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혜영 작가의 단편집 <아오이가든>이 18년 만에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아오이가든>을 읽은 독자라면 그 강렬한 이미지를 쉽게 잊지 못했을 것이다. 단편집 속 이야기들은 문명이 붕괴하는 풍경을 담고 있다. 누군가가 실종되고, 어디선가 시체가 발견된다. 멀쩡하게 돌아가는 사회라면 어떻게든 사라진 사람을 찾거나 범인을 찾아낼 텐데, <아오이가든>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뭔가 찾으려고 해도 쓰레기만 계속 나올 뿐이고, 아이들은 단속반을 피해 더러운 맨홀에서 살아가며, 역병이 돌아 사회 시스템 자체가 망가지기도 한다. 집은 부서져가고 벽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며 이불에는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돈을 벌어 돌아오겠다던 엄마는 오지 않고 아이들은 괴물을 꿈꾸며 다친 상처를 긁어댄다. 이처럼 퇴행한 세계 속에서 사람과 동물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진다. 그래서 <아오이가든>에서처럼 개구리가 되기도 하고, <마술 피리>에서처럼 실험용 쥐가 되는가 하면
씨네21 추천도서 - <아오이가든>
-
‘경우’란 세상의 이치나 도리를 뜻한다. 으레 지켜져야 할 도리 없는 세계에 내몰린 청소년들이 과거나 현재나 어디나 있다. ‘나’는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방관하는 어머니를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감행한다. 가정 밖 세계에는 가출 청소년들이 뒷골목과 모텔촌을 전전하며 무리 지어 다닌다. 단속을 피해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고 무료급식소를 찾아 배를 채우는 한편, 과감히 소매치기하거나 주점에서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번다. 때로는 미성년자 성매매를 시도하는 어른을 골라 협박하는가 하면, 달리는 자동차에 일부러 접근해서 자해 공갈로 돈을 버는 위험한 짓도 한다. 언젠가 BMW를 사서 몰고 다니는 멋진 어른이 되리라 꿈을 꾸지만, 대체로 계산 없이 충동적으로 현재만을 위해 거칠게 살아간다.
그렇지만 미래가 없고, 따라서 성장도 불가능한 세계에서 계속 만족스럽게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노숙자가 구해준 방에서 가출 청소년들과 살던 나는 우연히 경우를 만난다. 경우가 내
씨네21 추천도서 - <경우 없는 세계>
-
경우 없는 세계_백온유 지음
아오이가든_편혜영 지음
파스칼 키냐르의 수사학_파스칼 키냐르 지음
육왕_이케이도 준 지음
1미터는 없어_양지예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4월의 책
-
감독. <연애 빠진 로맨스> <하트> <밤치기> 등 연출
'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회화
요즘 그림에 푹 빠져 있다. 인스타 피드를 넘기다보면 세계 각지의 멋진 화가들의 그림을 접하게 된다. 영화, 음악, 소설과는 또 다른 느낌의 신선한 에너지를 받는다. 그림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언젠가 나도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고픈 어떤 것을 회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다.
배우 전종서와 손석구
<연애 빠진 로맨스>를 촬영할 땐 그저 두 사람을 배우로만 생각하고 대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람 전종서, 손석구에게 더 관심이 간다. 인스타도 염탐하고 기사도 틈틈이 찾아본다. 전 배우는 외국에서 찍은 예술영화를 곧 개봉하고, 손 배우도 연극 무대에 오른다고 하더라.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열심히
[LIST] 정가영 감독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
-
‘형사 발란데르’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소설가 헨닝 망켈은 “경찰의 근본적인 덕목은 참을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에 등장하는 한 형사도 비슷한 말을 한다. “형사 일은 기다림의 미학이에요.” 수사는 지루한 노동이다. 쓰레기 봉지를 뒤지고 남의 집 냉장고를 뒤지고 눈이 빠지도록 증거물과 사진을 들여다보고 야산을 돌아다니고 하수구를 들여다보고 수많은 밤을 거리와 자동차 안에서 범인을 기다린다. 형사의 많은 일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력 사건이나 장기 미제 사건 너머에 있다. 고작 만원어치 물건을 빼앗으려 칼을 꺼냈던 남자 한명을 잡기 위해 한밤중에 스무명의 형사가 출동한다.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기 때문이다. CCTV가 설치된 주민 집에 갑자기 수사본부를 차리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배가 고파 범행을 저질렀다는 편의점 강도에게 사발면을 끓여주는 것도 전부 형사의 일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국가수사본부'
-
<성난 사람들>
넷플릭스
대니는 ‘잘 풀리지 않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불만을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터트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 때마침 희생양을 발견한다. 한 운전자가 자신의 차를 향해 경적을 울린 뒤 가운뎃손가락을 내민 다음 떠나버린 것이다. 그렇게 펼쳐진 한적한 동네에서의 분노의 질주를 시작으로 대니와 에이미의 비프(싸움)가 이어진다. 그들은 왜 그렇게 화가 난 것일까. 아니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분노는 분명 일시적인 의식 상태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왜 성을 참지 못하는 것일까. 드라마 <성난 사람들> 속 대니와 에이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A24의 신작 드라마이자 배우 스티븐 연 주연 작품이다.
<털사 킹>
티빙
드와이트가 25년 만에 출소한다. 뉴욕 마피아 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는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과거에 몸담았던 조직을 찾
[OTT 추천작] ‘성난 사람들’, ‘털사 킹’, ‘낯설고 먼’, ‘아들의 방’
-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과연 <테트리스>를 한번도 안 해본 사람이 있기는 할까. <테트리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게임인 <테트리스>가 전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는 과정에 있었던 저작권 분쟁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저작권 게임에는 여러 명의 플레이어가 있다. 첫째는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헹크(태런 에저턴)다. 그는 우연히 박람회에서 <테트리스>를 발견한 뒤 이에 매료되어 닌텐도를 찾아간다. 닌텐도의 새 상품인 ‘게임보이’와 협력하여 <테트리스>를 팔아보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단순치가 않다. <테트리스> 개발자인 알렉세이의 국적이 소련이었던 것이 원인이다. 소련 정부의 눈에 헹크는 자국의 소유물을 국외로 빼돌리려는 외국인일 뿐이다. 헹크는 알렉세이를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부패한 KGB 요원들이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
[OTT 추천작] ‘테트리스’
-
레오(에덴 담브린)의 13번째 여름은 오직 레미(구스타브 드 와엘)로 기억될 것이다. 그해 여름의 대부분을 함께 보낸 레오와 레미는 등교를 시작하자마자 데면데면해진다. 유독 친밀한 두 소년에게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진 탓이다. 레오는 온몸으로 의혹을 부인하며 레미와 거리를 두고 돌연 아이스하키를 시작하는 등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성정체성이 완전히 성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레오와 레미는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끝내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마주한다. 첫 장편 <걸>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거머쥔 루카스 돈트 감독은 신작 <클로즈>를 통해 다시 한번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는 청소년에 주목한다. 감독의 사적인 기억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소년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기록하며 감각적인 미장센 또한 놓치지 않는다. 제75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Coming soon] ‘클로즈’
-
지난 28년간 제대로 된 감독판을 볼 수 없었던 컬트 필름 <둠 제너레이션>이 4K 복원판으로 최근 재개봉했다. 4월7일 뉴욕 IFC센터와 BAM시네마테크, 시카고 뮤직 박스 시어터에서 재개봉한 <둠 제너레이션>은 그레그 아라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담당한 작품이다. 이번 버전에서는 극장판과 비디오판에서 삭제된 장면 외에도 색감과 조명, 음향, 사운드트랙까지 복원됐다.
4월7일 아라키 감독은 뉴욕 IFC센터에서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조나단 드미 감독의 1986년작 <섬싱 와일드>를 함께 상영하도록 극장측에 제안했다.
<둠 제너레이션>은 1995년 1월 선댄스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되었으며,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새로운 4K 복원판이 소개된 바 있다. 1995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상영된 후 이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여러 차례 배급사가 바뀌었고, 오리지널 버전의 NC-17등급(17세 이하 관람 불
[뉴욕] ‘둠 제너레이션’, 진짜_진짜_최종.mov
-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가 합병된 후 처음 내놓는 OTT 서비스가 5월23일(미국 시간 기준) 출시된다. 두 회사는 합병 전 각각 OTT 서비스를 보유하고 있었다. HBO 맥스와 디스커버리+다. 두 회사의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9610만명이 사랑하는 두 OTT 플랫폼이 ‘맥스’(MAX)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한다. 현재 전세계 1억명 이상 구독자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플랫폼은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정도다. 두 회사의 공식적인 합병으로 1억 가입자 클럽에 추가될 또 하나의 서비스가 탄생한다.
프라임 콘텐츠의 명가 HBO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맥스 내에서 하나의 브랜드로 남을 것이라고 한다. 최근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하우스 오브 드래곤> 등 만드는 콘텐츠마다 성공을 거두고 있는 맥스는 콘텐츠의 퀄리티만큼은 넷플릭스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다큐멘터리도 강하다. 다만 TV 쇼 기반의 리얼리티 프로그
[김조한의 OTT 인사이트] 미디어 공룡의 합작품 ‘맥스’가 온다
-
올해 칸영화제에 초대된 한국영화는 두편이다. 1970년대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시네아스트의 강박적 정신세계를 블랙코미디로 옮긴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출연 송강호,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은 비경쟁부문에, 방황하는 소년과 조직 중간 보스의 만남을 그린 김창훈 감독의 데뷔작 <화란>(출연 홍사빈, 송중기, 김형서)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김지운 감독은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세 번째로 칸의 부름을 받으며, 배우 송강호와는 15년 만에 칸 레드 카펫에 나란히 선다.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의 호흡은 이번이 5번째. 지난해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국내 배우 중 칸 초청 최다 기록 보유자인 송강호는 <거미집>으로 8번째 칸의 초청장을 받는 진기록도 세웠다. 총 19편이 선정된 경쟁부문에는 칸의 단골 거장들이 여럿 포진해 있다. 켄 로치의 <올드 오크&g
김지운 감독 <거미집>과 송중기 주연 <화란>, 칸 간다
-
5월의 달력을 들춰본다. 노동절인 5월1일은 월요일, 어린이날인 5월5일은 금요일. 이러면 대체 5월 첫째 주는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일해야 하는가. 가만, 5월의 황금연휴를 이제야 눈치챈 건 나뿐인가. 포털 사이트에 ‘5월 황금연휴’를 검색하니 제주행 비행기표가 일찌감치 동났다는 기사가 우수수 뜬다. 놀지 못할 운명을 직감한 내 마음도 우수수 떨어진다. 아니다. 어차피 매년 4월 말 5월 초는 전주국제영화제(이하 전주영화제)와 함께했고, 올해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 긍정 회로를 가동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전주에 가면 좋은 영화와 맛있는 음식과 반가운 사람들이 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잔, 가맥집에서 청양고추간장마요 소스에 찍어 먹는 황태포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전주 경기전에서 쉬엄쉬엄 광합성하며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어느새 전주는 여행 로드맵이 자연히 그려지는 친근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 올해 전주에서 만날 영화들에 대한 설렘이 크다. 진지하고 아름답
[이주현 편집장] 5월 황금연휴도 영화와 함께
-
전반부는 멜로 감성으로, 경기 장면은 생생하고 선명하게
<리바운드>의 촬영 컨셉은 정직함이었다. “실화가 바탕인 만큼 카메라도 힘을 빼고 정직하게 다가갔다. 인물을 센터에 배치하고 배우들의 시선도 카메라에 가깝게 닿도록 설계해 인물의 감정을 잘 전달하려고 했다.”(문용군 촬영감독) 아리 알렉사 SXT, 알렉사 미니 두 기종으로 촬영했고 마스터프라임 단렌즈 세트를 조합해 따뜻하고 소프트한 느낌을 연출했다. “강 코치가 팀을 꾸리고 훈련하는 전반부는 스포츠영화지만 멜로 감성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영화 <뷰티 인사이드>나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분위기를 참고했다. 소프트 필터를 사용했고 헐레이션과 스모그를 활용하기도 했다.”(문용군 촬영감독)
경기가 주를 이루는 후반부는 채도와 콘트라스트를 높여 선명하고 강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배우의 동선을 방해하지 않고 빠르게 쫓을 수 있도록 사이드 트래킹과 퀵줌을 활용했고 짐벌을 통해 화려한 개인기
[기획] 완벽한 싱크로율, ‘리바운드’ 제작 비하인드 2
-
최약체 농구부가 이루어낸 기적을 담은 <리바운드>는 2012년 부산중앙고등학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영화다. 실화와 스포츠, 제작진은 이 두 가지 키워드에 집중했다. 당시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상황을 실제같이 구현하는 것, 그리고 관객이 마치 직관하듯 경기 장면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것.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감독과 배우, 그리고 제작진이 머리를 맞댔다. “실제 선수들이 촬영장을 찾으면 의상, 분장, 미술팀뿐 아니라 배우들도 눈을 반짝거리며 달려가 질문했다. ‘그 경기할 때는 어땠어요? 어떤 신발 신었어요? 어떤 양말 신었어요?’”(이미경 미술감독) “실제 지명이 남아 있는 곳이라면 최대한 그 장소에서 촬영하기로 했다.”(박윤호 프로듀서) 그 원칙대로 영화는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2012년 5월 경기가 열린 강원도 원주치악체육관처럼 지명은 있지만 용도가 변경돼 당시의 모습을 구현할 수 없는 경우 대안 공간을 찾아 발품을 팔았다. 영화 속 공간
[기획] 2012년의 실제같은 현장감, ‘리바운드’ 제작 비하인드