함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죽음 앞에서뿐이다. 아름다워도 죽고 젊어도 죽고 돈이 많아도 죽고 인기가 많아도 죽는다. 죽음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진 그랬다는 것이다. 사람은 이제 쉽게 죽지 않는다.
메디컬 드라마는 바로 그 생사의 기로에서 탄생한다. 중환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분주히 움직인다. 환자들은 죽음의 기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메디컬 드라마에서 감동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메디컬 드라마는 전통적인 <종합병원>(제너럴 호스피털) 식에서 여러 변형으로 다시 태어났다. 의사들은 더 위험한 환자의 시술을 하기 위해 경쟁하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신원도 불분명한 외국인의 성형수술을 해주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병원 내에서 연애질을 하다가 떼로 매독에 걸리는 일도 있다. 때로 천사 같고 때로 신 같던 의사들의 이중생활을 즐겨보시라.
결국 의사도
메디컬 드라마 [1] - <그레이 아나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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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실패한 사랑의 기억을 지우고 싶은가? 헤어진 연인을, 완전히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은가 아니면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가. ‘지워버리자’고 생각했던 실패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사실 기쁨으로 충만했던 시간도 많다는 것을 머리와 마음으로 깨닫게 하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공감각적 방식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에 있다. 이 영화는, 정말 놀랍게도, 줄거리만 읽고서는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을지,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가슴저리고 애틋하여 슬프기만 할 것 같던 영화는 사실 명랑하며, 그 음악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다.
프로듀싱을 맡은 존 브라이언은 <매그놀리아> <펀치 드렁크 러브> O.S.T 프로듀싱을 맡으며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인물이다. 이 음반에서 귀기울여들을 두곡은 바로 코기스의 80년 히트곡을 리메이크한 벡의 <Everybody Gotta Learn Sometime
쓰린 상처를 위안하는 리듬, <이터널 선샤인>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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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시를 처음 본 건 8년 전 모로코에서다. <인샬라> 촬영현장 취재로 찾아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소국이 알코올을 금해서였을까. 담배 한 보루를 들고 길가를 서성이는 청년들은 해시시도 팔았다. 하필 모두들 말보로 담뱃갑을 들고 섰는데 새빨간 브랜드 무늬가 자꾸 호기심을 자극했다. “담배 말고 해시시?”라고 말문을 열긴 했으나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는 상대방 표정에 왠지 겁먹어버렸다. 같은 대마에서 나오기는 했으나 일반 대마초보다 약용효과가 훨씬 강한 해시시(대마수지)의 거무틱틱한 색깔이 이성의 금지명령을 강하게 불러일으켰다고나 할까. 하물며 대마초조차 절대악의 유혹으로 주입받아온 터에 철통 이성의 규율에 익숙해진 몸이 얼마나 일탈할 수 있을까. <해시시 클럽>의 면면은 이런 조건반사를 무안하게 만든다.
한달에 한번, 파리의 피모당 호텔에 모여 정신의학을 공부한 자크 모로가 반죽해 건네는 해시시로 파티를 열었던 이들 중에 천재과에 가까운 예술가들의 이름을 쉽게
해시시를 아시나요, <해시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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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마지막은 일종의 평행우주로 결말을 짓는다. 아직도 창창대로인 원작만화는 다르겠지만, 선택과 책임을 말해왔던 <강철의 연금술사>로서는 나름 타당한 결말이었다. 아라카와 히로무는 <강철의 연금술사>를 통하여 ‘자신의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고, 그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말한다. 평행우주는, 일종의 자기 선택이다.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우주를 만든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최근 나오는 소년만화 중에서는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원피스>가 소년만화의 필수 요소를 극한까지 밀고 나간 걸작이라면, <강철의 연금술사>는 성인만화의 주제를 소년만화에 끌어들여 그 세계를 확장시킨 걸작이다. 에드와 알은, SF호러영화의 단골 캐릭터인 ‘미친 과학자’와 유사하다. 그들은 죽은 어머니를 보고 싶어 인체 연성을 시도하고, 지옥을 맛본다. 알의 육체는 사라지고, 에드는 자신의 팔을 희생하여 알
[B딱하게 보기] 아이들을 위한 독약, <강철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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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씨네21> 독자들이라면 아마도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오리배를 떠올릴 분이 많을 테고 요즘 뉴스 많이 보시는 분들이라면 그 무섭다는 조류독감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리궁둥이, 오리발, 오리주둥이, 오리너구리 같은 복합어들도 줄줄이 떠오른다.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민다” 같은 속담도 있다. 좋은 이미지라고는 거의 없는, 한마디로 우스꽝스럽고 코믹한 이미지를 모아 만든 날짐승이 바로 오리인 것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바웃 어 보이>라는 영화에서 보면 히피 엄마를 둔 어린아이가 엄청나게 큰 빵을 호수 위의 오리에게 던져 오리를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죽은 오리는 살아 있을 때와는 달리 궁둥이를 물 위로 내놓은 채 떠 있다. 영화에서 동물이 죽으면 원래 슬프게 마련인데, 빵에 맞아 죽은 그 오리는 어쩐지 무척 웃겼던 것 같다. 그러니 만약 백일장 같은 데에서 누군가가 ‘오리’를 시제로 주고 뭘 쓰
[이창]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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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자유주의’라는 말이 항간에 회자되고 있다. 이른바 뉴라이트에서 갑자기 들고나온 이 표현이 졸지에 한나라당의 이념이 되어버릴 모양이다. 사실 이 말처럼 허무한 표현도 없을 것이다. 그 표현은 ‘A=A’라는 동어반복처럼 아무 내용이 없는 명제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A=~A’라는 명제처럼 서로 모순되는 명제이다.
먼저 왜 ‘동어반복’인가? 거의 사회주의에 가까운 북유럽 국가들,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나라들, 그보다 좀더 자유주의적인 앵글로색슨 국가들까지, 현존하는 모든 자본주의 체제는 이미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혼합체제다. 따라서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하겠다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적 자유주의’는 특정 정치세력이 자신을 다른 세력과 구별하는 정체성이 될 수가 없다.
문제는 공동체적 요소와 자유주의적 요소의 배합인데, 특정 정치세력의 정체성은 바로 이 배합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공동체주의는 개인보다 국가나 사회의 책임을, 자유주의자는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맹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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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스튜어트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이 나라는 인종차별주의자들로 가득해. 네가 떠난 뒤로 많은 것이 변했어. 다른 인종들끼리는 긴장과 공포와 미움만 가득하고, 정부는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며 행복해하고 있어. 리틀 브러더. 네가 그립군.” 톰은 여전했다. 편지를 받은 4일 뒤에 짐을 쌌고, 10여 시간을 갇혀 날았다. 연착으로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것은 예상보다 4시간이 지난 뒤였다. 스키폴 터미널을 냅다 달렸으나 비행기는 떠나고 없었다. 비행사에서 나눠주는 슈퍼-슈퍼L사이즈 양말(털모자인 줄 알았다)과 칫솔세트와 무료 숙박권을 들고 도착한 곳은 오리가 꽥꽥대는 암스테르담 교외의 호텔이었다. TV는 파리 교외에서 벌어지는 폭동을 보여주며 떠들어댔다. 파리는 네덜란드어로 불타고 있었다.
브리스틀에 도착한 것은 다음날 아침 10시. 데보라의 3층집 지붕 아래 누우면 별이 보이는 다락방에서 빨강머리 앤처럼 아흘을 살았다. 갑갑하고 유채색이 촌스러운 홍익대 앞 클럽용 복장이 아
[오픈칼럼] 11월의 여름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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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니카 벨루치가 싫다(음, 위 아래로 나의 전신을 ‘째리는’ 뭇 남성들의 시선이 팍팍 느껴진다. 나의 얼굴을 보며 “그렇겠지”라고 나지막이 읊조리는 그들의 목소리도. 격분한 목소리로 “원고 빼라”고 외치는 남동철 편집장의 외침까지!).
정확히 말하면 할리우드로 간 뒤의 모니카 벨루치가 싫다. 그전에 출연했던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거나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태양의 눈물> <매트릭스> 2, 3편, 그리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최근 개봉한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까지 정말이지 그녀의 역할은 한심스럽다 못해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외치고 싶어진다. “모니카, 할리우드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 에잇.”
<태양의 눈물>에서 가운 사이로 깊은 가슴 골을 드러내며 아프리카 민중에게 헌신하는(그녀의 가슴골은 분명 환자들에게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줄 만하겠지) 의사로 분했을 때부터 실망이었다
[투덜군 투덜양] 여신이여, 땅으로 내려오라, 모니카 벨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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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금기였던 탓에 일본 영화사엔 아직 우리가 잘 모르는 감독들이 많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마스무라 야스조도 그중 하나다. 그는 오랫동안 스튜디오의 고용감독으로 일했고 작가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재평가받은 거장이다. 이번 회고전에서 그의 영화 몇편을 보면서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고 선동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오랜만에 발견의 기쁨을 만끽한 영화들이었으므로.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애정없는 결혼이긴 남편쪽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아내를 가정부 겸 비서로 부려먹었고, 아내는 남편을 가난에서 탈출하는 방도로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남편의 일을 도와주는 청년에게 마음을 뺏긴다. 애타는 마음을 누르려 애쓰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걸 눈치챈다. 암벽등반을 즐기는 남편은 아내와 청년에게 함께 산에 가자고 제안한다. 남편의 속셈은 아내와 청년을 산속에 버려두는 것이었으나 그만 일을 그르친다. 청년과 아내와 남편은 같은 로프에 묶여
[편집장이 독자에게] 마스무라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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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오브 데드: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조지 A. 로메로의 좀비영화를 패러디한 것임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숀을 연기한 사이먼 페그와 감독 에드거 라이트는 로메로가 만든 좀비영화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이들은 로메로를 너무나 존경하여 인터뷰 때마다 “그의 다음 작품에 좀비로 출연하고 싶다”라고 어필을 했는데, 결국 이것이 로메로의 귀에 들어가게 되어 페그와 라이트는 신작 <랜드 오브 데드>에서 소원성취를 하게 된다. DVD에는 이들의 촬영 과정을 담은 유머러스한 단편다큐멘터리 <숀이 로메로를 만났을 때>가 들어 있다. 영국에서 촬영지인 캐나다까지의 여정을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에서 페그와 라이트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마냥 들뜬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에게 로메로는 존경하는 ‘사부님’이자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동지’다. 단 몇컷을 찍기 위해 먼 여행을 마다하지 않은 이들은 처음 마주하게 된
[서플먼트] 숀이 로메로를 만났을 때, <랜드 오브 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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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쇼는 계속된다. 아홉명의 스턴트 달인들이 펼치는 위험천만의 스턴트 쇼를 구성한 <잭애스> 극장판.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MTV를 통해 방영된 원조격인 텔레비전 시리즈가 나왔다. 이번 DVD 타이틀에 수록된 방영분은 2000년 10월부터 방송을 탄 것으로, 극장판 못잖게 강도 높은 스턴트 장면을 담고 있다. 총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되며, 본편만큼 흥미로운 부가영상들을 수록했다. 음성해설과 <잭애스 더 무비> 시사회 직후 관객의 반응 인터뷰 같은 것들이다.
엽기 다큐 스턴트 쇼, <잭애스 TV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